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농구협회는 연세대와 고려대로 대표되는 대학농구의 스타들이 연예인을 능가하는 인기를 구가하던 1990년대 중반, 숙원사업이었던 프로화 작업을 본격화했다. 당시 연세대의 우지원, 김훈, 석주일을 중심으로 한 대우증권 농구단(현 전자랜드 엘리펀츠)과 고려대의 전희철과 김병철이 주축이 된 동양 오리온스(현 고양 오리온스)가 창단됐고 기존 실업팀과 함께 KBL이 창설됐다.

여자배구에서는 서울 중앙여고의 김희진과 부산 남성여고의 박정아(한국도로공사 하이패스)가 졸업반이 되는 2010년이 '여제' 김연경(엑자시바시)이 나온 2005년을 제외하면 가장 유망주가 많은 해로 꼽혔다. 여자배구단 창단 시기를 조율하던 기업은행은 이 기회를 놓치지 않았고 2010년 신인 드래프트에 참가하며 본격적인 창단 작업을 시작했다.

여고배구의 양대산맥 김희진과 박정아를 동시에 얻은 IBK기업은행 알토스는 리그에 참가한지 2시즌 만에 챔프전 우승을 차지하며 돌풍을 일으켰다. 기업은행은 첫 우승을 차지한 2012-2013시즌부터 2017-2018 시즌까지 6시즌 연속 챔프전 진출이라는 여자부 최초의 기록을 달성했다. 그리고 지난 6번의 시즌 동안 3번의 징검다리 우승을 차지한 기업은행의 패턴(?)대로라면 2018-2019 시즌은 다시 우승을 할 차례다.

박정아-김사니 이탈한 시즌에도 챔프전 진출한 저력의 기업은행
 
 박정아의 보상 선수로 기업은행 유니폼을 입은 고예림은 공수에서 제 역할을 톡톡히 해냈다.

박정아의 보상 선수로 기업은행 유니폼을 입은 고예림은 공수에서 제 역할을 톡톡히 해냈다. ⓒ 한국배구연맹

 
기업은행의 이정철 감독은 2016-2017 시즌 공수를 두루 겸비한 외국인 선수 메디슨 리쉘을 지명하면서 팀에 한 가지 변화를 단행했다. 프로 입단 후 왼쪽 공격수로만 활약했던 토종 거포 박정아를 라이트로 변신시킨 것이다. 박정아는 2016년 리우 올림픽에서 김연경의 파트너로 활약했지만 수비불안을 드러내며 기대 만큼의 활약을 보여주지 못했고 그로 인한 스트레스가 많았다.

이정철 감독의 배려 속에 서브리시브를 면제 받은 박정아는 편한 마음으로 공격에 전념했고 2016-2017 시즌 정규리그 460득점(7위, 국내선수 2위)을 기록하며 맹활약했다. 박정아는 흥국생명 핑크스파이더스와의 챔피언 결정전에서도 4경기에서 83득점을 기록하며 토종 거포로서 역할을 톡톡히 해냈고 기업은행은 통산 3번째 우승을 차지했다.

하지만 수비 부담을 덜어 성적이 반등했던 박정아는 여전히 레프트 자리에 애착이 많았고 결국 시즌이 끝난 후 FA자격을 얻어 도로공사로 이적했다. 기업은행을 두 번이나 우승으로 이끌었던 김사니 세터 역시 현역 은퇴를 선언했다. 졸지에 전력에 커다란 구멍이 뚫렸지만 기업은행은 재빨리 팀 전력을 다졌다. FA 시장에서 V리그 정상급 센터 김수지와 현대건설 힐스테이트의 주전세터 염혜선을 영입했고 박정아의 보상 선수로 고예림을 지명했다.

팀 전력에 적지 않은 변화가 있었지만 기업은행은 강 팀의 자리를 놓치지 않았다. 시즌 내내 중상위권을 꾸준히 유지하던 기업은행은 시즌 막판 현대건설의 부진을 틈타 정규리그를 2위로 마쳤고 플레이오프에서도 현대건설을 꺾고 6연속 챔프전 진출의 금자탑을 세웠다. 비록 챔프전에서는 도로공사에게 3연패를 당했지만 박정아와 김사니 세터가 빠져 고전이 예상됐던 시즌임을 고려하면 충분히 선전한 시즌이었다.

