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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거연령 18세 하향'이 다시 화두로 떠올랐습니다. <오마이뉴스>와 '촛불청소년인권법제정연대'는 3회에 걸쳐 청소년 참정권 도입에 대한 글을 싣습니다. 이 기사는 세 번째, 마지막 기사입니다. [편집자말]
지난 20일, 선거연령 하향 운동을 하고 있는 촛불청소년인권법제정연대 주최로 '핀란드의 청소년 정치참여' 현상에 대한 강연이 열렸습니다. 강연자는 핀란드 땀뻬레 대학에서 정치학을 공부한 서현수 박사. 핀란드 교육과 정치에 대한 어렴풋한 환상만 가지고 참석한 청중들의 기대는 배신당하지 않았습니다. 핀란드 사회가 청소년을 대하는 태도는 한국과는 정말 달랐습니다.

'고유한 개인으로서의 아동', 핀란드 법 정신
 
핀란드.
 핀란드.
ⓒ maxpixe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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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국의 침략 지배를 받았고 이후 내전을 겪었던 핀란드의 역사는 한국의 역사와 닮은 점이 있습니다. 하지만 한국은 아직까지도 '종전'을 하지 못한 나라입니다. 세계적으로는 냉전이 종식됐지만, 우리 땅에서 만큼은 국가보안법과 국가정보원이라는 형태로 전쟁의 긴장이 시민들의 일상에 스며들어 있는 셈입니다.

서현수 박사는 "좁아진 우리 사회의 정치적 상상력을 넓히는 일이 시급하다"라면서 강의를 시작했습니다. 청소년의 정치적 참여를 보장하는 것도 그 한 예입니다.

우리나라에서는 국회의원도, 지방자치단체장도, 광역과 기초 지방자치단체 의원도 피선거권이 모두 25세 이상에게만 주어집니다. 반면, 핀란드 등 유럽의 상당수 나라들은 18세가 되면 국회의원 선거나 지방자치 선거에 출마할 권리를 부여합니다. 더욱이 한국은 선거권도 19세 이상에게만 허용하고 있는데, 이는 OECD 국가들 중 가장 높은 기준입니다.

서현수 박사는 "유럽 대부분의 나라는 18세를 선거권 연령 기준으로 하고 있고, 오스트리아는 2007년부터 16세에게 선거권을 부여하고 있다"라고 소개했습니다.

그는 "핀란드 헌법만 봐도 아동 및 청소년에 대한 근본적인 인식의 차이가 드러난다"라고 말했습니다. 핀란드 헌법 제6조에는 '만인의 법 앞의 평등과 차별 금지' 조항에 이어 바로 아동의 인권 보장에 관한 내용이 기술돼 있습니다. 

"아동은 평등하게, 그리고 고유한 개인으로서 대우받아야 하며, 그들의 발달 수준에 상응하여 자신들에 관련된 문제에 영향을 미치도록 허용되어야 한다."

한국의 헌법이 아동과 청소년에 대해 언급하는 부분이 단 두 군데입니다. '연소자의 근로에 대한 보호'와 '청소년 복지정책을 실시할 국가의 의무'. 아동 청소년 시민들을 어떻게 대우할 것인가에 대한 내용은 없습니다. 매우 대조적입니다.
 
'핀란드 청소년 정치참여' 강연 중인 서현수 박사
 "핀란드 청소년 정치참여" 강연 중인 서현수 박사
ⓒ 촛불청소년인권법제정연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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핀란드의 교육과 청소년 정치참여

서현수 박사는 핀란드에서 박사과정을 밟으면서, 가족과 함께 6년간 거주했습니다. 아들이 초등학교 고학년이 됐을 때 받은 교과서를 펴본 적이 있다고 했습니다. "사회 교과서에는 헌법과 국제인권규약이 보장하는 다양한 아동 인권의 내용이 서술"돼 있었고, 또 "민주주의 국가에서는 자신의 삶에 관련된 정책이나 의사 결정에 누구든 영향을 미칠 수 있어야 한다"는 점이 특히 강조돼 있었다고 전했습니다. 

핀란드 교과서는 학교 교장실 앞에서 시위를 하는 학생들의 사례 역시 소개됐는데, 아동과 청소년이 의견을 내는 것에 대한 한국과 핀란드의 관점 차이가 느껴지는 대목이었습니다.

'핀란드에서는 청소년의회 등 청소년 참여기구가 활발하게 운영된다'는 이야기를 듣고 부럽다 생각한 적이 있었습니다. 한국의 청소년 참여기구는 실질적 권한이 없습니다. 또한 청소년들이 그 존재조차 모르고 있습니다. '청소년특별회의'라는 중앙 차원 청소년 참여기구에서 문재인 대통령의 회의 참관을 요구하고 있는데, 아직 이뤄지지 않고 있습니다.

