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포팅 대신 "포기하는 선수는 프로 자격 없다" 플래카드를 걸어놓은 숭의 아레나 S석

서포팅 대신 "포기하는 선수는 프로 자격 없다" 플래카드를 걸어놓은 숭의 아레나 S석 ⓒ 심재철


젊은 시절 춘천에 대한 아름다운 기억 한 페이지 정도 남아있는 사람들 많을 것이다. 그러나 인천 유나이티드 FC 선수들이나 팬들에게는 2018년 8월 19일 일요일 저녁 춘천의 기억은 다시 떠올리기 끔찍한 것으로 남았다. 비슷한 사례조차 찾기 힘들 정도로 부끄럽게 강원 FC에게 당한 0-7 참패의 기록이 바로 그것이다.

웬만해서 다시 일어나기 힘들 정도로 경기력이 형편 없었다. 간판 미드필더 고슬기, 한석종을 비롯하여 날개공격수 박종진, 새내기 센터백 김정호 등 일부 선수들이 연습장에 삭발하고 나왔지만 한 경기만에 경기력을 회복하는 것이 쉽지 않아 보였다. 이에 뿔난 인천 유나이티드 서포터즈는 아예 S석을 비우고 플래카드 2장을 걸어놓고 묵언의 시위를 펼칠 정도였다.

하지만 인천 유나이티드 FC는 22일 오후 7시 30분 숭의 아레나(인천축구전용경기장)에서 벌어진 2018 K리그 원 25라운드 전남 드래곤즈와의 홈 경기에서 2득점 1도움의 맹활약을 펼친 국가대표 문선민 덕분에 3-1로 이겨 꼴찌에서 다시 11위(승점 20점)로 한 계단 올라섰다. 이로써 10위 대구 FC(승점 23점), 12위 전남 드래곤즈(승점 19점)와 펼치는 강등 피하기 싸움이 더욱 흥미롭게 벌어진 셈이다.

"포기하는 선수는 프로 자격 없다"

인천 유나이티드는 다른 구단 선수들은 물론 서포터즈가 부러워할 정도로 함께 골 세리머니를 즐길 수 있을 정도로 그라운드-관중석 사이의 거리가 매우 가까운 멋진 경기장을 보유하고 있다. 그런데 이 경기는 인천 유나이티드의 서포터들이 S석에 모여들지 않았다.

지난 일요일 강원 FC와의 어웨이 경기에서 고개를 들지 못할 정도로 형편 없는 경기를 펼친 것에 항의하기 위해 그들은 "포기하는 선수는 프로 자격 없다"는 문구를 내걸었고, 한쪽에는 "지난 겨울 우리는 분명히 경고했다" 문구를 내걸어 강인덕 대표이사와 관련된 불협화음을 질타한 것이다.

이러한 서포터즈의 쓴소리는 경기력 면에서 곧바로 효과를 나타냈다고 할 수 있다. 그라운드 안에서 뛰는 인천 유나이티드 선수들은 어느 때보다 큰 목소리로 소통하며 서로의 역할을 일깨워주었으며 전남보다 빠른 공수 전환 조직력을 자랑한 것이다.

사흘 전 춘천에서 인천 유나이티드가 구단 역사상 가장 큰 점수 차 패배의 기록을 남길 때 전남 드래곤즈는 강팀 수원 블루윙즈를 광양으로 불러들여 믿기 힘든 6-4 승리를 거두고 꼴찌 탈출을 해냈지만 곧바로 인천 유나이티드의 간절한 프로 의식 앞에 좀처럼 힘을 쓰지 못했다.

인천 유나이티드의 안영민 그라운드 아나운서까지 흔들리는 팀을 하나로 묶는 퍼포먼스로 보는 이들에게 감동을 안겨주었다. 킥 오프 직전 선수들이 입장할 때 'ONE TEAM'이라고 적은 손팻말을 들고 선수들과 하나하나 눈을 맞춘 것.

이러한 마음들이 모이자 인천 유나이티드는 정말로 새로 태어난 듯 경기에 집중했고 시작 후 4분 만에 월드컵 국가대표 공격형 미드필더 문선민의 재치있는 선취골에 환호성을 내질렀다. 센터백 부노자가 시원한 발리 슛으로 골문을 노린 공을 전남 골키퍼 이호승이 자기 왼쪽으로 몸 날려 쳐냈고 측면에서 가운데로 달려든 문선민이 기다렸다는 듯 오른발로 가볍게 차 넣은 것이다.

 인천 유나이티드 골잡이 무고사가 전남 수비수 도나치 다리 사이로 기막힌 오른발 추가골을 터뜨리는 순간!

인천 유나이티드 골잡이 무고사가 전남 수비수 도나치 다리 사이로 기막힌 오른발 추가골을 터뜨리는 순간! ⓒ 심재철


골키퍼 정산의 롱킥, 문선민 탄력으로 받아내다

그리고 인천 유나이티드는 38분에 믿기 힘든 추가골에 또 한 번 기뻐했다. 역습 기회에서 문선민의 전진 패스를 받은 간판 골잡이 무고사가 앞을 가로막은 전남 수비수 도나치의 다리 사이를 노려 기막힌 오른발 인사이드 골을 터뜨린 것이다.

축구의 골에서 슛 타이밍이 얼마나 중요한가를 가르쳐주는 보기 드문 명장면이었다. 도나치의 다리 사이를 노린 것도 놀라웠지만 잔디 위를 미끄러지는 공의 회전 방향까지 고려하여 전남 골문 오른쪽 기둥 안쪽으로 절묘하게 휘어들어가는 공은 골키퍼 이호승도 도저히 손을 쓸 수 없는 궤적이었다.

