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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행히 젊은이는 얼굴을 살짝 붉히며 담배꽁초를 줍고서 도망치듯이 발걸음을 재촉했다.
 다행히 젊은이는 얼굴을 살짝 붉히며 담배꽁초를 줍고서 도망치듯이 발걸음을 재촉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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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을 걷는데 앞에서 담배를 피우며 걷던 젊은 남자가 꽁초를 길가에 휙 던졌다. 불이 꺼지지 않은 담배꽁초는 가로변 화단에 떨어졌다. 그쪽을 보니 화살나무 조경수 사이에 마른 나뭇잎과 쓰레기가 있었다. 함부로 던진 담배꽁초가 불씨가 되어 자칫하면 화재로 이어질 수 있다. 나는 잠시 망설이다가 "여보시오, 앞에 가는 젊은이!" 하고 불렀다. 젊은이는 발걸음을 멈추고 돌아보며 "왜요?" 하면서 아래위로 나를 살폈다.

그 짧은 순간에도 많은 생각이 갈마들었다. 지금은 세상이 많이 바뀌었다. 오래전처럼 손윗사람을 어려워하고 공경하는 사회가 아니다. 괜히 나섰다가 난감한 처지에 놓이거나 봉변을 당했다는 이야기를 적잖게 들었다. 그래서 어지간하면 못 본 척 지나쳤지만, 그때마다 나이 먹은 사람의 책임을 회피하는 것 같아서 마음이 불편했다. 나는 표정을 최대한 온화하게 하고 조용한 목소리로 말했다.

"담배꽁초에 불이 꺼지지 않아 위험하네요. 설마 하고 무심코 지나치다가 큰일을 겪을 수도 있으니 어서 끄는 것이 좋겠소."

다행히 젊은이는 얼굴을 살짝 붉히며 담배꽁초를 줍고서 도망치듯이 발걸음을 재촉했다. 아마도 속으로는 '아이, 쪽팔려!' 하면서 툴툴거렸을 것이다.

'쪽팔린다'라는 말은 '부끄러워 체면이 깎인다'는 말의 비속어다. 주로 젊은이들이 많이 쓰는 표현이고, 사람들이 많이 쓰다 보니 국어사전에도 올라 있다. 부끄러움, 즉 수치를 느끼는 사람은 개선 가능성이 있다. 부끄러운 치(恥)는 귀(耳) 옆에 마음(心)이 붙어 있다. 부끄러움을 아는 자는 자기 마음의 소리에 귀를 기울여 양심의 소리를 듣게 된다.

문제는 수치스러운 짓을 하고서도 부끄러움을 모르는 자들이다. 맹자는 잘못을 저질렀을 때 '부끄러움을 모르면 사람이 아니다(無羞惡之心 非人也)'라고 단언했다. 인간이 짐승과 다른 건 부끄러움을 안다는 점이다.

이 글의 초고가 완성된 후 시인 출신 편집자 후배에게 읽어 보라고 주었다. 그런데 바로 위의 '무수오지심 비인야(無羞惡之心 非人也)' 대목을 짚으며 "병아리 잡는데 소 잡는 칼을 휘두르는 격이 아닙니까?"라는 것이었다.

나는 곧바로 그의 속내를 알아차렸다. 그는 골초에 가까운 애연가이다. 성품이 반듯하고 깔끔한 사람이라서 길거리에 함부로 담배꽁초를 버리지는 않겠지만, 어쩌다 한두 번쯤은 버렸을 수도 있겠다 싶었다. 그런 사람에게 꽁초를 길거리에 버리면 '수치를 모르는 사람이고, 수치를 모르면 사람이 아니다'라고 했으니 심사가 뒤틀렸을 수도 있다. 나는 속으로 빙그레 웃으며 말했다.

"공자도 포기한 사람 이야기를 알아요?"

독서량이 상당한 그는 박학다식하다. 내가 모르는 것을 그에게 물으면, 십중팔구는 금방 답을 준다. 역시 그는 '공자도 포기한 사람' 이야기를 잘 알고 있었다. 그것을 간략하게 정리하면 이렇다.

