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여자농구 대표팀이 2018 스페인 FIBA(국제농구연맹) 여자농구월드컵 예선에서 3연패로 조기탈락했다. 대표팀은 A조 예선에서 프랑스에 58-89, 캐나다에 63-82, 그리스에 48-58로 각각 패배하며 단 1승도 거두지못하고 목표했던 8강진출에 실패했다.
 
 9월 25일(현지 시각) 스페인 산타크루즈 데 테네리페에서 열린 2018 FIBA 여자 농구 월드컵에서 그리스 선수에 맞서고 있는 한국의 박지수 선수

9월 25일(현지 시각) 스페인 산타크루즈 데 테네리페에서 열린 2018 FIBA 여자 농구 월드컵에서 그리스 선수에 맞서고 있는 한국의 박지수 선수 ⓒ 연합=EPA

 
사실 결과 자체는 어느 정도 예상된 것이었다. 프랑스와 캐나다는 설명이 필요없는 세계농구의 강호이고 그리스도 객관적인 전력에서 한국보다 크게 앞선 데다 세 팀 모두 특히 높이에서 한국보다 절대적인 우세였다. 아시아권에서조차 이미 중국, 일본에 밀려 정상권에 밀려난 한국은 세계무대에서는 사실상 1승만 거둬도 대성공이라는 평가가 많았다. 우려한대로 이번 대회 역시 큰 반전은 없었다.

하지만 완패를 습관처럼 당연하게 받아들이는 것은 또다른 이야기다. 질 때 지더라도 이번 대회를 통하여 무엇을 보여줬는가, 어떤 교훈을 얻었는가하는 부분은 반드시 짚고 넘어가야할 필요가 있다. 그렇지않다면 한국농구가 굳이 시간과 노력을 들여 해보나마나 한 국제대회에 나서야할 이유가 없기 때문이다.

한국농구의 고질적인 약점인 전력차나 높이 열세는 모두가 알고 있는 사실이다. 그렇다면 그 약점을 상쇄할수 있는 다른 비장의 무기가 있어야했다. 한국의 강점이라고 할 수 있는 조직력을 바탕으로 한 압박수비, 빠른 스피드를 살린 농구, 활발한 로테이션을 통한 체력전 등이 대표적이다.

이문규 감독은 예선 3경기 내내 한국 여자농구만의 '색깔'이라고 할수 있는 것을 전혀 보여주지 못했다. 경기에 선발로 나서거나 오래 뛰는 선수들은 항상 정해져 있었고 벤치멤버들은 거의 출전기회를 얻지 못했다. 대표팀은 사실상 8-9명의 선수들만으로 매 경기를 소화했다. 훨씬 수준높은 팀들을 상대해야 하는 세계대회에 나왔는 데도 경기운영은 아시안게임 때와 달라진 것이 전혀 없었다.

그나마 남북단일팀에서 활약했던 노숙영같은 선수가 빠지면서 박지수에 대한 골밑 의존도는 더욱 높아졌다. 박지수가 체력적으로 힘들어하는 모습이 눈에 보이는데도 대체할 선수가 없어서 어쩔수없이 코트에 방치하는 상황이 반복됐다. 그만큼 한국을 상대하는 팀들 입장에서는 경기 패턴이 쉽게 분석당할 수밖에 없었다. 박지수의 체력을 떨어뜨리거나 골밑에서 끌어내기만 하면 미스매치를 이용한 페인트존 공략이나 리바운드 장악에 아무런 걸림돌이 없었다.

나름 신장의 열세를 만회하기 위하여 선택했던 3-2 지역방어는 몇 차례의 패스플레이만으로 외곽에서 무수한 오픈 찬스를 허용했을만큼 완성도가 극히 떨어졌다. 상대팀 선수들보다 더 크고 빠른 것도 아니면서 더 많이 뛰어나지도 못하다보니 별다르게 경기흐름에 반전을 가져다줄 계기가 전무했다. 애당초 선수활용폭이 제한되어있고 색다른 조합이나 변칙적인 전술 변화도 없었던 한국은 상대팀 입장에서 다루기 쉬운 팀이었다.

