넘버링 무비는 영화 작품을 단순히 별점이나 평점으로 평가하는 것에서 벗어나고자 합니다. 넘버링 번호 순서대로 제시된 요소들을 통해 영화를 조금 더 깊이, 다양한 시각에서 느껴볼 수 있기를 바랍니다.[편집자말]
 영화 <아일랜드> 스틸컷

영화 <아일랜드> 스틸컷 ⓒ 부산국제영화제


01.

영화의 시작과 함께 소행성 충돌로 인한 지구 종말의 분위기가 형성된다. 라디오에서는 이에 대한 전문가들의 예상이 흘러나오지만 이런 시기에도 주인공 마진(황보 역)은 아무렇지도 않은 듯 동생 샤오싱과 농담을 주고받는다. 한편, 두 사람이 다니는 회사의 사장은 물 위에서도 달릴 수 있는 수륙양용 버스에 직원들을 싣고 여행을 떠나는데, 이 버스 안에서 마진은 복권 1등에 당첨된다. 단번에 인생 역전. 90일 내에 이 종이를 당첨금으로 교환하기만 하면 벼락부자가 될 수 있던 순간, 거대한 파도가 버스를 집어삼킨다. 쓰나미와 함께 엉망진창이 된 버스와 사람들은 이름 모를 무인도에 떠밀려가게 되고, 지구 종말의 시나리오를 떠올리며 자신들이 지구에 마지막으로 생존한 인류라 믿으며 생존을 이어나간다.

영화 <아일랜드>는 중국의 유명 배우 황보가 연출한 첫 번째 작품으로 그가 연출과 주연을 모두 맡은 영화다. 제한되고 극한 상황에 놓은 인물들의 모습을 통해 인간이 살아남기 위해 벌일 수 있는 다양한 모습들을 담아내고자 한다. 쓰나미를 직격으로 맞은 버스 옆으로 집채만한 고래가 지나가고, 그 꼬리에 강하게 치이면서도 어느 곳 하나 부서지지 않는 버스의 외관만 보더라도 이 영화의 전체적인 느낌을 어느 정도 알 수 있다. 그 속에 담고 있는 내용은 인간의 본성에 대한 깊은 고찰이지만, 그것을 드러내는 지점의 무게에 있어서는 의도적으로 희화화시키는 부분이 없지 않다는 것이다. 그의 연출에는 우리가 살아가는 모습에서 찾을 수 있는 속성, 가까이에서는 진지하고 무거워 보이면서도 한 걸음 물러나서 보면 가벼운 듯 느껴지는 부분이 없지 않은 그런 모습들이 담겨 있는 듯하다.

02.

고립된 섬에 한 무리가 떨어져 제한된 상황 속에서 생활하며 인간 군상을 드러내는 작품은 그동안 많이 있어왔다. 1963년에 개봉한 피터 브룩 감독의 <파리 대왕>에서 이미 무인도에 불시착한 소년들의 삶을 통해 보여진 바 있었으니, 오래된 고전 플롯 중 하나라고 봐도 무방하다. 최근에는 예능 프로그램에서 이 플롯을 그대로 차용한 적도 있었다. 황보 감독 역시 이 작품 <아일랜드>에서 유사한 방향성을 갖는 모습이다. 한 단계 더 나아가는 부분이 있다면, 이 무리 속에 중재자의 역할을 할 인물을 배치해 두었다는 점이랄까. 그의 역할 때문에 이 작품의 핵심이 인간의 군상을 드러내는 것에만 있는 것이 아니라, 개인의 욕심, 공동의 번영의 딜레마와도 연결된다는 것이 인상적이다.
 
 영화 <아일랜드> 스틸컷

영화 <아일랜드> 스틸컷 ⓒ 부산국제영화제


03.

무인도에 떨어진 이후의 무리가 보이는 행동 양식은 크게 네 가지 섹션으로 나눌 수 있다. 처음에 왕 기사를 중심으로 한 하나의 집단 형태에서 기존의 왕 기사 무리와 장 사장 무리로 분리되기까지의 이야기, 두 집단 체제의 지속과 갈등에 대한 이야기, 이 두 집단을 다시 통합하는 중재자의 등장과 번영에 대한 이야기, 마지막으로 중재자의 역할을 수행한 마진과 샤오싱의 욕심으로 비롯된 내적 갈등에 대한 이야기다.

