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산 베어스에 4년 연속 한국시리즈 진출이라는 성과는 의미가 있다. 그러나 지난해에 이어 또다시 준우승에 그친 것은 아쉬움으로 남을 수밖에 없다. 지난해 조금 지친 상태에서 한국시리즈에 진출해 무기력한 모습을 보였다면, 올해는 정규시즌 우승을 일찌감치 확정하고 3주간 재정비할 시간을 가졌음에도 시리즈 내내 타선의 침묵이 이어지면서 똑같은 결과를 낳고 말았다. '어우두(어차피 우승은 두산)'라는 말은 현실이 될 수 없었다.

셋업맨 김강률, 4번 타자 김재환의 부상으로 인한 전력 손실만을 탓하기에는 어려웠다. 김태형 감독은 타격감이 떨어진 타자들을 줄곧 선발로 기용하면서 라인업에 큰 변화를 주지 않았고, 몇몇 젊은 선수들은 경기에 나설 기회가 드물었다. 심지어 박신지, 윤수호 등 일부 불펜투수들의 경우 마운드에 오르지도 못하고 시리즈를 마감해야만 했다. 엔트리에 있는 선수들을 제대로 활용하지 못했다는 이야기다. 4년 연속 한국시리즈 진출, 2년 만의 정규시즌 우승이라는 성과와는 별개로 이는 김태형 감독의 명백한 실수라는 지적도 나온다.
 
희비 엇갈린 두 팀 12일 서울 잠실구장에서 열린 2018 KBO 한국시리즈 6차전이 끝난 이후 우승의 기쁨을 맛보는 SK 선수단, 준우승으로 시즌을 마감한 두산 선수단의 모습이다.

▲ 희비 엇갈린 두 팀 12일 서울 잠실구장에서 열린 2018 KBO 한국시리즈 6차전이 끝난 이후 우승의 기쁨을 맛보는 SK 선수단, 준우승으로 시즌을 마감한 두산 선수단의 모습이다. ⓒ 유준상

  
또 다시 비슷한 패턴으로 무너진 두산, 그리고 믿음의 야구

지난해 KIA 타이거즈와의 한국시리즈에서 1차전 승리 이후 내리 4연패를 당했다. 2차전에서 상대 선발 양현종에게 완봉패를 당한 것이 분위기를 가라앉게 만들었고, 두산이 자랑하는 견고한 수비마저 무너졌다. 한국시리즈 1차전까지 맹타를 휘둘렀던 타자들은 침묵으로 일관했다. 팀 타율 0.226으로, 플레이오프(0.355)보다 1할 이상 낮은 수치다. 시즌 개막 직전에 열린 WBC에 많은 선수들이 대표팀에 차출됐고, 후반기에 빠른 속도로 상위권으로 치고 나가는 과정에서 체력적인 한계를 드러냈다는 지적이 많았다.

올해는 체력 문제를 언급할 수 없는 상황이다. 지난 달 14일 롯데 자이언츠와의 정규시즌 최종전을 끝으로 약 3주간 경기 일정 없이 한국시리즈 준비에 몰두할 수 있었고, 타선과 마운드 모두 재정비할 절호의 기회였다. 전문가들을 비롯해 많은 사람들이 포스트시즌 제도상 정규시즌 1위 팀이 누리는 혜택이 큰 만큼 두산이 어렵지 않게 통합 우승을 할 것으로 내다봤다. 그러나 철저하게 준비한 팀이 맞나 싶을 정도로 이번 시리즈에서 두산의 경기력은 매우 실망스러웠다.
 
두산 김승회 '아쉽다' 10일 오후 인천 SK행복드림구장에서 열린 2018 프로야구 한국시리즈 두산 베어스와 SK 와이번스의 5차전 경기. 8회말 SK 공격 2사 만루 상황에서 두산 투수 김승회가 볼넷으로 SK에게 1점을 내준 뒤 아쉬워하고 있다. 2018.11.10

▲ 두산 김승회 '아쉽다' 지난 10일 오후 인천 SK행복드림구장에서 열린 2018 프로야구 한국시리즈 두산 베어스와 SK 와이번스의 5차전 경기. 8회말 SK 공격 2사 만루 상황에서 두산 투수 김승회가 볼넷으로 SK에게 1점을 내준 뒤 아쉬워하고 있다. ⓒ 연합뉴스


선수들의 부진도 발목을 잡았으나 지난해와 비교했을 때 주전 선수들에게 많은 기회를 부여하는 김태형 감독의 전략이 크게 다르지 않았다는 것도 진한 아쉬움을 남겼다. 1차전부터 부진한 박건우, 오재일, 김재호 등을 시리즈 내내 활용했고 이들을 대체할 수 있는 선수가 라인업에 포함된 경기는 류지혁이 오재일을 대신해 선발로 출전한 5차전 정도가 전부였다. 이병휘, 황경태, 조수행 등 젊은 야수들은 경기 후반에 대주자나 대수비로 나서는 것에 만족해야만 했다.

