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S칼텍스가 흥국생명을 꺾고 2년 연속 컵대회 결승무대를 밟았다.

차상현 감독이 이끄는 GS칼텍스는 11일 보령 종합체육관에서 열린 2018 보령·한국도로공사컵 여자배구 흥국생명 핑크스파이더스와의 준결승 경기에서 세트스코어 3-1(18-25,25-15,30-28,25-20)로 승리했다. 개막전 패배 후 내리 3연승을 기록한 GS칼텍스는 12일 KGC인삼공사와의 리턴매치를 통해 컵대회 2년 연속 우승에 도전한다.

40%의 공격 점유율을 기록한 표승주가 서브득점 하나와 블로킹 2개를 포함해 29득점을 올리며 공격을 이끌었고 경기 초반 다소 부진했던 이소영도 44.9%의 공격성공률로 22득점을 기록했다. 그리고 GS칼텍스의 차상현 감독은 이번 컵대회에서 다소 변칙적인 선수 기용으로 재미를 톡톡히 보고 있다. 바로 175cm의 세터 안혜진을 라이트 공격수로 활용하는 것이다.

신인왕이 목표라던 당찬 신인, 만만치 않은 프로의 벽 실감
 안혜진은 신인 드래프트에서 전체 3순위 지명을 받고 프로에 입단했지만 좀처럼 주전 기회를 잡지 못했다.

안혜진은 신인 드래프트에서 전체 3순위 지명을 받고 프로에 입단했지만 좀처럼 주전 기회를 잡지 못했다. ⓒ 한국배구연맹


진주 선명여고는 2014년 이재영(흥국생명)-이다영(현대건설 힐스테이트) 자매와 하혜진(한국도로공사 하이패스)을 앞세워 여고 배구의 최강으로 군림했다. 선명여고는 3학년 트리오가 신인드래프트 1~3순위를 휩쓸며 나란히 프로에 진출한 2015년 강소휘(GS칼텍스)와 이한비(흥국생명)를 앞세운 원곡고에게 정상의 자리를 내줬다. 하지만 2016년 다시 지민경(인삼공사)과 유서연(도로공사),이선정(인삼공사)을 앞세워 최강의 위용을 되찾았다.

여고부에서 적수가 없다는 평가를 받았던 2016년의 선명여고는 1년 내내 단 한 번 밖에 패하지 않았는데 그 해 무적의 선명여고에게 1패를 안긴 팀이 바로 안혜진이 이끌던 강릉여고였다. 고교 입학 당시만 해도 라이트 공격수였던 안혜진은 공격수로는 크지 않은 신장(175cm)에 한계를 느끼고 2학년 때부터 본격적으로 세터로 전향했다. 안혜진은 세터 전향 1년 만에 청소년 대표팀의 주전 세터로 활약할 정도로 성장 속도가 빨랐다.

2016년 신인 드래프트에서 정선아(도로공사), 지민경에 이어 전체 3순위로 GS칼텍스의 지명을 받은 안혜진은 은퇴를 앞둔 노장 세터 정지윤의 뒤를 이을 유망주로 주목 받았다. 대부분의 신인 선수들이 그런 것처럼 안혜진 역시 프로 지명 후 강점인 서브와 높이(175cm는 공격수로는 다소 작지만 세터로는 결코 작은 키가 아니다)를 앞세워 신인왕에 도전하겠다는 당찬 포부를 밝혔다. 상대적으로 빈약한 세터진을 가진 GS칼텍스에서 주전을 차지한다면 결코 불가능한 목표도 아닌 듯 했다.

하지만 역시 프로의 벽은 만만치 않았다. 시즌 중에 물러난 이선구 감독과 그 자리를 이어받은 차상현 감독은 경험이 부족한 루키 안혜진보다는 프로 6년 차 이나연(기업은행)을 주전으로 중용하며 정지윤의 후계자가 이나연임을 분명히 했다. 결국 안혜진은 프로 첫 시즌 정규리그에서 단 8경기 밖에 출전하지 못한 채 고교 시절 라이벌이었던 지민경이 신인왕에 오르는 장면을 지켜 봤다.

