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 그대로 혼신의 역투였다. 팀의 승리를 지키고 싶었던 차우찬은 마운드에서 내려가지 않았고, 끝내 마지막 타자를 삼진으로 처리하면서 마침표를 찍었다. 그 어느 때보다 승리가 간절했던 팀을 위한 에이스의 호투였지만, 이는 올 시즌 LG 트윈스의 현주소를 그대로 드러낸 장면이었다.

지난 6일 서울 잠실구장에서 열린 '2018 신한은행 MYCAR KBO리그' LG 트윈스와 두산 베어스의 정규시즌 마지막 맞대결에서 채은성-양석환의 백투백 홈런, 선발 차우찬의 완봉투에 힘입어 LG가 3-1로 승리했다. 지난해부터 이어진 두산전 17연패를 끊어냈고, 단일 시즌 특정 팀 상대 전패 위기에서 벗어났다. 자존심이 걸린 한 판 승부에서 두산을 상대로 거둔 소중한 1승이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확률적으로 LG의 가을야구 가능성은 제로에 가까워졌다. LG는 오는 13일 SK 와이번스와 정규시즌 마지막 경기만을 남겨둔 가운데, 5위 자리는 비교적 잔여 경기가 많은 KIA 타이거즈와 롯데 자이언츠 중 한 팀이 차지할 것으로 보인다. 게다가 두 팀은 이번주에만 네 차례나 만날 예정이다. 실낱같은 희망이라도 잡아보려고 했던 LG로선 지난해에 이어 올해도 쓸쓸하게 가을을 맞이하게 됐다.
 
차우찬의 134구 6일 잠실 LG-두산전이 끝난 순간 전광판의 모습. 정확히 134개의 공을 던진 차우찬은 27개의 아웃카운트를 홀로 책임졌다.

▲ 차우찬의 134구 6일 잠실 LG-두산전이 끝난 순간 전광판의 모습. 정확히 134개의 공을 던진 차우찬은 27개의 아웃카운트를 홀로 책임졌다. ⓒ 유준상


차우찬의 134구, 마냥 웃을 수만은 없었던 에이스의 호투

6일 두산전은 1경기 이상의 의미를 담고 있었다. 이날 전까지 LG의 트래직넘버가 1이었던 만큼 패배는 곧 포스트시즌 탈락으로 연결됐다. 또한 1982년 삼미 슈퍼스타즈(OB 베어스전) 이후 36년 만에 단일 시즌 특정 팀 상대 전패라는 불명예가 걸린 경기였다. 류중일 감독은 만일의 상황을 대비해 필승조는 물론이고 김대현을 비롯한 선발 투수들까지 마운드에 올릴 계획을 갖고 있었다.

지난 달 30일 LG전을 끝으로 경기가 없었던 두산 타자들은 타격감이 다소 떨어져 있었다. 8회말 무사 3루에서 오재원의 1루 땅볼 때 3루 주자 오재일이 득점을 올리기 이전까지 점수를 뽑지 못했다. 게다가 지난 달 27일 잠실 KIA전(8이닝 1실점, 승리투수) 못지않은 구위를 뽐낸 차우찬의 상승세는 멈출 줄 몰랐다. 사사구를 5개나 허용했음에도 결코 흔들리지 않았다.

8회까지의 투구수는 104개로, 팀이 두 점 차로 앞선 채 9회말에 돌입했다. 필승조가 확실한 팀이었다면 이미 선발 투수를 내렸을 상황이지만 류중일 감독은 다시 한 번 선발 투수를 마운드에 올렸다. 코칭스태프가 차우찬에게 9회말 등판 여부에 대한 선택권을 줬고, 차우찬은 완투 욕심을 드러내며 더 던지겠다는 의사를 전했다. 2사 주자 없는 상황에서 박건우의 안타, 김재환과 양의지의 연속 볼넷 출루가 나와도 덕아웃에서는 움직임이 없었다.

대타 김재호에게 7구째로 던진 슬라이더가 바깥쪽 꽉 찬 코스로 들어가면서 그제서야 차우찬의 임무가 끝났다. 차우찬의 134구째였다. 100구, 110구, 120구를 넘겨도 투수 교체를 단행하지 않은 벤치의 판단이 결과적으론 좋은 결과를 낳았다. 실제로 차우찬은 마지막 타자 김재호를 상대할 때 140km대 중후반에 달하는 패스트볼을 꽂아넣었고, 현장에서 경기를 지켜보던 양 팀 팬들을 모두 놀라게 만들었다.

