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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르디 동상
 베르디 동상
ⓒ Pixab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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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날 오페라의 적자인 뮤지컬은 브로드웨이는 물론 한국 사회에서도 대중적인 인기를 누리고 있지만, 대부분이 이탈리아, 독일, 프랑스 말로 되어 있기에 아직도 우리에게 멀게 느껴지는 것이 현실입니다. 여러 이유가 있겠지만, 현실과 동떨어진 듯한 과장된 몸짓, 힙합과 R&B, 발라드 같은 장르에 이미 최적화된 우리의 청각에 익숙하지 않은 창법도 한몫한다고 생각합니다.

이러니 어쩌다 초대권이 생겨서 멋진 오페라 극장에 찾아가도 졸음과의 사투를 벌이다 돌아오는 경우가 다반사입니다. 반전에 반전을 거듭하는 영화는 스포일러 금지가 필수이지만, 오페라는 반대로 대략적인 줄거리를 알고 가야 합니다.

오페라를 처음 접하는 사람들이 지루하게 느끼는 가장 큰 이유는 사전 지식의 전무함이라고 생각해서 '교양미 충전 프로젝트'를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최소한의 배경지식 및 줄거리를 확인하고 간다면, 아름다운 아리아가 자장가가 될 리는 없겠지요? 꼭 오페라를 보지 못하더라도 알아두면 남들 앞에서 교양미를 뽐낼 수 있겠지요?

그런 의미에서 19세기 바그너와 함께 오페라의 양대 산맥이라 불리던 오페라 작곡가 베르디와 그의 히트작인 아이다에 대해 (최대한 쉽게, 때로는 경박하게) 이야기를 들려 드리겠습니다.

오페라 작곡가 베르디와 그의 히트작 아이다
 
뮤지컬 아이다 포스터 장면
 뮤지컬 아이다 포스터 장면
ⓒ 뮤지컬 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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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다는 국내에서는 옥주현씨가 출연한 포스터를 한 번쯤은 본 적 있으시죠?

베르디는 1813년 이탈리아의 부세토라는 시골 마을에서 태어났습니다. 부모님으로부터 물려받은 것은 뛰어난 음악적 DNA가 아니라 지독한 가난이었습니다. 어려서부터 음악에 유달리 관심이 많았지만, 정식 교육은 꿈도 꿀 수 없었다고 합니다. 그저 교회에서 울려 퍼지는 피아노 소리를 들으며 갈증을 달래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낭중지추라고 음악에 대한 열정과 뛰어난 재능으로 고향 마을에서 제일 잘 나가는 '교회오빠'가 되었다죠. 허나, 기적이 일어나지 않은 이상 베르디는 피아노 잘 치는 '교회오빠'로 살아가다 평범한 가정을 이루고 살아갈 처지였다고 해요. 하지만 그의 인생에 키다리 아저씨가 등장을 하니, 그의 이름은 안토니오 바레치. 훗날 베르디의 장인이 되는 지역의 독지가였습니다.

"오늘부터 제대로 된 피아노 레슨을 내가 시켜주겠네. 돈 걱정은 하지 말고 자네 재능을 마음껏 펼쳐 보게나."

베르디는 이제 최저시급을 받으며 알바를 할 필요가 없어졌습니다. 키다리 아저씨의 전폭적인 지원 속에 그의 피아노 실력은 수직 상승하였고, 기고만장해진 그는 희망에 찬 채 밀라노 유학 길에 오르게 되었죠.

'내가 시골에 묻혀 지내서 그렇지 도시 아이들에게 재능에서 뒤질 것은 하나도 없다. 내가 시골 쥐의 매서운 면을 제대로 보여주마.'

여기서 잠깐 역사상식 짚어보고 가겠습니다. 이 당시 이탈리아는 외세의 침략에 갈기갈기 찢어진 상태였습니다. 로마제국의 후손들이란 것이 믿기지 않을 정도지요. 그래서 베르디가 밀라노로 갈 때는 여권이 필요했다고 합니다.

어찌되었건 우리의 주인공 베르디는 청운의 꿈을 안고 밀라노에 입국(?)을 했는데요. 하지만 밀라노 음악학교에 피아노 특기생으로 입학하기 위해 실기시험을 마치고 난 후, 그의 꿈은 산산조각이 나버렸습니다. 마치 영화 <위플레쉬>의 빡빡머리 플래처 같은 교수님의 혹평으로 말이죠.

"이봐 시골 촌뜨기! 너는 우선 서류심사에서도 탈락인 걸 내가 실기 시험이나 보게 해준 거야. 18살이면 우리 학교 입학 기준 나이에서 이미 4살이나 넘겼어. 재능도 없고, 오직 눈빛만 살아 있어. 피아노가 오기와 끈기로 잘 치게 된다면 이 세상 모두가 쇼팽이 되었을 걸? 너는 또래는 물론이고, 한 세대 아래 아이들보다 나을 게 없어. 헛된 꿈 꾸지 말고 다른 길을 찾아보는 게 자네를 위해서 좋을 거야."

이런 걸 전화위복이라고 해야 하나요? 피아니스트의 꿈을 일찍 포기한 베르디는 작곡가로 성공하기로 결심하고, 밀라노에서 작곡 공부를 하게 되었습니다. 밀라노에서 짧은 유학 생활을 마친 베르디가 데뷔 음악회를 열기 위해 고향으로 귀향을 하게 되었는데, 무명의 신인 작곡가가 밀라노라는 대형마켓에서 데뷔하는 게 쉬웠겠어요? 그의 데뷔 무대는 영원한 키다리 아저씨 안토니오 바레치의 집 정원이었습니다.

