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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의 수많은 직장인들이 꿈꾸는 퇴사! 새해 첫날 좌천 통보를 받고, 나락으로 떨어지던, 무기력한 40대 회사원이던 제가 딴짓을 하면서 퇴사 프로젝트를 가동하는 이야기입니다. 저는 과연 퇴사할 수 있을까요? - 기자 말

[이전기사] 암환자가 내게 준 1000원... 눈물이 났다
 
43년간 사회 시스템 안에서 절대다수의 길을 맹목적으로 따라갔다.
 43년간 사회 시스템 안에서 절대다수의 길을 맹목적으로 따라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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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3년간 사회 시스템 안에서 절대다수의 길을 맹목적으로 따라갔다. 죽더라도 나만 죽는 게 아니니 덜 억울하다는 생각이었을까? 내가 지금 옳은 방향으로 가고 있는 것일까 하는 의구심이 들면서도, 타인이 옳다고 하는 곳만을 바라보며 속도만 높여갔다. 오직 그들에게 뒤처지지 않기 위해서.

그러나 반환점을 돌고나니 다수가 가는 길이 나에게는 맞지 않는 길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늦었다고 생각될 때는 이미 늦었다는 방송인 박명수씨의 말도 있지만, 이제라도 내게 맞는 길의 초입에 들어섰다고 생각하니 세상 걱정의 절반 이상이 사라졌다. 역시 인생은 속도가 아니라 방향이다. 책에 나오는 명언들이 왜 명언인지 하나하나 직접 겪으며 배워 나가고 있었다.

내 글이 기사화되고 나니 글쓰기가 더욱 재밌어졌다. 짧은 주기를 두고 2개의 글이 연속적으로 기사화됐다. 독자들의 반응도 기대 이상으로 좋았다. 세 번째 글이 기사화되고 나니 <딴지일보>에서 '신상 정보를 알려 달라'는 메시지가 왔다.

며칠 후 저장되지 않은 번호로 전화가 왔다. 내가 기다리고 있던 그 전화일 거라는 확신이 들었다. 떨림과 흥분을 감추고 싶지도 않았고, 그럴 수도 없었다.

"안녕하세요. <딴지일보>입니다. 선생님! 혹시 이런 역사 글을 얼마나 써 놓으셨나요? 선생님만 좋다면 정기적으로 연재를 하고 싶은데요. 그리고 연재를 하려면 아무래도 제목이 있어야 할 거 같은데, 혹시 생각해 놓은 거 있으신지요?"

"일단 역사 이야기는 추가로 30개 정도 더 가지고 있습니다."
"그러면 연재할 분량은 충분하네요. 이제 필진이 되셨으니, 정말 소정이지만 원고료가 지급이 됩니다."


초등학교 때 독후감과 회사 보고서 외에 글이란 걸 써 본 적이 없는 내가 인터넷 언론사 필진이 된 것이다. 명함이라도 만들고 싶은 심정이었다. 세상을 향해 회사원 차장 김아무개가 아닌 <딴지일보> 필진이라고 소리치고 싶었다.

아내에게 소식을 바로 전했고, 연남동의 분위기 좋은 식당에서 저녁 식사를 했다. 앞으로 나오는 원고료로 한 달에 한 번이지만 호사를 부리자고 했다.

언론사 필진이 되다

담당 기자가 거듭 미안하다고 말할 때 어느 정도 예상은 했지만, 인터넷신문사의 원고료는 정말 많지 않긴 했다. 원고료가 입금되기 전에 아내와 외식을 했고, 한 달 후 입금액을 확인했다. 아내와 나는 서로의 얼굴을 보며 허탈하게 웃을 수밖에 없었다.

처음 입금된 원고료는 그날 우리 둘이 쓴 외식비보다 2만 원이 부족했다. 그래도 우리는 너무나 행복했다. 익명의 후원자로부터 1000원을 받던 내가 언론사에서 원고료를 받게 되었으니 어찌 기쁘지 아니하겠는가?

사람을 가르치려면 채찍이 필요하다고 말하는 사람들이 있다. 나는 그 말에 심한 거부감을 느낀다. 사람은 모두 다르다. 누가 누구를 가르친단 말인가. 자기 자신은 이미 완벽한 인간이 됐다는 말인가?

나 같은 경우에는 익명의 사람들이 준 당근(댓글)이 몰랐던 재능을 일깨워 주었다. 채찍 대신 계속 공급되는 당근 덕분에 미미한 재능이 폭발하게 되었다. '칭찬은 고래도 춤추게 한다'는 말이 괜히 나온 게 아닐 것이다.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더 많은 칭찬과 격려가 필요한 시대임을 잊지 말자.
 
단언컨대 책을 읽지 않고 좋은 글을 쓸 수는 없다.
 단언컨대 책을 읽지 않고 좋은 글을 쓸 수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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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련의 사건들로 인해 나는 더 나은 글을 쓰고 싶은 욕심이 생기기 시작했다. 꾸준히 글을 쓰다 보니 불과 6개월 전보다 훨씬 좋아지긴 했다. 나의 롤모델 중 한 분인 유시민 작가가 글쓰기를 위한 책으로 박경리 작가의 <토지>를 추천한 기사를 보았다. 한 달에 10권 정도의 책을 읽고 있지만, 어느 순간 소설은 멀리하고 있었다.

