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다시 태어나도 우리>의 문창용 감독(좌)과 <직지코드>의 우광훈 감독.

영화 <다시 태어나도 우리>의 문창용 감독(좌)과 <직지코드>의 우광훈 감독. ⓒ 국제무형유산영상축제 제공


직지심체요절의 존재 가치는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금속활자본'이라는 것 뿐일까. 인도 최북단의 라다크라는 척박한 땅에서 사는 소수의 사람들이 우리에게 왜 종종 큰 깨달음을 던지는 것일까. 다큐멘터리 영화 <직지코드>와 <다시 태어나도 우리>는 바로 그런 질문을 안고 우리가 평소 가지고 있던 관념에서 몇 걸음 더 나아간 작품이다. 지난해 개봉 이후 두 영화는 국내 영화제 및 세계 주요 영화제에서 주목받았다.

마침 오는 9월 6일부터 열리는 '제5회 국제무형유산영상축제(아래 무형유산영상축제)'에서 두 작품을 다시 볼 수 있는 자리가 마련됐다. '아리랑 마스터즈' 부문에 초청돼 전주 주요 극장에서 상영되는 것. 감독과 관객과의 만나는 행사 또한 마련됐다. 영화제 측을 통해 <직지코드>의 우광훈 감독과 <다시 태어나도 우리>의 문창용 감독을 만날 수 있었다.  

두 감독 모두 차기작 작업에 한창이었다. 그럼에도 관객이 있는 자리엔 기꺼이 달려간다는 입장이었다. 세계기록유산인 직지심체요절에 담긴 또 다른 의미, 그리고 라다크 사람들의 독송의식의 의미를 주최 측이 재발견 한 셈.

"직지는 유형의 산물이지만 동시에 정신적인 부분이 있다. 영회제에서 정신적인 가치를 발견해주신 것 같다. 직지라는 게 어떤 이해관계를 따지지 않고 직접 알다라는 것이잖나. 계산에서 온 게 아닌 바로 확 오는 깨달음의 순간이 직지의 철학이다. 그런데 우린 대부분 가장 오래된 금속활자본이라는 기술사적 내용으로만 알고 있다. 물론 누가 먼저 했는지도 중요하지만, 갈수록 국가와 사회의 경계가 희미해지고 있는 요즘 정신적인 걸 잘 보존하지 않으면 근본을 찾기 힘들어질 것이다. 다큐를 하는 우리 역시 무형의 것을 기록하는 사람이다. 이 영화제를 통해 그런 시도를 용기를 갖고 할 수 있는 것 같다. 소중한 행사라고 생각한다." (우광훈 감독)

"유산이라는 키워드에 관심이 많았다. 준비하고 있는 다음 작품도 유산에 대한 것이다. 영화제 이름에 유산이라는 단어가 들어가 흥미로웠다. <다시 태어나도 우리>를 만들 때는 그 단어를 생각해보진 않았는데 편집하면서 알게됐다. 사랑이든 신뢰든 알게모르게 긍정적인 걸 전달하는 자체가 유산이지 않을까. 나무의 나이테가 태양이 있는 방향을 기준으로 모양이 바뀌는 것처럼 말이다. 우리가 흔히 구세대의 것을 쓸모없고 방해되는 걸로 치부하곤 했는데 그러면서 정작 원형에 대한 부분을 놓치는 것 같다." (문창용 감독)


영화와 유산의 재발견

 영화 <직지코드>의 한 장면.

영화 <직지코드>의 한 장면. ⓒ 아우라픽쳐스


 영화 <다시 태어나도 우리>의 우르갼과 앙뚜.

영화 <다시 태어나도 우리>의 우르갼과 앙뚜. ⓒ (주)엣나인필름


프랑스와 바티칸 등 유럽 5개국을 돌며 직지의 비밀을 쫓고, 나아가 고려 왕과 교황이 주고받은 편지까지 발견하는 등 다큐 <직지코드>의 성과는 컸다. 촬영 중에 필름 대부분을 잃어버리는 사고도 당했지만 심기일전 해 지금의 작품을 완성시켰다. 당시 다 담지 못한 이야기와 추가로 발견된 사실은 이후 <직지코드2>를 통해 공개될 예정이다.