서현수 박사는 핀란드의 청소년 참여기구 등의 제도를 자세히 설명했습니다. "핀란드 중앙의회에서 운영하는 청소년의회는 실제 의원과 동수인 199명의 청소년 의원들로 구성"되고, "그들의 질의에 총리 및 장관들이 전부 직접 나와 답변한다"고 합니다. 

그는 "청소년의회의 권한은 제한적이지만, 청소년의회에 대해 단지 교육적 차원이라고 생각하거나 가벼이 여기지 않는다"라며 "존중하고 진지하게 대하는 태도가 중요한 것 같다"라고 덧붙였습니다. 

이에 더해 핀란드에는 각 지방자치단체별로 어린이의회와 청소년위원회가 있다고 합니다. 어린이의회는 지역 내 종합학교 1~6학년(초등학생) 대표들로 구성되고, 청소년위원회는 종합학교 7~9학년과 고등학교 대표들로 구성됩니다. 각 학교에서 민주적 절차에 의해 선출된 대표자들이, 학교 안은 물론 지역사회 차원에서 목소리를 낼 수도 있는 것입니다.

이런 청소년 참여기구들의 목소리를 무시할 수 없는 점은 청소년들이 실제로 지역의 법을 제정하는 주민발의 권한이 있기 때문이기도 할 것 같습니다. 지자체 인구의 2%에 해당하는 발의 서명을 모으면 주민발의가 가능한데, 한국이 19세 이상에게만 주민발의 권리를 주는 것과 달리 핀란드는 15세부터 그 권리가 부여된다고 합니다.

2011년 서울 학생인권조례 주민발의 운동이 벌어졌던 시절이 떠올랐습니다. '학생'인권조례임에도 정작 그 당사자인 초·중·고등학생들은 주민발의 서명에 참여할 권리가 없었습니다.

기본적으로 정당정치가 활발한 핀란드에서는, 정당 청(소)년조직들의 활동도 활발합니다. 보통 유스(youth)에 해당하는 15~29세 당원들이 참여하는 조직으로 꾸려진다는데, 이는 청소년도 정당 활동을 할 수 있도록 보장하기에 가능합니다. 한국의 선거법 및 정당법은 만 19세 미만이 정당가입을 하거나 선거운동을 하는 것을 금지하고 있습니다.

서현수 박사는 "핀란드 정치에서 정당 청(소)년조직들의 힘을 무시할 수 없다"라고 설명했습니다. 그는 "핀란드에는 정당 가입에 관한 법적 연령 제한은 없고, 정당들은 보통 15세부터 당원을 받는다"라며 "녹색당, 좌파당 같은 경우 부모 동의가 있을 경우 13세부터 당원 자격을 부여하며, 핀란드의 정당들에서는 청년조직 대표가 정당의 부대표를 역임하는 등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라고 전했습니다. 일찌기 당에서 활동하면서 정책적·정치적 전문성을 획득하니 청년 국회의원, 장관, 총리 배출이 가능한 것 같습니다.

한국은 어떨까요. 한국 국회의원 평균 연령은 55.5세입니다. 이번 20대 국회에 2030세대는 단 세 명, 전체 국회의원 중 1%가량인 셈입니다. 대통령 피선거권 연령 기준을 40세 이상으로 정해놓은 헌법에서도 한국의 '나이주의' 현상이 드러납니다. 청소년은 아예 정치적으로 대표되지 않고, 청년들은 과소대표 되고 있는 우리 정치가 경쟁과 빈곤, 차별과 억압에 허덕이는 청소년‧청년들의 현실을 과연 해결할 수 있을지 의문입니다.
 
국회 앞에 걸린 청소년의 노란리본 '참정권 보장하라'
 국회 앞에 걸린 청소년의 노란리본 "참정권 보장하라"
ⓒ 촛불청소년인권법제정연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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핀란드의 활발한 청소년 정치참여, 가능했던 이유는?

활발한 핀란드 청소년 정치 참여는 그냥 만들어진 게 아닙니다. 서현수 박사는 "민의를 제대로 반영하려 노력하는 정치제도와 큰 불안 없이 삶을 이어갈 토대가 돼 주는 보편적 복지제도가 그 배경"이라고 설명했습니다.

핀란드에는 '두 사람만 모이면 단체를 만든다'는 농담도 있을 정도로 '조직의 나라'라고 합니다. 목소리를 내면 바뀐다는 인식, 실제로 민의를 반영하는 정치제도가 있기 때문에 정치 참여가 활발한 것 같습니다. "지방자치와 분권이 활성화돼 있는 것이 그 이유 중 하나"라는 서현수 박사의 설명도 있었습니다.

