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발매된 에피톤 프로젝트의 신보 <마음속의 언어들> 음반 커버

얼마 전 발매된 에피톤 프로젝트의 신보 <마음속의 언어들> 음반 커버 ⓒ 인터파크 엔터테인먼트

 

성장한다는 건 나아가는 것일까. 에피톤 프로젝트의 새 음반 <마음 속의 단어들>은 내딛기보다 제자리에서 발을 구른다. 어느덧 데뷔 12년 차, 4번째 정규 음반을 손에 들었음에도 그의 감성과 작법은 기존 에피톤 프로젝트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

하지만 4년의 기다림 끝에 등장한 신보는 정체가 아닌 명백한 성장으로 보인다. 자신의 이야기를 꾹꾹 눌러 담은 채 제3의 시선에 대한 빗장을 풀고 이어낸 선율과 따뜻한 악기의 울림. 이는 진보가 비단 새로움에서 출발하는 것만이 아님을 보여준다.
 
11개 트랙으로 이뤄진 앨범은 가지런하다. 사운드를 많이 섞지 않았고 따뜻한 악기로 따스한 온기를 전한다. 일렉트로닉을 질료로 했던 대표곡 '눈을 뜨면', 새소리 물소리 등 자연의 소리와 더불어 경쾌한 통기타 울림을 선보였던 '선인장', 스페셜 음반인 <긴 여행의 시작>을 메운 타악기, 현악기의 사용에서, 아주 가깝게는 자신의 음악 메타포를 털어내려 했던 이전 정규 3집 <각자의 밤>과 비교해 <마음속의 단어들>은 정직하고 담백하다.

화려하지 않은 보컬에도 사람들이 열광하는 이유
 
 
한 글자 한 단어를 꼭꼭 삼켜 부르는 창법은 이 같은 구성에 진정성을 더한다. 화려하게 잘 부르는 보컬이 아닐지라도 갖은 기교 대신 섬세하게 매 음을 짚어나가는 조율은 에피톤 프로젝트의 감성에 일정 집단이 열광하는 이유다. 물론 따지고 보면 여성 뮤지션 한희정과 함께해 좋은 성과를 이뤘던 '그대는 어디에'와 같은 곡에서도 그의 노래는 화려하지 않았다. 하지만 조금만 집중해서 들어보자. 이전의 히트곡에서 그의 보컬이 힘을 풀었다면 이번 수록곡에서 그의 목소리는 힘을 채운다. 그만큼 내면의 이야기를 온전히 전달하려 했다는 증거가 아닐까.
 
비슷한 분위기와 어쩐지 겹치는 멜로디 탓에 저마다 호오의 차이는 있겠지만 잘 만들어진 '감성 자극' 음반이다. 피아노를 통해 사랑했던 추억을 건드리는 '첫사랑', '푸르른 날엔'. 역시 같은 주제지만 신시사이저 변주를 통해 몰입도를 높인 '소나기'를 비롯하여 경쾌한 멜로디 사이 위로를 전하는 '어른', 밴드 셋으로 음반 내 가장 강렬한 인상을 남기는 '마음을 널다'와 오랫동안 자신을 기다려준 팬들에게 선물한 '연착'까지. 음반의 수록곡은 어느 것 하나 허약한 이야기나 선율 혹은 감정을 전하지 않는다.
 
특별하고 새로울 건 없으나 에너지가 차면 다시 돌아오는 그의 복귀가 반갑다. 이물감 없이 소화되는 노래와 귀 기울이게 되는 정직한 보컬 실력 앞에서 자기 복제란 단어의 날카로움은 무뎌진다. 꽉 차지 않은 가볍고 따뜻한 악기 사이의 빈틈과 여유가 말 그대로 치유를 선사한다. 음악에 기대고 싶은 날 편하게 꺼내 들으면 좋을, 꺼내 듣고 싶은 음반이다.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대중음악웹진 이즘(www.izm.co.kr)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에피톤프로젝트 인디음악 리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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