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의! 이 기사에는 영화 <서치>의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딸이 없어졌다. 딸의 친구들을 잘 알지 못하는 아빠는 딸의 SNS를 뒤지기 시작한다. 캠핑을 간 것이라 안도하기도 잠깐, 딸의 흔적을 어디에서도 찾을 수가 없다. 아빠가 알게 된 것이라곤 딸에게 친구가 없다는 것, 딸을 찾기 위해 연락할 곳이 없다는 답답한 현실이다.
 
<서치>  포스터

▲ <서치> 포스터 ⓒ 소니픽처스코리아

 
'그' 마고가 바로 '이' 마고

통상의 전개라면 아빠 데이빗은 이제부터 딸 마고의 새로운 모습에 충격을 받아야 할 것이다. 모범생 마고의 이중 생활이 밝히지면서, 온라인 안에 감춰진 딸의 또 다른 실체가 낱낱이 밝혀지는 줄거리가 나와야 한다. 영화는 실체를 이미지화하여 조작하고 감추는 SNS의 속성과 또 다른 '나'를 만들어내는 인간의 욕망이 어우러져, 삶의 기막힌 한 장면을 그려낼 것만 같다.

기대에 부응하듯 마고는 좀 더 자유로운 성격의 SNS 텀블러를 하며, 온라인 친구 목록에는 거친 말을 쏟아내는 불량스런 남학생이 있다. 또한 마고는 밤새 스터디를 한다고 거짓말을 하고, 6개월치 피아노 레슨비를 빼돌리고, 이름이 다른 신분증을 만들기도 했다. 이는 데이빗이 알던 마고가 아니었다. 여기까지만 보면, 관객은 이제 감춰졌던 마고의 실체를 목격하게 될 것만 같다.

영화 <서치>의 반전은 '범인이 누구인가'에서 오기보다는 이러한 일상화된 전개를 깨는 데 있고, 묘미도 같은 지점에 있다. 대부분 하나의 계정쯤은 가지고 있는 SNS가 실체의 일부만을, 때로는 만들어진 허상만을 보여준다는 것은 이제 더 이상 특별한 이야기가 아니다. 여전히 놀랍기는 하지만, 좁게는 '나'가 꾸려가는 SNS나 넓게는 '나'가 접하는 온라인 세계에 드러나지 않았던 이면의 이야기가 폭로되는 건 이제 흔한 일이다. 그러나 <서치>는 실체와는 다른 온라인 안의 또 다른 자아에 주목하지 않는다.

온라인의 마고는 오프라인의 마고와 별반 차이가 없다. 온라인이건 오프라인이건 어느 쪽에서든 외로운 마고는 한쪽에 경악할 만한 또 다른 자신을 만들고 있지 않다. 엄마를 잃은 슬픔에서 채 빠져 나오지 못한 마고는 엄마의 이야기를 함께 나눌 누군가를 찾았을 뿐이다. 온라인의 세계에서 '가슴을 보여달라'는 접속자를 단숨에 차단해버리는 마고는 데이빗이 의심하지 않는 오프라인의 '가출할 리가 없는 그 마고'이다. 삼촌과 함께 대마초를 피우지만, 엄마가 그리워 더 이상 '피아노를 칠 수 없는 그 마고'이다.
 
<서치> 한 장면

▲ <서치> 한 장면 ⓒ 소니픽처스코리아

 
오프라인을 축적하는 온라인

<서치>에서 온라인은 더 이상 현실과 유리된 채 만들어진 또 다른 자아가 활개치는 세계가 아니다. 온라인은 오프라인 내에서 'ON' 상태를 유지하며, 오프라인을 다양한 형태로 반복 재생산한다. 뻗을대로 뻗어 오프라인보다 정교한 네트워크 망을 구축한 온라인은 더 이상 가면을 허락하지 않는다. 오프라인보다 변장하기 좀 더 쉽지만 곳곳의 망은 불일치를 감별해낸다. 오히려 실체를 너무 적나라하게 드러내는 것은 아닌지를 걱정해야 할 판이다.

때문에, 마고를 또 다른 마고로 생산해내려던 시도는 온라인의 세계에 남겨진 무수한 흔적들로 의해 실패한다. 데이빗은 마고가 온라인에 남긴 흔적을 퍼즐을 맞추듯 정교하게 결합해내며 은폐된 진실에 접근한다. 진실을 덮기 위해 온라인을 도구로 활용하며 사건을 조작하던 자는 마고의 데이터를 따라가던 데이빗에게 덜미를 잡힌다. 오프라인의 속임수를 기반해 조작될 뻔한 마고의 실체는 온라인 내에 축적된 데이터들의 활약으로 지켜지고, 또한 구해진다.