또한 핀란드는 100% 비례대표제로 의회를 구성하는 나라입니다. 비례대표 방식이 수많은 영역에 두루 적용되고 있다고 합니다. 서현수 박사는 "그러다 보니 다양한 정치적 성향과 비젼의 정당들이 공존하고, 연정과 합의가 정치의 기본적 방식이 된다"고 설명했습니다. 

한국에서 투표를 해본 사람이면 누구나 공감할 것입니다. 막상 투표하려 하면 '뽑을 사람이 없다'고 한숨 쉬게 되는 상황을요. 우리나라에서 1987년 개헌을 하면서 직선제는 쟁취했지만, 민의에 비례해서 선거 결과가 나와야 한다는 원칙은 정립하지 못한 점이 다시 한 번 아쉬웠습니다.

활발한 지방자치와 비례대표제가 정치제도로서 시민들의 정치적 효능감을 높이고 청소년의 정치 참여를 뒷받침하는 한 축이 됐다면, 다른 한 축은 보편적 복지제도라고 합니다. 서현수 박사의 설명에 따르면, 핀란드에서는 16세까지 모든 아동들이 한 달에 약 95유로 정도(한화 12만2000원가량)의 아동 수당을 받고, 17세부터는 소득이나 상황에 따라 약 100~250유로(한화 12만~32만 원가량) 또는 그 이상 되는 학생 수당을 받을 수 있다고 합니다. 학생 수당을 부모가 아니라 청소년 본인에게 직접 주며, 부모로부터 독립해서 살면 더 많이 준다는 설명을 들었습니다. 

놀라웠습니다. 청소년을 부모에 종속된 존재가 아닌 독립된 개체로 보고, 경제적 독립을 장려하기에 가능한 제도로 보입니다. 그밖에도 학생들이 이용할 수 있는 무이자에 가까운 대출, 주거 지원 등 복지 제도가 아주 많다고 합니다. 서현수 박사는 "핀란드 복지제도가 기본적으로 '보편적 복지' 관점을 취하고 있기 때문에 복지 혜택을 받는 것이 낙인이 되지 않는다"고 설명했습니다.

청소년과 청년들이 학업과 생계활동을 병행하면서 힘겹게 살게 되면 정치 참여를 할 기회는 그만큼 줄어들게 됩니다. 국가는 나를 보살펴주지 않을 것이고 경쟁에서 낙오되면 살아갈 길이 없다고 생각하게 되면, 시민으로서 정치 참여를 하기보다 입시 경쟁, 스펙 경쟁에 열을 올리게 될 수밖에 없죠. 핀란드 청소년들의 활발한 정치 참여 현상은 보편적 복지제도에서 비롯되는 부분이 결코 작지 않을 것이란 생각입니다.

불가능해 보이지만, 바뀔지도 모른다

핀란드의 노조 조직률은 70%에 달합니다. 또한 핀란드의 각종 기관이 매 학기 1000여 개의 시민교육 강좌를 연다고 합니다. 서현수 박사의 설명을 들으면서 한국 사회와는 정말 다른 사회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핀란드 사람들이 부럽기도 하고, 한편으론 우리의 현실이 좌절스럽기도 했습니다. 그렇지만 또한 우리 사회도 바뀔 수 있으리라는 희망을 품기도 했습니다. 서현수 박사가 강연 중 언급한, 한나 아렌트의 글귀를 소개합니다.
 
"인간의 행위능력이란 영원히 불가능하다고 여겨진 것을 해낼 수 있다는 뜻이다. 이는 모든 인간이 고유하기 때문에 가능하며, 모든 인간의 탄생은 무언가 고유한 것이 새롭게 세상으로 나오는 것이다."

아렌트에 따르면, 인간은 원래 영원히 불가능하다고 여겨진 것들을 해낸다고 합니다. 그렇다면 켜켜이 쌓인 우리 사회의 적폐와 부조리들을 해결하는 것도, 그래서 근본적으로 새로운 사회를 만들어내는 것도, 언젠가는 가능할지도 모르겠습니다.

절대 불가능할 줄 알았던 그 변화를 만들어낼 사람들은 바로 이 시간을 살아내고 있는 우리, 하나하나 고유한 존재인 어린이와 청소년들 그리고 새롭게 탄생해 뭔가 고유한 것을 세상에 데려올 앞으로의 사람들일 것이란 생각이 들었습니다.

다시 청소년 참정권이 화두가 됐습니다. '선거연령 18세 하향' 역시 실현해낼 수 있는 것 아니겠습니까.

[관련 기사 : 다시, 청소년 참정권]
② 국회 앞 삭발 8개월, 변한 건 아무것도 없다
① '사람대접' 못 받는 대한민국 18세

태그:#청소년, #참정권, #선거연령, #18세, #투표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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촛불광장의 동료였던 청소년들에게 민주시민으로서의 권리를 보장하자는 취지로 모인연대체입니다.

오마이뉴스 기획편집부 기자입니다. 조용한 걸 좋아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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