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 중의 꽃, 정동花 “별명이요? 좋아하죠! 과찬이고…. 팬들께서 저를 기분 좋으라고 불러주시는 애칭이, 저는 너무 좋아요. 제가 제 입으로 얘기는 직접 하지 못하지만, 속으론 너무 좋거든요. 꽃이라고 하시는 게, 저에 대해 ‘너무너무’ 미화시킨 애칭이라서…. (웃음) 그런 얘기를 듣고 싫어할 사람은 없다고 생각해요. 제가 들을 때마다 손사래를 치지만, 항상 그 말이 힘이 돼요. 그래서 그렇게 불러주시는 팬들게 감사한 마음이라는 걸 전하고 싶어요.”

▲ 꽃 중의 꽃, 정동花 “별명이요? 좋아하죠! 과찬이고…. 팬들께서 저를 기분 좋으라고 불러주시는 애칭이, 저는 너무 좋아요. 제가 제 입으로 얘기는 직접 하지 못하지만, 속으론 너무 좋거든요. 꽃이라고 하시는 게, 저에 대해 ‘너무너무’ 미화시킨 애칭이라서…. (웃음) 그런 얘기를 듣고 싫어할 사람은 없다고 생각해요. 제가 들을 때마다 손사래를 치지만, 항상 그 말이 힘이 돼요. 그래서 그렇게 불러주시는 팬들게 감사한 마음이라는 걸 전하고 싶어요.” ⓒ 곽우신


'꽃 중의 꽃' 정동화(花)로 불리는 배우. 2003년 데뷔 후 빼곡하게 채워온 그의 필모그래피를 돌아보면 밝은 역과 어두운 역, 선역과 악역, 주연과 조연, 대극장과 소극장이 모두 뒤섞여 있다. 대학로에서 가장 스펙트럼이 넓은 배우 중 하나로 꼽힐 만큼 정동화는 다종다양한 작품과 인물을 거쳐 왔다. 정동화는 어떤 옷을 입든 그 옷이 기성복이 아니라 맞춤형으로 제작된 것 마냥 소화했다.

정동화라는 배우가 가진 수많은 장점 중 최고는, 무슨 역을 하든 그 역의 매력을 한껏 잘 살린다는 것이다. 동시에 그러면서도 그것이 '정동화' 식으로 표현하는, '정동화가 연기하는' 인물이라는 점을 확실하게 관객에게 각인시킨다는 것이다. 그래서 정동화가 하면 다르다. 정동화가 하면 궁금하다. 배우로서의 일관성을 유지하며 매번 제 색깔을 잘 발휘하는 이도 있고, 어떤 옷을 입든 매번 다양한 변신을 보여주는 이도 있지만, 이 두 가지를 잘 조화시켜 동시에 해내는 이는 흔치 않다. 정동화는 '그 어려운 걸 자꾸 해내는' 배우이다.

그래서 배우 정동화가 자신이 입었던 인물 중에서 어떤 인물에게 가장 애착을 느낄지 궁금했다. 배우에게 소중하지 않은 작품이 있을리 없고, 배우가 사랑하지 않는 캐릭터가 없겠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떤 배우나 유독 가슴에 남는 작품이나 캐릭터가 하나쯤 있기 마련이다. 정동화는 주저 없이 <라흐마니노프>의 달 박사를 꼽았다.

"저는 사실 세 번의 시즌 중에서 이번 시즌이 가장 기억에 남았던 것 같아요. 왜인지는 모르겠어요. 지금과 더 가까운 시간이어 그랬는지는 모르겠지만, 전 너무 행복했고 감사하다는 말씀밖에 드릴 게 없네요."

뮤지컬 <라흐마니노프>가 지난 8일, 세 번째 시즌 총 38회의 공연을 마치고 막을 내렸다. '니콜라이 달' 역할을 맡은 배우 정동화는 "당신은 이미 사랑받는 사람입니다"라는 대사를 관객과 나누며 마지막 인사를 나눴다. 이 글은 <라흐마니노프>의 마지막 공연을 얼마 남기지 않은 어느 날, 서울 용산에 자리한 국립중앙박물관 내 카페에서 그를 만난 기록이다.

닫힌 줄 알았지만, 열려있던 마음

어디에나 '동화'되는 배우 “작품을 가지고 있는 제작사마다 색깔이 다르잖아요. 제가 정동화다 보니까 그거에 좀 ‘동화’가 되는 것 같아요. 이 대답 꼭 살려주세요. (웃음) 제가 분위기라는 걸 되게 중요하게 생각하거든요. 무드라고 하잖아요. 공기의 기운을 좋아해서, 작품이나 캐릭터마다 ‘이건 이런 기운인가?’ 싶으면 그렇게 저 스스로 바뀌려고 노력하는 것 같아요.”

