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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도 불법주차 사건
8월 30일 오전 인천시 연수구 모 아파트단지 정문 인도에 나흘째 방치된 캠리 승용차 옆에 가수 설현의 사진이 인쇄된 입간판이 세워져 있다. 한 입주민이 설치한 것으로 추정되는 이 입간판에는 주민 의사를 묻는 설문글이 적혀있다. 한편 이 승용차의 차주인 50대 여성은 자신의 차량에 아파트단지 불법주차 스티커가 부착된 것에 화가 나 지난 27일 이 아파트단지 지하주차장 진입로를 차량으로 막아 물의를 빚었다.
▲ 주차장 막은 승용차 옆에 세워진 설현 입간판 8월 30일 오전 인천시 연수구 모 아파트단지 정문 인도에 나흘째 방치된 캠리 승용차 옆에 가수 설현의 사진이 인쇄된 입간판이 세워져 있다. 한 입주민이 설치한 것으로 추정되는 이 입간판에는 주민 의사를 묻는 설문글이 적혀있다. 한편 이 승용차의 차주인 50대 여성은 자신의 차량에 아파트단지 불법주차 스티커가 부착된 것에 화가 나 지난 27일 이 아파트단지 지하주차장 진입로를 차량으로 막아 물의를 빚었다.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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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 동안 사회를 시끄럽게 만들었던 소위 인천 송도 불법주차 사건이 끝났다.

지난 8월 27일 인천 송도의 한 아파트단지에서 50대 차주가 아파트에서 사용하는 홀로그램 스티커를 부착하지 않아 자신의 차량에 주차단속 스티커가 부착되자, 이에 앙심을 품고 차량을 이용해 아파트 지하주차장 진입로를 막아 물의를 빚었다.

6시간가량 참다 못한 주민들은 승용차를 직접 옮긴 뒤 차주에게 사과를 요구했지만, 차주는 묵묵부답이었다. 이 사건이 언론에 보도되는 등 심각하게 돌아가자 나흘 뒤 차주는 결국 사과를 전하는 한편 차를 이동시켰다.

8월 30일 오후 아파트 입주민 대표단은 차주가 쓴 '수기 사과문'을 대신 읽는 기자회견을 진행했다. 차주는 글에서 "지하 주차장을 막아서 입주자들의 분노를 산 것, 그리고 그 분노를 무시한 것, 죄송하다. 통행 불편도 사과드린다"고 이야기했다.

덧붙여 그는 "얼굴을 들 자신이 없어 사과문으로 대신 사과드린다. 차를 매각하고 이곳을 떠날 것"이라고도 밝혔다. 비록 사과는 했지만 결국 회피로 사건이 마무리된 것이다.

얼핏 보면 유별난 시민의 특이한 에피소드 하나쯤 되는 것 같지만, 이 사건은 동시대를 살아가고 있는 사람으로서 씁쓸하기만 하다. 같은 아파트에 살면서 이웃들의 편의는 전혀 돌보지 않는 사람과, 같은 공간에 살면서도 차주를 몰라 포스트잇을 덕지덕지 붙이는 사람들. 과연 우리는 자유로울 수 있을까?

물론 모든 잘못은 50대 차주에게 있지만, 이웃 중 한 명이라도 그 차주에게 찾아가 살가운 말 한 마디 건넸다면 사건이 이렇게 커지고, 급기야 그 차주가 아파트를 떠나게 되었을까 싶다. 결국 이번 사건은 이웃 없이 사는 이 시대의 문제이고, 그와 같은 현실을 아무렇지도 않게 받아들이는 우리 모두의 화두이기도 하다.

자, 그럼 우리가 사는 아파트는 이렇게 삭막하기만 할까? 아니다. 꼭 그렇지만은 않다. 사람 냄새 나는 아파트도 있으니, 이야기 두레가 펴낸 '우리 아파트에는 이야기가 산다'에는 따뜻한 이웃들의 이야기가 펼쳐진다.

아파트에서 마을공동체를 찾아라

우리 아파트에는 이야기가 산다
 우리 아파트에는 이야기가 산다
ⓒ 이야기두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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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는 서울시 16개 아파트에 있는 마을공동체의 이야기를 담는다. 그 공동체들은 서울시가 인위적으로 만들어내는 공모사업의 결과가 아니라 실제로 주민들이 서로를 갈구하여 찾은 이웃 공동체이다.

믿고 사는 이웃 간에 돈이 필요해서, 알코올 중독 치료 후 소일거리를 찾아서, 홀로된 노인을 찾아가 말벗이 되기 위해 같이 힘을 모으는 사람들. 그들에게 이웃은 당장의 삶을 위해 꼭 필요한 존재이다.
이걸 시작한 배경이 급전이었어요, 급전. 예를 들어 당장 충치 치료를 해야 하는데 한 이십만 원 든다고 하면, 돈 없어서 참는 거예요. 갑자기 애가 학원을 가고 싶대. 근데 아버지가 돈이 십만 원 정도 모자라요. 애가 중학교 입학을 해서 교복을 사줘야 하는데 교복 값 되게 비싸죠. 그런 돈. 한 이삼십만 원 돈. 옆집에 빌리기에는 또 자존심 상하는 돈. 우리가 저축한 돈으로 이웃에게 싼 이자로 빌려주면 되잖아요. 그래서 모인 거예요 - 39p

