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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년 9월 9일, 서른 살의 부산 남자와 스물넷의 대구 여자는 젊음과 사랑을 담보로 결혼을 선택했다. 짧았던 연애 기간만큼 너무나도 쉽게 생각했던 시댁 생활, 그렇게 나의 신혼은 시댁에서 시작되었다. 하지만 모든 것이 그대로인 시댁에서 낯선 이방인은 나 하나뿐이었다. 어제와 다름없던 그들의 생활 공간에 나 혼자 오늘 새롭게 들여놓은 새 가구 같은 느낌이랄까?

집안에 주방은 하나였지만 살림하는 여자는 둘이었기에, 며느리인 나는 집안 살림에 주도권이 없었다. 의결권이 없는 며느리 자격에는 권한보다 책임만 더 컸을 뿐이다.

둘만의 기념일 둘만의 냉장고
둘만의 사진들 둘만의 비밀거리
둘만의 속삭임 둘만의 와인잔
둘만의 커플룩 둘만의 추억 얘기

신혼 시절 유행하던 <Hawaiian Couple> 노래 가사처럼, 누군가는 결혼했다면 당연히 얻게 될 신혼 공간이 나에게는 간절히 원하는 소망이 되었다. 둘만의 냉장고보다 어머니의 냉장고였고,  둘만의 사진들보다 시댁의 역사가 고스란히 보이는 사진들이 주를 이루었다. 그러다 남편 직장이 외곽 도시로 신축 이전하게 되면서 결혼 후 일년 뒤 직장 근처로 분가를 하게 되었다.

시댁 생활 일 년 만에 갖게 된 우리만의 공간, 내 집이라는 소유감은 하나에서 열까지 내 마음대로 할 수 있다는 결정권을 지니고 있었다. 우리 집이 생겼다는 기쁨에 다이소와 각종 인터넷 쇼핑몰에서 인테리어 용품을 참 많이도 샀다. 그래픽 스티커라고 하나? 그런 것도 온 집안에 덕지덕지 붙이기도 했으니까. 여유 공간만 있으면 그걸 못 보고 뭐든 채워 넣으려고 했고, 아기가 잠든 새벽에 뭐라고 사고 싶어 최저가 쇼핑 검색을 뒤지며 인터넷에 살던 시절이었다.

어느 육아서에서 회전 책장이며, 추천 도서며, 어느 교구가 좋다고 하면 당장이라도 사야 할 것 같은 조급함이 들었다. 타인이 추천하는 전집이나 교구를 구입하면 당장이라도 우리 아이에게 큰 효과를 볼 수 있을 것 같은 조바심에 나는 어느덧 카드 결제를 하고 있었다.

집안을 서재처럼 꾸미고 싶다는 로망 때문에 집안 곳곳을 책으로 도배하기도 했다. 우리 집을 방문하는 사람들마다 가정집인지 공부방인지 분간이 안 된다며 감탄했다. 나는 어쩌면 남에게 보이기 위한 맥시멀 라이프를 여태껏 지향하며 살아왔는지도 모른다.

시간이 흘러 어느덧 다음 달 9일이면 이 남자와 함께 산 지 결혼 11주년이 된다. 아주 우연히 '미니멀 라이프'를 알게 되면서 우리 집은 지금껏 살아온 생활 패턴과 달리 버리고 비우고 있는 중이다. 그토록 바랐던 우리만의 공간을 채우느라 구입했던 신혼 용품들을 버리지 못하고 변함없이 안고 살았다. 10살, 5살 아들 둘이나 키우면서도 말이다.

하지만 물건을 채우려고 할수록 소유욕은 더 강해지고, 버리기도 비우기도 쉽지 않은 고행길이 되었다. 아까워서, 추억이 깃든 거라서, 멀쩡해서, 혹시나 나중에 필요할까 봐, 다음에는 사용하려고.

