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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거연령 18세 하향'이 다시 화두로 떠올랐습니다. <오마이뉴스>와 '촛불청소년인권법제정연대'는 3회에 걸쳐 청소년 참정권 도입에 대한 글을 싣습니다.  [편집자말]
문재인 대통령이 5일 청와대에서 열린 여야 5당 원내대표들과 함께한 여·야·정 상설협의체 첫 회의에서 여야 원내대표들의 발언을 메모하고 있다.
▲ 메모하는 문재인 대통령 문재인 대통령이 5일 청와대에서 열린 여야 5당 원내대표들과 함께한 여·야·정 상설협의체 첫 회의에서 여야 원내대표들의 발언을 메모하고 있다.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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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재인 대통령이 11월 5일 청와대에서 5당 원내대표들을 만났다. 그는 선거연령을 국제 기준에 맞춰 만 18세로 하향하도록 국회가 논의해 달라고 요청했다. 대통령이 정치개혁의 주요 요소로 선거연령 하향을 생각하고, 적극적으로 이에 대한 논의를 요청한 것이다. 

민주주의는 노동자, 흑인, 여성 등으로의 시민권 확장을 통해 실현돼온 시스템이다. 이제는 만18세 청소년이 자신의 삶에 영향을 미치는 결정을 직접 할 수 있는 길을 열어가자고 대통령이 촉구했다.

사람대접
 
2018년 6.13 지방선거일 열린 "이것은 민주주의가 아니다" 청소년 참정권 보장 요구 집회
 2018년 6.13 지방선거일 열린 "이것은 민주주의가 아니다" 청소년 참정권 보장 요구 집회
ⓒ 촛불청소년인권법제정연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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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거연령 하향은 현직 고등학교 교사인 나로서도 환영할 일이다. 학생인권 신장이 교권을 망가뜨리고 있다는 식의 일상적 학생혐오가 판을 치고 있다. 학생에게 투표권이 주어진다면 교육당국은 학생들의 목소리에 지금보다 더 귀를 기울일 것이 분명하다. 

학생 생활지도를 위해 출입문 한 곳만 열어두고 그 앞에서 교복 단속을 하는 학교, 평상시에도 소방법을 위반해 출입문 한 곳만 열어둔 채 그곳에서 보충수업이나 야간자율학습을 '째는' 학생을 잡는 그런 학교, 문제가 있는 교사에 항의하는 학생들을 '선생 신고하는 미친X'이라고 부르는 학부모가 있는 학교, 학생들 스스로 인권을 공부하고 친구들과 나누는 것을 '학생이 학생을 가르치는 이상한 일'로 여기는 학교, 매일 자신의 존재를 숨기며 또는 자신의 존재를 부정하며 남자답거나 여자다운 누군가가 되도록 강요하는 학교.

이런 학교에서, 학생들은 사람대접을 받지 못했다. 나는 교사라서 학교의 모습을 이야기했을 뿐 학교 밖에서 청소년이 당하는 차별은 이보다 더하면 더했지 덜하지 않다고 들었다. 청소년이 유권자가 될 수 있다면, 학교 밖 청소년들에 대한 대접 또한 달라질 것은 당연하다.

물론 투표권이 없었어도 이미 청소년들은 스쿨미투, 박근혜 정권퇴진 촛불집회, 역사교과서 국정화 반대 시위, 광우병 소고기 수입 반대 집회 등은 물론 역사적으로도 6월항쟁과 5.18민주화운동, 4.19혁명, 일제강점기 광주학생독립운동 등에 이르기까지 적극적으로 정치에 참여해왔다.

하지만 청소년들이 보여준 이 눈부신 정치 참여의 역사들에는 공통된 한계가 있다. 민주주의가 제대로 작동하지 못하는 모습을 더 이상 보다 못한 학생들이 직접 행동에 나섰다는 점이다.

기계가 고장 나기 전에, 평소에 잘 관리하면 오래 쓰고 번거로울 일이 줄어든다. 민주주의가 고장 나기 전에 청소년을 포함한 이 나라 사람들의 목소리가 일상적으로 반영되는 정치 시스템을 만들 수 있다면, 정치를 수리하는 데 드는 비용도 덜 들게 될 것이다. 

