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전 지시하는 허재 감독

작전 지시하는 허재 감독 ⓒ 대한민국농구협회/연합뉴스


허재 감독이 이끄는 대한민국 남자 농구대표팀 2018 자카르타-팔렘방 아시안게임에서 대회 2연패에 도전한다. 홈에서 열린 지난 2014 인천 아시안게임에서 12년 만에 금메달을 목에 걸었던 대표팀은 디펜딩챔피언의 자존심을 지켜야 한다는 막중한 책임을 안고 있다.

허재 감독에게는 사령탑으로서는 첫 아시안게임 도전이다. 허재 감독은 현역 시절에 아시안게임에 무려 3회 연속 출전(1986, 1990, 1994)했으나 은메달 2회, 동메달 1회를 수상하는 데 그쳤다. 아시아선수권(현 FIBA 아시아컵)까지 포함해도 허재 감독은 현역 시절 아시아 정상에 단 한번도 올라보지 못했다.

공교롭게도 한국 남자농구가 아시아 정상에 올랐던 1997 리야드 아시아선수권이나 2002년 부산 아시안게임에서는 허재 감독이 아직 현역이었지만 대표팀에 포함되지 못했다. 현역 시절 국내 최고 선수였던 명성에 비하면 국제무대에서는 유독 우승 복이 없었던 허재 감독이다. 2009년과 2011년 아시아선수권에 이어 3번째 대표팀 감독직에 오른 허재 감독이 이번에야말로 선수 시절에 이루지 못했던 아시아 정복의 꿈을 이룰 수 있을지 주목되는 부분이다.

쉽지 않은 도전, 우승 위해 넘어야 할 팀은 중국과 이란

냉정히 말하여 객관적으로 보면 쉽지 않은 도전이 예상된다. 4년 전 인천 대회 우승 당시 주축 멤버였던 양희종·오세근(이상 안양 KGC인삼공사), 김종규(창원 LG), 이종현(울산 현대모비스) 같은 핵심멤버들이 대거 빠졌다. 특히 빅맨진의 공백으로 인하여 가뜩이나 약점으로 꼽히는 '높이의 약화'가 치명적이다. 귀화선수인 라건아(울산 현대모비스)가 가세하며 그나마 한숨을 돌리기는 했지만 엔트리에 205cm 이상의 장신 선수가 한명도 없다. 1990년대 중후반 이후로 사실상 빅맨진의 평균 신장이나 무게감이 가장 낮은 대표팀이다.

라틀리프 43점... 한국 남자농구, 홍콩 완파 1일 홍콩에서 열린 2019 국제농구연맹(FIBA) 월드컵 아시아 오세아니아 지역 예선 1차 리그 A조 6차전에서 리카르도 라틀리프(현대모비스)가 홍콩의 수비를 피해 공격하고 있다.

43득점한 라틀리프의 활약으로 허재 감독이 이끄는 한국은 홍콩을 104-91로 제압했다.

지난 7월 1일 홍콩에서 열린 2019 국제농구연맹(FIBA) 월드컵 아시아 오세아니아 지역 예선 1차 리그 A조 6차전에서 리카르도 라틀리프(현대모비스)가 홍콩의 수비를 피해 공격하고 있다. 43득점한 라틀리프의 활약으로 허재 감독이 이끄는 한국은 홍콩을 104-91로 제압했다. ⓒ 연합뉴스


아시안게임에서 한국의 우승도전을 가로막을 수 있는 강력한 경쟁자로 꼽히는 팀은 역시 중국과 이란이다. 중국은 아시안게임에서만 무려 7회나 정상에 오른 대회 최다 우승국이다. 이란은 아시안게임 우승 경력은 아직 없지만 2000년대 중반 이후 아시아 농구의 신흥강호로 급부상했다. 한국과는 4년 전 인천 대회 결승에서 만나 명승부 끝에 은메달을 기록한 것이 자국의 아시안게임 역대 최고성적이었다.

두 팀 모두 아시아무대에서는 높이에 독보적인 강점이 있는 팀들이다. 이란에는 2010년대 아시아 최고의 센터로 꼽히는 백전노장 하메드 하다디(218㎝)가 버티고 있으며, 중국에서는저우치(216㎝)가 가세했다. 두 선수 모두 비록 백업이기는 하지만 NBA에서 뛰었던 경력까지 갖춘 대형 센터들이다. 하다디는 2008년부터 2013년까지 NBA 멤피스 그리즐리스, 피닉스 선스 등에서 뛰며 통산 평균 2.2점에 2.5리바운드를 올렸으며, 저우치는 지난 시즌 휴스턴 로키츠의 백업 센터로 활약, 18경기에서 평균 1.2점에 1.2리바운드의 성적을 기록한 바 있다.