<토지>는 놀라운 소설이었다. 시대를 관통하는 해박한 지식을 기본으로 서스펜스와 로맨스, 성장 스토리가 아름답게 조화를 이루는, 그야말로 종합선물세트 같은 책이다. <토지>와 함께한 몇 개월은 독서의 즐거움을 배가시켜 주었다. 소설을 다시 읽기 시작했다.

독서 인구가 줄어드는 작금의 현실이 안타깝기도 하지만 한편으로는 다행스러운 생각이 든다. 책을 통해서 얻게 되는 어마어마한 혜택을 나를 비롯한 소수의 사람들만이 독점할 수 있기 때문이다. 단언컨대 책을 읽지 않고 좋은 글을 쓸 수는 없다.

독서로 인해 얻게 되는 좋은 점들은 비밀로 간직하겠다. 재벌들이 부를 독점하듯이 말이다. 그리고 주위에서 아무리 독서의 중요성을 이야기해 봐야 이미 성인이 된 사람이 누군가의 말을 듣고 스마트폰 대신에 책을 들게 되는 경우는 제로에 가깝다고 본다. 신의 계시와 축복을 받아 스스로 책에 빠져들게 되는 행운을 좀 더 많은 사람이 누렸으면 하는 마음도 조금은 있긴 하다.

공황장애나 대인기피증 초기 증세는 언제 그랬냐는 듯이 사라졌다. 그동안 만나지 못했던 사람들과 다시 웃으며 만날 수 있게 되었다.

딴짓의 끝판왕이 되어 보자

내 인생의 분기점이 된 그 날은 부부동반 모임이 있던 평범한 금요일이었다. 나의 작은 성공(?)과 일상의 변화를 자랑하고 싶은 마음을 눈치챈 아내가 대신 나서 주었다. 사실 그녀도 나만큼 신이 나 있었고 일상의 작은 변화를 신기해 하는 중이었다. 누군가에게는 쓸데없는 시간 투자이고, 의미 없는 딴짓으로 보일 거라는 생각은 미처 하지 못했었다.

"우리 남편 진짜 대단하지 않니? 직장 다니면서 글을 쓴다는 것도 대단한데, 이제 원고료도 받는다니까! 내가 계산을 해 보니까 원고료를 3천 년 정도 모으면 서울에 집 한 채 사겠더라."

아내는 실없는 농담까지 해가며 사람들에게 이야기를 전했고, 나는 그녀를 사랑스러운 눈길로 바라보고 있었다. 그때 한 부인에게서 전혀 예상치 못한 말을 들었다.

"지금 이러고 있을 때가 아닌 거 같은데? 형부 진짜 회사 잘릴 뻔 한 지가 몇 개월 지났다고 이러는 거야? 언니라도 정신 차려요. 지금은 회사에서 살아남기 위해 발버둥을 쳐야지 글이나 쓰면서 딴짓할 때가 아니에요!

설마 작가라도 되려는 건 아니죠? 진짜 기적처럼 작가라도 된다고 칩시다. 요즘 작가들 굶어 죽기 딱 좋다는데... 내가 진짜 언니 생각해서 해주는 말이니까 기분 나쁘게 듣지 말아요. 형부도 나이가 몇 살인데 딴짓을 하고 있나 몰라. 우리 남편처럼 중국어공부 하거나 아니면 공인중개사 공부를 해야지."


아내보다 내 얼굴이 태양처럼 붉게 타올랐다.

애초에 나는 작가를 꿈꾸며 글을 쓰기 시작한 게 아니었다. 그럴 역량도 없다고 생각했고, 별나라 이야기처럼 나와 상관없는 일이라고 여겼다. 작가라는 꿈이 없어도 글쓰기를 통해 사회와 회사로부터 받은 깊은 상처를 치유할 수 있었다.

심지어 삶의 의미를 다시 생각하는 계기가 되었다. 어쩌면 글쓰기를 통해 43살이 되어서야 스스로 생각하고 행동하는 인간이 된 것 같았다. 그걸로도 충분한 보상을 받았다고 생각했다.
  
<딴짓> 매거진
 <딴짓> 매거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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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으로 돌아와 글쓰기를 결심하던 날처럼 방으로 들어갔다. 불을 켜니 친구가 준 빨간 표지의 <딴짓>이라는 독립잡지가 눈에 들어왔다. 

'그래. 작가 아무나 되는 거 아니지. 그런데 말이야. 우리 인생에 딴짓도 가끔 필요하더라. 아니 어쩌면 딴짓이 진짜 행복을 우리에게 줄지도 몰라. 내가 딴짓의 끝판왕이 한 번 돼 보려 해. 내 책이 나오는 날 우리 꼭 다시 만나자.'

이날 이후 나의 도전을 알게 된 일부 지인들의 무시와 충고는 잊을 만하면 잡초처럼 솟아났다. 참 아이러니하지 않은가. 극소수의 지인들이 자신들의 잣대로 나의 딴짓을 막아설 때마다 나의 등을 두드려 주고 힘을 준 건 익명의 사람들이었다.

긍정적인 면만 생각하기로 했다. 세상은 아직도 살만하며 우리가 생각하는 것 이상으로 사랑이 넘친다. 그 덕에 세상을 향해 태어나서 처음으로 제대로 딴짓을 해 보기로 했다. 비관주의자는 분석에 뛰어나지만, 결국 문제를 해결하는 건 낙관주의자들이다.

이 말에 용기를 얻고 나는 무모하지만 작가에 도전해 보기로 했다.

태그:#퇴사프로젝트, #낙관주의자, #비관주의자, #오마이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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