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각한 표정으로 지켜보는 허재 감독 30일 오후(현지시간) 인도네시아 자카르타 겔로라 붕 카르노(GBK) 이스토라 농구장에서 열린 2018 자카르타-팔렘방 아시안게임 남자 농구 4강 한국과 이란의 경기. 한국 허재 감독이 경기를 지켜보고 있다. 2018.8.30

▲ 심각한 표정으로 지켜보는 허재 감독 지난 8월 30일 오후(현지시간) 인도네시아 자카르타 겔로라 붕 카르노(GBK) 이스토라 농구장에서 열린 2018 자카르타-팔렘방 아시안게임 남자 농구 4강 한국과 이란의 경기. 한국 허재 감독이 경기를 지켜보고 있다. 2018.8.30 ⓒ 연합뉴스


'부자' 선발로 '특혜 논란'에 휩싸였던 허웅-허훈 형제가 결국 농구 국가대표팀에서 제외됐다. 대한민국농구협회는 4일 오전 대한민국농구협회 회의실에 열린 경기력향상위원회에서 2019 FIBA 농구월드컵 아시아예선에 참가할 선수 최종 12인을 새로 선정했다. 지난 아시안게임 멤버 중에서 허웅과 허훈·허일영이 제외되고, 최진수·안영준·정효근이 발탁됐다.이번에 뽑힌 대표팀은 오는 13일 요르단과 원정, 17일 시리아와 홈에서 각각 열리는 농구 월드컵 아시아 지역 예선전에 나선다.

허재 감독이 이끄는 남자농구 대표팀은 최근 선수 구성에서 논란이 끊이지 않았다. 허재 감독의 두 아들인 허웅과 허훈이 매번 대표팀에 뽑히는 것을 두고 일부 농구팬들은 "국가대표가 아니라 허가대표로 전락했다"고 비판하며 형평성에 의문을 제기했다. 국내 무대에서 단신 슈팅가드로 분류되는 허웅이 포워드로 발탁되는가 하면, 포인트가드인 허훈은 같은 포지션에서 다른 선수들에 비하여 그리 뛰어난 활약을 보여주지 못했음에도 대표팀에 승선하여 논란은 커졌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허재 감독은 '자신이 책임지겠다'는 태도로 일관하며 선수 선발을 밀어붙였다.

하지만 허재호는 아시안게임에서 다소 실망스러운 결과만 남겼다. 허웅은 약팀과의 경기에서만 두 자릿수 득점을 넘겼을 뿐 필리핀-이란 등 강팀과의 경기에서는 침묵했다. 허훈은 아예 8강 토너먼트 이후로 단 1분도 경기에 나서지 못하며 벤치에만 머물렀다.

드리블하는 허훈 16일 인도네시아 자카르타 겔로라 붕 카르노(GBK) 농구장에서 열린 2018 자카르타-팔렘방 아시안게임 남자농구 예선 한국과 몽골의 경기.

한국 허훈이 드리블을 하고 있다.

▲ 드리블하는 허훈 지난 8월 16일 인도네시아 자카르타 겔로라 붕 카르노(GBK) 농구장에서 열린 2018 자카르타-팔렘방 아시안게임 남자농구 예선 한국과 몽골의 경기. 한국 허훈이 드리블을 하고 있다. ⓒ 연합뉴스


대표팀은 준결승에서 강호 이란에 패배하며 동메달에 만족해야 했다. 역대 최고의 귀화선수라는 라건아의 눈부신 맹활약에도 불구하고, 오히려 특정 선수에게 지나치게 의존하는 팀으로 전락했다는 부작용을 지적받으며 경기력 면에서도 기대에 미치지 못했다.

특히 1년 전 아시아컵에서 팽팽한 승부를 펼쳤던 이란전에서 이번엔 힘 한번 못 쓰고 완패한 것이나, 필리핀-대만전에서도 라건아의 활약에 의존하여 겨우 신승한 것은 허재 감독의 리더십에 의구심만 남겼다. 결국 포지션 경쟁력과 활용도가 떨어지는 허웅-허훈을 무리하게 선발하면서 다양한 전술 운용의 폭을 스스로 좁혔고, 대표팀의 장신화와 세대교체라는 시대적 과제 또한 외면했다는 혹평을 피하지 못했다.

'발탁 논란' 농구대표팀, 축구·야구 사례와 달랐던 대응

사실 선수 선발은 어쨌든 감독의 고유권한이고, 자신의 아들이라고 해도 감독이 필요하다고 판단되는 선수라면 발탁 자체는 비난받을 일이 아니다. 이번에 금메달을 따낸 야구대표팀에서 이종범 코치의 아들인 이정후가 발탁되며 '부자 국가대표'로 화제를 모았지만 누구도 발탁 자격에 이의를 제기하지 않았다. 이정후는 1차 명단에서는 탈락했지만 이미 리그에서 최고의 활약을 바탕으로 오히려 여론에서 대표팀에 합류시켜야 한다는 지지 여론이 많았고 결국 추가 교체를 통하여 극적으로 아시안게임에 승선하여 금메달까지 목에 걸 수 있었다.

