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일 오후 서울 잠실야구장에서 열린 2018 프로야구 한국시리즈 두산 베어스와의 6차전 경기. 8년 만에 우승을 거둔 SK 선수들이 시상식에서 트레이 힐만 감독을 헹가래 하고 있다.

12일 오후 서울 잠실야구장에서 열린 2018 프로야구 한국시리즈 두산 베어스와의 6차전 경기. 8년 만에 우승을 거둔 SK 선수들이 시상식에서 트레이 힐만 감독을 헹가래 하고 있다. ⓒ 연합뉴스

 
감독과 선수단에게 있어서 강력한 동기부여가 되었던 포스트 시즌이었다. 강력한 동기부여가 있었던 SK 와이번스가 2018 KBO리그 한국 시리즈에서 정규 시즌 1위 두산 베어스를 상대로 4승 2패 업셋 우승을 달성했다.

KBO리그에서 전.후반기 리그와 양대 리그 시절을 제외한 단일 리그 역사에서 업셋 우승을 달성한 사례는 이번이 5번째다. 1989년 해태 타이거즈(정규 시즌 2위), 1992년의 롯데 자이언츠(3위), 2001년과 2015년의 두산 베어스(이상 3위)에 이어 이번 정규 시즌 2위 SK가 그 5번째 업적을 달성한 것이다.

쌍방울 레이더스의 해체 이후 기존 선수단을 다시 모아 창단한 SK는 이번 우승을 통해 통산 4번째로 한국 시리즈 챔피언에 올랐다. 김성근 전 감독이 지휘했던 2007년과 2008년 그리고 2010년 3번의 시즌 이후 무려 8년 만의 우승이었는데, 이전의 3번은 모두 정규 시즌 1위로 한국 시리즈에 직행한 통합 챔피언이었다.

SK의 트레이 힐만 감독은 시즌이 끝난 뒤 노령의 부친, 알츠하이머를 앓고 있는 모친 그리고 큰 수술을 받았던 아내를 돌보기 위해 미국으로 돌아갈 것을 일찌감치 발표했다. 이로 인해 SK 선수들은 시즌이 끝나면 작별하게 될 힐만 감독에게 마지막 선물로 우승 트로피를 안겨주기 위해 서로 필요한 순간에 중요한 활약들을 펼쳤다.

가을남자 박정권, 후배들 끌어당긴 시리즈 초반 활약

이전까지 SK는 2007년, 2008년의 한국 시리즈와 2009년의 플레이오프에서 두산을 상대로 3번의 시리즈를 모두 이겼다. 그리고 2007년에 데뷔하여 SK의 에이스 자리를 지키고 있는 김광현을 비롯하여 박정권, 최정 등 주요 베테랑 선수들은 모두 그 황금 시대를 경험했던 선수들이었다.

특히 박정권은 가을만 되면 특별한 DNA가 발동되며 그 동안 SK의 황금 시대를 장식했던 베테랑이었다. 2018년은 제이미 로맥과의 1루수 주전 경쟁에서 밀리며 시즌의 대부분을 2군에서 보냈지만, 포스트 시즌 엔트리에 들어왔고 플레이오프 1차전 끝내기 홈런을 날리며 자신의 건재를 과시했다.

한국 시리즈에 진출한 뒤 박정권은 1차전에서 조쉬 린드블럼을 상대로 결승 투런 홈런을 날리며 1차전 MVP에 선정됐다. 2차전에서는 세스 후랭코프에게만 3삼진을 당하며 침묵했지만, 5차전에서는 경기 후반 대타로 출전하여 1타점 적시타로 다시 승리에 힘을 보탰다.

사실 예년에 비해 박정권의 비중은 다른 후배들에 비해 많이 줄기는 했다. 그러나 박정권은 이번 포스트 시즌을 통해 KBO리그 역대 포스트 시즌 통산 홈런 부문에서 3위에 올랐다(1위 이승엽, 2위 타이론 우즈). 그리고 플레이오프와 한국 시리즈 1차전에서 후배들을 깨운 박정권의 활약은 이후 시리즈 진행에 있어 다른 후배 타자들이 그의 부담을 덜어주는 효과를 가져왔다.

두산엔 없었던 외국인 타자, SK 타선의 중심을 지킨 로맥

이전까지 외국인 선수들의 활약이 컸던 두산은 2017년 시즌이 끝난 뒤 외국인 선수 3명을 모두 바꿨다. 무려 7시즌 동안 두산에서 활약했던 베테랑 더스틴 니퍼트(현 kt 위즈)와도 재계약하지 않았을 정도였다. 두산의 새로운 용병 투수 린드블럼과 후랭코프는 두산의 선발 로테이션을 책임지며 정규 시즌 우승에 기여했다.

그러나 외국인 타자 지미 파레디스는 제 역할을 하지 못하다가 6월이 되자마자 웨이버 공시됐다. 두산은 류현진(로스앤젤레스 다저스)의 팀 동료 출신으로 어느 정도 알려져 있었던 스캇 반 슬라이크를 영입했지만 그 역시 1군에서 힘을 보태지 못하다가 9월 말 웨이버 공시됐다. 결국 두산의 타선은 용병 없이 한국 시리즈에 임하게 됐다.

