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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의 수많은 직장인들이 꿈꾸는 퇴사! 새해 첫날 좌천 통보를 받고, 나락으로 떨어지던, 무기력한 40대 회사원이던 제가 딴짓을 하면서 퇴사 프로젝트를 가동하는 이야기입니다. 저는 과연 퇴사할 수 있을까요? - 기자 말
 
그동안 거절 당할까 두려워 아껴두었던 출판사에도 원고를 보내기로 했다. 그런데 기본적인 실수를 하고야 말았다.
 그동안 거절 당할까 두려워 아껴두었던 출판사에도 원고를 보내기로 했다. 그런데 기본적인 실수를 하고야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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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전기사] "우리 계약합시다!" 드디어 작가 되나 했더니...

좌절은 있어도 꿈이 생기니 육체적, 정신적으로 회복력이 좋아졌다. 마음을 다잡고 다시 출판사들에 투고를 재개했다. 잘 된 일이라고 스스로를 위로했다. 마음속에 같이 작업을 하고 싶은 출판사가 몇 군데 있었기 때문에 다행이라고 여겼다. 회사원으로만 살 때는 없던 마음의 여유가 생겨났다. 딴짓은 우리의 정신뿐만 아니라 육체에도 비타민과는 비교할 수 없는 건강을 선물 해 준다고 확신한다.

그동안 거절당할까 두려워 아껴두었던 출판사에도 원고를 보내기로 했다. 그런데 기본적인 실수를 하고야 말았다.

"같은 출판사에 같은 원고를 절대 두 번 투고 하지 말라고 했는데, 여기는 지난번에 보낸 출판사잖아!"

사실 이 출판사는 꼭 계약을 해 보고 싶은 곳 중 하나였다. 남들이 만들지 않는 책을 만들겠다는 홈페이지의 문구가 끌렸다. 나 같은 무명의 직장인이 쓴 글도 출간을 고려해주지 않을까 하는 기대감이 생겼다.

하지만, 다수의 베스트셀러를 만들어 낸 잘나가는 출판사다. 나뿐만 아니라 수많은 예비 저자들이 몰릴 테니 경쟁률은 치열할 것이다. 그런 출판사에 원고를 한 달 사이에 두 번이나 투고를 하는 실수를 저지르고 말았다. 원고 투고 담당자가 비웃을 걸 생각을 하니 창피함이 온 방 안을 가득 채웠다.

오늘은 여기까지만 하자며 컴퓨터 전원을 껐다. 직장인들이 가장 두려워하는 일요일 저녁이었다. 하지만 나는 회사만 다니는 예전의 김 차장이 더는 아니었다. 딴짓을 하는 직장인이었다. 월요병이 없는 일요일 저녁을 몇 년 만에 느끼는지. 아니 회사란 곳에 다닌 후 17년 만에 처음 겪어 보는 일이다. 피곤하지 않아도 일정한 시간에 숙면을 할 수 있었다.

실수가 초래한 놀라운 결과

그날은 하룻밤에 두 가지 꿈을 꾸었다. 조카들이 자전거를 타고 나를 애타게 부르고 있었다.

"이모부! 같이 가요. 우리도 데려가요. 그런데 거긴 내리막길 경사가 너무 급해요. 무서워요. 이모부."
"괜찮아! 애들아! 여기 완전 신난다. 달려!"


다음 날 출근길에 해몽을 검색해 보았다.

'내리막길을 신나게 내려가니 인생이 내리막이라는 건가?'

꿈은 반대였다. 다행히도 자전거를 끌고 오르막을 올라가면 험난한 여정을 겪는다는 암시인데, 내리막길을 달리면 하고자 하는 일이 술술 잘 풀린다는 길몽이라는 것이다.

출근 후 아내에게 전화로 지난밤 꿈 이야기를 들려주던 중 문제의(?) 전화가 걸려왔다.

"어제 꿈을 두 개나 꿨는데... 어? 잠시만 다른 전화가 들어오네."
"여보세요! 김아무개 선생님이시죠. 여기는 ㄱ출판사 입니다."
 