깊은 내용을 다루고 있지는 않지만, 황보 감독이 이 작품에 대해 많은 고민을 한 것으로 보인다. 위의 네 단계는 그 고민의 수준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대표적인 사례라고 볼 수 있다. 이 모든 스토리가 단순히 이야기를 이끌어가기 위한 배치가 아니라, 각각 다른 의미를 갖고 전체에서 인류의 번영 과정을 압축적으로 그려내고 있다는 점 때문이다. 물리적인 힘의 논리로 이끌어 나가던 1인 대표 체제가 분리되는 과정이 그 첫 번째. 이후 분리되어 나온 새로운 집단은 화폐의 개념을 도입해 물물 교환을 시도하며 발전을 이룩하고, 두 집단의 갈등을 봉합한 마진은 각자의 핸드폰 속에 담겨 있던 문화 매체를 활용해 집단의 응집력, 결속력을 이끌어 낸다.

투박하기는 하나, 인류가 발전해 온 과정을 개략적으로 표현하고자 한 것은 이 영화 <아일랜드>에 오락적 역할 이상의 의미를 부여하여 그 오락성을 코믹함이 아닌 해학의 지점까지 끌어올린다. 영화의 후반부에서 발생하는 샤오싱과 마진의 갈등 역시 동일한 맥락 속에서 인간의 욕구가 어떻게 변화해 가는지, 그 옛날 매슬로우 박사가 주장한 욕구 단계설에 근거하여 바라볼 수 있게 된다.

04.

쓰나미로 무인도에 고립되기 전, 버스 안에서 마진이 당첨된 복권의 교환 기간이 90일이라는 사실도 주목해 볼 필요가 있다. 무인도에 고립되는 상황이 그들의 공간적 제약이라면, 복권의 교환 기간은 주인공에게 시간적 제약을 느끼게 만드는 요소로 작용되기 때문이다. 처음에 그가 생각했던 방식과는 다른 형식, 주인공이 무인도에서 영향력을 가질 수 있을 만한 방법으로 이득이 되기는 한다. 하지만, 그렇게 되기까지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교환'의 지점에 있어 복권의 효력을 얻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마진의 모습은 물욕과 관련한 인간의 여러 가지 모습에 대해 생각하게끔 만든다.

자신의 힘으로 일종의 복권을 획득하려는 샤오싱의 모습 또한 마찬가지다. 우연의 결과 혹은 계획적 결과라는 차이는 분명히 있지만, 그는 전반부에 그려지는 마진의 행동을 그대로 답습하며 형과 아우, 그러니까 세대의 전환 속에서도 변하지 않고 반복되는 인류의 욕심과 이기심을 보여준다. 그런 동생 샤오싱의 행동을 수정하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형 마진의 모습은 아이러니하기까지 하다.
 
 영화 <아일랜드> 스틸컷

영화 <아일랜드> 스틸컷 ⓒ 부산국제영화제


05.

유사한 동일 작품들과 유사하게 이 작품에도 무인도 바깥세상에 대한 소식이 들려오며 전복이 시도된다. 스스로 만든 세상이 전복되고 부정당한다는 의미는 그 세계 속에서 자신이 갖고 있던 부와 명예, 사랑과 믿음과 같은 것들도 모두 허상이 된다는 뜻이기도 하기에 그들은 쉽게 받아들이지 못하는 모습이다. '녹은 아이스크림은 다시 되돌릴 수 없다'는 그들의 말이 이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그들은 과연 어떤 선택을 하게 되는 것일까.

감독의 첫 작품치고는 상당히 완성도가 높다는 생각이 든다. 배우 출신의 감독이 이 정도의 퀄리티를 첫 작품부터 보여줄 것이라는 기대는 하지 못했다. 리얼리즘과 판타지, 사랑과 권력 투쟁의 과정들이 적절하게 잘 뒤섞인 가운데, <밀레니엄 맘보> <자객 섭은낭>으로 유명한 서기와 EXO의 레이까지 참여한 배우들의 호연도 맛깔을 더한다. 이 작품 <아일랜드>는 중국 영화 산업의 현재를 지켜볼 좋은 기회가 될 것이다.
영화 부산국제영화제 아일랜드 서기 레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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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가 숫자로 평가받지 않기를 바라며 글을 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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