반면 SK에는 2017년부터 함께 했던 로맥이 있었다. 로맥은 마이너리그에서만 11년을 보냈다가 2014년과 2015년 2년 동안 다저스에서 류현진의 동료로 뛰었다. 이후 메이저리그에서 기회를 얻지 못하다가 2016년 요코하마 DeNA 베이스타즈에서 일본 생활을 거쳤다.

2017년 캐나다 대표팀으로 월드 베이스볼 클래식에 참가했던 로맥은 2017년 5월 대니 워스의 대체 선수로 합류한 뒤 102경기에서 31홈런 64타점을 기록하며 존재감을 알렸다. 2018년에는 타율까지 0.316으로 끌어 올리며 43홈런(2위) 107타점 102득점에 OPS 1.001을 기록, SK 타선에서 중심을 지켰다.

2018 시즌 최정이 부상으로 3루수 자리를 비웠을 때 로맥은 3루수로서의 활용 가치도 충분함을 보였다. 플레이오프 3차전과 5차전에서 홈런을 날렸는데, 5차전 스리런 홈런은 9회초 박병호의 동점 홈런이 나올 때까지 리드를 잡는 결정적인 타점이었다.

한국 시리즈에서 1차전과 2차전에 침묵했던 로맥은 3차전 이용찬(3점)과 박치국(1점)을 상대로 홈런 2개를 날리며 4타점 활약으로 수훈선수가 됐다. 이후 나머지 경기에서는 홈런을 추가하진 못했지만 이번 포스트 시즌에서 SK의 다른 선수들이 골고루 활약한 점을 감안하면 그의 활약은 충분했다.

결정적인 순간에 활약한 최정, 최항 형제

SK에는 최정과 최항 형제가 각각 주전 3루수와 백업 내야수로 활약하고 있었다. 3형제 중 장남이었던 최정은 2005 드래프트에서 1차 지명을 받아 입단했고, 막내였던 최항은 2012 드래프트에서 8라운드까지 간 끝에 SK의 지명을 받아 형제가 한솥밥을 먹을 수 있게 됐다.

최정은 플레이오프 1차전에서 선제 홈런을 날리며 포스트 시즌 초반 SK의 타선을 깨웠다. 2차전에서도 시리즈 2번째 홈런을 날린 최정은 SK의 초반 2경기 승리에 힘을 보탰으나 3차전과 4차전에서는 침묵을 지켰다. SK는 플레이오프에서 홈 2경기를 승리한 뒤 원정 2경기를 패하며 리버스 스윕을 당할 위기까지 놓였다.

5차전에서 최정은 여러 차례의 찬스에서 침묵했고 6회초 수비에서도 실수를 하고 말았다. 그러나 6회말 허도환 타석에서 대타로 투입되었던 동생 최항이 만루 상황에서 안우진을 상대로 싹쓸이 3타점 2루타를 기록하며 형의 부진을 대신 만회해주는 모습을 보였다.

이후 최정은 한국 시리즈에 들어와서 시리즈 내내 홈런을 기록하지 못하며 부진했고, 동생 최항은 다른 선배 선수들이 출전하는 동안 별다른 기회를 얻지 못했다. 그러나 최정은 6차전 9회초 2아웃 2스트라이크 상황에서 시리즈 연장을 위해 올라왔던 린드블럼을 상대로 극적인 동점 홈런을 날리면서 사실상 우승에 결정적인 역할을 해냈다.

플레이오프 MVP 김강민과 한국 시리즈 MVP 한동민
 
 12일 오후 서울 잠실야구장에서 열린 2018 프로야구 한국시리즈 두산 베어스와 SK 와이번스의 6차전 경기. 13회초 SK 한동민이 역전 솔로포를 날리고 있다.

12일 오후 서울 잠실야구장에서 열린 2018 프로야구 한국시리즈 두산 베어스와 SK 와이번스의 6차전 경기. 13회초 SK 한동민이 역전 솔로포를 날리고 있다. ⓒ 연합뉴스

 
0번이라는 희귀한 등번호를 사용하는 김강민은 2018년 전반기 주전 경쟁에서 밀리는 바람에 80경기 출전에 그쳤다(타율 0.298 14홈런 10도루 OPS 0.906). 포스트 시즌은 원래 주전 중견수 노수광의 체력 안배를 위해 함께 출전할 선수로 포함될 예정이었으나 노수광이 부상을 당하며 포스트 시즌 출전이 불가능해지자 그가 주전 중견수로 출전하게 됐다.

포스트 시즌에서 주전 기회를 얻은 김강민은 플레이오프 1차전부터 제이크 브리검을 상대로 2점 홈런을 날리며 존재감을 과시했다. 2차전에서도 역전 홈런을 포함한 2타점 활약으로 수훈선수에 선정되었고, 5차전에서는 연장 10회말 극적인 동점 홈런을 포함하여 2타점 활약을 펼쳤다.

