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점활약 라틀리프 17일 오후 고양체육관에서 열린 2019 세계 남자 농구월드컵 아시아 지역예선 대한민국 대 시리아 경기. 대한민국 라틀리프가 교체되며 김상식 대한민국 감독대행과 하이파이브를 하고 있다.

▲ 만점활약 라틀리프 17일 오후 고양체육관에서 열린 2019 세계 남자 농구월드컵 아시아 지역예선 대한민국 대 시리아 경기. 대한민국 라틀리프가 교체되며 김상식 대한민국 감독대행과 하이파이브를 하고 있다. ⓒ 연합뉴스


김상식 감독 대행이 이끄는 한국 남자농구 대표팀이 쾌조의 연승행진을 거두며 아시안게임 후유증에서 벗어났다. 한국은 17일(월) 오후 8시 고양체육관에서 펼쳐진 FIBA 월드컵 아시아 지역예선 2라운드 E조 2차전에서 시리아에 103-66으로 완승을 거뒀다. 지난 요르단 원정에 이어 2라운드 2연승을 질주한 한국은 1라운드 누적 성적 합산 6승 2패를 기록하며 조 3위까지 주어지는 2019 농구월드컵 본선 진출을 향한 청신호를 밝혔다.

농구대표팀은 이달 초 끝난 자카르타·팔렘방 아시안게임에서 동메달을 따냈으나 이란전 완패를 비롯하여 전반적으로 저조한 경기력으로 아쉬움을 남겼다. 여기에 허재 감독의 친아들 허웅-허훈을 둘러싼 '특혜 선발' 논란까지 겹치며 후폭풍에 휩싸였다.

허재 감독은 아시안게임 직후 논란에 책임을 지고 자진 사퇴했고 허웅과 허훈도 대표팀 명단에서 탈락하며 모두 불명예스럽게 물러났다. 허 감독과 선수선발 문제를 놓고 갈등을 빚었던 것으로 알려진 국가대표 경기력향상위원회위원들도 전원 사임했다. 아시안게임 직후 곧바로 농구월드컵 예선일정을 소화하기 위하여 다시 대표팀이 소집됐지만 어수선한 분위기 속에 선수들의 사기는 다소 가라앉을 수밖에 없었다.

대한민국농구협회는 요르단-시리아와의 2연전에서 김상식 코치에게 감독대행 역할을 맡겼다. 현실적으로 다른 대안도 없었다. 코칭스태프와 선수단 구성이 모두 불완전한 상황에서 짧은 준비기간을 거쳐 요르단-시리아전을 소화해야 했던 대표팀이었지만 '김상식호'는 위기를 극복하고 쾌조의 2연승을 거두며 침체된 분위기를 스스로 전환하는 데 성공했다.

라건아 활용방식 변화... 박찬희-안영준 활약 끌어낸 것도 '소득'

연승이라는 결과도 중요하지만 과정이 더 좋았다는 게 의미가 있다. 김상식호는 짧은 준비기간에도 불구하고 모든 면에서 허재 전 감독이 이끌던 시절보다 오히려 안정된 경기력을 보여줬다. 허웅-허훈이 빠진 것을 제외하면 대표팀의 전력은 불과 얼마 전에 치러진 아시안게임과 큰 차이가 없었다는 것을 감안하면 '감독교체' 효과만으로 같은 팀이 단기간에 얼마나 달라질 수 있는지를 보여준 결과다.

허재 감독은 아시안게임에서 라건아의 개인능력과 슈터진의 양궁농구에 의존하는 단조로운 경기운용으로 많은 비판을 받았다. 허재 감독은 오세근-김종규-이종현 등 핵심 선수들의 부상을 아쉬워했지만, 정작 쓰는 선수만 고집하는 한정된 선수활용폭과 경직된 전술로 인하여 주전급 선수 중 부상자가 발생하거나 경기가 풀리지 않을 때 상황대처능력이 현저히 떨어졌다는 것은 감독의 책임이 더 컸다.

김상식 대행은 같은 선수들을 데리고도 짧은 기간에 전혀 다른 결과와 내용을 이끌어냈다. 한국의 에이스로 자리잡은 라건아의 비중과 활약은 김상식 대행체제에서도 변함이 없었지만 활용방식은 확연히 달랐다. 김상식 대행은 라건아의 볼 소유시간과 포스트업 시도를 줄이고 유기적인 패스와 활동량을 통하여 공간을 창출해내는 특유의 스페이싱 농구로 회귀했다. 라건의 체력적인 부담이 줄어들면서 골밑에서 간결한 플레이만으로 많은 득점과 리바운드를 뽑아낼 수 있었다.
 
압도하는 라틀리프 17일 오후 고양체육관에서 열린 2019 세계 남자 농구월드컵 아시아 지역예선 대한민국 대 시리아 경기. 대한민국 라틀리프가 슛을 하고 있다.