▲ 어디에나 '동화'되는 배우 “작품을 가지고 있는 제작사마다 색깔이 다르잖아요. 제가 정동화다 보니까 그거에 좀 ‘동화’가 되는 것 같아요. 이 대답 꼭 살려주세요. (웃음) 제가 분위기라는 걸 되게 중요하게 생각하거든요. 무드라고 하잖아요. 공기의 기운을 좋아해서, 작품이나 캐릭터마다 ‘이건 이런 기운인가?’ 싶으면 그렇게 저 스스로 바뀌려고 노력하는 것 같아요.” ⓒ 곽우신


뮤지컬 <라흐마니노프>는 작곡가 라흐마니노프와 정신의학자 니콜라이 달 박사의 이야기이다. 평단과 관객으로부터 거세게 비판 받은 이후 슬럼프에 빠진 라흐마니노프는 어떤 곡도 쓰지 못한 채 몇 년 간 스스로를 유폐했다. 그런 그를 어설픈 비올라 연주 실력에 재치와 입담으로 무장한 니콜라이 달 박사가 찾아온다. 달은 라흐마니노프의 방문을 열면서 이렇게 말한다.

 "열려 있네요. 닫혀 있는 줄 알았는데."


"관객들이 봤을 때는 그 대사가 이중적으로 들리기를 바랐죠. 정말 그 문에 대한 얘기이기도 하고, 당신의 마음에 대한 얘기이기도 하고…. 무대 위에서 이 장면을 실현하는 배우 입장에서는, 마음 얘기를 조금 더 하는 것 같아요. 이미 라흐마니노프 자체가 '안 들어!'하고 외치면서도 '빼꼼'하고 계속 신경 쓰는 게 있거든요. 이미 열려 있는 것 같은데 닫혀있는 것 같고, 닫힌 것 같은데 열려 있고…. 그런 면에서 이중적인 의미를 담은 첫 대사라, 그 속뜻을 더 잘 전달하고 싶은 마음이 있어요."

2016년 초연 이후, 남배우 두 사람이 풀어내는 90분짜리 뮤지컬에 관객이 매번 호응하고 있는 건 이 작품이 담고 있는 '치유의 메시지' 덕분이다. 니콜라이 달은 라흐마니노프를 치유하기 위해 곁에 머무르며 그와 이야기를 나눈다. 달은 라흐마니노프가 왜 음악을 시작했는지, 왜 작품을 써야 하는지에 대해 상기시킨다. 그리고 말해준다.

 "당신은 이미 사랑받는 음악가입니다. 당신이 새로운 곡을 쓰건, 쓰지 않든, 관객들은 당신을 사랑해줄 것입니다."


"저와 공통점이 많이 있는 것 같아요. 초연 때 제안해 주셨을 때, HJ컬쳐 대표께서 '그냥 동화씨 생각하면서 달을 좀 그렸다'라고 해주셨어요. 그냥 저 좋으라고 하신 말씀인지는 잘 모르겠는데…. (웃음) 처음에 리딩을 할 때 보니까, 라흐마니노프는 슬럼프에 빠진 사람이고, 복잡한 심경 속에서 살아가는 인물이잖아요.

그와 반대되는 사람이 와서 이 사람을 풀어주려면 아무래도 조금은 더 여유가 있고, 조금은 일반적이지 않은 독특한 감성이 있어야 하지 않을까 생각했어요. 저도 평상시에 의외의 상황이나, 뜻밖의 상황을 좋아하거든요. '럭키'를 좋아해요. 그래서 럭키 같은 인물인 니콜라이 달을 좋아했어요. 서로가 서로의 럭키가 된 거죠. 니콜라이 달은 라흐마니노프를 고치려고 왔지만, 사실 달도 라흐마니노프를 통해서 치유를 받고 돌아가는 게 있잖아요. 서로의 행운이 되지 않았나 싶어요."

정동화가 만든 니콜라이 달 "제가 니콜라이 달을 만들 때, 그는 학문을 깊이 연구한 사람이다보니까 감성보다는 이성이 좀 더 발달된 사람일 거라고 생각했어요. 그러다보니 속마음을 쉽게 얘기하기도 쉽지 않았을 것 같아요. 직업적인 면에서도 쉽게 속마음을 못 꺼냈던 것 같아요. 약간 서툴 수도 있고, 자기 마음을 밝히고 싶어하지 않는…."