'학제 개편'을 전제조건으로 내건 한국당
 
정유섭 자유한국당 의원. 사진은 지난 6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국회 운영위원회 국정감사에서 정의용 대통령비서실 국가안보실장에게 질문하고 있는 모습.
 정유섭 자유한국당 의원. 사진은 지난 6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국회 운영위원회 국정감사에서 정의용 대통령비서실 국가안보실장에게 질문하고 있는 모습.
ⓒ 유성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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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거연령 하향에 반대하는 사람들은 말한다. 청소년들은 미숙해서 선동당하기 쉽다고, 입시 공부나 해야지 정치에 관심 가져선 안 된다고, 이미 흙탕물인 정치판을 알게 되면 정치를 더 혐오하게 될 것이라고. 

정치권, 특히 야권은 청소년의 정치 참여에 부정적인 입장이다. 지난 10월 30일 국회 정치개혁특별위원회에서 정유섭 자유한국당 의원은 이렇게 말했다.

"선거 연령을 18세로 제안을 하셨는데 18세로 하는 것에 대해서 큰 틀에서 동의를 합니다. 다만 다음 선거 때까지 우리가 제기했던 부작용 문제, 학제 개편 문제라든지 어떤 부작용을 해소할 수 있는 데까지는 어느 정도 노력을 해 봐야 되는 것 아니냐, 노력을 하고 그러고 하는 게 맞지 않느냐 하는 의견을 제시를 합니다."

학제 개편이라는 사실상 불가능한 과제를 선행 조건으로 내걸면서 사실상 선거연령 하향에 어깃장을 놓은 것이다.

선거연령 하향을 미루려는 꼼수

하지만 정치가 과연 학교에서 배제돼야 할까. 나는 '학교는 이미 정치의 장'이라고 생각한다. 지위와 권한의 배분에 대한 논의가 정치라고 한다. 학교에서는 학교 성적과 생활기록부 기록에 의해, 교사-학생 또는 정규직 교사-비정규직 교원이라는 지위에 의해 위계가 설정되고 차별적으로 권한이 배분된다. 하지만 그 배분의 방식은 공정하지 않다. 최근 논란이 되고 있는 숙명여고 시험문제 유출 사건만 봐도 알 수 있다.

대학입시제도는 어떤가? 인간의 수많은 능력 가운데 '대학수학능력'으로 인정되는 아주 일부의 능력에 따라 학생이 누릴 수 있는 기회와 경제적 부, 사회적 지위가 분배되는 걸 정당화해온 곳이 바로 초·중·고등학교 아니던가.

이런 현실에 학생들과 교사들은 '뭔가 잘못됐다'고 외쳐왔다. 하지만 대한민국은 이를 '정치적 중립성 위배'라는 명분으로 탄압해왔다. 이런 역사는 학교야말로 다양한 정치적 모순과 요구들이 존재하는 공간이라는 것을 반증한다. 청소년이 시민으로서 자신의 목소리를 제대로 존중받는다면, 이들이 교육과 사회의 변화를 위해 노력을 기울이는 건 지금처럼 어렵지 않을 것이다.

자유한국당이 더 이상 학제 개편을 핑계로 선거연령 하향을 미루려는 꼼수를 부리지 않길 바란다. 안 그래도 국민들은 정권이 바뀔 때마다 줏대 없이 바뀌는 교육 과정을 지긋지긋해 하고 있다.

학제 개편은 교육과정의 큰 지각변동을 동반한다. 이제 막 어렵사리 개정된 교육 과정을 어떻게든 살려 보려고 현장의 교사들은 아등바등하고 있다. 심도 있는 논의와 의견 수렴 과정 없이 함부로 교육 정책 개편안을 남발하지 않길 바란다. 하물며 청소년의 권리를 확대하는 것을 막기 위한 명분으로 교과 과정 개편을 운운하는 것이라면 더욱 그 입을 다물어 달라.

정치 참여 기회 박탈하면서 민주시민을 양성하겠다?
 
