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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유화된 현대 도시를 칼 마르크스의 자본주의 관점에서 조명한 데이비드 하비는 자본이 더 이상 자본을 증식할 곳이 없자 마지막으로 발길을 뻗은 곳이 공간이라고 말한다.

도시화의 물결은 전 세계를 빠른 속도로 잠식하고 있고 지구의 땅과 강과 산은 심한 몸살을 앓으며 죽어가고 있다. 무작정 난개발을 거듭하며 환경, 공동체 삶, 사회 문화적 삶의 공간에 균열을 일으키는 것이다. 이제 누구나 자신도 알지 못하는 사이에 도시의 한 공간에 얽매여 자본가의 배를 불리는 도구가 되어가고 있다.

도시에 깃들어 살려는 사람들은 도시의 한 공간을 빌려 쓰기 위해 평생 임대료를 물어가며 노예와 같은 생활을 이어가야만 한다.

도시는 인간의 얼굴과 괴물의 두 얼굴을 지닌 야누스와 같다는 생각을 한다. 하나의 건물이 지어질 때마다 그 곳에 살던 사람들은 도시 외곽으로 밀려나야 한다. 평균 2년에 한 번 꼴로 이삿짐을 싸야하는 도시 유랑민의 삶은 자본과 건물을 지니지 못한 서민들에겐 일상적인 모습이 되었다.

자신과 가족이 깃들어 살 만큼의 공간에 소박하게 움집을 짓고 살던 이들은 이제 부와 권력을 무기 삼아 더 크고 더 높은 건물을 짓고 부수는 일을 통해 자본가의 배를 불리는 도구로 전락했다.

인간종이 지나간 곳마다 자연과 살아 숨 쉬는 모든 것이 초토화되었다는 유발 하라리의 말이 생각난다. 실제로 인간이 지은 고층 빌딩과 아파트가 빽빽하게 들어선 곳에서는 자연의 흐름이 멈춰진 것을 알 수 있다. 인공적으로 조절되는 추위와 더위, 인공적으로 관리하는 모든 것이 자본과 연결이 되어 있다.

만일 자연을 거스르지 않고 자연에 소박하게 깃들어 사는 형태를 취했다면 어땠을까. 아마도 지금보다 훨씬 자연재해가 줄어들었을 것이고 자연의 복원력을 통해 더 빠르게 원래의 모습을 되찾았을 것이다. 인류의 지속가능한 삶을 위해서라도 도시 건설과 개발이 어떤 방식으로 이뤄져야 할지 모두가 고민해야 할 시점에 이른 것이다. 생명이라곤 깃들어 살지 않는 삭막한 괴물도시를 상상해보라 등골이 서늘해지지 않는가?

도시계획가에 대한 질문

도시계획가로서  '정체'성과 '자화상' 사이에소 고민하는 도시계획가이자 교수의저서
▲ 도시계획가란? 도시계획가로서 '정체'성과 '자화상' 사이에소 고민하는 도시계획가이자 교수의저서
ⓒ 도서출판 말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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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계획가란?>(도서출판 말글)은 독일 도르트문트 대학에서 도시 계획을 전공하고 전북대학교 도시공학과 교수로 재직중인 황지욱 교수의 저작이다. 철학적 바탕 위에 도시 계획을 전공해서인지 목적과 수단이 뒤바뀐 도시 건축의 현실을 정확하게 꿰뚫어 보고 대안을 제시하고 있다.

책은 다섯 개의 장으로 구성된다. 저자는 도시계획가란 누구인지, 도시 계획이 실현하고자 하는 것은 무엇인지, 도시계획가는 어떻게 행위해야 하는지, 도시계획위원회는 무엇을 하는지, 도시계획가와 학자로서 자신의 자아와 정체성에 대한 성찰로 마무리를 하고 있다.

도시계획가는 오케스트라의 지휘자나 운동 경기의 감독처럼 건축, 조경, 사회적 환경 등 복합적인 것을 포괄해 균형과 조화와 가치를 창출해내는 사람이라고 볼 수 있다. 도시계획가가 어떤 철학적 바탕과 가치관을 지니고 있느냐가 중요한 이유다.

만일 도시계획가가 맘몬인 자본의 충실한 조력자라면 도시는 자본가를 위한 난개발의 장소로 전락하게 될 것이다. 도시계획가가 지속가능한 인류의 삶과 질을 고민하는 사람이라면 자연친화적이며 순환 가능하고 자본에 휘둘리지 않는 도시를 만들기 위해 마음을 다할 것이다. 의견을 충분히 수렴하고 지역의 특성을 살피고 행정가를 설득해 자본가의 배를 채워주는 것이 아니라 공적 가치와 공존의 가치를 창출해 내는 도시를 계획하게 될 테니 말이다.
도시계획가는 '사람'을 중심으로 공간에서 발생하는 문제를 진단하고 풀어가는 역할을 하게 된다. 이 때문에 마치 의사가 환자를 대하듯이, 그리고 건강을 되찾아 주기 위해 노력해야 하듯이, 도시계획가도 도시에서 발생하는 다양한 병리적 현상을 진단하여 도시가 건강하게 유지되도록 처방하여야 하며, 도시 공간 속에 살고 있는 어느 누구도 소외됨 없이 건강하고 행복한 삶을 살아갈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한다.-34쪽

재개발이나 신도시 개발에 앞서 도시 계획가들과 행정가. 그 개발지 사람들과 충분한 의견수렴 과정을 거쳤더라면 용산참사처럼 여기저기서 무작정 거리로 내몰리고 죽고 다치는 비극이 되풀이되지 않았을 것이다.

