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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로아티아의 보석 같은 도시 두브로브니크(Dubrovnik)에는 유난히도 옛 이야기들이 풍성하게 전해진다. 이 이야기들은 중세영화 속에서나 나올 법한 고풍스러운 건축물들에 담겨서 여행자들을 기다리고 있다. 나와 아내는 마치 책 속의 옛 이야기들을 만나듯 흥미로운 두브로브니크 명소 찾기를 계속했다.

그 중 두브로브니크 대성당(Dubrovnik Cathedral)은 그 이름답게 두브로브니크를 대표하는 화려한 건축물이다. 12세기에 처음 세워졌던 이 성당은 1667년 대지진에 의해 안타깝게 파괴되었지만, 18세기 초에 이탈리아 건축가들에 의해 바로크 양식으로 다시 세워졌다.
 
바로크 양식으로 지어진, 두브로브니크 대표 건축물이다.
▲ 두브로브니크 대성당. 바로크 양식으로 지어진, 두브로브니크 대표 건축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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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성당 전면에 서서 보니, 가운데 높게 솟아오른 돔이 압도적인 높이로 주변을 내려다보고 있다. 대성당의 이 돔은 어디선가 본 듯하다는 생각이 든다. 진회색의 아치형 돔이 과거 경복궁 광화문 뒤에 자리잡았던 일제 총독부 건물의 돔과 거의 유사하게 생겼기 때문인 것 같다.

성당의 외벽은 고급스러운 회색 석재로 빼곡하게 짜 맞춰져 있고, 그 외벽 위로는 기독교 성인상이 마치 기둥처럼 우뚝 서 있다. 마치 건물의 지붕 위에 슈퍼 히어로 같은 자세로 서 있는 이 성인들은 성당 아래의 사람들을 굽어보고 있다. 하늘을 배경으로 서 있는 이 성인 조각상들로 인해 대성당의 외관에는 성스러운 분위기가 감돈다.

 우리는 대성당 내부로 조용히 들어가 보았다. 대성당 안에는 시원하게 바람이 통하고 있었다. 대성당 내부의 벽면과 천장은 장식이 많지 않고 온통 백색으로 칠해져 있어 전체적으로 깔끔한 느낌으로 다가온다. 이 밝은 성당 안에 서면, 유럽의 기독교 문화를 바탕으로 발전한 두브로브니크의 정체성과 깊은 신앙심이 확연하게 느껴진다.
 
흰색으로 칠해진 내부는 깔끔하고 밝은 느낌이 든다.
▲ 두브로브니크 성당 내부. 흰색으로 칠해진 내부는 깔끔하고 밝은 느낌이 든다.
ⓒ 노시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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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당 중앙의 예배석에는 두브로브니크 시민들이 앉아 열심히 기도를 드리고 있다. 성당 안에는 깨뜨릴 수 없는 적막만이 흐르고 있다. 조금이라도 말 소리를 내기도 부담되는 이 분위기는 진심으로 기도를 드리고 있는 두브로브니크 시민들의 모습에서부터 시작되고 있었다.

관광객으로 보이는 사람들은 주로 주제단 앞에 앉아있거나 서 있다. 나는 이들도 예배를 드리러 온 사람들인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었다. 이 여행자들의 눈길은 주제단 뒤편의 한 그림으로 향하고 있었다.

이들이 관람하고 있는 그림은 그 이름도 유명한 티치아노 베첼리오(Tiziano Vecellio)의 '성모승천'. 두브로브니크 대성당이 성모승천대성당이라는 이름으로도 불리는 이유도 성당 안에 티치아노가 그린 이 성모승천 그림이 있기 때문이다.

천주교의 성모승천은 성모 마리아가 죽은 후에 영혼과 함께 육체도 천국으로 올라갔다는 믿음에서 비롯되었다. 성모승천은 천주교인 사이에서 널리 알려진 내용이지만 이 그림이 유독 유명세를 치르는 것은 이 그림을 그린 이가 바로 티치아노이기 때문이다.

티치아노는 현대까지도 이어지는 서양 회화의 캔버스 유화 기법을 처음으로 개척한 '회화의 군주'이다. 새로운 회화의 시대를 연 화가인 것이다. 그는 활동범위가 나라 밖에까지 뻗쳤던 최초의 국제적 화가이기도 했다.

