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고괴담> 20주년 특별전 포스터.

<여고괴담> 20주년 특별전 포스터. ⓒ 한국영상자료원


"1편부터 지금까지 감독이나 배우들이 모두 신인이었는데도 주목받을 수 있다는 점에서 더욱 보람 있는 작업이었다. 감독들이나 출연배우들에게 내가 선배인 셈인데 선배로써 그래도 신인을 많이 배출해서 그들이 영화계에서 아직까지도 노릇하게 해주는 시발점이 되는 작품을 지금까지 지켜왔다고 생각한다. 그런 점에서도 10편 이상이라도 할 수만 있으면 꼭 해내고 싶은 중요한 작업이 될 것이다."

2008년 5월, <여고괴담> 시리즈의 제작자인 씨네2000 이춘연 대표는 <맥스무비>와 가진 '<여고괴담> 10주년' 인터뷰에서 이런 소감을 남겼다. 진짜 그랬다. 250만을 동원하며 한국 호러의 신기원을 열어젖힌 <여고괴담>은 신인 배우와 감독들의 등용문이자, 명실상부 한국 호러를 대표하는 '프랜차이즈' 영화의 선구자였다.

그리고 그 이듬해 6월, 시리즈 5편인 <여고괴담5: 동반자살>이 개봉했다. 대대적인 오디션으로 화제를 모았던 5편은 그러나 흥행에 참패했고, 그 이후 <여고고담> 시리즈는 관객들의 뇌리에서 잊히는 듯했다. 그 시기는 한국 공포영화의 침체와도 맞물려 있었다.

11년 간 5편을 탄생시킨 이 대한민국 대표 프랜차이즈 시리즈가 올해로 개봉 20주년을 맞았다. 이에 맞춰 한국영상자료원은 오는 26일까지 열리는 '우리 학교에 놀러 오세요!'라는 부제를 단 '<여고괴담> 20주년 특별전'을 마련했다. 공포영화 팬들이라면 감회에 젖을 만한 기획이 아닐 수 없다.

<여고괴담>, 벌써 20년!

 좌로부터 <여고괴담> 시리즈의 김규리 배우.

좌로부터 <여고괴담> 시리즈의 김규리 배우. ⓒ 한국영상자료원


1편 250만 동원, 최강희, 김규리, 박진희 그리고 박기형 감독. 2편 50만 동원, 박예진, 김민선, 공효진, 그리고 민규동, 김태용 감독. 3편 180만 동원, 박한별, 송지효, 조안, 그리고 윤제연 감독. 4편 40만 동원, 김옥빈, 차예련, 서지혜, 그리고 최익환 감독. 5편 64만 동원, 오연서, 손은서, 송채윤, 장경아 그리고 이종용 감독.

이 숫자와 명단은 <여고괴담> 시리즈에 관해 회자되는 숫자와 이름들이다. 흥행 성적, 신인 여배우, 그리고 신인 감독. 앞서 언급한 이춘연 대표가 10주년 인터뷰에서 밝혔듯, 세 가지는 언론의 의해, 그리고 대중들 스스로 <여고괴담> 시리즈를 환기시키는 키워드 역할을 톡톡히 해왔다.

그 주역들이 10주년을 맞아 한 자리에 모인 것은 진풍경이라 할 만했다. 이춘연 대표를 비롯해 1편의 박기형 감독을 제외한 민규동, 윤제연, 최익환, 이종용 감독이 함께 자리했고, 박진희, 김규리, 송채윤, 유담희 배우도 레드 카펫에 섰다. 특별전을 기념해 지난 22일 서울 상암동 한국영상자료원에서 열린 '오프닝 나이트' 자리였다. 배우들도 그 '20년'이란 시간을 남다르게 간직한 듯 보였다.

"<여고괴담> 개봉 이후로 20년의 시간이 흘렀다. 긴 시간을 지나 당시의 스태프, 그리고 여전히 <여고괴담>을 사랑하는 관객들과 만날 수 있어 반갑고 또 뜻깊다." (박진희)
"<여고괴담 두번째 이야기>는 내 인생에서 큰 터닝포인트를 만들어 준 작품." (김규리)


이날 오프닝 상영과 함께, 한국영상자료원은 23일부터 26일까지 시리즈 전편을 상영하고, 1편부터 5편까지 각 영화의 감독이 직접 참여하는 '감독과의 대화'를 진행한다. 또 이들 감독들의 초기 단편영화를 상영하는 한편, 석고상과 교환일기 등 영화의 소품 전시도 병행한다.

