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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 지역 공립 K고등학교 교장과 학생자치회 사이에 나눈 공식 간담회 회의록 내용이 소셜미디어에서 시끄럽다. 학생회 임원들이 던진 대부분의 질문에 S교장이 납득하기 어려운 이유로 "안돼요"를 연발하며 '꽉 막힌' 모습을 드러냈기 때문이다.

이 학교는 공식 홈페이지의 '교육목표' 게시판에 '학생자치 활성화'를 주요 목표로 적어놓고 있다.
 
여성용품 자판기 설치, 수익이 낮다고?
 
 
경기 K고 학생회 페이스북에 올라왔던 회의록 내용 가운데 일부.
 경기 K고 학생회 페이스북에 올라왔던 회의록 내용 가운데 일부.
ⓒ 인터넷 갈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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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일, K고 학생회는 페이스북에 '학생 자치회 대의원회 회의록'이라는 글을 올렸다. 이 글에는 이날 오후 이 학교 S교장과 벌인 대화 내용이 적혀 있었다.

주요 내용을 차례대로 살펴보자.

- 창문이나 방충망이 상당히 더러워서 업체를 불러 청소를 하면 안 될까요?
= 방충망 청소는 각 교실에서 반별로 하기로 결정했습니다.

- 화장실 문 가림막을 설치해주실 수 있나요?
= 학생 분들이 문을 잘 닫으면서 질서를 지켜주시면 될 것 같습니다.

- 수련회, 수학여행 등에서 학급 날 추가를 허가해 주실 수 있나요?
= 외부활동은 안전사고가 많이 일어나오니 힘들 것 같습니다.

- 여성용품 자판기의 추진 여부가 어떻게 되고 있나요?
= 여성용품 자판기를 설치할 시 수익이 낮을 것 같아서(...) 다음 주에 2대를 매점에 설치할 예정입니다.

- 화장실에 방향제 설치가 가능한가요?
= 방향제는 환경호르몬이 많이 발생하여 불가능할 것 같습니다.

- 매점에서 질서가 잘 지켜지지 않습니다. 줄 모양 구조물을 설치할 수 있나요?
= 질서는 우리가 지켜야 합니다.

- 체육복 등하교와 후드티나 후드짚업을 허락해주시면 안되나요?
= 학생일 때는 규일(규율의 오타로 보임)이라는 것을 지켜야 되기 때문에 불편해도 등교할 땐 교복을 입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 화장실 휴지가 많이 없어지고 있는 경우가 많아 배치를 자주 해주실 수 있나요?
= 화장실에 휴지를 많이 배치하게 되면 휴지를 가지고 하는 장난이 자주 발생하기 때문에 많이 배치하는 것은 어려울 것 같습니다.


이 대화내용을 본 이 학교 학생들은 페이스북에 "학생의견 좀 반영하고 소통하려고 회의를 연 줄 알았더니 회의 개최 의도를 파악하지 못하겠다, 저럴 거면 자기(교장) 알아서 결정하지, 이러니까 학교 발전이 없는 것" "창문 방충망을 반에서 어떻게 청소하라는 거냐" "안됩니다, 안됩니다, 극○이네"라는 댓글을 달았다.

이 대화록을 본 다른 학교 이아무개 교사도 "(교장이) 방어막 치기에 바쁜 느낌이라 고구마 1000개는 먹은 듯 갑갑한 기분"이라고 적었다. 시민 박아무개씨는 "최소한의 (학생) 인권도 지켜주지 못하는 학교"라고 우려했다.

실제로 대부분의 학교에서 창문 방충망 청소는 외부 업체에 맡기고 학생들이 하지 않도록 하고 있다. 무척 위험하기 때문이다. 화장실 휴지도 부족하지 않게 화장실에 배치하고 있다.

<꼰대탈출백서>란 책을 펴낸 학생 인권운동가 임정훈 교사는 "회의록 내용을 보면 이 학교 교장은 학생들의 개선 요구에 '너희들이 똑바로 잘하면 된다'고 답하고 있다"라면서 "학생들을 회유하고 길들이려는 전형적인 모습을 보여주고 있어 걱정스럽다"라고 우려했다.
 
19일 경기 K고 학생자치회-교장 간담회 모습.
 19일 경기 K고 학생자치회-교장 간담회 모습.
ⓒ 인터넷 갈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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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같은 지적에 대해 이 학교 S교장은 20일 전화 통화에서 "여성용품 자판기 수익이 낮다는 답변은 업자들의 말을 옮긴 것이지 내가 그렇게 생각한 것이 아니다"라면서 "화장실 휴지 장난이 많이 발생해 올해 6월부터 휴지를 (화장실이 아닌) 교실에 설치했을 정도로 학생교육이 필요하다"라고 설명했다.

S교장 "짧은 답변이라 오해할만한 내용 있어"

이어 S교장은 "방충망 청소를 반별로 하기로 결정한 것은 아니지만, 손이 닿는 부분은 반별로 했으면 좋겠다는 뜻을 말한 것"이라면서 "실제로 한 해에 두 번 정도는 외부 사람들이 방충망 청소를 한다"라고 해명했다.

이 교장은 "이번 좌담회는 시간이 30분밖에 되지 않아 질문에 짧게 답변하다 보니 오해할만한 내용이 있었다"라면서 "앞으로 학생 눈높이에 더 가까이 가겠다"라고 다짐했다.

태그:#학생자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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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에서 교육기사를 쓰고 있습니다. '살아움직이며실천하는진짜기자'가 꿈입니다. 제보는 bulgom@gmail.com

오마이뉴스 기획편집부 기자입니다. 조용한 걸 좋아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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