티치아노는 주로 베네치아에서 그림을 그렸지만 그는 베네치아 인근에 퍼져 있는 여러 도시국가에서 작품 주문을 받았다. 그는 당시 이곳 라구사(Ragusa) 공화국의 천주교인들을 만나고 의뢰를 받아 성모승천을 그렸던 것이다.
 
성모 마리아가 죽은 후에 육체도 천국으로 올라간다는 천주교의 믿음에서 비롯되었다.
▲ 성모승천. 성모 마리아가 죽은 후에 육체도 천국으로 올라간다는 천주교의 믿음에서 비롯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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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은 크게 상하 두 부분으로 나뉘어 있는데, 위쪽에는 하늘로 올라가는 성모, 아래에는 이 사건의 증인이 되었던 여러 사도들이 자리하고 있다. 성모의 머리 위에서는 어린 천사가 하늘로 성모를 인도하고 있다.

"이 그림 너무 인상적이야. 이 그림을 보고 있으면 왜 자꾸 성모가 하늘로 올라가는 것 같이 보이지?"
"하늘을 향해 뻗친 성모의 두 팔 동작 때문이지. 성모의 두 팔이 그림 속에서 실제 하늘로 올라가는 듯한 묘한 운동감을 만들어내고 있어."


이 그림을 자세히 보고 있으면 무언가에 빨려들 듯한 묘한 감정을 느낄 수 있다.

"무엇이 사람들의 시선을 이렇게 끌어들이고 있을까? 그것은 바로 전체 그림에 통일감을 느끼게 해 주는 황금색 '빛'이 있기 때문이지. 이 빛이 성모에서 시작되어 그림 전체를 찬란하게 비추고 있어. 황금색으로 묘사된 빛을 통해 '성모승천'은 더욱 신성하게 빛나고 있는 거지."

대성당 곳곳에는 대성당의 보물들에 대해 설명하는 안내문이 전시되어 있다. 안내문의 사진을 보니 성당 보물실에 수많은 유물들이 보관되어 있었다. 나는 조그마한 방 하나 크기인 보물실 안으로 들어가보았다. 종교시설인데도 의외로 이곳의 유물들은 금빛 화려하게 빛나고 있었다. 안타깝게도 사진촬영은 금지되어 있었다.
 
성 블라이세의 유해가 금세공품 안에 들어있다.
▲ 보물실의 유물. 성 블라이세의 유해가 금세공품 안에 들어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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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보물실 안에는 중세 두브로브니크의 금세공사들이 심혈을 기울여 만든 138개의 귀중한 금세공품이 전시 중이다. 보물실 안을 둘러보던 나는 금빛 화려한 한 유물함을 보다가 소스라치게 놀라고 말았다. 유물함 안에 사람의 뼈로 생각되는 부위들이 있었던 것이다. 이 뼈들은 게다가 화려하게 번쩍거리는 손과 다리 모양의 금세공품 안에 들어있었다.

보석상자 같이 생긴 유물함 안에 보관된 유골은 바로 두브로브니크의 수호성인 성 블라이세(Saint Blaise)의 머리뼈와 다리뼈, 손뼈이다. 머나먼 아르메니아에서 순교한 성 블라이세의 유골이 어떻게 두브로브니크의 대성당에까지 전해졌는지는 알 수 없지만, 그들은 수호성인의 뼈를 마치 부처님 사리 모시듯이 소중히 보관하고 있었다.

"성인의 뼈를 노출시켜서 직접 접하게 하는 이 문화가 너무 놀라워."
"크로아티아의 성당 내부에는 대부분 보물실이 있고, 보물실 안에는 화려하게 금, 은으로 장식된 세공품과 함께 성인들의 실물 뼈가 화려하게 전시되어 있어."


"성당의 보물실을 보면, 그리스도교 외에는 사상의 자유가 없던 중세 암흑시기를 역설적으로 느낄 수 있지. 전설적인 성인과 그리스도교에 천착하던 당시 사람들의 의식세계가 느껴지거든."

나는 아내와 두브로브니크 대성당에 관련된, 끝도 없이 이어지는 옛 이야기를 나누었다. 이 대성당은 12세기말 영국의 사자왕 리처드 1세(Richard I)와 관련된 흥미로운 이야기도 담고 있었다.

