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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일 한국개발연구원(KDI)과 한국경제학회가 서울 중구 예금보험공사에서 개최한 '경제패러다임 전환과 한국경제의 미래 정책세미나'에서 발제자로 나선 박상인 서울대 교수가 발언하고 있는 모습.
 22일 한국개발연구원(KDI)과 한국경제학회가 서울 중구 예금보험공사에서 개최한 "경제패러다임 전환과 한국경제의 미래 정책세미나"에서 발제자로 나선 박상인 서울대 교수가 발언하고 있는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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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산업은 진화를 멈췄습니다. 혁신 기회와 유인이 없는데, 그것은 재벌중심의 수직계열화, 일감몰아주기, 기술탈취 때문입니다. 산업구조가 바뀌면 중소기업에 좋은 일자리가 생깁니다."

22일 한국개발연구원(KDI)과 한국경제학회가 서울 중구 예금보험공사에서 개최한 '경제패러다임 전환과 한국경제의 미래 정책세미나'에서 나온 말이다.

발제자로 나선 박상인 서울대 교수는 재벌 대기업들이 중소기업 기술탈취, 단가 후려치기 등으로 상품가격을 낮추는 데 치중하면서 우리 경제에 혁신이 일어나지 않고 있다고 진단했다. 그러면서 그는 기술탈취에 대한 징벌배상제도 등을 도입하고, 재벌개혁·노동개혁을 동시에 추진하는 경제 대전환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경제블록화'로 멈춰버린 한국경제

우선 박 교수는 과거 정부 주도의 경제발전 방식이 한계에 부딪힌 배경을 설명했다. 그는 "박정희 전 대통령은 수출을 잘하는 기업에 특혜를 주면서 친경쟁적인 보상체계를 마련했다"고 말했다. 이어 "이것이 과거 한국경제가 성공할 수 있었던 주요 원인이었다"고 덧붙였다. 

박 교수는 "그런데 2000년대 들어 정부 주도의 경제성장에 한계가 왔다"며 "금융시장이 발달하고, 부품소재시장이 발달하면서 선진국 모방을 통한 성장에 한계가 온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런 문제가 발생한 원인으로 그는 경제블록화를 지목했다. 예를 들어 현대차의 일감이 1차 하청기업, 2차 하청기업으로 이어지는 식으로 경제가 블록화되면서 경쟁이 일어나지 않게 됐다는 것. 

특히 박 교수는 이처럼 재벌 대기업들에게 경제력이 집중되면서 우리나라 국내총생산(GDP)의 30%를 차지하는 제조업이 위기를 겪고 있다는 것에 주목했다. 그는 "한국 제조업은 (다른 나라보다 물건을 싸게 파는) 가격경쟁력으로 성장할 수 있었는데, 이런 방식이 더 이상 작동하지 않으면서 경쟁력을 잃었다"고 말했다.

박 교수는 "대기업 1차·2차 계열사마다 재벌의 친인척들이 들어서면서 경쟁이 없어졌다"며 "중간재 산업의 혁신이 일어날 수 없게 된 것"이라고 부연했다. 이어 "재벌개혁을 해야 하는 이유 중에 하나"라며 "이런 체제에선 혁신을 할 수 없다, 글로벌 혁신 네트워크에서 우리나라가 압도적으로 꼴찌를 했다"고 덧붙였다. 

그는 "일본 토요타의 경우 1990년대 독립회사를 만들어 개방형 혁신 모듈을 생산해 다시 일어났다"고 했다. 그러면서 "우리나라에선 경제블록화로 인해 융합이 일어날 수 없다"며 "현대차가 현대모비스를 독립시키지 못하는 이유는 총수일가의 지배력 문제 때문"이라고 주장했다. 
 