그리고, 새로운 20년을 향하여 

 22일 열린 '오프닝 나이트'에 참석한 씨네2000 이춘연 대표.

22일 열린 '오프닝 나이트'에 참석한 씨네2000 이춘연 대표. ⓒ 한국영상자료원


"<여고괴담>은 그간 B급 장르로 취급되었던 호러영화 장르 안에 동시대 10대 청소년들의 고민과 부조리한 사회를 예리하게 포착한 작품으로, 개봉 당시 큰 반향을 일으켰다. '호러'의 판타지적 외피를 두르고 공포의 근원지로서의 학교에 대해 이야기하지만, 이 영화가 사회적 반향을 일으킨 것은 <여고괴담> 속 학생들의 공포와 그들의 절규가 판타지만으로 끝나지는 않는 데에 있었다.

성적 지상주의의 사회 속에서 감정이 메말라가는 여고생들과 그들에게 매몰찬 어른들의 시선은 현실세계와 꼭 닮아있었기 때문이다. 이런 점에서 <여고괴담>은 사회에 대한 비판적 시각과 동시대 대한민국을 살아가는 10대 청소년들에 대한 관심이 대중장르와 만나 폭발적인 영향력을 보여준 대표적인 사례라 할 수 있다."


한국영상자료원이 소개한 <여고괴담> 시리즈의 의의다. 한국식 리얼리즘과 사회풍자 그리고 호러적 감수성과의 행복한 만남, 그리고 개별 작품들의 장르적 변주. 비록 2010년대에는 '아직' 도착하지 못했지만, <여고괴담> 시리즈가 한국영화에 남긴 족적은 이렇게 뚜렷하다고 할 수 있다.

더욱이 이 시리즈가 장기간 '침묵'에 돌입했던 기간 동안 한국 호러영화들이 부진을 면치 못했다는 사실은 의미심장하게 다가온다. 저예산일 수밖에 없는 장르 특성상, 텐트폴이나 대작 위주로 영화계가 집중하면서 호러 영화는 '아웃사이더' 장르로 머물 수밖에 없었다.

그럴수록 꾸준히 새로운 아이디어가 개발되는 할리우드나 유럽에 비해 신선한 소재의 개발이 더뎠던 것도 사실이다. 다만, 근래 들어 <곤지암> 과 같은 성공작이 출현했다는 점, 외화를 중심으로 젊은 층 관객들이 꾸준히 호러영화를 소비하고 즐긴다는 점은 반길 만한 대목이다. 호러장르의 부활을 꿈꾸는 이들도, 그런 완성도 있는, 새로운 소재의 '공포'를 기다리는 관객들은 분명 존재한다.

<여고괴담> 1편에 열광했던 '중고딩' 관객들은 이제 30대가 됐다. 벌써 20년이다. 20년을 뛰어 넘어 세대가 함께 즐길 수 있는 '호러' 시리즈를, 우리도 만나게 될 날이 올 수 있을까. 그런 점에서, 씨네2000이 2019년을 목표로 <여고괴담> 6편을 준비 중이란 소식은 반가움으로 다가올 수밖에 없다. <여고괴담>의 새로운 20년, 또 다른 시작을 응원한다.

 22일 한국영상자료원에서 열린 <여고괴담> 20주년 특별전 '오프닝 나이트' 행사.

22일 한국영상자료원에서 열린 <여고괴담> 20주년 특별전 '오프닝 나이트' 행사. ⓒ 한국영상자료원



여고괴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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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작업 의뢰 woodyh@hanmail.net, 전 무비스트, FLIM2.0, Korean Cinema Today, 오마이뉴스 등 취재기자, 영화 대중문화 칼럼니스트, 시나리오 작가, 각본, '4.3과 친구들 영화제' 기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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