특히 시리즈 타율 0.042에 그친 박건우는 선발 라인업에서 단 한 경기도 제외되지 않았다. 조수행 또는 우익수 수비가 가능한 박세혁 등 우익수로 나설 자원이 충분했는데도 시도조차 없었다. 김태형 감독은 스스로 타격감을 끌어올리길 바라면서 그저 기다리기만 했다. 길게 봐야 하는 정규시즌에서는 가능한 선택일지 몰라도 1승이 급한 단기전에서는 여유를 가질 틈이 없다는 점을 감안하면, 썩 좋은 판단은 아니었다.

김강률이 빠진 불펜도 마찬가지다. 박치국, 김승회, 함덕주, 이현승이 나란히 등판하는 것에 불과했고, 올해 트레이드로 이적한 윤수호나 '신인' 박신지는 엔트리에 포함됐으나 한 차례도 기용되지 않았다. 긴 이닝을 끌어줄 것으로 예상된 윤수호는 6차전에선 미출장 선수로 분류되기도 했다. 경기에 나설 수 없는 상태였던 김재환은 출전 명단에 있었고, 등판 준비에 큰 문제가 없는 윤수호는 경기 전부터 미출장 통보를 받았다. 엔트리 낭비는 감독의 책임이고, 이 또한 두산이 시리즈를 SK에 넘겨준 원인 중 하나라고도 볼 수 있다.

누구나 인정하는 강팀이지만... 단기전에서 좀 더 냉정해져야 한다

정규시즌 1위라는 성과를 폄하하는 것은 옳지 않다. 약 7개월 동안 144경기를 치르면서 93승이나 거두면서 압도적인 1위를 차지한 점은 박수를 받아야 마땅한 부분이다. 확신할 수 없었던 외국인 원투펀치가 무려 33승을 합작했고, FA로 이적한 민병헌(롯데)의 공백은 생각보다 크지 않았다. 파레디스, 반슬라이크는 몇 경기 나오지도 못하고 방출되면서 사실상 외국인 타자 없이 한 시즌을 치렀는데, 기대 이상의 결과로 정규시즌을 끝냈다. 꾸준히 상위권을 유지하는 팀다운 모습이었다.

이번 스토브리그에서 가장 많은 주목을 받을 FA 양의지의 재계약 여부가 관건이지만, 양의지가 두산에 남게 되면 전력에 큰 손실이 될 만한 요소가 보이지 않는다. KT 위즈 사령탑으로 선임된 이강철 코치의 이적 등으로 코칭스태프 개편은 불가피하지만, 다른 팀들의 전력이 눈에 띄게 상승하지 않는 이상 내년에도 포스트시즌에 갈 수 있는 팀이 바로 두산이다. 오히려 외국인 타자 영입만 잘하면 타선에 플러스 요인이 붙는다.

중하위권에 맴도는 팀의 목표는 포스트시즌 진출이 우선이겠지만, 김태형 감독 부임 이후 4년 내내 한국시리즈에 진출한 두산의 목표는 그렇지 않다. 상위권에 위치할 수 있는 전력의 팀이 갖는 목표는 포스트시즌 진출이 아닌 한국시리즈 우승이 돼야 한다. 지속적으로 한국시리즈에서 좋은 성과를 거둬야 장기 집권이 가능하고, 비로소 그 때 '왕조'라고 불릴 수 있는 것이다. 2015년, 2016년까지는 두산 왕조의 시대가 열리는 듯했지만 지난해와 올해 한국시리즈에서 준우승에 그친 만큼 아직 '왕조'라고 칭하기는 어렵다.

선수 기용은 감독 고유의 권한이기 때문에 함부로 이야기할 수 없다. 그러나 단기전에서 냉정하지 못한 판단과 선수 운영은 패배로 직결된다는 것을 두산이 몸소 느꼈다. 지난해의 경험을 토대로 학습 효과를 발휘했어야 하는데, 오히려 좋지 않은 과정을 되풀이했다. 아무리 정규시즌에서 우승을 차지하더라도 결국 팬들 기억 속에 오랫동안 남는 것은 한국시리즈 우승이다. 2019년, 다시 정상에 도전하는 김태형호는 아픔을 씻어낼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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