우리는 부끄러움을 배워야 한다

잘못을 저질렀을 때 부끄러움을 모르면 사람이 아니다.
▲ 無羞惡之心 非人也 잘못을 저질렀을 때 부끄러움을 모르면 사람이 아니다.
ⓒ 이명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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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심하게 혼란했던 춘추전국시대 초기에 활동했던 공자는 자신이 이상으로 삼는 도덕 정치를 펴기 위하여 14년 동안 여러 나라를 돌아다녔으나 받아주는 군주가 없었다. 집 잃은 개의 꼴을 하고 떠돌고 있을 때, 어느 날 길섶에서 똥을 싸는 사내를 보았다. 공자는 그 사내를 자기 앞으로 오라고 불러 인간의 윤리를 들면서 엄청나게 꾸짖었다. 사람이 개돼지나 까마귀 같은 금수가 아닌데 어찌 가리고 못 가릴 것을 구별하지 못하냐는 것이었다. 호되게 혼이 난 사내는 얼굴이 홍당무가 되어 황급히 자리를 떴다.

그러고 나서 한참을 갔는데, 이번에는 길 한가운데서 똥을 싸는 자를 보았다. 그러자 공자는 제자들에게 그자를 피해서 가자고 하였다. 무척 의아하게 생각한 제자가 "스승님, 어째서 길 한가운데 똥을 싸는 자는 피해 가는 것입니까? 저놈은 아까 길섶에서 싼 자보다 더 나쁘지 않습니까?"라고 물었다. 공자가 대답했다.

"저자는 일말의 양심도 없는 자이다. 길섶에 싼 자는 그래도 한 가닥 양심이라도 있으니 가르치면 되겠지만, 양심이 아예 눈곱만큼도 없는 자를 어찌 가르칠 수 있겠느냐?"

세상에는 구제 불능의 사람도 분명히 존재하지만, 그런 사람은 극소수이다. 대다수는 선악과 미추를 구별할 줄 안다. 분별력을 갖추고 있는 사람에게는 부끄러움을 가르치면 도덕 수준은 당연히 높아질 것이다.

박완서 작가의 <부끄러움을 가르칩니다>라는 단편소설이 가끔 생각난다. 일본 관광객을 안내하던 한국인 가이드는 인파가 북적이자 일본말로 "저 여러분, 이 근처부터 소매치기에 주의하십시오"라고 경고한다. 소설의 주인공은 그 말을 듣고 심한 부끄러움을 느꼈다고 털어놓는다.

나도 그것과 흡사한 경험이 있다. 경주 석굴암 앞에서 한국인 중년 남자가 요란스럽게 가래침을 돋우어 바닥에 퉤 뱉었다. 그 광경을 곁에서 지켜본 일본 단체 관광객들이 경악스러운 표정을 지었는데, 그 순간 내 얼굴이 심하게 화끈거렸다. 나라 망신을 시키는 한국인의 추한 행동이 같은 한국인인 나를 부끄럽게 만들었다.
 
버스정류장 옆에 쓰레기통이 있는데도 피우고 있던 담배를 길바닥에 내동댕이치고 버스에 오르는 모습을 종종 본다. 거리는 무척 지저분하며 냄새도 고약하다. 승용차를 타고 가면서 창밖으로 꽁초를 던지는 사람들도 있다. 그런 사람을 보면 우리 수준이 고작 이것밖에 안 되는지 화가 치민다.

길을 걸으면서 담배를 피우는 사람들은 대체로 공중도덕에 둔감한 것 같다. 거리 곳곳에 담배꽁초들이 너저분하게 버려져 있고, 하수구 맨홀에는 수북이 쌓여 있는 곳이 많다. 함부로 꽁초를 버린 다음에는 침을 뱉는 경우도 흔하다. 알고 보면 참 부끄러운 행동인데, 당사자들은 부끄러움을 모른다. 마구 버린 쓰레기는 하수도 구멍을 막아 물이 역류되고 하천의 물흐름에 방해가 되며, 궁극적으로 하천과 바다를 오염시킨다.

내가 사는 망원동은 참 조용한 주택가였는데, 근래에 젊은 층의 발걸음이 많아지면서 이색적인 분위기의 카페, 음식점들이 곳곳에 자리 잡았다. 처음에는 젊은이들이 북적거리니 활기가 넘치고 좋아 보였다.

그런데 유명해지자 이른바 젠트리피케이션(둥지 내몰림) 현상이 벌어졌다. 한강공원으로 산책하러 갈 때마다 인사하던 사진관 털보 아저씨도 껑충 뛴 임대료 때문에 눈물겹게 가게를 정리했고, 종종 찾았던 철물점을 비롯하여 여러 가게가 없어져 버렸다. 그렇게 망원동을 지켜왔던 올망졸망한 상점들이 사라지자 망원동 주민회는 '망리단길 싫어요'라는 서명 운동까지 벌이고 있다. 낡고 오래되었지만 예전처럼 정을 나누며 더불어 살고 싶다는 표현일 것이다.

