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행복이 뭔데?"

술자리에서 누군가 물었다. 건강이 좋지 않아 그 자리에 불참한 친구 얘기를 하다 '행복론'으로 번졌다.

"건강이 행복이지 다른 무엇이 필요한가."

옆 친구가 큰 소리로 말했다. 이런 자리에 참석하여 술 한잔 하며 얘기 나누고 같이 어울리는 것이 행복인데, 건강이 없으면 어찌 그럴 수 있겠느냐는 이야기이다.

"기준을 낮추는 것이 행복이지."

다른 친구가 한마디 했다. 아무리 건강해도 자기보다 잘 입고 잘 먹고 더 멋진 집 사는 사람 쳐다보고 살면 행복하겠느냐고 묻는다. 그러니 쳐다보는 기준을 낮추어야 행복하다는 논리이다. 요즘 유행하는 라이프 스타일. '소확행(작지만 확실한 행복)'으로 이어진다. '나만 즐기는 남이 뺏어갈 수 없는 소확행'은 내 마음이 기준이다. 이야기도 마음대로 흐른다.

2년 전 대전서 열린 인생 나눔 워크숍 때 주제질문이 생각난다. '일상(日常)에서 가장 행복한 순간을 5개 말해보라'였다. 누군가는 집안 청소 끝내고 커피 한잔 마실 때, 화분 물줄 때 행복하다 했다. 또 유등천 천변 걸을 때, 집 근처 도서관에 들러 책 읽을 때, 친구에게 문자 보낼 때를 말하고 공원 흙길 산보할 때, 책 보면서 낮잠 잘 때라는 사람도 있었다.

대개 40~50대인 인생 나눔 멘토들 얘기다. 나도 비슷했다. '차 마시며 아침신문 읽을 때, 매주 한 번 서당에 가서 한문 공부할 때, 밤늦게 일기 쓸 때, 저녁잠 들기 전 10여분 침대서 뒹굴 거릴 때'였다. 소확행은 자잘한 장작개비처럼 많을수록 좋다. 그래야 생각날 때마다 모닥불처럼 조그만 행복을 피워 올릴 수 있다. 불행에서 빠져나올 기회도 많아진다.

한때 소확행을 키우면, 통나무 장작이 오래 타듯 행복이 길어지지 않을까 상상했었다. 아침신문 읽기를 2시간, 저녁 잠들기 전 명상을 20여 분으로 늘여보았다. 오히려 지루해지기 시작했다, 책보며 낮잠을 2시간 자라면 고역이다. 역시 소확행은 작기 때문에 확실했다. 청소라는 본업이 있어서 커피타임 작은 휴식이 행복하다. 땀 흘리며 열심히 산 오전이 있어서 책보는 낮잠 한 숨이 행복이 된다.

생계유지라는 큰 본업에 매달려 땀 흘리는 요즘 20~30대 청년들 소확행은 무얼까. 인터넷에 검색해보니 '혼자 술 마시기, 요리하기, 애완동물 키우기, 영화보기, 홈퍼니싱(집가꾸기), 케렌시아(나만의 휴식처) 등' 많다. 헬조선에 시달리던 많은 젊은 층이 상처받은 마음을 보살피기 위해 소확행에 열광하고 있단다. 예전에는 '내일 큰 성공을 위해 오늘 작은 행복은 희생하라'였는데 요즘은 '내일 큰 성공 포기하더라도 오늘 작은 행복을 놓치지 않겠다'는 흐름이다.

워라밸(일과 삶의 균형) 풍조이다. '세상은 넓고 할 일은 많다'던 청년들이 '나만의 가치를 찾아, 자신을 지키기 위한 성을 쌓기 위해' 안으로 침잠한다. '기존체제와 미래에 대한 불신'도 작용했을 거다. '의욕과 열정 상실'을 걱정하는 시각도 있다. 그러나 우리사회는 그동안 너무 남의 눈치를 보는 성공 줄에 서기위해 자기희생을 참아왔다. 이제 '내가 먼저 행복해야 남도 행복하게 해줄 수 있다'로 바뀌는 조짐이다.

문제는 큰 성공대신 소확행을 선택한 청년들이 수십 년 그 길을 가며 행복을 느낄 수 있을까. 공자는 논어 첫줄에 길고 오래갈 확실한 기쁨을 얘기한다. "배우고 그것을 때때로 익히면(때에 맞추어 실천하면) 기쁘지 않겠는가(學而時習之 不亦說乎)." 배움을 실천할 높은 자리를 얻기 위해 전쟁판이던 중국 천지를 55세부터 14년이나 돌아다니다(轍環) 실패한 공자가 남긴 말씀이다. 공자가 혈기 방장하던 청년시절 한 말이 아니다.

기쁨을 얻는 길, 배움을 실천하는 길은 높은 자리에만 있는 건 아니다. 도올 김용옥은 "대철인이 죽기 전 그의 생애에 대해 남긴 매우 함축적인 언사, 즉 공자의 전 생애를 압축시킨 달인적 회상"이라고 이 말을 풀이했다. 대성인이 전 생애에 걸쳐 몸으로 보여준 긴 '소확행'이다.

태그:#소확행, #워라밸, #공자, #성공, #나만의 가지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아무리 어려운 문제도 글로 쓰면 길이 보인다'는 가치를 후학들에게 열심히 전하고 있습니다. 인재육성아카데미에서 '글쓰기특강'과 맨토링을 하면서 칼럼집 <글이 길인가>를 발간했습니다. 기자생활 30년(광주일보편집국장역임), 광주비엔날레사무총장4년, 광주대학교 겸임교수 16년을 지내고 서당에 다니며 고문진보, 사서삼경을 배우고 있습니다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