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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부모는 아이가 갑자기 아프면 당황할 수밖에 없다
 부모는 아이가 갑자기 아프면 당황할 수밖에 없다
ⓒ 정가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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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 키우는 집안 풍경

늦은 밤, 아내가 곤하게 자고 있는 나를 흔들어 깨운다. 남편을 부르는 목소리는 다급하기 짝이 없다.

"왜? 무슨 일이야?"
"여보, 까꿍이가 열이 심해. 가서 해열제 좀 가져와 봐."

아내는 나보다 아이들의 기침소리나 신음소리에 민감하다. 아이들이 뒤척이든 말든 정신없이 곯아떨어지는 나와 달리 아내는 아이들이 조금만 이상한 소리를 내도 즉각 일어나서 대응한다. 아빠로서, 남편으로서 자괴감이 드는 순간이다.

"해열제가 어디 있는데? 해열제 다 먹은 거 아냐?"
"그래? 그럼 나가서 사와."
"늦었는데? 문 연 약국이 있을까?"
"해열제는 편의점에도 있어. 빨리 가서 사와."

짜증 섞인 대답. 그런 아내의 대꾸가 조금 섭섭하기도 하지만 이내 마음을 고쳐먹는다. 아이가 아프니 경황도 없었을 것이고, 내가 너무 당연한 걸 되묻지 않았던가. 아내가 이야기한대로 편의점에 상비약이 비치된 것은 아주 오랜 전의 일이다. 부디 아이가 해열제를 먹고 편히 잠들기를 바랄 뿐이다. 아이는 아픈 만큼 성숙해진다고 하지만 그대로 열을 방치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화상 입은 까꿍이 이번 위원회에서 편의점의 화상연고 확대는 보류되었다
▲ 화상 입은 까꿍이 이번 위원회에서 편의점의 화상연고 확대는 보류되었다
ⓒ 이희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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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 장면은 아이를 키우는 집안이라면 언젠가 한번쯤 겪었을 풍경으로서, 우리 집 역시 아이를 셋이나 키우면서 종종 있었던 일이다. 물론 지금은 막내가 6살인만큼 거의 일어나지 않는 상황이지만, 지금 생각해도 아찔한 순간이 아닐 수 없다. 부모에게 오밤중 아이가 아프다고 칭얼대는 것만큼 진땀나는 일이 또 있을까. 편의점에 해열제가 없었으면 꽤나 고생했을 것이다.

편의점 판매 상비약 확대 보류의 문제점

지난 9일 보건복지부는 그 전날 열린 안전상비의약품 지정심의위원회 제6차 회의에서 제산제, 지사제 신규 지정 및 기존 소화제 2개 품목 지정해제 등을 논의했으나 결론을 내리지 못했다고 발표했다. 대한약사회, 한국편의점산업협회 등이 참여한 위원회가 결국 약사들의 강력한 반발로 인해 편의점에서 판매하는 상비약 확대를 통과시키지 못한 것이다.

그런데 약사들의 반대 이유가 영 꺼림칙하다. 편의점에 상비약을 가져다 놓으면 '오남용과 부작용'을 막을 수 없다는 것인데, 일반 국민의 시선에서 이 논리는 설득력이 높지 않다. 그 상비약들은 약국에서 살 때도 복용에 관한 특별한 지시가 거의 없기 때문이다.

과연 얼마나 많은 약사들이 해열제나 타이레놀 등을 사는 데 복용 지시를 해주는가. 병원 처방전에 따라 약을 줄 때만 설명을 하는 게 작금의 현실이다. 상비약을 구입하는 데 있어서 약국과 편의점은 크게 다를 바가 없다.

더욱이 약품에 대한 오남용은 병원과 약국, 우리나라 의료계 전체의 문제다. 2018년 2월 보건복지부 자료에 의하면 2016년 기준 우리나라 국민의 항생제사용량은 34.8 DDD(Defined Daily Dose)로 OECD 국가 중 1위이며, 항생제 내성률은 67.7%로 일본 53%, 프랑스 20.3%, 영국 13.6% 등과 비교하여 훨씬 높은 수치를 기록하고 있다. 이는 국민들에게 계속 더 센 항생제를 만들고, 처방하고 있는 의료계의 책임이다. 단순히 유통하고 있는 편의점의 책임이 아닌 것이다.

 너무도 허술한 당번약국제
 너무도 허술한 당번약국제
ⓒ JTB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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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라서 이번 약사들의 반발은 일반 국민들에게 자신들의 기득권을 지키려는 모습으로 밖에 비치지 않는다. 약사들이 설득력을 가지려면 국민들에게 24시간 편의점만큼 서비스를 제공해야 하지만, 현재 운영되고 있는 당번 약국은 이미 여러 언론 매체에서 밝힌 바 있듯이 부실한 게 현실이다(관련 기사 : 상비약 대신 '당번 약국' 늘리자" 하지만... 5곳 중 3곳은 휴무, JTBC 8월 9일 보도 등)

늦은 밤 아이들이 아프면 발을 동동거릴 수밖에 없는 부모들. 그들이 원하는 건 국민이 건강할 수 있는 기본권이다.

등대약국 아저씨를 생각하며

이번 논란을 보면서 내가 떠올린 것은 30년 전 우리 동네의 '등대약국' 약사 아저씨였다. 시장 통에 위치한 등대약국은 그 당시 우리 동네 당번약국으로서 항상 열려 있었던 기억이다. 아니, 닫혀 있어도 사람들이 부탁하면 문을 열곤 하셨다. 당번이라 하면 돌아가면서 하는 것이 정상인데 왜 그 약사 아저씨는 항상 자신이 당번을 자처했을까?

그것은 아마도 '사명감' 때문이었으리라. 약사로서 사람들을 치료해야 한다는 의식. 한쪽 다리가 조금 불편하셨던 등대약국 아저씨는 사람들을 그냥 돌려보내는 것으로도 유명했다. 사람들이 감기약을 사려고 가면 아저씨는 늘 '잠 잘 자고 푹 쉬면 낫는다'고 돌려보냈고, 진통약을 달라고 하면 꼭 '조금 견뎌보라'고 권했다.

돈을 벌려면 약을 많이 팔아야 하건만, 아저씨는 그리 하지 않았고, 등대약국은 그렇게 내가 아는 동네약국의 표준이 됐다. 약사 한 분이 동네 사람들의 상태를 책임 있게 살피고, 사람들이 시시콜콜 자신의 건강과 관련된 일상을 의논할 수 있는 공간으로서의 동네 약국. 아마도 이것이 우리가 늘 선진국에서 부러워하는 주치의 개념일 것이다.

물론 약은 약국에서 사는 것이 가장 좋다. 편의점 직원이 아니라 약사에게서 약의 사용법을 듣고 복용하는 것이 최선이다. 그러나 우리의 현실에서 돈 보다는 사람을 아끼고, 약보다는 조언을 줄 수 있는 약사는 얼마 되지 않는다. 부디 약사들이 편의점이 아닌 스스로의 욕망과 경쟁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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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와 사회학, 북한학을 전공한 사회학도입니다. 지금은 비록 회사에 몸이 묶여 있지만 언제가는 꼭 공부를 하고자 하는 꿈을 가지고 있습니다.

오마이뉴스 정치부 기자입니다. 조용한 걸 좋아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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