ㄱ출판사로 말할 것 같으면 바로 전날 실수로 원고를 두 번 보낸 곳이다. 설마 한 달 사이에 원고 투고를 두 번 했다고 항의 전화를 한 건 아니겠지? 짧은 순간 온갖 생각이 스쳐 지나갔다. 얼마 전 다른 출판사와의 쓰라린 기억이 떠올라 나도 모르게 경계태세를 갖췄다.

"네. 접니다. 무슨 일이시죠?"
"저희 쪽으로 원고 투고해 주셨죠?
"네. 근데 왜요?"


출판사 직원 입장에서는 원고 투고한 사람이 왜 전화했냐고 물으니 적잖이 당황을 했을 것이다. 

"아, 네... 선생님 원고가 너무 좋아서요. 만나 뵙고 이야기를 나누고 싶은데요. 시간은 언제 괜찮으신지요?"

출판사 직원을 마치 보이스피싱 관계자처럼 의심을 하며 약속 날짜를 잡았다. 통화가 끝나고 나니 기쁜 마음과 출판사에 대한 불신이 미묘하게 뒤섞여 있었다.

'아직은 때가 아니다. 샴페인은 계약서에 서명을 하고 난 후에 터트려도 늦지 않다.'

나는 아내에게조차 ㄱ출판사와의 미팅 일정을 알리지 않았다. 미팅 전날 밤은 타는 긴장감으로 오랜만에 잠을 잘 수가 없었다. ㄱ출판사와의 미팅 당일. 아내가 물었다.

"우와! 우리 남편 오늘 좀 멋진데? 중요한 업체랑 미팅 있어?"
"어! 오늘 엄청나게 중요한 업체랑 미팅 있어. 미팅이 길어지면 전화 안 될지도 몰라. 마치자마자 전화할게."


나는 길몽도 꾸었고, 기분도 좋았지만, 마음 한구석 불안감은 사라지지 않았다. 외근 일정을 1시간 정도 빨리 마무리하고 파주 출판도시로 향하는 버스에 몸을 실었다.

꿈에 그리던 출판사와 만나다
 
파주출판단지 모습
 파주출판단지 모습
ⓒ fli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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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비행기를 탈 때의 느낌과 비슷했다. 내가 왠지 좀 더 나은 사람이 된 것 같은 기분이었다. 파주 출판도시에 입주한 대형 출판사와 예비 저자로서 미팅을 하러 가다니! 겸손은 참으로 힘든 것이다. 그냥 미팅하러 가는데도 뭔가 된 것 같은데 말이다. 유명인이면서 겸손함을 유지하는 모든 분들에게 경의를 표하는 바다.

버스를 타고 가는 내내 기분 좋은 긴장감이 이어졌다. 만약에 또 계약이 안 되더라도 지금 이 순간의 기분을 그냥 즐기고 싶었다.

드디어 파주 출판도시에 입성을 했다. ㄱ출판사는 멋진 외관을 가지고 있었다. 내부 시설도 자유로운 분위기의 IT기업처럼 느껴졌다. 모든 것이 다 멋져 보였다. '귀사와 꼭 계약을 하고 싶습니다'라고 소리치고 싶었다.

회사 정문 앞에서 전화를 하니 내가 보이스피싱 직원처럼 의심했던 직원이 마중을 나왔다. 그 직원 뒤로 편집장이 따라왔다. 내 나이 또래로 보이는 남자 편집장은 퍼머를 한 단발머리였다.

청산유수로 말을 하는 편집장에게서 '영업'의 느낌을 지울 수가 없었다. 하지만 대화가 이어질수록 진실한 눈빛을 보았다. 다행히 그에게서 내 글을 책으로 만들고 싶어 하는 열망을 발견해 마지막에는 감사한 마음이 들었다.

"선생님처럼 철저한 무명의 작가는 저희같이 규모가 조금은 있는 출판사랑 계약하셔야 좋습니다. 아이돌 키우는 대형 기획사처럼 최선을 다해보겠습니다. 분명히 여러 출판사에서 제의를 받으셨겠지만, 회사를 떠나서 제가 선생님 글을 꼭 만져 보고 싶습니다. 저도 역사 '덕후(마니아라는 뜻의 신조어)'입니다."