동네를 걷다 보면 이곳저곳에 버려진 쓰레기를 본다. 커피가 담긴 얼음 컵이 유난히 많고, 시장에서 사서 먹은 듯한 음식물 포장지와 구겨진 휴지와 담배꽁초가 눈살을 찌푸리게 한다. 심지어 "제발 쓰레기 버리지 마세요"라는 벽보 밑에도 쓰레기가 쌓여 있다.

'깨진 유리창의 법칙'처럼 인간의 심리는 깨끗한 곳에는 꽁초 버리는 것도 주저하지만, 누군가가 먼저 쓰레기를 버리면 다른 사람도 덩달아 그곳에 버려서 금방 쓰레기가 쌓이고 지저분해진다. 쓰레기를 버리는 사람의 상당수는 소문을 듣고 망원동을 찾은 젊은이들이다. 이것은 추측이 아니라 내 눈으로 직접 본 사실이다. 도로변이나 골목길에 슬그머니 쓰레기를 버리는 청춘 남녀를 아주 많이 보았다. 저마다 옷들은 멋지게 차려입고서, 차림새와는 어울리지 않는 행동을 하고 있었다.

아름다운 나라가 되려면

각종 문화행사를 치르고 난 뒤의 풍경은 그리 산뜻하지 못하다. 온갖 쓰레기가 우리의 수준을 대변하듯이 널브러져 있다.
 각종 문화행사를 치르고 난 뒤의 풍경은 그리 산뜻하지 못하다. 온갖 쓰레기가 우리의 수준을 대변하듯이 널브러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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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끄러움을 꼭 가르치고 싶은, '깨진 유리창'과 같은 존재는 도시에만 있는 것은 아니다. 바다에도 있고, 산에도 있다. 차츰차츰 좋아지고는 있지만, 아직도 산과 바다에서 지켜야 할 기본적인 에티켓을 지키지 않는 사람이 있다.

번잡한 것을 싫어하는 나는 산을 찾더라도 사람의 발길이 뜸한 곳을 찾는데, 그것이 여의치 않으면 북한산을 자주 간다. 지하철 6호선 독바위역에서 내려 산으로 가는데, 길목에 '쓰레기 버리지 말라'는 벽보나 '주거 지역이니 제발 조용히 해달라'는 팻말 등이 서 있다.

사람이 많이 찾는 전국의 유명 관광지나 둘레길 주변의 주민들은 소음과 쓰레기, 사생활 침해 등의 문제로 고통을 호소한 지 오래다. 둘레길 옆에 사는 지인의 말에 따르면, 특히 가장 심각한 문제는 소음이라고 한다. 아닌 게 아니라 삼삼오오 떼를 지어 다니며 시끄럽게 떠들어대는 등산객들을 흔하게 본다. 자기들이야 모처럼 산에 가니 즐겁겠지만, 끝없이 소음 공해에 시달리는 그곳 주민들은 죽을 맛일 것이다. 처지를 바꿔 생각해 보고 조용히 지나갈 일이다.

지금은 정말 많이 줄었지만, 아직도 산에서 담배를 피우는 사람을 가끔 본다. 산불은 작은 불똥 하나로도 생겨날 수 있다. 담배에 불을 붙여 빨아들일 때 온도는 800도 정도까지 오르며, 빨아들이지 않고 그냥 있을 때는 500도가량이다. 불쏘시개가 되는 낙엽이나 종이 등은 보통 350도 정도면 불이 붙는다.

담배꽁초를 그대로 던지면 500도짜리 불씨를 버리는 것이나 마찬가지이니 화재로 이어지기 쉽다. 담배꽁초를 함부로 버리는 습관이 있는 사람은 특히 유념해야 한다. 산불은 순식간이다. 그저 실수였다고 치부하기엔 본인 자신은 물론이고 국가적으로도 잃는 것이 너무 많다.

산을 오르다 보면 등산로 주변이나 계곡에 함부로 버려진 쓰레기를 본다. 가장 많이 보는 쓰레기는 생수병이나 음료수 깡통, 일회용 컵 등이다. 산에 오를 때 물과 같은 음료수는 꼭 필요하다. 목이 마를 때 달게 마시고서 무겁지도 않은 빈 용기를 그냥 버리는 것은 자기 배낭이 더러워지는 게 싫었기 때문일 것이다.