도시 개발은 자본가의 주머니를 두둑하게 만들어 주는 화수분이 아니라 온갖 생명이 깃들어 사는 자연의 일부로 다양한 계층이 함께 어우러져 살아가는 장소로 계획되어야 한다. 저자에 따르면 우리는 도시계획가에 대해 아래와 같은 의문을 가져야 한다.
1. 잘못된 개발이었다고 평가받는 계획을 수립한 도시계획가가 이를 뒤엎는 새로운 개발계획의 수립을 위한 전문가로 다시 등장하고 있지는 않은가?
2. A 분야의 처방을 내놓은 도시계획가가 B분야, C 분야의 처방가로도 나서고 있지는 않은가?
3. 일부 경험 많은 계획가가 만병통치약을 제공하는 만능전문가로 대우받고 있지는 않은가?-35쪽

자연의 가치가 살아있는 도시계획

저자는 여느 사람과 다르게 '사람'을 염두에 두고 도시를 고민하고 개발을 고민한다. 저자가 전문성만이 아니라 현장성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저자와 같은 의식을 지닌 도시계획가가 행정력을 동원할 수 있는 이들과 충분한 의견 수렴을 거쳐, 현장성을 바탕으로 적절한 대안을 내놓는다면 원주민을 내치는 무분별한 젠트리피케이션 개발이 줄어들 것이고 거리에서 비탄의 눈물을 흘리는 억울한 이들이 줄어들 것이다.

도시계획가는 현장을 누벼야 할 것이다. 단순히 날씨 좋은 날, 차를 타고 설렁설렁 구경하듯 다니는 것이 아니라, 다른 사람이 잠든 새벽에 그리고 깊은 밤에, 날씨가 좋은 봄이나 가을이 아닌, 한여름의 뙤약볕 아래, 그리고 매서운 추운 겨울, 진눈깨비를 맞아가며 현장을 누벼야 한다. 그러면 더 극심한 상황에서 도시계획의 오류가 눈에 띌 것이고 그런 도시에서 고통받는 사람들이 보일 것이고 도시를 어떻게 바라보아야 할지를 폐부 깊숙이 느낄 수 있을 것이다.-75쪽

자본을 앞세운 토건 건설업자들에게 저자의 도시 계획은 너무 낭만적으로 보일지 모르겠다. 하지만 도시는 사람을 위한 공간이 아니던가. 수많은 사람을 배제시키고 소수의 안락만을 추구하는 도시 계획이나 개발은 결국 모두의 멸망을 자초하는 지름길이다.

사상누각처럼 물거품이 되어버리는 텅 빈 도시, 황폐한 도시를 원하는 것이 아니라면 자본가는 욕망의 닻줄을 끊어야 할 것이고 자본과 권력에 편승해 난개발을 부추기는 도시계획은 없어야 할 것이다.

도시계확가는 어떤 역할을 해야만 하고 어떤 정체성을 지녀야 할까. 저자는 도시계확가란? ''정체'성과 자'화상' 사이에서'라는 마무리 장에서 자신에게 영감을 준 도시계획가는 아동문학가 이원수와 꽃밭에서의 작사자 어효선이라고 밝히고 있다.

'고향의 봄'과 '꽃밭에서'의 노랫말처럼 생명이 살아 넘실거리는 도시야 말로 회색 유리, 콩크리트로 뒤덮인 죽음의 도시가 아닌 생명이 살아있고 자연의 가치가 살아있는 도시계획을 꿈꾸게 되었다고 말이다.

도시계획가가 되어 '앞으로 나는 어떤 도시를 만들어 낼 것인가?'를 고민했다. 다른 동시대의 도시계획가들과 경쟁하듯이 거창한 도시를 꿈꾸기도 하였다. 세종시를 계획할 때 참여하기도 하고 혁신도시를 계획할 때 참여하기도 하였다(중략) 자연의 가치는 심각하게 훼손되고 너무나 인공적인 것만 남은 모습 그리고 마지막에는 인간성은 상실되고 부를 향한 욕망이 뒤덮은 도시의 모습에 실망을 느꼈다. 시멘트 냄새가 짙게 흘날리는 화색도시라고나 할까? 그러다가 생명이 살아있는 도시, 자연과 공존하는 도시를 꿈꾸기 시작했다 –185쪽

저자의 바람을 지나치게 낭만적이라고 말하지 말라. 인간이 누워 자는 공간, 자연으로 돌아가 누울 공간은 그리 넓지 않다. 다만 인간이 지닌 무한한 욕망을 사슬을 끊어내지 못해 더 크고 넓고 높은 공간을 위해 수많은 생명과 자연을 짓밟고 그 위에 죽음의 시멘트를 쏟아 붓고 있을 뿐이다.

철근을 나무 대신 땅의 심장에 깊숙이 박고 바벨탑처럼 높은 욕망의 건물을 쌓아 올리는 우리는 기억해야만 한다. 바벨탑이 무너지고 인류가 사방으로 흩어진 비극을. 겸손하게 인간의 고향인 대지와 어울려 생명을 꽃피우고 교감하는 삶을 회복한다면 도시는 살아 숨 쉬고 사람들은 더 큰 집을 위해 자신의 소중한 평생을 회색도시에 저당 잡는 불행에서 해방될 것이다.

덧붙이는 글 | 도시계획가란?/ 황지욱/ 도서출판 말글/ 17,000



도시계획가란? - '정체'성과 자'화상' 사이에서

황지욱 지음, 말글(2018)


태그:#도시계획, #도시계획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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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자 잘살면 무슨 재민교’ 비정규직 없고 차별없는 세상을 꿈꾸는 장애인 노동자입니다. <인생학교> 를 통해 전환기 인생에 희망을. 꽃피우고 싶습니다. 옮긴 책<오프의 마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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