에루살렘 재점령을 목표로 3차 십자군 전쟁에 참여했던 리처드 1세는 1192년 휴전협정을 맺고 영국으로 돌아가던 길에 아드리아 해에서 강한 폭풍을 만났다. 당시 리처드 1세는 구사일생으로 두브로브니크 바로 앞에 있는 로크룸(Lokrum) 섬에 좌초해 목숨을 건졌다고 한다.

리처드 1세는 원래 자신이 상륙했던 로크룸 섬에 성당을 세우려고 하였다. 그러나 두브로브니크 시민들이 섬이 아닌 두브로브니크 구시가에 성당을 건립할 수 있도록 요청했고 그 덕에 두브로브니크에는 거대한 대성당이 우뚝 서게 되었다. 원래 리처드 1세가 섬에 성당을 세우려던 것을 두브로브니크 시민들의 꾐에 빠져 이곳에 성당을 건립하게 되었다고 전설처럼 전해지기도 한다.

당시 리처드 1세가 지어준 대성당은 대지진에 완전히 허물어져서 전혀 다른 모습으로 재건되었다. 리처드 1세도 바닷길을 싫어하여 변장 후 육로를 통해 이동하다가 오스트리아의 레오폴트 5세(Leopold V)에게 붙잡혀 온갖 수모를 당했다. 스토리 뒤에 이어지는 후일담을 들으면, 사람 일은 알 수가 없다는 사실을 다시 느끼게 된다.
 
계단 위 광장에서 보면 구시가가 아름답게 내려다보인다.
▲ 바로크 양식의 계단. 계단 위 광장에서 보면 구시가가 아름답게 내려다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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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는 대성당을 나와 대성당 뒤편의 언덕으로 향했다. 그 언덕에 로마의 스페인 계단을 빼 닮은 바로크 양식의 계단이 나타났다. 로마의 스페인계단을 모티브로 만들어진 이 계단은 두브로브니크 관광청 안내책자에서도 상세히 소개되어 있을 정도로 운치 있는 계단이다.

이 계단은 바로 성 이그나티우스 성당(Church of st. lgnatius)으로 올라가는 계단이다. 계단 위 광장에 서서 아래를 내려다보면 구시가 거리가 아름답게 전개된다. 그리고 계단 끝 광장에는 생각지도 못하게 아름다운 성당이 펼쳐진다. 계단을 올라서 보니 올드타운에서 가장 높은 곳에 위치한 성 이그나티우스 성당의 위용이 드러났다.
 
예수회 창립자인 성 이그나티우스에게 헌정된 성당이다.
▲ 성 이그나티우스 성당. 예수회 창립자인 성 이그나티우스에게 헌정된 성당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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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순백색의 성당건물 안으로 들어가 보았다. 성당 내부는 두브로브니크의 다른 성당들보다 규모가 웅장했다. 예수회의 창시자인 성 이그나티우스의 이름이 성당 이름이 될 정도로 이 성당은 가톨릭 신앙의 부흥을 기원하는 성당이다. 성 이그나티우스 성당은 당시 크로아티아에서 가장 전형적인 바로크 양식으로 지어진 성당으로도 유명하다.

성당 정문의 안쪽에는 성모 발현지인 프랑스 루르드(Lourdes) 동굴의 성모 마리아 상이 모셔져 있다. 1885년에 지어졌으니, 루르드 동굴의 성모상 중에는 유럽에서 가장 오래된 성모상 중의 하나이다.
 
유럽에서 가장 오래된 동굴 성모상 중의 하나이다.
▲ 루르드 동굴의 성모상. 유럽에서 가장 오래된 동굴 성모상 중의 하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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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모가 실제로 나타났다고 전해지는 동굴은 프랑스에 있는데, 이 동굴을 머나먼 크로아티아의 한 성당 안에 복원한 정성이 놀랍네. 당시 기독교 신자들의 입에서 입으로 전해진 전설적인 이야기들의 힘인 거지. 종교의 시대에 살던 당시 사람들의 깊은 신앙심이 만들어낸 작품이라고 할 수 있지."

성 이그나티우스 성당은 1667년 대지진 이후 주변의 많은 주택들을 철거하고 예수회 대학 건물과 함께 지어졌다. 그 후 유고내전으로 인해 훼손되었다가 다시 복구되는 과정을 거쳤다. 그래서인지 성당 안을 다녀보면 아직도 외벽이나 내부가 완전하지 않은 곳이 있다.
 