시리즈 21타수 9안타 3홈런 6타점을 기록하면서 김강민은 플레이오프 MVP까지 차지하게 됐다. 이후 한국 시리즈에서도 김강민은 1차전에서 2안타 1볼넷 2득점 활약을 펼쳤고, 2차전에서는 희생 플라이와 2타점 적시타로 이 날 SK의 3타점을 모두 책임졌다. 5차전에서도 7회말 동점 상황에서 역전을 이끄는 희생 플라이를 날렸다.

2017년에 발목 인대 파열로 인해 29홈런 73타점으로 다소 아쉽게 시즌을 조기 마무리했던 한동민은 2018년 41홈런 115타점의 맹활약을 펼치며 강렬한 시즌을 보냈다. 그러나 플레이오프에서 한동민이 시리즈 초반 침묵하며 SK가 시리즈를 쉽게 끝내지 못했다.

그러나 한동민은 플레이오프 4차전에서 2점 홈런을 날리며 타격감을 끌어 올렸다. 그리고 5차전 연장 10회말 동점 홈런을 날린 김강민의 뒤를 이어 백투백 끝내기 홈런을 날리며 극적인 역전승에 기여했다. 이후 한동민은 한국 시리즈 1차전에서 린드블럼을 상대로 선제 홈런, 5차전에서 유희관을 상대로 결승 홈런을 날리며 한국 시리즈 MVP를 차지했다.

부상으로 힘들었던 시절 극복한 두 친구, 김광현과 정영일

2007년부터 SK의 에이스였던 김광현은 2010년 한국 시리즈 마지막 경기에서 마지막 투수로 등판하여 세이브를 기록, 에이스로서 팀의 우승을 마무리했다. 이후 김광현은 메이저리그 포스팅 시스템 실패, FA 재계약 후 팔꿈치 인대 접합 수술(이하 토미 존 서저리) 등 힘겨운 시기를 보냈다.

하지만 수술을 받고 재활을 거쳐 건강하게 돌아온 김광현은 2018년 개인 통산 100승 달성과 함께 25경기 11승 8패 평균 자책점 2.98을 기록, SK의 에이스로 당당하게 돌아왔다. 포스트 시즌에도 출전한 김광현은 한국 시리즈 4차전 선발 및 6차전 마무리투수로 등판하여 무실점 역투를 펼치며 8년 만의 한국 시리즈 우승을 직접 확정지으며 재활 후 첫 시즌을 해피 엔딩으로 장식했다.

김광현과 함께 주목 받았던 1988년생 동갑내기 친구 정영일은 광주 진흥고등학교 시절 엄청난 혹사에 시달린 탓에 LA 에인절스에 입단한 이후 후유증으로 팔꿈치가 손상됐다. 결국 2008년 토미 존 서저리를 받은 뒤 더딘 재활로 인해 2011년 에인절스에서 방출됐다.

방출 이후 정영일은 독립리그 등을 떠돌며 2년의 유예 기간을 마친 뒤 SK에 지명받자마자 상무 피닉스에 입대했다. 전역 후 본격적으로 SK 불펜에서 기회를 얻기 시작한 정영일은 2018년 포스트 시즌에서 필승조로 등판, 한 점도 내주지 않는 투구로 SK의 승리를 지켰다. 6차전에서 책임주자 1명을 남기고 마운드를 내려와 12년 전 혹사 끝에 완투패를 당한 악몽이 되살아날 법도 했지만 실점은 없었다.

이렇듯 SK는 이번 포스트 시즌에서 특정한 선수의 활약에 의존하지 않고 여러 선수들이 고른 활약을 펼쳤다. 동료 선수가 부진할 때 그 공백을 메워주면서 부진한 선수들의 부담을 덜어주었고, 부진했던 선수들은 이후 결정적인 활약을 통해 팀의 우승에 함께했다.

니혼햄 파이터스에서 한 차례 일본 시리즈 우승을 경험했던 힐만 감독은 한국 시리즈 우승을 통해 NPB와 KBO리그에서 모두 우승을 경험한 최초의 감독이 됐다. 가정 문제로 인해 고향으로 돌아가는 힐만 감독은 하나로 뭉친 SK 선수단과 함께 한국 시리즈 우승이라는 아름다운 선물을 받고 돌아가게 됐다.

통산 4번의 우승 중 가장 감동적인 우승과 함께 '아름다운 이별'을 준비하는 SK 선수들과 팬들 그리고 힐만 감독은 이번 한 시즌 전체를 아름다운 드라마로 만들었다. 아름다운 한 시즌을 보낸 SK의 우승에 축하의 박수를 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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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BO리그 포스트시즌 한국시리즈 SK와이번스 트레이힐만감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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퍼스널 브랜더/서양사학자/기자/작가/강사/1987.07.24, O/DKU/가톨릭 청년성서모임/지리/교통/야구분석(MLB,KBO)/산업 여러분야/각종 토론회, 전시회/글쓰기/당류/블로거/커피 1잔의 여유를 아는 품격있는 남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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