전반전에만 2골을 터뜨렸다고 해서 승리가 보장되는 것은 아니었기에 후반전이 더욱 흥미롭게 전개됐다. 꼴찌 설움을 겪으며 유상철 감독이 물러나고 김인완 감독대행이 지휘하고 있는 전남도 그냥 물러서지 않았다. 63분에 후반전 교체 선수 허용준이 왼쪽 측면에서 오른발로 올린 크로스를 골잡이 마쎄도가 헤더로 성공시켜 그라운드를 더욱 뜨겁게 만들었다.

양팀의 진짜 실력은 후반전 중반부터 드러나게 된 셈이다. 여기서 무너지는 팀은 다음 시즌 K리그 2로 미끄러질 것을 각오해야 하는 분위기였다. 전남은 전반전에 아낀 체력을 다 쏟아부으며 인천의 골문을 거듭 위협했고 인천 유나이티드 골키퍼 정산은 그 공을 걷어내기 위해 몸을 아끼지 않았다.

 78분, 인천 유나이티드의 문선민이 골키퍼 정산의 롱킥을 향해 솟구쳐오르며 멋진 헤더 추가골을 성공시키는 순간

78분, 인천 유나이티드의 문선민이 골키퍼 정산의 롱킥을 향해 솟구쳐오르며 멋진 헤더 추가골을 성공시키는 순간 ⓒ 심재철


인천 유나이티드 골키퍼 정산은 슈퍼 세이브 활약도 모자라 78분에 보기 드문 공격 포인트를 기록했다. 전남의 왼쪽 코너킥을 솟구쳐 잡아낸 뒤 역습을 전개하기 위해 정산은 공을 들고 멀리 차 보냈다. 유독 높고 멀리 날아간 공은 전남 페널티 지역 바로 앞에서 한 번 튀어오른 뒤 골키퍼 이호승에게 잡히는 것처럼 보였다. 하지만 전남 수비수 이슬찬과의 몸싸움을 뿌리친 인천의 문선민은 그 공을 결코 포기하지 않았다. 그 자리가 마침 팬들이 걸어놓은 "포기하는 선수는 프로 자격 없다" 글귀 바로 앞이어서 더욱 어울린 명장면이 됐다.

공의 낙하 지점이 분명히 전남 페널티지역 안쪽이었지만 골키퍼 이호승은 이상하게도 문선민과 헤더 싸움을 펼치는 수비수처럼 손을 쓰지 않았다. 페널티지역 표시선이 바로 앞에 있었기 때문에 핸드 볼 반칙을 두려워한 모양이었다. 그 덕분에 탄력 좋은 문선민의 헤더가 그대로 전남 골문 안쪽으로 날아들어간 것이다.

이렇게 인천 유나이티드는 지난 달 28일 광양으로 찾아가서 전남 드래곤즈를 3-1로 이기고 꼴찌 탈출에 성공했던 것처럼 이번에도 같은 팀을 상대로 3-1로 이겨 똑같이 꼴찌 탈출에 성공했다. 겨우 승점 1점 차이밖에 안 되지만 인천 유나이티드 구성원들 모두가 간절히 바랐던 승리의 순간을 끝내 만들어냈다. 곧바로 강등(12위), 승강 플레이오프행(11위)의 수모를 피하기 위한 이들의 자존심 싸움은 승점 3점밖에 차이가 나지 않는 10위 대구 FC까지 엉켜서 더욱 흥미롭게 된 셈이다.

26라운드를 앞둔 인천 유나이티드 FC는 수원 블루윙즈와의 홈 경기가 태풍으로 취소된 제주 유나이티드를 상대하기 위해 토요일에 서귀포로 날아가야 한다. 전남 드래곤즈는 일요일 오후 7시 포항 스틸러스를 광양으로 불러들인다.

2018 K리그 원 25라운드 결과(22일 오후 7시 30분, 숭의 아레나)

★ 인천 유나이티드 FC 3-1 전남 드래곤즈 [득점 : 문선민(4분), 무고사(38분,도움-문선민), 문선민(78분,도움-정산) / 마쎄도(63분,도움-허용준)]

- 경기 주요 기록 비교
슛 : 인천 유나이티드 17개, 전남 드래곤즈 11개
유효 슛 : 인천 유나이티드 14개, 전남 드래곤즈 2개
점유율 : 인천 유나이티드38%, 전남 드래곤즈 62%
코너킥 : 인천 유나이티드 6개, 전남 드래곤즈 5개
프리킥 : 인천 유나이티드 19개, 전남 드래곤즈 12개
오프 사이드 : 인천 유나이티드 1개, 전남 드래곤즈 0개

◇ K리그 1 하위권 순위표
7위 FC 서울 32점 8승 8무 9패 30득점 29실점 +1
8위 제주 유나이티드 31점 8승 7무 9패 28득점 29실점 -1
9위 상주 상무 28점 7승 7무 11패 25득점 30실점 -5
10위 대구 FC 23점 6승 5무 14패 23득점 43실점 -20
11위 인천 유나이티드 FC 20점 4승 8무 13패 36득점 54실점 -18
12위 전남 드래곤즈 19점 4승 7무 14패 28득점 49실점 -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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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 대인고등학교에서 교사로 일합니다. 축구 이야기, 교육 현장의 이야기를 여러분과 나누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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