22일 한국개발연구원(KDI)과 한국경제학회가 서울 중구 예금보험공사에서 개최한 '경제패러다임 전환과 한국경제의 미래 정책세미나'에서 박상인 서울대 교수 등 참석자들이 발언하고 있다.
 22일 한국개발연구원(KDI)과 한국경제학회가 서울 중구 예금보험공사에서 개최한 "경제패러다임 전환과 한국경제의 미래 정책세미나"에서 박상인 서울대 교수 등 참석자들이 발언하고 있다.
ⓒ 조선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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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벌중심의 경제블록화가 해소되지 못하면서 임금불평등도 악화됐다고 박 교수는 설명했다. 그는 "현대모비스의 수익이 100이라면 1차 하청기업의 수익은 60, 2차 하청기업 수익은 그것의 50~60% 수준으로 떨어지고 임금도 함께 감소하는 구조"라고 부연했다.

이 같은 재벌대기업 중심의 산업구조를 기술력 있는 중소기업 중심으로 바꾸게 되면 기업 격차 심화로 인한 청년실업, 이른 퇴직, 자영업 몰락 등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는 것이 그의 주장이다. 이에 따라 제조업 부문에서 양질의 민간일자리를 100만 개 이상 창출할 수 있다고 박 교수는 설명했다. 

박 교수는 재벌개혁을 위한 방안으로 대기업이 중소기업의 기술을 뺏을 경우 무거운 처벌을 내리는 징벌적 배상 제도를 도입하는 안을 제시했다. 더불어 그는 주주총회에서 일감몰아주기, 총수 자녀의 임원 임명 등에 대해 개인투자자 등 비지배주주의 동의를 얻는 제도를 도입하는 방안도 제안했다. 또 대기업이 은행 등 주요 금융회사와 주요 실물회사를 동시에 지배하는 것을 금지하는 '금산분리'도 필요하다는 것이 그의 생각이다. 

이와 함께 대규모 유통업자의 착취와 하청 기업에 대한 단가 후려치기에 대해 공정거래법상 수요독점 규제를 적용할 필요가 있다고 박 교수는 주장했다. 한가지 산업이 한 기업에만 몰리는 수요독점을 막아야 경쟁이 활발해지는데 단가 후려치기 등도 독점으로 인한 것이기 때문에 규제해야 한다는 얘기다. 

"시장주의자라면 재벌개혁 말해야"

이어 토론에 나선 김진방 인하대 교수는 "재벌 중심 경제체제가 제조업 위기의 원인이라는 말에 동의하기 어렵다"며 박 교수의 주장에 반박했다. 그는 "지배구조 개혁에는 동의하지만 그것이 과연 직접적인 혁신으로 연결될지는 의문"이라며 "총수의 경영 지배력 약화도 필요하지만 이는 또 다른 부작용을 일으킬 수 있다"고 부연했다. 

민세진 동국대 교수도 "정부 주도의 재벌 중심 성장이 더 이상 작동하지 않는다는 점은 동의하지만 재벌 경제력 집중의 해소를 위해 기업집단을 해체하는 것에는 이견이 있다"고 말했다. 이어 "수출 중심으로 성장하는 우리나라에서 대기업은 기술혁신의 한 축을 담당하고 있다"며 "금산분리 등은 결국 재벌축소 전략인데, 하향평준화를 피할 수 있을지 우려된다"고 했다. 

이에 박상인 교수는 "경제력 집중은 많은 자원을 특정 개인이 통제하면서 생기는 문제"라며 "재벌개혁은 친시장적 개혁"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본인을 시장주의자라고 소개하면서 재벌주의를 말하는 이들이 한국 경제에 너무 많다"며 "시장경제를 말하자면 재벌개혁을 말해야 한다"고 밝혔다.

한편 이날 축사에 나선 김현철 대통령비서실 경제보좌관은 "우리 사회를 근본적으로 개혁하기 위해선 '개종(종교를 바꿈)'에 버금가는 정도의 전환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어 그는 "특히 개혁이 왜 필요한지에 대한 공감대 형성이 중요하다"며 "패러다임 전환이 제대로 이뤄지면 한국 경제에 밝은 미래가 열릴 것"이라고 덧붙였다. 

태그:#박상인, #KDI, #김현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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