▲ 압도하는 라틀리프 17일 오후 고양체육관에서 열린 2019 세계 남자 농구월드컵 아시아 지역예선 대한민국 대 시리아 경기. 대한민국 라틀리프가 슛을 하고 있다. ⓒ 연합뉴스


득점 분포도 달라졌다. 라건아가 여전히 팀 내에서 가장 많은 득점을 올렸지만 전준범과 이정현, 박찬희, 최준용, 이승현 등도 매쿼터 고르게 득점에 가담했다. 특정선수에게 볼이 몰리거나 한 선수가 공격을 시도할 때 다른 선수들이 움직이지 않고 멈춰 서 있는 장면이 크게 줄어들었다. 모든 선수들이 고르게 공격 과정에 참여하고 리바운드와 속공에 가담하면서 팀 플레이의 완성도가 높아졌다. 요르단과 시리아는 한국을 상대로 높이의 우위를 점하지 못한 데다 오히려 후반으로 갈수록 한국의 경기템포를 따라잡는 데 애를 먹는 모습이었다.

허재 감독 시절 크게 중용받지 못했던 장신 가드 박찬희나 A대표팀 첫 승선이었던 안영준의 활약은 이번 2연전의 숨은 소득이었다. 대표팀은 그간 선수들의 낮은 신장 때문에 수비에서 '미스매치'로 항상 어려움을 겪어왔다. 수비와 높이에 강점이 있는 선수들이 가세하면서 로테이션의 활용폭이 넓어졌고 다양한 전술을 가동할 수 있게 된 점은 그간 대표팀이 가장 필요로 했던 부분이기도 하다.
 
안영준 '가자' 17일 오후 고양체육관에서 열린 2019 세계 남자 농구월드컵 아시아 지역예선 대한민국 대 시리아 경기. 대한민국 안영준이 돌파를 하고 있다.

▲ 안영준 '가자' 17일 오후 고양체육관에서 열린 2019 세계 남자 농구월드컵 아시아 지역예선 대한민국 대 시리아 경기. 대한민국 안영준이 돌파를 하고 있다. ⓒ 연합뉴스

  
더블클러치 시도하는 박찬희 17일 오후 고양체육관에서 열린 2019 세계 남자 농구월드컵 아시아 지역예선 대한민국 대 시리아 경기. 대한민국 박찬희가 더블클러치를 시도하고 있다.

▲ 더블클러치 시도하는 박찬희 17일 오후 고양체육관에서 열린 2019 세계 남자 농구월드컵 아시아 지역예선 대한민국 대 시리아 경기. 대한민국 박찬희가 더블클러치를 시도하고 있다. ⓒ 연합뉴스


결과론적인 이야기지만 아시안게임 때 더 일찍 이런 식의 유연한 경기운영을 보여줬다면 어땠을까 하는 아쉬움이 남을 수밖에 없다. 라건아-이승현의 더블포스트는 그리 크지 않은 신장에도 불구하고 단단한 공수밸런스를 보여줬고, 빠른 패싱게임이 살아나면서 슈터진의 폭발력도 부활했다. 효율성이 떨어지던 허웅-허훈이 모두 빠지면서 포워드-가드 라인의 높이와 수비력이 눈에 띄게 향상된 것은 대표팀의 경기력과 그대로 직결됐다. 한국이 가장 잘할 수 있는 플레이를 무엇인지를 다시 확인시킨 게 이번 2연전이 남긴 최대의 성과라고 할 수 있다.

농구대표팀의 문제, 근본적인 해결 필요하다

급한 불은 껐지만 아직 농구대표팀을 둘러싼 위기가 끝난 것은 아니다. 아시안게임을 전후로 하여 보여준 농구협회 행정의 난맥상과 소통 부재는 이번 승리로 인하여 적당히 묻혀져서는 안 될 문제다. 감독대행과 선수들의 헌신적인 노력으로 어려운 승리를 따냈지만 그것은 협회의 지원이나 행정이 좋아서 거둔 성과라고는 할 수 없다.

당장 차기 전임감독을 다시 선임해야 하는 문제부터가 시급하다. 김상식 감독대행의 임기는 일단 시리아전까지다. 대표팀의 연속성을 이어간다는 측면이나 지난 2연전에서 보여준 성과를 감안하면 김상식 대행을 정식 감독으로 승격시키는 것도 하나의 대안이 될 만하다.

무엇보다 대표팀 운영 구조에 대한 근본적인 재점검이 필요하다. 2009년 김남기 전 감독에 이어 2016년 부임한 허재 감독까지 두 번 시도했던 전임감독제가 모두 계약기간을 채우지 못하고 실패로 끝났다. 감독들의 능력 부족도 아쉽지만 무늬만 전임 감독을 제대로 견제하거나 혹은 확실하게 지원해줄 시스템은 제대로 갖춰지지 못했다는 평가도 있다. 항상 현장에서 고생하는 일선 지도자와 선수들만 대표팀을 위하여 희생과 부담을 강요당하는 모양새라는 지적도 일각에서 나온다. 그러나 대표팀 운영의 혼란에 대하여 가장 큰 책임을 져야할 주체는 방열 회장을 비롯한 농구계 수뇌부다. 위로부터의 대대적인 변화가 없다면 위기는 반복될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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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구 라건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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