붉은 대리석과 금박장식으로 화려하게 빛나고 있다.
▲ 성당 주제단. 붉은 대리석과 금박장식으로 화려하게 빛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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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당 내부는 소박하고 조각과 장식도 많지 않지만 유독 주제단 주변만 집중적으로 화려하다. 주제단은 붉은 대리석으로 빛나고 있었다. 대리석 기둥과 종교화들을 장식하는 금박장식의 화려함은 경이로운 느낌까지 들 정도이다. 유럽에서 어마어마한 규모의 성당을 봐 왔지만 성 이그나티우스 성당의 주제단은 유독 웅장해 보인다.

화려하게 장식된 제단의 천장에는 성 이그나티우스가 천국으로 올라가 예수를 만나는 벽화가 그려져 있기 때문이다. 1725년 건립 당시 그려진 돔 천장의 벽화는 바로 가톨릭을 부흥시킨 성 이그나티우스의 영광을 표현한 것이다.
 
성 이그나티우스가 천국으로 올라가 예수를 만나는 벽화가 그려져 있다.
▲ 돔 천장화. 성 이그나티우스가 천국으로 올라가 예수를 만나는 벽화가 그려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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돔에 그려진 벽화는 마치 하늘을 보는 듯이 몽환적으로 그려져 있다. 하늘의 구름 속에서 예수회의 성 이그나티우스는 예수로부터 자랑스럽게 왕관을 받으려는 자세를 취하고 있다. 수많은 천사들로 둘러싸인 천국을 올려다보면서 당시 사람들은 환상을 느끼며 신앙심을 더욱 키웠을 것이다.

중앙제단 벽화에서의 성 이그나티우스는 가톨릭 신앙의 강력한 옹호론자답게 예수회의 규범 책을 들고 있다. 그의 곁을 지키고 있는 4명의 여인도 예수회가 활동하였던 당시의 네 대륙을 나타내고 있다. 그 옆의 벽화도 그가 성 프란시스 자비에르(St. Francis Xavier)를 선교지역에 파송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즉 이 성당의 세계는 18세기 당시 가톨릭 포교에 힘을 쓰던 시대상을 그대로 보여주고 있다.

나는 성당 안에서 가톨릭의 장편 서사시를 보는 듯한 착각에 빠졌다. 그리고 고단한 삶을 살았을 중세 시대 두브로브니크 인들이 종교에서 갈구하던 소망들을 이 성당 안에서 강렬하게 느낄 수 있었다.
 
많은 여행자들이 운치있는 계단에 모여 두브로브니크의 역사를 듣고 있다.
▲ 성당 앞 계단. 많은 여행자들이 운치있는 계단에 모여 두브로브니크의 역사를 듣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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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종교의 세상에서 문을 열고 밖으로 나오니, 문밖은 밝은 여행자들의 세상이었다. 영화 촬영지로 이름이 난 이 성당 주변에는 많은 젊은이들이 찾고 있었다. 전망이 시원한 성당 주변의 야외 레스토랑에서는 나와 아내를 유혹하고 있었다.

광장을 지나 몇 걸음만 가면 두브로브니크 성벽이 이어지고 그 너머에 바다가 넘실대고 있었다. 나와 아내는 바다를 찾아 다시 걸어갔다. 

덧붙이는 글 | 오마이뉴스에만 기사를 올리고 있습니다. 앞으로 크로아티아, 몬테네그로, 슬로베니아, 체코, 슬로바키아 여행기를 게재하고자 합니다.


태그:#크로아티아, #크로아티아여행, #두브로브니크, #두브로브니크여행, #두브로브니크대성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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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와 외국을 여행하면서 생기는 한 지역에 대한 궁금증을 해소하는 지식을 공유하고자 하며, 한 지역에 나타난 사회/문화 현상의 이면을 파헤쳐보고자 기자회원으로 가입합니다. 저는 세계 50개국의 문화유산을 답사하였고, '우리는 지금 베트남/캄보디아/라오스로 간다(민서출판사)'를 출간하였으며, 근무 중인 회사의 사보에 10년 동안 세계기행을 연재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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