특히 외국인 선수 메디의 활약은 뛰어나다 못해 눈부셨다. 박정아의 이탈로 공격부담이 더욱 커진 메디는 득점 2위(852점)에 올랐고 공격성공률(43.36%)과 후위공격(41.77%), 퀵오픈(52.97%) 부문에서는 모두 1위를 차지했다. 특히 도로공사와의 챔프전에서는 3경기에서 95득점을 기록하며 도로공사의 쌍포 이바나 네소비치(73점)와 박정아(70점)에 맞서 홀로 고군분투했다.

바뀐 외국인 선수와 김미연 이적에도 '우승 DNA' 다시 살아날까
 
 2년 만에 코트로 돌아온 백목화의 활약에 따라 기업은행의 성적은 크게 바뀔 수 있다.

2년 만에 코트로 돌아온 백목화의 활약에 따라 기업은행의 성적은 크게 바뀔 수 있다. ⓒ 한국배구연맹

 
KGC인삼공사의 알레나 버그스마처럼 기업은행에서 두 시즌을 뛴 메디도 V리그에서 계속 뛰려면 외국인 선수 드래프트 재신청을 해야 한다. 하지만 2017년 미국 국가대표팀에 선발될 정도로 기량이 향상된 메디는 새로운 리그에서 뛰기 위해 외국인 선수 드래프트 참가신청을 하지 않았다(물론 메디가 참가신청을 했다 해도 기업은행의 순서가 오기 전에 앞 순번에서 지명됐을 것이다).

2년 전에도 상대적으로 경험이 많지 않았던 메디를 지명해 대성공을 거뒀던 기업은행은 이번에도 1996년생의 젊은 윙스파이커 어도라 어나이를 지명했다. 어나이는 프로 경험은 전무하지만 유타대학 시절 미 배구코치 연합이 선정한 올-아메리칸 퍼스트팀에 선정될 정도로 뛰어난 기량을 인정 받았다. 당장 메디 만큼의 활약을 기대하긴 힘들겠지만 국내 선수들의 경험이 풍부한 만큼 적응만 잘하면 충분히 V리그에서 통할 기량을 갖췄다는 평가다.

FA시장에 대어가 많지 않았지만 기업은행은 약점으로 지적되던 리베로 포지션에 흥국생명에서 뛰었던 한지현을 영입해 수비를 강화했다. 그리고 GS칼텍스 KIXX와의 트레이드를 통해 국가대표 출신의 이나연 세터를 영입했다. 풍부한 경험을 바탕으로 안정된 토스워크를 구사하는 염혜선 세터와 코트 안팎에서 활력이 넘치는 이나연 세터가 시너지를 낸다면 기업은행 전력에 큰 도움을 줄 수 있다.

지난 시즌까지 코트 위의 활력소 역할을 하던 김미연(흥국생명)이 팀을 떠나면서 기업은행은 사인앤 트레이드를 통해 '모카' 백목화를 영입했다. 백목화는 2015-2016 시즌을 끝으로 2년 간 코트를 떠나 있었지만 복귀 무대였던 컵대회에서 여전히 날렵한 몸놀림을 선보였다. 백목화와 고예림이 레프트 두 자리를 맡아 준다면 외국인 선수 어나이는 공격에만 집중할 수 있다. 그만큼 이번 시즌 백목화의 활약은 기업은행 전력에 매우 큰 부분을 차지할 전망이다.

기업은행은 창단 후 리그에 참여한 첫 시즌이었던 2011-2012 시즌(4위)을 제외하면 모든 시즌에서 챔피언 결정전 무대를 밟았던 팀이다. 물론 현역 생활을 마감했거나 다른 팀으로 이적한 선수들도 많지만 기업은행이라는 팀에 '우승DNA'가 깊이 박혀 있다는 뜻이다. 이번 시즌 기업은행은 지난 시즌 도로공사에 막혀 아쉽게 무산됐던 V리그 여자부 역대 최다 우승팀(4회)이 되기 위한 도전을 다시 시작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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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로배구 2018-2019 도드람 V리그 IBK기업은행 알토스 어도라 어나이 백목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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