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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밤 12시를 넘어 새벽 1시가 지나는 시간, 화장실에 가는 발걸음 소리가 들린다. 내 눈은 컴퓨터 화면에 고정된 채, 귀로는 엄마가 어떤 행동을 하는지 감지한다. 화장실 변기 물을 내리고 '하늘색 욕실화'를 가지런히 세우며 문을 닫는다. 톡! 화장실 불 끄는 소리. 침대방에 들어가며 부스럭대는 것까지. 이제 자리에 누우시겠지. 조금 있으면 잔잔히 코를 고실 것이다.

사방은 조용하다. 아침저녁으로 기온차가 나긴 하지만 9월 중순 날씨는 문을 꼭 닫고 잘 만큼은 아니어서 안방문은 반쯤 열려 있다. 컴퓨터 옆에 켜진 스탠드 주변만 어둠속에 유난히 밝다. 남편은 오늘 당직이다.

"상냥아~, 어쩜 그리도 너는 '옷'을 잘 입고 태어났니? 정말 이쁘다~."

주무시는 줄 알았던 엄마가 거실로 나왔다. 안방 문 앞, 스크래치원통에서 자는 상냥이에게 말을 건다. 상냥이가 일어나며 스트레칭을 한다. 낙타처럼 등을 볼록하게 올리다가 엄마를 향해 앞발을 쭉~ 뻗는다.

엄마는 그게 친근감을 나타내는 것처럼 보였는지 '아구구구 이리 올래?' 한다. 그러면서 안아주려 하자 상냥이는 아랑곳없이 냉큼 다른 곳으로 간다. 엄마는 상냥이한테 또 서운하다.

"차암~ 쌀쌀맞기는, 니가 무슨 상냥이냐? 나한텐 한 개도 상냥치 않구나."

엄마 말에 내 입꼬리가 올라간다. 그 말이 맞기도 하고 틀리기도 하다. 엄마는 상냥이(고양이)와 두부(개)가 다르다고 수없이 알려드린 걸 잊으신 거다. 그래도 저렇듯 유머감각이 있는 것 같아 다행스럽다.

엄마는 오늘 커피를 두 잔 마셨다. 낮에 집을 비우고 저녁에 와 보니 주방 한 구석에서 믹스커피 껍데기가 있었다. 화장실 휴지통을 비우려고 뚜껑을 여는데 거기에도 믹스커피껍데기가 있었다. 지난번 엄마는 '커피는 안 마실래. 속이 떨리고 잠도 안 와'라고 말했다. 근데 오늘 두 잔이라니. 저녁에 밥을 준비하면서 엄마를 부르는 내 목소리가 커졌다.

"엄마, 커피 두 잔 마셨어?"
"그래, 먹었다. 왜?"
"속 떨리고 잠이 안 온다고 했잖아요."
"안 오긴, 내가 잠을 얼마나 잘 자는데."


엄마가 잠이 안 오니 괜히 상냥이 핑계를 대고 문 앞에서 구시렁거린다. 상냥이가 쌩~ 자리를 뜨고, 나도 컴 화면에 눈을 박고 있으니 굳이 안 봐도 머쓱해졌을 엄마.

"나 가서 잘게~"
"네~ 주무세요!"


나는 짐짓, 사무적인 말투로 말했다. 새벽 두시가 넘었다. 지금부터 엄마 말을 곧이곧대로 믿으면 안 된다.

느닷없이 우는 엄마
 
딸이 보고 싶다고 우는 엄마. 엄마가 그토록 오랜 일을 떠올리며 울다니. 엄마 치매는 지금 어디까지 온 것일까.
 딸이 보고 싶다고 우는 엄마. 엄마가 그토록 오랜 일을 떠올리며 울다니. 엄마 치매는 지금 어디까지 온 것일까.
ⓒ Pixab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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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낼은 센터에 가서 서류(치매 약 지원비)를 접수하고 어떤 프로그램이 있는지 알아볼 참이다. 엄마와 다투지 않고 오래 잘 지내려면 몸은 물론 내 정신건강도 스스로 돌봐야한다는 걸 실감한다.

어수선하게 널려있는 컴퓨터 주변을 정리하고 나도 누우려고 스탠드 불을 껐다. 자리에 누워 일분도 채 되지 않을 때 엄마가 울면서 말했다. 침대에 앉아서 아이처럼 눈물을 뚝뚝 흘린다.

"니 언니가 보고 싶다. 흑흑~"
"언니가 보고싶어?"
"응~ 흑흑흑, 나 니 언니한테 사과해야 돼. 내가 그앨 많이 때렸어. 그 어린 게 뭘 안다구 내가 때렸을까, 그 어린 걸... 어흑흑흑."


그동안의 엄마, 아니 조금 전까지와 너무 다른 낯선 엄마 모습이다. 나는 엄마 손을 잡고 한 손으로 어깨를 감싸며 토닥였다. 엄마는 계속 흐느꼈다. 내 눈에도 눈물이 흘렀다.

오십년도 더 지난 그 시간. 나는 초등학교에도 들어가지 않았다. 세 살 터울이니 언니가 이제 2학년이나 됐을까. 여름 늦은 오후였다. 문이 열어젖힌 방으로 들어와 언니와 내가 무릎을 꿇었다. 뒤따라 들어온 엄마가 방문을 닫았다.