특히 저자는 아이들에게 주목한다. 다양한 삶을 영위하는 아파트 주민들이지만 아이들을 키우는 것은 모두에게 공통된 사항이기에, 많은 공동체들이 아이들을 구심점으로 만들어지기 때문이다.
저도 애가 커가면서 3년째 천초아(천왕마을 천왕초아버지회)에 참여하고 있는데요, 3년째 하면서 점점 아는 분들이 늘어나니까 동네와도 되게 편해진 것 같아요. 동네 주민들끼리 서로 아는 척 안 하고 사는 것보다 서로 알고, 서로 궁금해 하고, 안부도 묻고, 그런 것들이 함께 살아간다는 느낌을 줘서 마음이 편해요. - 99p

다른 아파트 공동체들에서 발견한 공통점을 천초아에서도 찾았다. 바로 마을과의 연결 고리다. 이들은 처음에는 개인적인 목적으로 모임을 시작했지만 나중에는 자연스럽게 마을 주민들과 교류하는 방식으로 활동 범위를 확대했다. 천초아 회원들의 말처럼 그들만의 리그가 되지 않기 위한 노력이었다. - 101p

저희는 처음부터 육아만을 목적으로 시작한 건 아니었어요. 아이들도 동네에서 여러 사람들과 어울려 자라야 한다는 생각으로 모였어요.....마을에는 우리 아이들만 있는 게 아니고, 노인회도 있고, 엄마들의 다양한 활동들도 있고요, 유아들만 있는 게 아니고 초등, 청소년 아이들까지 다양한 연령대의 아이들이 어울려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형태는 아파트이지만 어쨌든 마을이고, 마을은 함께 사는 거잖아요. -107p

아이들을 위해 도서관을 만들고, 아이들을 위해 캠프를 여는 사람들. 주민들은 이를 통해 서로 사귀고 마을과 연결된다. 그것은 결국 공동육아, 마을육아의 또 다른 형태이며, 아파트라는 공간에서 우리가 만들어 낼 수 있는 최선의 미래이기도 하다.

아파트에서 꿈을 꾸는 조건

송파구 일대 아파트.
 송파구 일대 아파트.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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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 우리 사회는 흔히 아파트 공화국이라고들 부른다. 회색빛 도시에 회색빛 아파트. 그리고 그 속에 살고 있는 무심한 표정의 도시인. 그 모습에서 사람 냄새를 맡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그러나 마냥 좌절할 일만은 아니다. 책에서도 볼 수 있듯이 아파트는 다양한 사람들이 만날 수 있는 공간이고, 그 공간은 우리의 의지에 따라 충분히 열릴 수 있기 때문이다. 한때 이사 온 아이가 엘리베이터에 포스트잇을 붙인 뒤 이웃들끼리 인사를 나눠 화제가 되고, 아파트 주민들이 중지를 모아 경비원들을 보호한 것처럼 아파트는 우리의 의지에 따라 언제든지 변할 수 있는 공간이다.
이 동네는 이웃 주민이 아니라 식구같이 살아. 뭐가 있으면 자꾸 누구 불러. 그 사람이 오면 또 아무개도 불러야지 그러면서 다 부르는 거야. 그렇게 사는 거야. 그러니까 우리는 가족이야. 살기가 너무 좋아요. 여기는 아파트가 아니야. 시골 동네야.......저 집에 숟가락이 몇 개 그릇이 몇 개 다 알아. 그래서 재밌어. 사람들이 전부 친형제 자매같이 사니까. - 289p

그러나 이와 같은 아파트에서 공동체는 쉽게 생기지 않는다. 물론 정부와 지자체들은 현재 위와 같은 공동체를 만들기 위해 많은 예산을 들여 수많은 사업을 펼치고 있지만, 좋은 성과를 얻기는 결코 쉽지 않다. 대도시, 특히 서울시의 정주율이 워낙 낮기 때문이다.

전셋값에 따라서 2년마다 여기저기 옮겨 다니는 사람들. 현재 우리들에게 이웃이 없는 것은 사람들이 삭막해서가 아니라 한 곳에 오래 살 수 있는 구조가 안 갖춰져 있기 때문이다. 이 책에 나온 아파트들 대부분이 장기임대 주택을 많이 포함하고 있는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다.
천초아는 천왕초등학교가 있는 구로구 천왕마을 아버지들이 주축으로 모인다. 천왕단지는 장기 거주자가 많은 아파트다. 그래서인지 이곳에 정착해 뿌리 내린 사람들은 다양한 주민 모임을 조직했다. -86p

사람들이 한 곳에 오래 살고 같은 이웃을 계속 만나다 보면 정이 들 수밖에 없다. 부디 아파트에서도 공동체가 꽃 필 수 있도록 정부와 지자체들은 주거에 대한 정책을 더 고민해주길 바란다. 우리 사회가 다시 '응답하라 1988'의 시대로 돌아가 이웃끼리 정을 나눌 수 있다면 이번 인천 송도 아파트의 불법주차사건 같은 건도 없어질 것이다.


우리 아파트에는 이야기가 산다 - 아파트 천만 호 시대, 따뜻하고 정겨운 마을공동체를 찾아서

이야기두레 지음, 행복한아침독서(2017)


태그:#아파트, #공동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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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와 사회학, 북한학을 전공한 사회학도입니다. 물류와 사회적경제 분야에서 일을 했었고, 2022년 강동구의회 의원이 되었습니다. 일상의 정치, 정치의 일상화를 꿈꾸는 17년차 오마이뉴스 시민기자로서, 더 나은 사회를 위하여 제가 선 자리에서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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