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BC 아시안게임 축구 중계진

MBC 아시안게임 축구 중계진 ⓒ MBC


김정근 MBC 아나운서는 최근 아시안게임 축구 중계 도중 적절치 못한 표현을 사용해 도마에 올랐다. 지난 23일 펼쳐진 '2018 자카르타-팔렘방 아시안게임' 남자 축구 16강전 한국-이란 경기 중계의 캐스터로 나선 김정근 아나운서는 후반 2-0으로 점수차를 벌리는 이승우의 추가골 상황을 두고 "이런 것을 주워먹었다고 해도 될까요"라고 표현했다.

'주워먹었다'는 표현은 축구에서 자주 쓰이는 은어로 보통 '운좋게 골을 넣었다'는 의미에 가깝게 쓰인다. 빗맞은 슈팅이 골로 연결된다거나, 다른 선수가 거의 완벽하게 만들어 놓은 찬스를 어쩌다가 마무리만 지었을 경우 등이 이에 해당한다.

하지만 이승우는 당시 개인능력으로 이란 수비수 2명을 완벽하게 제치고 득점에 성공했다. 함께 경기를 중계하던 안정환 해설위원은 "이건 주워 먹은 게 아니라 잘한 것"이라고 반박했다. 이에 김정근 아나운서도 "완벽하게 요리해서 2~3명을 제쳤다"고 정정하며 자신의 발언을 수습했다.

김정근 아나운서의 말실수가 알려지고 난후 많은 축구팬들은 비판적인 반응을 보였다. 김아나운서의 발언은 당시 경기 상황이나 선수의 플레이와는 전혀 맞지도 않는 언급인데다 사실상 '비하'에 가까운 표현이다. 무엇보다 사석에서나 나올 법한 은어를 전국으로 중계 중인 방송에서 캐스터가 사용했다는 자체만으로도 매우 부적절했다는 평가다.

캐스터도 사람이니 실수는 할 수 있지만...

김정근 아나운서의 중계가 논란에 휩싸인 것은 사실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김 아나운서는 2008년 베이징올림픽부터 축구를 비롯한 다양한 스포츠 중계를 경험했고 한때 프리랜서를 선언했다가 MBC에 재입사한 올해 2018 러시아월드컵부터는 서형욱-안정환 해설위원과 호흡을 맞춰 MBC 국가대표 축구중계를 전담해온 나름 베테랑 캐스터다.

하지만 KBS의 이광용, SBS 배성재 아나운서 같이 다년간 '축구 전문 캐스터'로서 확고한 이미지를 구축한 경쟁자들과 비교했을 때는 전문성이나 전달력이 떨어진다는 지적을 자주 받았다. 특히 지난 월드컵에서는 준비 부족을 여지없이 드러내며 선수 이름을 종종 틀리거나 경기 흐름을 제대로 따라잡지 못하는 모습으로 축구팬들의 혹평을 받기도 했다.

물론 캐스터도 사람이니 실수는 할 수 있다. 특히 국민적 관심도가 높은 국가대표 축구경기의 경우, 캐스터나 해설자도 중립적이고 객관적인 입장을 유지하기보다는 자연히 한국을 응원하는 관점에서 몰입하게 되다보니 감정적인 언행이 나올 수밖에 없다. 김 아나운서는 이승우의 득점 상황을 시청자들에게 생생하게 전달하고 싶은 욕심에서 무리수를 뒀고 곧바로 자신의 실수를 정정하고 사과하는 모습을 보였다.

근본적인 문제는 단지 캐스터 개인의 실수나 자질 문제를 넘어 갈수록 '가볍고 자극적인' 발언을 요구하는 최근의 방송 트렌드와 무관하지 않다. 오늘날의 스포츠 중계는 예전처럼 객관적인 정보의 전달이나 경기 분석을 넘어서, 현장감을 더 중시하고 시청자와 쌍방향으로 소통하는 일종의 '스포츠 예능화'가 되어가고 있다.

예전같으면 방송의 품위에 어긋난다는 이유로 쓸 수 없는 비속어나 은어들을 자연스럽게 구사하는가 하면, 캐스터나 해설자들이 대중의 눈길을 끌만한 '자극적인 표현'이나 '어록'에 집착하는 경우도 늘어났다. 특히 내셔널리즘이 투영되는 국가대표 축구의 경우, 조금더 감정적이거나 편파적인 언급조차도 어느 정도 묵인되는 분위기가 보니 진행자들의 언행이 더욱 거칠어지는 경우가 많다.

MBC 축구중계는 안정환을 중심으로 김성주, 송종국의 3인중계 체제를 본격적으로 도입한 지난 2014 브라질월드컵 이후 예능화가 지나치게 심해졌다는 지적을 받는다. '가랭이슛' '꽈배기킥' 등 전문적인 축구용어와 거리가 먼 속어들이 버젓이 등장하고 축구중계보다 진행자들간 끊임없는 아재개그와 만담이 더 관심을 받는 웃지못할 상황도 펼쳐진다. 서형욱과 김정근 콤비가 새롭게 투입된 2018년에도 이런 문제점은 개선되기는커녕 여전하다.

문제는 방송사들의 '시청률 경쟁'

물론 지나치게 딱딱한 해설보다는 친근함과 자유분방함이 축구중계의 장점이 될수도 있지만 일각에서는 '경박하고 산만하다', '말장난이 심하다'는 비판도 적지 않다. 안정환은 한동안 비속어와 전문성이 논란이 되자 "시청자들에게 어려운 축구용어를 알기 쉽게 전달하려는 의도도 있고, 제작진에서 자꾸 재미있게 해달라고 요구하는 경우도 있다"며 나름의 고충을 호소하기도 했다.

최용수 해설위원을 새롭게 투입한 SBS나 이영표 해설위원을 앞세운 KBS도 상황은 크게 다르지 않다. 방송사마다 시청률 경쟁을 의식하다보니 해설위원들의 유명세나 입담 대결을 자꾸 부각시키고, 자연스럽게 캐스터나 해설자들도 시청자들의 뇌리에 남을만한 '튀는 발언'을 하려는 경우가 늘고 있다. 이런 분위기에서는 김정근 아나운서같은 실수는 언제든 두 번 세 번이고 또 나올 가능성이 높다.

어느 정도 재미를 추구하는 것은 좋지만 억지스럽고 인위적인 어록이나 독설을 만들어 굳이 시선을 끌려고하는 것은 오히려 축구 그 자체에 몰입하고 싶은 팬들의 시청 편의를 해치는 독이 될 수 있다. 갈수록 가벼워지는 국가대표 축구중계의 예능화는 한 번쯤 짚고 넘어가야할 부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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