그래도 씁쓸함은 남았다. 김지용처럼 이탈한 투수도 있고 신정락, 고우석, 정찬헌 등 필승조라고 할 수 있는 투수들의 구위가 대부분 떨어진 상태였다. 두산전 연패 기간 동안 불펜의 난조로 경기 후반 뒤집힌 경우가 많았던 것도 무리한 결정을 내린 원인이 되고 말았다. 연패를 탈출하려는 마음은 충분히 이해할 수 있지만 불펜을 믿지 못하는 류중일 감독의 결정은 선수에게 너무나 가혹했다. 시즌 초반부터 선발과 불펜 할 것 없이 무리한 운영을 하다가 단시간에 순위가 추락했는데, 경기에서 이겼을 뿐 과정만 보면 전혀 달라진 게 없었다.

2년 연속 PS 탈락... '지난해 ERA 1위' 철벽 마운드 어디로
 
 27일 오후 서울 잠실구장에서 열린 LG 트윈스와 KIA 타이거즈의 경기. 6회초 LG 선발 차우찬이 역투하고 있다. 2018.9.27

27일 오후 서울 잠실구장에서 열린 LG 트윈스와 KIA 타이거즈의 경기. 6회초 LG 선발 차우찬이 역투하고 있다. 2018.9.27 ⓒ 연합뉴스

 
소사-윌슨 외국인 원투펀치, 차우찬, 임찬규, 김대현으로 이어지는 5선발은 LG가 새 시즌을 맞이하면서 내세웠던 가장 강력한 카드였다. 문제는 선발 의존도가 너무 컸다는 것이다. KBO리그 기록 전문 사이트 '스탯티즈'에 따르면, 올 시즌 LG 선발진의 경기당 평균 투구수는 95.35개로 10개 구단 중에서 가장 많았다. 가장 적은 경기당 평균 투구수를 기록한 NC 다이노스(87.66개)와 약 8개 차이다. 개인의 기록이 아닌 팀의 기록이라는 점에서 선발 투수들이 등판할 때마다 많은 투구수를 기록했음을 알 수 있다.

개막 이후 줄곧 류중일 감독은 끊임없이 선발진을 신뢰하면서 길게 이닝을 소화하길 주문했다. LG만의 선발 야구를 보여주겠다는 게 류 감독의 목표였다. 그런데 경기를 거듭할수록 방향이 어긋났다. 올 시즌 규정 이닝을 채운 세 명의 선발 투수의 경기당 평균 투구수가 모두 100개 이상에 달한다. 소사(101.89개)가 가장 많고, 그 뒤를 차우찬(101.48개)과 윌슨(100.92개)이 잇는다. 세 명을 포함해 경기당 평균 투구수가 100개 이상인 투수는 리그에서 11명으로, 가장 많은 투수가 소속된 팀은 LG다.

선발만큼이나 상태가 심각했던 것은 바로 불펜이다. 전년도 불펜 평균자책점 4.71로 어느 정도 희망을 봤던 것과 달리 올해(8일 현재) 불펜 평균자책점은 5.66까지 치솟았다. 팀 불펜 평균자책점 1위 한화 이글스(4.21)와 차이가 크게 벌어져 있다. 김지용, 고우석, 신정락, 진해수, 정찬헌 등 양적으로 본다면 풍부한 불펜이지만 류중일 감독과 강상수 투수코치 등 코칭스태프가 효율적으로 투수들을 활용하지 못했다. 필승조와 추격조 구분 없이 운영한 경기도 적지 않았고, 필승조를 꺼내들고도 이기지 못한 경기가 허다했다.

류중일 감독이 이끌었던 2010년대 초반의 삼성 왕조는 탄탄한 마운드가 받쳐줬기에 구축될 수 있었다. 선발진에서는 쏠쏠하게 승수를 쌓을 수 있는 외국인 원투펀치와 토종 선발 윤성환, 장원삼, 차우찬 등이 꾸준한 활약을 보였다. 안지만, 오승환, 정현욱, 심창민, 권혁 등이 포진된 불펜은 리그 정상급이라고 해도 손색이 없을 정도였다. 그러나 류 감독이 깨달아야 할 것은 그 때의 삼성과 지금의 LG 마운드는 완전히 다르다는 점이다. '평균자책점 1위'라는 표면적인 수치만 보고 지휘봉을 잡았다면 큰 오산이다.

새로운 얼굴을 발굴하지 못한 채 기존의 필승조의 부담만 더 커졌고, 내년에는 김지용 없이 불펜을 꾸려야 한다. 매일같이 마운드에 오르는 투수에만 기대는 투수 기용은 팀의 장기적인 발전에 큰 도움이 될 수 없다. 두루 살펴보는 데에만 그쳤다고 봐도 무방하다. 결과물로 증명해야 하는 프로 무대에서 2018년의 LG는 성공적인 시즌을 보내지 못했다. 아니, 실패였다고 단정지어도 할 말이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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