하다디는 2007년과 2009년, 2013년 FIBA 아시아 선수권대회에서 세 번이나 이란의 우승을 이끈 주역이었지만 아시안게임에서는 아직 금메달이 없다. 하다디는 사실상 이번 대회를 끝으로 대표팀 은퇴를 고려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어서 이번 아시안게임에 임하는 각오가 남다를 것으로 예상된다.

특히 하다디는 '한국 킬러'로도 악명이 높다. 하다디는 국제무대에서 유독 한국을 만날 때마다 압도적인 활약을 펼치며 한국의 골밑을 여러 차례 초토화시킨 바 있다. 한국이 하다디를 제대로 막아내서 승리한 경기는 2014년 인천 대회가 사실상 유일하다. 하다디는 지난 2017 아시아컵 4강에서도 한국을 상대로 7점으로 득점은 많지 않았으나 14리바운드, 8어시스트의 전방위 활약을 펼치며 노련미를 과시한 바 있다.

전성기는 지나고 있다고 하지만 하다디는 여전히 경계대상 1순위다. 하다디와 1대 1로 매치업 시킬 만한 장신선수가 없는 한국으로서는 그나마 국제대회에서 하다디를 잘 견제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는 이승현의 수비력과, 하다디를 스피드와 탄력에서 압도할 수 있는 라건아를 얼마나 활용하느냐가 관건이다.

이란과 중국 상대로 '진검승부' 펼칠 농구대표팀

중국은 저우치만이 아니라 선수들의 전반적인 신장 자체가 높은 팀이다. 이번 아시안게임 대표팀에 이름을 올린 왕저린(212㎝), 둥한린(210㎝) 등도 모두 210cm 이상의 장신들이다. 중국 대표팀의 평균신장만 약 2m에 육박한다. 한국이 중국전에서 고전했던 패턴을 보면 중국의 높이와 수비 매치업 문제 때문에 지역방어를 구사하다가 후웨이동, 리난, 딩얀유항 같은 중국 '장신 스윙맨'들의 연이은 외곽슛과 돌파에 무너진 경우가 더 많았다.

중국농구는 4년 전 인천 대회에서 젊은 선수들로 팀을 꾸렸다가 사상 최초로 결승은커녕 4강에도 오르지 못하는 수모를 겪은 바 있다. 최근 평균연령 25세 이하의 선수들로 세대교체를 완성한 중국은 다수의 대표선수들이 NBA 지명까지 받을 만큼 주가를 높이고 있다. 이번 대회를 2019년 자국에서 열리는 농구월드컵을 대비한 전초전으로 여기고 있을 만큼 설욕을 자신하고 있다.

허재 감독에게도 이란과 중국은 사실상 천적이나 다름없다. 허재 감독은 현역 시절 국제대회에서 중국의 벽에 막혀 늘 2인자에 만족해야 했다. 허재 개인의 활약은 나쁘지 않았으나 높이와 전력차가 늘 발목을 잡았다. 당시 중국은 한국의 주득점원인 허재를 막기 위하여 악의적인 파울로 부상까지 입힐 정도였다.

감독으로 대표팀에 돌아온 후에도 악연은 계속됐다. 2011년 우한 아시아선수권대회 준결승에서 중국에 패한 뒤 허재 감독이 중국 기자들의 무례한 도발에 격분하여 욕설을 내뱉고 기자회견장을 박차고 나간 장면은 유명하다. 지난해 11월 농구월드컵 예선전에서 패배한 직후에는 "선수 시절에도 감독으로도 중국을 이기지 못하여 스트레스를 받지 않느냐"는 도발성 질문을 받기도 했다. 허 감독은 이번엔 "다음에 이기면 된다"고 침착하게 응수했다.

지난 6월 리턴매치에서 허재 감독은 다시 만난 중국을 원정에서 82-74로 제압하며 오랜만에 승리를 거두기는 했지만 당시 중국은 최정예멤버가 빠진 2군이었다. 이번 아시안게임이 사실상 진검승부의 무대인 셈이다.

이란은 허 감독의 현역 시절만 해도 아시아의 강호가 아니었지만 감독이 된 현재는 가장 위협적인 경쟁자로 부상했다. 허재 감독이 대표팀 지휘봉을 잡았던 2009년과 2011년, 2017년 아시아컵에서 한국은 하다디가 버틴 이란에 전패를 당했다. 한국은 정예멤버가 나선 지난 7월 열린 윌리엄존스컵에서도 이란에 69-80으로 패배한 바 있다.

이번 대회에서 아시아의 강호로 분류되는 팀들 중 최정예 멤버를 구축한 팀은 사실상 한국, 이란, 중국 정도다. 메달 경쟁이 이 세 팀간의 대결에서 결정될 것이라는 전망이 많다. 허재 감독이 이번엔 이란과 중국의 벽을 넘을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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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구 아시안게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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