물론, <서치>는 온라인의 불편한 이면을 직시하는 것을 피하지 않는다. 마고의 사건은 자극적으로 재생산되며, 마고를 학업에 이용하던 친구는 절친으로 둔갑하고 마고는 희롱의 대상이 된다. 데이빗은 마고의 데이터를 잘못 해석해 엉뚱한 사람을 의심하기도 한다. 온라인의 세계엔 비우지 않은 쓰레기통처럼 불필요한 것들이 넘쳐난다. 그럼에도 쓸모없어 보이던 것들은 어느 순간 꼭 필요한 무엇이 되기도 한다. 온라인의 데이터들은 너무나 방대해 누군가 완벽하게 통제하기도 불가능해졌다. 범죄를 은폐하려는 자는 마고와 관련된 무언가를 자꾸 찾아내는 데이빗을 온라인으로부터 떼어놓으려 한다.
 
<서치> 한 장면

▲ <서치> 한 장면 ⓒ 소니픽처스코리아

 
그 데이터들은 오프라인의 시계처럼 한순간도 멈추지 않고 축적된다. <서치>는 영화를 모니터 화면 안에서 재현함으로써, 오프라인이 온라인화되는 과정을 공개한다. 오프와 온은 이제 달리 구별이 필요없는 하나의 덩어리이며 연결된 망이 되었다. 다소 과장의 측면이 있더라도, 온라인은 오프라인을 모방해 재현되며, 시공간의 제약을 받은 오프라인의 많은 부분을 대체하기도 한다. 요즘 뉴스에 심심찮게 등장하는 '온라인 연인'에 의한 사기 사건은 온, 오프의 구별이 사라지는 현상의 한 단면을 보여준다.

'서칭(Searching)', 그 이후

오프라인을 축적하며 확대 재생산되는 방대한 데이터의 홍수 속에서 이제 우리는 '필요한 것을 어떻게 선택하고 활용할 것인가'란 문제를 고심해 보아야 한다. <서치>의 원제 'Searching'은 선택을 위한 과정 중에 수행하는 작업이다. 만일 데이빗이 쓰레기통을 비우지 않는 마고를 이해하려 노력하고, '마고와 이야기 좀 하라'는 동생의 충고를 진지하게 들었다면 어땠을까. 만일 데이빗이 마고의 페이스북을, 마고의 온라인 방송을 살펴 보았다면 어땠을까. 마고의 이상을 감지할 수 있었던 현실의 흔적들도, 온라인의 흔적들도 적지 않았다. 데이빗이 이 흔적들이 전해주는 의미를 찾아보았다면 이야기는 조금 달라졌을 수도 있다. 특별한 의미를 발산하는 데이터를 골라내는 것, 관계에는 그것이 필요하다.

아내를 잃은 슬픔이 컸지만 내색하지 않는 데이빗과 엄마를 잃은 슬픔을 함께 할 누군가가 필요했던 마고는 서로 다른 존재이다. 데이빗과 마고는 엄마에 대한 언급이 서로를 더욱 슬프게 할 것이라 생각했을 수도 있다. 남자와 여자, 어른과 십대, 아빠와 딸이라는 차이는 이들의 소통을 방해했을 것이다. 데이빗이 문자를 보내기 전에 굳이 엄마를 언급하는 문장을 삭제하지 않았다면, 온라인이 접속한 사람의 마음을 담아냈다면, 데이빗과 마고는 아직 치유되지 않은 서로의 아픔을 함께 보듬어줄 수 있는 사람들이었다.

두 사람의 관계는 온라인이 사람과 사람 사이의 소통에 어떻게 기능해야 할 것인지를 생각해 보게 한다. 일상적인 안부만 묻는 관계가 더 이상 진전할 수 없듯, 정보를 교환하듯 교차되는 메세지는 진짜 전달해야 할 무언가를 전해주지 못한다. 애정하는 대상이라면, 관계를 좀 더 진전시키고 싶은 대상이라면, 우리는 일상이 된 온라인에서도 그 마음을 표현하는 것을 주저하지 말아야 한다. 사랑을 표현하라는 오프라인의 명제는 온라인에도 통용된다. 어쩌면 대면하여 말하는 시간보다 온으로 연결하는 시간이 더 많은 현실의 요구이다. 특별한 의미를 발산하는 데이터를 전송하는 것, 관계에는 그것도 필요하다.
 
<서치> 한 장면

▲ <서치> 한 장면 ⓒ 소니픽처스코리아

 
인간은 본질적으로 외로운 존재이다. 늘상 허한 마음을 달래줄 누군가와 무언가를 찾아 헤맨다. 삶은 채워지지 않은 마음의 빈 공간을 채울 뭔가를 찾아가는 과정인지도 모른다. 이제 온라인은 인간의 외로움을 달래주고 덜어주는 가장 손쉽고 유용한 도구가 되었다. 도구의 부작용을 감소시키며 긍정적인 관계 모색에 그 도구를 어떻게 활용할 것인지를 찾아야 한다.
덧붙이는 글 개인 블로그에도 게재합니다.
서치 영화서치분석 데이빗마고 온라인오프라인관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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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대한민국 한 귀퉁이에서 평범하게 살아가는 그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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