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영화제 개막식을 앞두고 청소에 열중하고 있는 영화제 스태프들과 자원봉사자들

부산영화제 개막식을 앞두고 청소에 열중하고 있는 영화제 스태프들과 자원봉사자들 ⓒ 유성호

 
"지금까지 부산국제영화제의 성공적 개최와 정상화를 위해 묵묵히 헌신하고 노력을 다한 스태프들의 노고에 감사드리며, '시간 외 수당'과 관련한 사전 대비책 마련이 미흡했음에 대해 진심으로 유감의 뜻을 표합니다. 앞으로 부산국제영화제 이사회는 영화제 내외부의 관행을 바로잡을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먼저 올해 미지급된 '시간 외 근로수당'에 대해서는 부산시와 재원확보 방안을 논의하여 조속한 시일 내에 시정조치 하도록 노력하겠습니다."
 
부산국제영화제가 최근 논란이 된 단기계약직 스태프 시간 외 수당과 관련해 지난 15일 밝힌 공식 입장이다. 부산영화제는 지난 14일 임시 이사회를 개최해 최근 논란이 되고 있는 단기계약직 '시간 외 근로수당'에 관한 대책을 논의했다면서 시정조치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부산영화제가 이번에 낸 입장은 지난 10월 19일 청년유니온과 이용득 국회의원실이 함께 조사해 발표한 영화제 스태프 노동실태 조사 결과에 따른 것이다.
 
앞서 청년유니온과 이용득 의원실은 ▲영화제 스태프들은 잦은 실업상태에 놓임에도 불구하고, 영화제 고용기간이 짧아 실업급여를 제대로 받지 못한 것 ▲시간 외 수당을 주지 않는 '공짜야근' 관행의 만연 등을 지적했다.
 
올해 부산영화제에서 일한 스태프들을 중심으로 조사한 내용을 발표하는 자리에서 청년유니온과 이용득 의원은 "영화제 스태프들에 대한 체불임금을 즉각 지급하고, 관행처럼 존재해왔던 '공짜야근'을 근절시켜야 한다"고 강조했다.
 
부산영화제만이 아닌 모든 영화제의 문제
 
하지만 시간 외 수당 문제는 단순히 단기계약직만의 문제가 아니다. 또한 부산영화제의 문제라고 한정할 수도 없는 사안이다. 지난 10월 청년유니온과 이용득 의원실의 발표 직후 취재과정성에서 접촉한 국내 영화제 관계자들은 대부분이 부산영화제의 단기계약직 스태프 문제로만 국한해서는 안 된다는 입장이었다. 전체 영화제의 문제고 거기서 일하는 스태프와 직원 모두의 문제라고 강조했다.
 
 2018년 전주국제영화제 개막식 모습

2018년 전주국제영화제 개막식 모습 ⓒ 전주국제영화제

 
"사실 청년유니온과 이용득 의원실의 문제 지적은 단순하게 단기 스태프들에게 집중해서 접근한 부분이 있다. 그 발표가 나온 후 내부에서 불만이 많았다. 야근이나 연장근로는 국내 영화제 전체 직원들도 똑같이 겪는 일이다. 상근하는 직원들의 경우도 절대 덜하지 않다."
 
국내 영화제에서 오랜 시간 일하고 있는 한 관계자의 반응이었다. 이 관계자는 "이게(공짜 야근) 영화제 시작할 때부터 계속 이어져 오다 보니 문제의식이 약했다. 단기 스태프 문제가 불거지니 직원들 사이에서 '우리가 더 심한 것 아니냐'는 말이 나온다"고 전했다.
 
에전 국내 영화제 사무국장으로 일했던 한 영화계 인사는 "영화제 개막을 한 달 앞두고부터는 거의 집에 못 들어가고 근처에서 숙식을 한다"며 "잠자는 시간 빼고는 거의 영화제 일에 매달려 하루 근무 시간이 15시간 이상이 될 때도 있다"고 고백했다.
 
또한 "그럼에도 나 같은 경우는 사무국 책임자라는 위치 때문에 달리 수당 문제를 언급하기 힘들다"면서 "아래 직원들도 밤샘 근무가 잦고 영화제 기간 중에는 잠자는 시간도 4~5시간에 불과할 정도지만, 다들 수당 이야기를 꺼낼 생각을 하지 못했던 것 같다"고 덧붙였다. 이유는 긴 시간 관행처럼 이어왔기 때문이다.
 
단기 스태프로 긴 시간 일한 또 다른 국내 영화제의 한 관계자는 "영화제에서 일하는 사람들끼리 모이면 매번 영화제 처우 등에 대한 불만이 쏟아져 나온다"며 "겉은 화려하지만 속은 곪아 있는게 영화제 현실이다. 매번 '절이 싫으면 중이 떠나야 된다'는 얘기가 나오는 실정이다. 다들 차마 못 떠나다 보니, 아무 말 못하고 여기까지 온 것 같다"고 말했다.
 
단순히 스태프만의 문제가 아니라 영화제의 주요 책임을 맡고 있는 프로그래머의 문제도 다르지 않다는 지적도 나온다. 물론 영화제에 따라 처우가 다르고 정규직으로 있는 경우도 있으나 일부는 4대 보험 적용도 안 되는 데다 장기간 계약직 신세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곳도 있어서다.
 
국내 일부 영화제의 프로그래머는 10년째 계약을 연장하면서 비정규직으로 근무하고 있기도 하다. 4대 보험은 물론, 퇴직금도 없는 불안정한 고용상태를 유지하고 있는 것. 또 다른 영화제 프로그래머는 최근 출장지에서 과로로 쓰러진 적이 있으나 MRI 비용 등을 자비로 부담했다고 전했다. 영화제 경력만 5년이 넘어섰지만 이를 공개적으로 밝히기는 쉽지 않다.
 