설상가상으로 GS칼텍스는 작년 신인 드래프트에서 1순위 지명권을 얻어 수원전산여고의 한수진을 영입했다. 한수진은 한국배구연맹에 왼쪽 공격수로 등록됐지만 실제로는 세터와 리베로까지 소화가능한 '만능 선수'다. 공격수로는 신장(165cm)에서 치명적인 한계가 있고 리베로 자리에는 나현정이라는 확실한 주전이 있기 때문에 차상현 감독은 한수진을 세터로 키울 계획을 세웠다. 안혜진이 또 한 번 후순위로 밀려나는 순간이었다.

주포지션 세터 대신 라이트 공격수로 깜짝 활약 펼치고 있는 안혜진
 안혜진은 이번 컵대회에서 세터가 아닌 공격수로 성공적인 '알바생활'을 이어가고 있다.

안혜진은 이번 컵대회에서 세터가 아닌 공격수로 성공적인 '알바생활'을 이어가고 있다. ⓒ 한국배구연맹


안혜진은 지난 시즌 경규리그에서 26경기에 출전했지만 출전 세트수(65세트)는 루키 시즌을 보낸 한수진(79세트)에 미치지 못했다. 물론 한수진이 세터가 아닌 원 포인트서버로 출전한 경기도 많았지만 실질적으로 지난 시즌 안혜진은 이나연,한수진에 이은 GS칼텍스의 3번째 세터에 불과했다. 세터라는 자리가 주전 선수에 대한 의존이 큰 포지션임을 고려하면 지난 2년 동안 별다른 성과를 내지 못한 안혜진으로서는 점점 불안해질 수 밖에 없었다.

GS칼텍스는 지난 6월 트레이드를 통해 주전 세터 이나연을 기업은행으로 보내고 이고은 세터를 영입했다. 이고은 세터는 기업은행에서 김사니 세터(은퇴)와 염혜선 세터에 가려 있었지만 작년 8월 국가대표에 선발됐을 만큼 뛰어난 기량과 잠재력을 인정 받고 있는 만23세의 젊은 세터다. GS칼텍스의 주전 세터가 이나연에서 이고은으로 바뀌었을 뿐 안혜진이 여전히 주전 경쟁에서 불리한 위치에 있다는 사실은 크게 변하지 않았다.

하지만 차상현 감독은 이번 컵대회에서 안혜진에 대한 새로운 활용법을 찾아냈다. 국가대표 강소휘와 외국인 선수 알리오나 마르티니우크가 뛸 수 없어 공격수가 부족한 컵대회의 특징을 살려 안혜진을 세터가 아닌 라이트 공격수로 투입한 것이다. 실제로 안혜진은 강릉여고 입학 당시만 해도 공격수로 활약했던 경험이 있고 컵대회를 위해 꾸준히 공격 연습을 했기 때문에 오른쪽 공격수로 나서는데 크게 문제가 없었다.

인삼공사의 첫 경기와 태국 연합팀과의 경기에서 교체 선수로 들어와 별다른 활약을 하지 못했던 안혜진은 기업은행과의 조별리그 마지막 경기에서 오른쪽 공격수로 나와 5득점을 올렸다. 단순히 GS칼텍스에서 세터 2명을 동시에 투입한다고 생각했던 기업은행은 안혜진이 의외로 공격을 시도하자 당황한 기색을 감추지 못했다.

안혜진은 11일 흥국생명과의 준결승에서도 1세트 박민지의 교체 선수로 출전해 4세트까지 주전으로 활약하며 팀의 3-1 승리에 기여했다. 안혜진은 서브득점 하나와 블로킹 득점 하나를 포함해 42.86%의 공격 성공률로 총 8득점을 올리는 깜짝 활약을 펼쳤다. 물론 이고은 세터가 수비에 참여했을 때 토스를 책임진 선수 역시 안혜진이었다 .

이렇게 세터가 아닌 라이트에서 좋은 활약을 이어가고 안혜진이지만 차상현 감독은 안혜진의 라이트 활용은 컵대회로 한정된 것이라고 선을 그었다. 어쩌면 12일에 있을 인삼공사와의 결승전은 올해 '라이트 안혜진'을 볼 수 있는 마지막 기회가 될지도 모른다. 인삼공사 역시 안혜진이 '한낱 세터에 불과한 선수'라고 방심하다간 안혜진이 가진 뜻밖의 공격력에 호되게 당할 수도 있다.

☞ 관점이 있는 스포츠 뉴스, '오마이스포츠' 페이스북 바로가기

여자배구 2018 보령·한국도로공사컵 GS칼텍스 KIXX 안혜진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