이문규 감독 입장에서도 할말은 있을 것이다. 주전과 백업간의 실력차가 크다는 것은 부인할수 없는 사실이고, 선수들이 세계무대의 압박감에 위축되어 쉬운 슛이나 패스마저 실수하는 것은 감독의 힘만으로 어쩔수 없는 일이다. 그러나 이러한 핸디캡을 감안하더라도 이문규 감독의 리더십이나 전술적 준비 역시 세계무대에서 나설만한 수준이 되지 못했다는 것은 선수들과 마찬가지다.

애당초 대표팀은 이번 대회에 나서는 콘셉트 자체가 명확하지 않아보였다. 애초에 1승이 목표였다면 확실한 선택과 집중이 필요했다. 단일팀에 참가했던 북한 선수들이 빠지며 새롭게 합류한 선수들을 제외하고 9명의 선수들은 이미 아시안게임부터 이어진 강행군으로 체력적인 부담을 안고 있었다.

그런데 이미 패색이 짙었던 프랑스-캐나다전에서 박지수-임영희같은 주축선수들에 대한 체력 안배도 없었고 그나마 해볼 만했던 그리스전을 대비한 별다른 맞춤형 전술도 없었다. 심성영-박지현-최은실처럼 제대로 활용하지도 못할 선수들은 굳이 왜 데려갔는지 의문부호가 드는 장면이다.

만일 이번 대회에서 당장의 승리보다는 미래를 위하여 경험을 쌓는데 더 의미를 뒀다면 차라리 실력이 떨어져도 젊은 선수들에게 더 기회를 줬어야 했다. 하지만 이문규 감독은 높이에서 대체불가한 박지수를 제외하면 베테랑급 선수들에 대한 의존도가 뚜렷했다. 이번 대회에 출전했던 주축급 선수들 중 4년 뒤에도 차기 농구월드컵 출전을 기대할수 있는 선수가 과연 얼마나 될지 의문이다.

그저 골밑에서 박지수 한명만 배치하고 외곽 슈터들의 한 방을 노리는 한국형 양궁농구는 이제 아시아권에서도 중국-일본같은 팀들에게는 통하지않는 전술이 된 지 오래다. 선수들의 잠재력을 끌어낼 전술이나 동기부여는 보이지않고 벤치에서 호통치는 장면밖에 보이지 않는 감독의 모습은 국내 농구팬들에게도 한숨만 안겨줬다. 국제농구의 변화 흐름에 대한 이해가 전무하고 현장감각도 떨어진 '옛날 지도자'가 여전히 대표팀을 맡게 되었을 때 어떤 참사가 벌어지는지를 혹독하게 보여준 장면이었다.

한국에서는 오히려 종합대회인 아시안게임보다 저평가를 받는 분위기가 강하지만 농구월드컵은 올림픽과 함께 세계 농구계에서 가장 권위있는 대회다. 불과 7~8년만 해도 한국농구는 세계무대에서도 8강권은 충분히 노릴 만한 다크호스로 꼽혔다. 그런데 한국 농구의 국제 경쟁력 약화와 함께 언제부터인가 성적이 나오기 힘든 농구월드컵은 아예 뒷전으로 밀리는 분위기다.

4년전 대회에는 홈에서 열리는 인천 아시안게임 우승에 올인하기 위하여 주력 선수들을 제외하고 젊은 선수들 위주의 2진을 내보내기도 했다. 이번 대회에서는 아시안게임에 이어 정예멤버들을 내보냈으나 세계농구와의 격차가 더 벌어진 모습만 확인했다. 역시 아시안게임 직후 농구월드컵에 출전한 중국이나 일본이 1승 이상을 거두며 아시아농구의 자존심을 세운 것과 비교된다.

남자농구대표팀이 아시안게임 직후 허재 감독이 '혈연농구' 논란 속에 사임하는 우여곡절을 겪은 데 이어 여자농구는 농구월드컵에서 2회연속 3전 전패 탈락이라는 수모를 당하며 한국농구의 국제 경쟁력에 다시 한번 오점을 남겼다. 아시안게임에서 남북단일팀이 가져온 짧은 화제성에 도취되어 정작 농구월드컵에 대한 대비는 등한시한 것이 아니냐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시대에 뒤떨어진 농구협회 수뇌부의 개혁이 없는 한 한국농구의 침체는 계속될 가능성이 높아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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