국내 영화제의 한 프로그래머는 "영화제 업무의 특성을 전혀 고려하지 않은 근무시간도 어려운 부분"이라고 말했다. 일반 회사처럼 9시에 출근해 6시에 퇴근하는 방식을 적용하고 있는데, 해외 영화제나 영화사 등을 통해 작품을 초청해야 할 경우 이들의 업무시간은 현지시차에 맞출 수밖에 없다는 것. 프로그래머는 새벽에도 전화나 이메일을 통해 연락을 주고받아야 하고, 해외 출장의 경우 영화를 보는 시간 외에는 해외 관계자들과 지속적으로 접촉해야 한다. 당연히 12시간 이상 근무도 잦을 수밖에 없다. 하지만 프로그래머는 "시간 외 근무로 인정받지 못하는 실정"이라고 토로했다.
 
관행적으로 이어지다 시대적 변화에 개선 목소리
 
 지난 7월에 열린 2018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 행사 모습

지난 7월에 열린 2018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 행사 모습 ⓒ 부천영화제

 
1996년 부산영화제를 시작으로 본격적으로 등장한 국내 영화제들의 근무환경은 조금씩 나아졌다고는 해도 처음이나 지금이나 비슷하다. 국내 한 영화제의 한 프로그래머는 몇 해 전 글을 통해 영화제 근무환경 첫 단추를 부산영화제가 잘못 꿰었음을 지적했다. 부산영화제를 만든 김동호 전 이사장 등이 근검절약으로 자기 돈을 주로 쓰고 높은 도덕성을 유지하다보니 아래 스태프들 역시 급여나 처우가 하향 조정됐다는 주장이었다(관련기사: "영화제 끝나면 버려지는 느낌... 돌고 또 돌고").
 
국내 영화제가 한국 사회 문화 운동의 한 방편으로 출발한 것도 영향이 있다. 검열과 표현의 자유 제약 속에 영화제는 숨통을 트일 수 있는 도구였기에 영화제를 만든 영화인들은 자기 돈을 쏟아붓기도 했고, 초기
참여했던 스태프들 역시 자부심을 갖고 열정을 쏟았다. 
 
부족한 예산으로 짧은 시간에 활용하는 단기 스태프 중심으로 운영하는 방식이 일반화됐고, 영화제 기간 전후로 이어지는 잦은 야근 등의 근무환경은 관행처럼 굳어졌다, 이게 20년 이상 이어진 것이다.
 
하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영화제 일을 하는 이들 사이에서도 문화적인 사명감보다는 직장으로서의 개념이 크게 작용하고 있다. 게다가 최근 영화계도 52시간 근로제 시행을 앞두고 있는 등의 시대적 변화도 영화제의 노동환경에 대한 불만을 높이고 있는 것이다. 사실 진즉에 나왔어야 할 문제제기였지만 뒤늦게 이슈가 된 것으로도 볼 수 있다.
 
시간 외 수당 외에 근무환경 개선 문제 등은 오래전부터 지속적으로 제기돼 왔던 사안이었다. 일부 영화제들은 계약직으로 정규직으로 전환하는 등 전향적인 자세를 보였으나, 고급인력에 속하는 단기 스태프들이 지속적으로 일할 수 있는 여건 마련은 등한시 했다.
 
이와 관련, 부산영화제는 "국내 영화제 실정에 맞는 시스템을 고민하고 스태프들이 안정적으로 근무할 수 있는 환경조성을 마련하여 영화제가 더 발전할 수 있도록 앞장서서 적극적인 노력을 경주해 가겠다"고 밝혔다.
 
지자체도 일정부분 책임
 
 2018 DMZ국제다큐멘터리영화제

2018 DMZ국제다큐멘터리영화제 ⓒ DMZ국제다큐멘터리영화제

 
그러나 이 문제는 국내 영화제들이 함께 머리를 맞대야 한다는 점에서 전체 영화제의 고민이 필요해 보인다. 영화제를 뒷받침하고 있는 부산 전주 부천 제천 등 지방자치단체들의 관심이 요구되는 사안이기 때문이다.
 
DMZ국제다큐멘터리영화제는 시간 외 수당 논란에서 드물게 예외적인 사례다. 영화제 관계자는 "영화제가 시작할 때부터 경기콘텐츠진흥원 산하 조직이다 보니 당초 재단법인의 기준이 적용됐고 독립한 이후에도 그 기준이 이어지고 있기 때문"이라고 밝혔다. 계약직과 정규직의 임금차별도 없고 시간 외 수당이나 연월차도 차별이 없다는 것이다.
 
수년 간 국내 주요영화제에서 일했던 한 영화인은 "정규직 전환이나 처우 개선, 근무환경 부분은 단순히 영화제가 혼자 결정할 수 있는 아니디"라며 "시장 등 지자체장과 공무원들이 지속적인 관심을 갖지 않으면 영화제 혼자서 풀기 어려운 숙제"라고 말했다. 이어 "계약직이 정규직으로 전환됐거나 근무 환경이 개선된 다른 영화제들의 경우도 시장 등의 결단이 있었기 때문"이라며, "여러 개의 영화제가 개최되는 지자체들이 이 문제를 고민해줘야 해결이 가능하다"고 덧붙였다.
 
이에 대해 부산시 관계자는 "시장과 공무원들이 같이 노력해야 한다는 이야기는 맞는 말"이라며 "사업비를 증액하는 방식으로 시간 외 수당 문제를 빠른 시간 안에 해결할 수 있도록 부산시도 노력을 기울이겠다"고 덧붙였다.
부산영화제 전주영화제 부천영화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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