그는 여러 장밋빛 청사진을 제시했다. 나는 벌써 베스트셀러 작가가 된 것 같았다. 모두 이루어지게 될 사실로 믿고 싶었다.

"그러면 생각 좀 해 보시고 연락 주시면 저희가 계약서를 바로 보내 드리겠습니다. 그런데, 혹시 몇 군데에서 연락받으셨어요?"

이런저런 공상에 빠져 있던 나는 정신을 차리고, 헛소리를 했다.

"아... 미팅이 지금 네 군데 정도 잡혀 있는데 ㄱ출판사가 처음입니다. 우선 순차적으로 나머지 출판사들도 만나 보고 난 후에 연락을 드리겠습니다. 그리고 제 원고를 좋게 봐 주셔서 진심으로 감사합니다."

그 이후로 세 군데의 출판사에서 연락이 온 건 사실이지만, 이날은 약속이 잡힌 출판사가 없었다. 나는 허세를 부리고 싶은 마음은 없었지만 너무 없어 보이는 것도 아닌 듯했다.

계약금을 받다

편집장은 출판사 문 앞까지 배웅을 나왔고 나는 화장실에 들렀다 가겠다며 그를 먼저 돌려보냈다. 출판사 문을 나선 후, 사각지대에 들어서자 몸이 저절로 솟아오르는 신비한 체험을 했다.

어린 시절 올림픽에서 금메달을 따고 포효하는 선수들을 보며 항상 부러워했었다. 올림픽 같은 큰 무대의 성공이 아니라도, 나도 평생 살면서 저런 극한의 기쁨을 맛볼 수 있을까? 좋은 회사에 취직했다고, 임원으로 승진했다고 저렇게 기쁠 것 같진 않았다.

올림픽 메달리스트들에게는 죄송한 말이지만 내 기준에서는 최고의 일이 눈앞에서 벌어졌고 나도 모르게 몸이 공중으로 부양되면서, 금메달리스트처럼 파주 출판단지의 구석에서 소리를 질렀다.

"끼야호!"

나는 수전증이 생긴 듯한 팔과 주체할 수 없이 뛰는 심장을 방치한 채로, 아내에게 전화를 걸었다.

"여보… 나 지금 파주 ㄱ출판사에서 미… 미팅 마치고 나오는 길이야."
"응? 거긴 왜 간 거야?"
"사실 오늘 여기서 내 원고가 좋다고 만나자 했는데, 또 계약이 안 될까 봐 말 안 했어. 그런데. 여보! 엄청 좋은 조건으로 나랑 계약하고 싶대. 선 인세지만 계약금까지 준데. <딴지일보> 1년 치 원고료보다 많아. 우리 둘이 스테이크 10번은 먹겠어."

 
며칠 후, 마침내 계약금이 내 통장에 입금됐다.
 며칠 후, 마침내 계약금이 내 통장에 입금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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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명의 직장인에게 진심을 보여준 편집장과 좋은 조건을 제시한 출판사에 거드름을 피울 생각은 없었다. 아내와 상의 후 그래도 모양새 좀 나게 하루만 있다 연락을 하기로 했지만, 다음 날 아침 출판사로 전화를 하는 내 손가락은 이미 통제를 벗어나 있었다. 

"안녕하세요. 어제 미팅을 했던 '찌라시 한국사'의 김아무개입니다. 귀사와 계약하고 싶습니다. 계약서 보내 주시면… 제가 처음이라 뭐가 필요한지 잘 모릅니다."

보이스피싱 직원으로 의심했던 출판사 담당자에게 초창기 보이스피싱 직원처럼 어색한 말투로 말을 이어갔다.

출판사 직원의 친절한 안내가 이어졌고, 잘 갖추어진 시스템 안에서 모든 일이 순차적으로 이어졌다. 며칠 후, 마침내 계약금이 내 통장에 입금됐다. 1000원의 후원금을 받고 주체할 수 없이 기뻐하던 지난날이 떠올랐다.

태그:#찌라시한국사, #출판사계약, #퇴사, #퇴사프로젝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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