'청소년과 함께 투표하고 싶다' 투표용지 옆에 놓인 피켓
 "청소년과 함께 투표하고 싶다" 투표용지 옆에 놓인 피켓
ⓒ 촛불청소년인권법제정연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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혹자는 '청소년은 아직 미숙하므로 선거에 참여하기에 부족할 수 있다'는 의구심을 가질 수 있다. 하지만 우리 모두는 경험하며 성장하는 존재다. 문재인 대통령은 처음 대통령이 돼서 미숙할 수 있다. 많은 지지자들은 점차 나아질 것이라고, 좀 더 지켜보자고 얘기한다. 부동산 정책도, 소득주도성장 정책도 시간을 가지고 지켜보면 더 나은 방향으로 나아갈 것이라 기대한다. 

자유한국당도 마찬가지다. 처음으로 여당에서 탄핵당한 대통령을 배출해 사달이 난 바람에, 외부인사를 모셔다가 조직강화도 해보고 인적 청산도 해보고 노력을 하고 있다(그런데 뾰족한 수 없이 표류하고 있는 듯하다). 어쨌든 정치인과 정당들도 실수를 통해서 배우고 있다.

'어른'으로 불린 지 한참 된 나조차도 매 순간 경험을 통해 배운다. 지난 3월 말, 청소년 참정권 보장을 요구하는 청소년들의 삭발 시위가 있었다. 나는 교사들 중에도 청소년 참정권을 지지하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 태어나 처음으로 삭발을 했다.

사람들의 시선 때문에 불편하긴 했지만 생활이 간편한 것 같고 나쁘지 않았다. 하지만 어느 때보다 무더운 여름을 나면서 머리카락이 없으면 두피 관리가 어렵다는 것을 깨달았다. 삭발을 하면 시원할 줄 알았는데 막상 해보니 예상과 달랐다. 두피에 작열하는 태양이 그렇게 뜨겁다는 것을 처음 알았다. 지금은 두피 관리법을 배우고 있다. 

정치와 관련해서도 나는 여전히 미숙해 실수를 하고, 또 실수를 통해 배운다. 지난 지방선거 때, 공보물을 끝까지 살펴보지 않아 내 신념과 다른 후보를 찍어주고 만 경험이 있다. 정당을 선별하고 공약을 살펴본 후 후보의 이력까지 살피며 제대로 투표를 하려고 했건만, 모 후보의 공보물 제일 마지막에 조그맣게 인쇄된 '동성애 반대' 입장을 못 보고 놓쳤던 것이다.

그 바람에 나는 성소수자를 혐오하는 후보를 찍는 최악의 투표를 했다. 그 후보는 당선했고, 나는 그 실수를 만회하기 위해 그가 더 이상 성소수자 혐오를 공공연히 할 수 없도록 시민으로서 압력을 행사하려고 노력 중이다. 책임을 져야 하기 때문이다. 

실수를 통해 배울 수 있도록 누구보다 다양한 경험을 할 수 있어야 할 청소년들은, 슬프게도 '성인'보다도 실수할 시간과 여유가 없다. 무엇보다 경험할 권리조차 주어지지 않는다.

민주주의는 완벽한 시민들이 참여하는 제도가 아니다. 미숙한 시민들이 서로와의 만남을 통해 성장하면서 어제보다 나은 오늘을 만들어가는 게 민주주의다. 인간은 뭔가를 배우고서 실천에 옮기는 게 아니라, 바로 그 뭔가를 하면서 동시에 배운다는 말에 교사로서 공감한다. 정치는 삶의 기술이다. 이 기술은 직접 살면서 익히는 것이다. 정치적 경험을 할 기회를 박탈하면서 청소년을 민주시민으로 성장시키겠다는 말은 앞뒤가 맞지 않는다.

OECD 국가 중 '19금 선거권'은 한국이 유일하다. 가까운 일본도 선거연령이 하향돼 고등학생 유권자들이 생겼다. 우리도 더 이상 미룰 순 없다. 내후년인 2020년에 내가 고3 담임을 맡는다면, 만 18세 학생들과 함께 국회의원 투표를 하러 갈 수 있길 기대해본다.

덧붙이는 글 | 글쓴이 고영주씨는 현직 고등학교 교사입니다.


태그:#청소년, #참정권, #선거연령, #투표, #인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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촛불광장의 동료였던 청소년들에게 민주시민으로서의 권리를 보장하자는 취지로 모인연대체입니다.

오마이뉴스 기획편집부 기자입니다. 조용한 걸 좋아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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