창호 문이 떨어질 듯 세게 닫는 소리. 그 소리만큼 화가 난 엄마. 손엔 싸리가지매가 들렸다. 엄마가 욕을 하는 동시에 싸리가지매가 공중으로 들리는 순간, 언니가 재빨리 싸리가지를 뺏어 꺾었다.

동시에 문을 박차고 달려 나가는 언니. 신발도 신지 않았다. 화가 머리끝까지 난 엄마가 언니를 뒤따랐다. 두 여자가 뛰쳐나가고 팽팽했던 긴장과 공포로 얼이 빠진 나는 텅 빈 방에 혼자 남았다.

엄마가 울면서 언니 얘기를 하자마자 나는 이 장면이 아주 선명하게 떠올랐다. 그때 우리 자매는 무슨 잘못을 그리 했던가.

"사는 게 힘들 때, 니 아버지한테는 뭐라 못하고 니들 셋 중에서 그래도 니 언니가 젤 큰애라 많이 맞았어. 너는 약하고 니 동생은 어리니 언니를 그렇게 때렸나보다."

엄마를 달래주고 나는 안방으로 건너왔다. 엄마도 나도 잘 시간이 너무 늦었다. 뭐라고 말할 수 없는 감정이 밀려왔다. '상냥이와 두부'의 다른 점을 고개만 돌려도 잊어버리는 엄마가 오랜 일을 떠올리며 울다니. 엄마 치매는 지금 어디까지 온 것일까. 

"나 치매 걸린 것 같아서 검사 좀 받으러 왔는데..."

치매치료관리비 지원을 받으려고 필요한 서류를 준비해 치매센터를 방문했다. 지난번 한산했을 때와 달리 센터는 왠지 사람들 출입이 잦고 부산스러웠다. 어깨에 '대전과학기술대학교'라고 쓴 흰 가운을 입은 두 여학생이 센터에서 검사를 보조하는 것 같았다. 내 서류를 받은 직원이 잠시 기다리라고 한다.

센터 안 테이블에는 어머니를 모시고 온 40대 아들인 보호자가 직원과 상담중이었다. 프로그램 방에서 들리는 소리는 어떤 상황인지 짐작될 정도로 담당자 목소리가 문밖을 넘는다.

"할머니 이름이 뭐예요, 이름! 할머니가 살고 있는 동네는 어디에요? 이건 몇 개에요?"

할머니가 말하는 소리는 전혀 들리지 않는다. 담당자 말소리만 크다. 테이블에 앉아 상담을 받던 모자(母子)가 센터 문을 나선다. 두 모자가 나간 후, 70대로 보이는 할아버지 한 분이 들어왔다.

"나 치매인 것 같아서 검사 좀 받아보려고 왔는데..."

건강하게 보이는 어르신이었다. 흰 가운을 입은 여학생이 할아버지를 안내했다. 본인 스스로 치매의심 검사를 하러 직접 찾아오는 모습이 놀라웠다.

직원이 내가 제출한 서류 외에 '지원신청서와 행정정보공동이용 사전 동의서(소득확인용)'를 작성해야 한단다. 신청서와 동의서를 작성하면서 주소와 주민번호, 사인을 거듭 적었다.

"오늘 접수했으니까 결정까지 두 달 정도 걸려요. 접수기준일로 소급해서 지원비 받을 수 있으니까 11월에 결정되면 9월 것부터 받을 수 있어요. 약값이 한 달에 실제 5만 원 나왔다 해도 3만 원만 지원되는 거예요."

직원은 어머니를 모시고 와서 '지문등록'을 해두라고 한다. 혹시라도 길을 잃을 경우 경찰서와 연계되어 있으니 지문인식으로 찾을 수 있단다. 치매 가족을 위한 서비스에 대해서 묻자 '중앙치매센터'에 문의하거나 인터넷으로 검색해보란다.

치매자가진단이나 운동정보 등 도움 받을 수 있는 치매앱도 내려 받을 수 있다고 한다. 또 치매가 초기 단계인 '초록이치매' 분들을 대상으로 본인과 가족들이 같이 와서 프로그램을 받을 수 있는 내용을 친절하게 설명했다. 직원은 치매 관련으로 더 많은 정보를 알려주고 싶어 했다.

밖에 나오니 센터에 머문 시간이 두 시간이다. 그 시간 동안 온통 치매 얘기로 채워진 머릿속이 혼몽하다. 나는 센터 내에서 11월부터 진행하는 치매가족모임(헤아림) 신청서를 접수했다. 매주 한 번, 치매 가족들 간의 어려움을 나누며 정보를 공유하고 서로 지지하는 마음을 나누다보면 같은 문제를 좀 더 수월하게 헤쳐 나가는 힘도 생길 것이기에.

태그:#치매, #중앙치매센터, #초록이치매, #치매가족모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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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에게 가면을 줘보게, 그럼 진실을 말하게 될 테니까. 오스카와일드<거짓의 쇠락>p182

오마이뉴스 편집기자. 시민기자 필독서 <아직은 좋아서 하는 편집> 저자, <이런 질문, 해도 되나요?> 공저, 그림책 에세이 <짬짬이 육아>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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