"베르디는 전생에 무슨 공덕을 쌓았길래 저런 후원을 받나 몰라? 듣자 하니 바레치가 자기 딸의 음악 선생으로 베르디를 붙였다고 하던데."
"말이 음악 선생이지 결혼으로 가기 위한 예비 관문이지 머. 부럽다! 베르디."


주변의 시샘에도 불구하고 베르디는 바레치의 딸과 결혼에 골인하고, 장인의 확실한 후원을 받고 다시 밀라노 유학 길에 오르게 되었습니다.

"선생님! 아니 장인 어른! 다시 한 번 밀라노에 가서 도전을 해보겠습니다. 지금까지 베풀어주신 은혜에 보답하기 위해서라도 최선을 다 하겠습니다. 이제 저도 애 둘 딸린 유부남입니다. 오직 음악에만 승부를 걸어서 남 보란 듯이 성공해서 금의환향 하겠습니다."

모두가 작곡가로서의 생명이 끝났다고 생각했을 때
 
아이다 포스터
 아이다 포스터
ⓒ Pixab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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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좋은 후견인을 만나 탄탄대로만 걷던 베르디를 신이 질투라도 한 것일까요? 베르디의 두 딸은 돌잔치만 겨우 마치고 생을 마감하였고, 이 충격인지 그의 부인도 26세의 나이로 그만 운명을 달리하고 말았습니다. 세간에서는 모두가 베르디도 작곡가로서의 생명이 끝났다고 생각했습니다.

"베르디 그 양반 충격이 이만 저만이 아니겠어? 일이 손에 잡히겠어?"
"말도 말아. 지금 작곡가로서의 생명이 아니라 인간으로서의 생명이 위태로울 지경이라고 한다네. 거의 정신이 나갔다고 하던데, 아까운 인재 하나 잃는 거 아닌가 모르겠어."


베르디가 절망의 끝에 있을 때 동아줄이 되어준 여인이 있었으니 그녀의 이름은 주세피나 스트레포니! 그녀는 같은 극장의 주연 가수였습니다. 요즘으로 치면 대형기획사의 최고 작곡가와 걸 그룹 센터의 만남이라고나 할까요?

베르디는 그녀의 도움으로 마침내 재기할 수 있었습니다. 그의 재기 작품은 나부코라는 오페라였습니다. 당시 시대 상황과 절묘하게 맞아떨어져 그는 국민 작곡가 반열에 오르게 되었습니다.

오페라의 내용은 포로로 잡혀 억압 받는 유대인 이야기입니다. 앞서 언급 했듯이 이탈리아는 프랑스와 오스트리아 등의 압제에 시달리고 있었기 때문에, 이탈리아 국민들은 이 오페라를 통해서 사이다 1.5리터를 원샷 한 듯한 통쾌함과 용기를 얻었습니다.

하지만 너무 높아진 유명세는 두 사람의 애정 전선에 먹구름을 몰고 오고 말았습니다.

"아니 베르디 같은 국민 작곡가가 그런 천박한 여자와 계속 만나는 이유가 뭐지? 그 여자 전적이 화려하잖아. 유부남과 바람을 펴서 자식까지 있는 여자가 어떻게 감히 우리 베르디와..."
"어허. 너무 그러지 말게. 어쩌면 오늘날의 베르디는 그 여자가 만들었다고 볼 수 있어. 전처와 자식을 잃고 사람꼴도 아닌 베르디를 다시 작곡가로 만든 건 주세피나야."
"그래도 이탈리아 국민 대다수가 반대하고 있잖나. 국민 작곡가에게 전혀 어울리지 않는 여자야."


여론이 둘의 사랑에 호의적으로 돌아서는 데는 꽤 오랜 시간이 걸렸다고 합니다. 그녀는 훗날 아이다 극본 작업에도 동참해 베르디의 확실한 뮤즈로 자리를 잡았습니다.

그녀의 내조 덕분인지 베르디는 국민 작곡가라는 명성을 등에 업고 47세 때 국회의원으로도 선출되었죠. 또 환갑을 몇 년 앞둔 어느 날엔 이집트 국왕으로부터 오페라를 작곡해달라는 오퍼도 받게 되었습니다.

"여보. 이집트 측에서 백지수표를 보내왔소. 수에즈 운하 개통 기념으로 초대형 오페라를 제작해달라는데 영 마음이 내키질 않소."
"그래요. 이제는 당신 마음이 내키는 작품만 하세요. 국제 정세도 어수선하고 대형 작품을 하기에는 좋은 시기는 아닌 거 같아요."


하지만 이집트 국왕의 끈질긴 구애와 기대 이상으로 잘 쓰인 원작을 본 후 베르디 부부는 마음을 돌렸습니다. 그 작품이 바로 아이다죠. 뿌리치기 힘든 거액이 통장에 입금된 것도 크게 작용하지 않았을까요? 할리우드 스타들이 입금과 동시에 조각 같은 몸으로 변신하듯이 말입니다.

크리스마스를 하루 앞둔 1871년 12월 24일! 전 세계 최초로 카이로 스칼라 국립 극장에서 막이 오른 4막 7장의 오페라 아이다의 흥미진진한 이야기와 주옥 같은 음악에 대해서는 다음 시간에 들려 드리겠습니다.

태그:#오페라, #아이다, #베르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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