"<직지코드> 이전에 불교, 기독교에 대한 극영화를 하고 싶었다. 그런 배경 지식이 있다 보니 제작사에서 제게 제안을 했던 것 같다. 진짜 처음부터 다 부딪혀가며 찍었는데 교황이 고려왕에게 쓴 편지를 바티칸에서 직접 찍을 땐 손이 떨릴 정도였다. 이 다큐를 찍으며 제가 많이 변한 것 같다. 서로의 입장이나 문화를 이해하기 전에 결코 선입견을 가져서는 안된다는 생각이 들었다.

굉장히 권위적이고 딱딱할 것 같았던 유럽 학자들이 토론에 그렇게 열려 있더라. 영화에 담기 위해 춤을 추는 것을 요청했을 때도 흔쾌히 응해주셨다. 구텐베르크가 정말 금속활자로 책을 찍어낸 사람이 맞냐는 이런 멍청한 질문에도 따듯하게 답하더라. 그들과 밥도 먹으며 열린 마음으로 토론하는 게 좋았다. 피 터지는 토론이 아닌." (우광훈 감독)


티베트의 고승이 환생한 존재라 믿는 린포체, 그 중 9살 어린 린포체 앙뚜의 이야기를 그린 <다시 태어나도 우리>는 그런 신비스럽지만 한편으로 철 없어 보이는 아이와 그 곁을 지키며 모든 것에 헌신하는 의사 우르갼과의 관계에 집중했다. 조직 내 서열 구조가 만연한 현대사회에서 앙뚜와 초로의 의사의 이야기는 지난해 관객들에게 감동을 주기 충분했다.

"린포체는 라다크 말로 고귀한 존재를 뜻한다. 환생한 아이를 신처럼 떠받드는데 21세기에 미신같은 이야기라 할 수 있지만 그 지역에선 1400년간 내려온 문화다. 경제적으로 우리나라보다 못하다고 하지만 마음 속에 위안받을 존재가 있기에 우리보다 행복한 미소를 지을 수 있는 곳이다. 린포체를 소재로 삼고 있지만 영화는 스승 우르갼과 제자의 소명의식과 그들이 관계를 맺는 방식에 집중했다. 그 관계라는 건 국가나 지역에 상관 없는 정서적 배경이다. 이 모든 걸 무형의 문화로 본다면 유산에 포함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문창용 감독)

올해 초 문 감독은 라다크를 다시 찾았다. 린포체 수업을 위해 오래 함께 지낸 스승을 떠나야 했던 린포체 그 이후의 삶을 만날 수 있었다. "다시 만나서 영화를 찍을 때는 하지 못했던 많은 이야기들을 할 수 있었다"며 "촬영을 참 싫어했던 앙뚜가 다음에 또 촬영하자고 제안하더라. 그래서 20세가 될 때 다시 오겠다고 약속했다"고 문 감독은 당시 소회를 전했다.

 영화 <다시 태어나도 우리>의 문창용 감독(좌)과 <직지코드>의 우광훈 감독.

"다큐를 하는 우리 역시 무형의 것을 기록하는 사람이다. 이 영화제를 통해 그런 시도를 용기를 갖고 할 수 있는 것 같다. 소중한 행사라고 생각한다.” ⓒ 국제무형유산영상축제 제공


진정한 문화 유산을 꿈꾸며

유형의 것이 아닌 무형의 유산에 대한 질문에 우광훈 감독은 이탈리아 로마에서 촬영본 대부분을 도단당했던 당시 일화를 전했다. 제작자였던 정지영 감독은 화내는 기색 없이 재촬영을 지시했다지만 감독과 현지 스태프 입장에선 절망에 빠지기 충분했던 사건이었다. 하지만 우 감독은 "(극영화를 위해) 철학과 종교를 연구했던 게 다행이다 싶었다"며 "그런 상황을 극복하기 위한 주문이 있는데 그런 위기가 다큐멘터리에 큰 도움이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말했다.

"카메라 한 대 빼고 다 도난당했을 때 마음에선 이 순간을 기록해야 한다는 생각 뿐이었다. 제가 뭔가를 알고, 지배할 수 있어서가 아니라 그 상황을 함께 경험한다는 생각으로 기록했다. 일단 용감하게 상황에 빠져들어 카메라를 드는 자세가 중요한 것 같다. <직지코드2>를 위해 다시 유럽에 가야하는데 책이라는 것 자체가 유형의 것보다는 속 내용이 중요하잖나.