플라스틱이나 깡통, 유리병 등은 아예 썩지 않거나 부식되는 데 수백 년이 걸린다고 한다. 등산객들이 숨을 고르며 쉴 수 있는 평평한 장소엔 담배꽁초가 많이 보인다. 비탈진 곳에 버려진 나무젓가락과 휴짓조각도 보기 흉하다. 차라리 그 자리에 버렸다면 자연을 사랑하는 마음을 지닌 고마운 손이 쉽게 줍기라도 했을 텐데, 쉽게 주우러 가기도 어려운 장소에 쓰레기를 버린 심보가 고약하다. 돌 틈에 숨기거나 나무 뒤, 풀숲에 슬그머니 버린 쓰레기도 적지 않다. 그렇게 감춰 놓으면 양심의 가책을 좀 덜 받는 모양이다.

산을 좋아하는 사람은 어질다 하여 '인자(仁者)'라 한다. 일상에서 지친 몸과 마음을 자연 속에서 치유하고, 영혼이 맑아지려고 산을 찾는 '어진 사람'들이 쓰레기를 버리는 행태는 이해하기 어렵다. 더럽고 지저분한 것을 보면 눈살이 찌푸려지는 것이 인지상정이다. 쓰레기를 버리는 사람들도 남이 버린 쓰레기를 보면 기분이 좋지 않을 것이다. 어쩌면 "몰상식한 사람들, 쯧쯧!" 하면서 하늘을 보고 침을 뱉지 않을까?

흔히 그 나라 사람들의 에티켓이나 도덕성 등을 보고 시민의식을 판단한다. 한국의 경제력은 세계 모든 나라 중 상위권에 속한다. 또한, 교육 수준은 매우 높은데도 시민의식은 거기에 미치지 못한다. 그것은 교육 자체가 잘못되어 있다는 뜻일 것이다. 공중도덕과 예의는 가정교육이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소득 수준만 높아진다고 문화 국민이 아니다. 이러한 공중도덕 하나 제대로 지키지 못하면서 다른 권리를 말할 자격은 없다. 70년 전에 백범 김구 선생은 이렇게 말했다.

"나는 우리나라가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나라가 되기를 원한다. 가장 부강한 나라가 되기를 원하는 것이 아니다. 내가 남의 침략에 가슴이 아팠으니 내 나라가 남의 나라를 침략하는 것을 원치 아니한다. 우리의 부력(富力)은 우리의 생활을 풍족하게 할 만하고, 우리의 강력(强力)은 남의 침략을 막을 만하면 족하다. 오직 한없이 갖고 싶은 것은 높은 문화적 힘이다."

광복 후 혼란기에 경제력과 국방보다 더 중요한 것이 '문화의 힘'이라고 강조한 백범의 혜안이 존경스럽다. 바람직한 문화란 인간 정신의 고양과 정서 함양에 크게 영향을 끼친다. 근래에 와서 문화예술의 중요성은 끝없이 강조되고, 문화 행사도 많이 벌어진다. 그런데 각종 문화행사를 치르고 난 뒤의 풍경은 그리 산뜻하지 못하다. 온갖 쓰레기가 우리의 수준을 대변하듯이 널브러져 있다. 문화인이라고 자처하는 사람들이 남긴 흔적이라고 하기에는 너무 수준이 뒤떨어진다.

양아치 같은 행동을 하면서 수준 높은 음악회나 전시회를 본다고 해서 문화적 품격이 절로 높아지는 것은 아니다. 문화인의 기본 중의 기본은 기초 질서를 준수하는 것이다. 기본예절을 철저히 지키면서 차곡차곡 쌓은 교양이 아름답고 가슴이 따뜻해지는 인간미(人間味)를 만든다.

'높은 문화적 힘'을 염원했던 김구 선생의 말씀은 현대를 사는 우리에게 여전히 유효하고, 절실히 필요한 말이다. 사회를 구성하는 개개인이 높은 수준의 도덕성을 갖추고, 인류애를 실천하는 문화의 힘이 있다면 사회는 한층 더 따뜻하고 정의로울 것이다.

덧붙이는 글 | 개인 블로그 '축성여석의 방'에도 실을 예정입니다.



태그:#담배, #망원동, #망리단길, #쓰레기, #공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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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간 『문학 21』 3,000만 원 고료 장편소설 공모에 『어둠 속으로 흐르는 강』이 당선되어 문단에 나왔고, 한국희곡작가협회 신춘문예를 통해 희곡작가로도 데뷔하였다. 30년이 넘도록 출판사, 신문사, 잡지사의 편집자로 일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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