결국 문제는 국가대표 선발의 절차와 과정이 얼마나 공정했느냐다. 허웅-허훈도 결코 실력이 없는 선수들은 아니었다. 단지 프로무대에서의 활약이나 국제대회 활용도 면에서 KBL의 수많은 선수들을 제치고 유독 대표팀에서 기회를 더 얻어야 할 만큼의 명분을 증명하지 못했을 뿐이다. 하물며 '감독의 아들'이라는 특수한 관계에 있었다면 애초부터 이런 식의 문제 제기가 나올 것은 당연히 예상했어야 할 부분이고, 여론의 비판에 코칭스태프가 더 적극적으로 대처했어야 옳았다.

그러나 허재 감독은 이번 아시안게임 선수 명단 구성에서부터 '불통'에 가까운 행보로 구설수를 스스로 키운 면이 있다. 축구대표팀 김학범 감독이 성남 시절 제자였던 황의조를 와일드카드로 처음 발탁했을 당시 '인맥축구'라는 비난에 휩싸였지만 적극적으로 해명에 나서서 여론을 진정시키던 것과도 대조된다.

드리블 하는 허웅 30일 오후(현지시간) 인도네시아 자카르타 겔로라 붕 카르노(GBK) 이스토라 농구장에서 열린 2018 자카르타-팔렘방 아시안게임 남자 농구 4강 한국과 이란의 경기. 한국 허웅이 드리블을 하고 있다. 2018.8.30

▲ 드리블 하는 허웅 지난 8월 30일 오후(현지시간) 인도네시아 자카르타 겔로라 붕 카르노(GBK) 이스토라 농구장에서 열린 2018 자카르타-팔렘방 아시안게임 남자 농구 4강 한국과 이란의 경기. 한국 허웅이 드리블을 하고 있다. ⓒ 연합뉴스


반면 허재 감독은 허웅-허훈을 둘러싼 비판 여론과 합리적인 문제제기에 대하여 철저하게 침묵으로 일관했다. 국가대표 감독이 자신이 원하는 선수를 뽑는 데 일일이 공개적으로 해명해야 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했다면 더욱 안타까운 일이다. 국가대표는 감독 개인의 팀이 아니며, 자신이 '왜 이 선수들을 반드시 뽑아야 했는지', '어떻게 활용할 것인지' 성실히 소통하는 것이야말로 오히려 소모적인 논란으로부터 그나마 선수들을 보호하는 최선의 길이기도 했다. 결과적으로 허재 감독의 팀운영과 언론대응 방식은 고스란히 자신의 아들들을 향한 비난과 의혹만 더욱 악화시키는 부메랑으로 돌아왔다.

여전히 묵묵부답인 허재 감독, 소모적인 논란 되풀이 않으려면...

더욱 실망스러운 부분은 허재 감독이 아시안게임이 끝난 지금까지도 이번 논란에 대하여 적절한 해명이나 책임지는 모습을 전혀 보이지 않고 있다는 사실이다. 허재 감독은 귀국 기자회견에서도 허웅-허훈을 둘러싼 논란에 대하여 끝까지 답변을 회피했고, 오히려 국가대표 경기력향상위원회에 뒷수습을 전가하는 듯한 태도로 일관했다.

위원장인 유재학 감독을 비롯한 기술위원 전원이 이번 아시안게임 성적에 모두 책임을 지고 사퇴를 결정했지만 정작 내년 2월까지 계약기간이 남아있는 허재 감독은 묵묵부답이다. 그동안 농구 코트에서 보여준 허재 감독의 이미지가 의심될 정도로 무책임한 대응이라는 비판에 직면하게 됐다.

이번 대표팀의 실패에 책임을 져야 할 것은 허웅과 허훈이 아니라 그들을 아시안게임 대표팀에 발탁했던 허재 감독이었다. 규정상 선수 선발에 있어서 기술위원들이 공통의 책임을 져야 하는 것이 도의적으로는 맞지만, 감독이 원하지도 않는 선수들을 기술위원들이 강요로 뽑은 것이 아닌 이상 가장 큰 책임은 결국 감독에게 있는 것이다.

더구나 이제와 허웅-허훈 두 선수가 단지 이번 대표팀에 제외되었다고 해서 이 문제가 끝나는 것은 아니다. 당장 지금의 비난 여론만 어떻게든 무마하겠다는 것인지, 아니면 그간의 과오를 반성하고 대표팀 운영의 방향을 바꾸겠다는 것인지도 명확하지 않다. 허 감독이 자신의 선수발탁 기준이나 대표팀 운영에 대하여 분명한 철학과 입장을 밝히지 않는다면 앞으로도 이런 소모적인 논란이 되풀이되지 않는다는 보장이 없다. 허 감독은 허가대표가 아닌 '국가대표 수장으로서의 역할과 의무'에 대하여 다시 한번 진지하게 숙고해봐야 할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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