소유해야만 추억하는 건 아니니까

추억은 추억으로 가슴에 새겨주자. 꼭 물건으로 소유해야만, 추억도 소유되는 것은 아니니까.
 추억은 추억으로 가슴에 새겨주자. 꼭 물건으로 소유해야만, 추억도 소유되는 것은 아니니까.
ⓒ unspla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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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리려고 하면 다양한 미련으로 선뜻 움직이지 못했던 손놀림도 이제는 조금씩 가벼워지고 있다. 추억 어린 신혼 소품들은 혹시나 지역 카페에 올리면 원하는 사람이 가져갈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글을 올렸다. 다행히 제일 먼저 신청하셨던 분께 깨끗하게 씻어 드렸다. 내가 예뻐하던 소품이 버려지지 않고 누군가의 손길에 재탄생 된다 생각하니 미니멀라이프의 위안이 된다고 할까? 추억과도, 익숙함과도 예쁘게 결별하는 것 같다.

미니멀라이프를 실천하면서 가장 힘든 것이 갈등이다. 버려야 할지, 말아야 할지, 내 마음속에서는 수많은 생각으로 갈등의 연속이다. 그렇게 정신적으로 에너지를 쏟기가 싫어서일까? 버리고 비우기가 말처럼 쉽지만은 않다.

시댁에서 신혼 생활하던 때, 나는 어머님의 생활 방식을 이해하지 못했다. 오래되고, 낡고 실용성이 떨어지는 묵은 살림을 끝내 아깝다며 버리지 못하셨다. 어머니는 집안 곳곳 묵은 살림으로 그간 어머님의 삶의 궤적을 남기셨다.

세월이 흐를수록 묵은 살림이 많아지는 이유가 버리기 아까워서다. 열심히 벌어서 내 돈 주고 산 것이 부질없어지는 행동이 되기 때문에, 비싼 돈 들여 구입했던 내 물건들이 한순간에 쓰레기로 전락당하는 것 같아서, 그 물건을 구입하기 위해 들인 시간과 정성, 노력 그리고 추억까지도 물거품이 되는 것  같아 쉽사리 버리기 힘들다. '내 재산, '내 물품'이라는 소유욕 때문에 말이다.

나 역시 가장 버리기 힘든 것이 추억이 담긴 물건이다. 처음 신혼여행지에 가서 우리 둘만의 미니 투어로 구입했던 옷, 그리고 첫 취업 축하 선물로 받은 옷, 엄마가 나 엄마 되었다고 직접 사준 임부복, 그리고 동생이 언니 취업 축하 기념으로 사준 옷, 남편이 연애 시절 사준 지갑 등 예쁜 추억이 담긴 물건들은 버리기가 힘들었다. 하지만 소유하지 않는다고 해서 추억이 사라지지 않는다는 것을 나는 안다.

미니멀라이프 실천을 위한 버리기는 나와 오랜 세월 함께하면서 익숙해진 것들과 결별부터 하는 게 중요한 것 같다. 어쩌면 미니멀라이프에서 가장 필요한 건, 오랜 시간 함께해서 경각심도 없이 당연한 듯 소유하고 살았던 필요 없는 것들과의 결별 선언이 아닐까? 나는 오늘 신혼 시절 추억만 갖고 있던 익숙함과 결별을 했다. 미니멀라이프를 실천하는 동안 10년 넘은 살림살이와 묵은 짐과도 결별하는 과정 중에 있다.

추억은 추억으로 가슴에 새겨주자. 꼭 물건으로 소유해야만, 추억도 소유되는 것은 아니니까. 미니멀 라이프를 실천하면서 현명하게 버리는 것도 중요하지만, 더 중요한 것은 현명하게 구입하는 것이다. 어쩌면 아주 단순한 진리를 나는 결혼 생활 10년이 흘러서야 깨닫고 산다. 왜 그렇게 물건에 휘둘리며 조급해하며 휘둘리고 살았을까? 내 지갑의 돈인데 마치 물건이 주인인 양, 물건의 노예가 된 것처럼 나는 물건을 떠받들고 살았던 게 아닐까?

염원했던 우리만의 공간을 이제는 채움이 아니라, 비움으로써 여백의 미를 느끼며 심리적 여유를 느끼며 사는 삶이 훨씬 윤택하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네이버 개인 블로그(욕심많은워킹맘: http://blog.naver.com/keeuyo) 에도 게재되었습니다.



태그:#미니멀라이프, #소유욕, #물욕, #버리기, #비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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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업은 회계팀 과장, 부업은 글쓰기입니다. 일상을 세밀히 들여다보며 기록하는 것을 좋아합니다. 취미로 시작한 글쓰기가 이제는 특기로 되고 싶은 욕심 많은 워킹맘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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