교황청에서 한자로 된 많은 책을 보여준 바 있다. 거기에 많은 키워드들이 있을 것이다. 고려 때 유럽과 얼마나 교류했는지도 알 수 있을 것이다. 우리 역사에서 고려의 자유롭던 분위기를 말살해야 했던 분위기가 있었잖나. 그런 이유로 얼마나 많은 진실이 숨겨졌고, 차단돼 왔는지를 밝힐 수 있을 것이다. 2편에선 학계와 종교계 분열이 얼마나 우리가 진실을 찾는 것을 반대하는지 다룰 예정이다." (우광훈 감독)


이 지점에서 문창용 감독이 말을 보탰다. "언젠가부터 지식인들이 세상을 망치는 면이 있다고 생각한다"며 그는 "전문가든 학자든 자기 생각과 다른 사실이 나오면 인정하거나 토론하려 하지 않는 것 같다"라고 말을 이었다.

"인정하면 자기 학설이 깨지니까. 사실 문화재라는 단어도 거리가 먼 것처럼 느껴진다. 정부든 관련 기관이 간판을 달아줘야 문화재라고 하잖나. 그게 좀 싫었다. 얼마 전에 방송 다큐를 위해 강원도 삼척 산간에 혼자 사시는 할아버지를 촬영하고 왔다. 물도 전기도 없는 곳에서 그 분은 90이 돼가도록 사셨다. 왜 여기서 나가지 않고 사실까 그게 가장 궁금했다. 자식들도 내려갔고, 부인도 돌아가셨는데 말이다.

처음엔 돈이 없어서 못내려간다 하시더라. 같은 질문을 몇 번 반복해서 물었다. 중간에 화도 내시긴 했지만 그 분도 속으로 갈등하고 계시는 거였다. (험한 곳이지만) 봄이 오면 꽃도 피고 괜찮은 곳이라고 하시더라. 이 분의 아버지가 화전으로 일군 터전에서 그대로 소처럼 일하면서 살았다. 이 분의 삶의 정신은 곧 잊히겠지. 그 전에 담아야겠다는 생각이었다. 그러니까 누군가 인정해주지 않았고, 아무도 들여다보지 않았지만 사람과 사람 사이에 남겨져야 할 이야기가 일종의 문화재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한 세대가 고민한 지점이 그 삶에 농축돼 있을 것이다. 이런 건 AI도 흉내낼 수 없지 않을까(웃음)." (문창용 감독)

"유네스코의 존재를 굉장히 좋게 생각하지만 이런 느낌도 있다. 어떤 기관이 인정해줘야만 유산이 되는 것, 그런 풍토는 지양해야 하지 않을까 싶다. 언제였던가 한삼모시 만드는 할머니를 취재하러 갔는데 유네스코 등재된 걸 축하드린다 하니 화를 내시더라. 지역 사회에선 축제라는데 왜 그 문화의 당사자들은 힘들어할까. 정말로 소중한 건 할머님들 자체 아닌가. 주체들에 대한 보상이 없는 상태에서 진정한 문화유산 등재라고 할 수 있는지 의문이 들었다. 주체가 행복해야 진짜이지 않을까." (우광훈 감독)


축제는 준비 완료

두 감독은 다시금 관객들을 만날 수 있다는 사실에 다소 고무돼 있었다. 우광훈 감독은 "관객과의 대화 시간이 있으니 많이 오셔서 많이 질문해주셨으면 좋겠다"고 바람을 드러냈다. 문창용 감독 역시 "관객 분들을 보는 것만으로도 새로운 힘이 생긴다"며 "이번에도 그런 힘을 주실 것이라 믿는다"고 기대감을 표했다.

국제무형유산영상축제 하시내 프로그래머는 "단순히 소재로 문화유산을 접근한 게 아닌 꿈과 희망으로 나아가는 시도 자체가 문화유산이 될 수 있다는 생각"이라며 "이번 영화제엔 각 작품별로 설명이 들어가는 등 보다 관객들에게 친근하게 접근하려 한만큼 쉽게 즐기실 수 있을 것"이라 밝혔다.

직지코드 다시 태어나도 우리 국제무형유산축제 무형문화재 유네스코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오메가3같은 글을 쓰고 싶다. 될까? 결국 세상을 바꾸는 건 보통의 사람들.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