▲ 정동화가 만든 니콜라이 달 "제가 니콜라이 달을 만들 때, 그는 학문을 깊이 연구한 사람이다보니까 감성보다는 이성이 좀 더 발달된 사람일 거라고 생각했어요. 그러다보니 속마음을 쉽게 얘기하기도 쉽지 않았을 것 같아요. 직업적인 면에서도 쉽게 속마음을 못 꺼냈던 것 같아요. 약간 서툴 수도 있고, 자기 마음을 밝히고 싶어하지 않는…." ⓒ 곽우신


그러나 니콜라이 달이 처음 라흐마니노프에게 접근한 건 순수한 선의 때문만이 아니었다. 라흐마니노프를 치료하는 데 성공하면 자신의 명예와 인지도도 높아지리라 생각했다. 그 유명한 지크문트 프로이트와 같이 말이다. 라흐마니노프는 니콜라이 달에게 위로하고 싶은 환자이기도 하면서, 동시에 자신을 성공의 길로 이끌어 줄 수단이기도 했다.

"어떤 분들은 달이 정말로 유명해지고 싶어서, 본인의 입지를 높이기 위해서만 그런 줄 아시더라고요. 그런 것도 당연히 있지만, 사실 그게 반반이에요. 그 이전에 달이 미국에서 유학하던 시절 얘기가 나오잖아요. 그 시절에 느낀 게 가장 우선인 것 같아요. 언젠가 저 사람을 만나고 싶다는 막연한 희망이 있었는데, 우연치 않게 자기의 전공과 관련된 것과 연결될 수 있게 된 거죠. 그런 생각이 복합적으로 이뤄지면서 라흐마니노프를 찾아왔다는 생각이 들어요.

1번은 유학시절의 그 기억이라고 생각해요. 니콜라이 달도 혼자였고, 외로워서 바닥만 보면서 길을 걸었다고 하잖아요. 그런 달을 치료해줬던 음악이 라흐마니노프의 음악이었으니까요. 자기의 직업과 명성과 관련된 부분은 두 번째죠."

서로 각자의 비올라

정동화에게도 슬럼프가 있을까 “저는 의외로 슬럼프가 자주 있어요. 매일 있죠. 매일 그리고 매순간 있어요. 그리고 또 순간순간 누구를 통해서, 어떤 대화를 통해서 혹은 어떤 이미지를 통해서 영감을 받기도 하고 극복해요. 지나가다 관찰한 누군가의 일 때문에 기분이 좋아질 때가 있잖아요. 정말 사소한 걸 통해서 극복할 때가 많은 것 같아요.”

▲ 정동화에게도 슬럼프가 있을까 “저는 의외로 슬럼프가 자주 있어요. 매일 있죠. 매일 그리고 매순간 있어요. 그리고 또 순간순간 누구를 통해서, 어떤 대화를 통해서 혹은 어떤 이미지를 통해서 영감을 받기도 하고 극복해요. 지나가다 관찰한 누군가의 일 때문에 기분이 좋아질 때가 있잖아요. 정말 사소한 걸 통해서 극복할 때가 많은 것 같아요.” ⓒ 곽우신


미국 유학 시절 외롭고 힘들었던 그의 귀에 언뜻 라흐마니노프의 선율이 들려왔다. 뭐에 홀린 듯 그 소리를 들은 그는, 라흐마니노프의 음악을 통해 치유 받고 계속해서 공부를 이어갈 수 있었다. 이제는 차례가 바뀌었다. 라흐마니노프가 니콜라이 달에게 힘이 되어줬던 것처럼, 니콜라이 달이 라흐마니노프에게 힘이 되어줄 차례가 온 것이다. 그러나 달에게 마음을 점차 열어가던 라흐마니노프에게, 달에게 현실적인 목적이 있었다는 사실은 충격이자 배신으로 다가온다.

"'당신은 나를 고치고 싶은 이유가 없는 거냐'고 라흐마니노프가 물어보잖아요. 니콜라이 달은 구구절절하게 그 자리에서 이야기하고 싶었을 거예요. 만약 저라면 '솔직히 얘기하자면' 하고 다 얘기했을 것 같아요. 하지만 박사라면, 자기를 감싸고 있는 아우라가 있잖아요. 이 상황에서 자기 자존심을 굽히고 싶지 않았을 거란 생각이 드는 거예요. 이 시점에서는 솔직해져도 되는 거였는데, 솔직하지 못한 것에 대한 부끄러움과 후회, 만감이 교차했던 것 같아요.

그 후에 달이 라흐마니노프를 떠나려고 했던 건 진심이었던 것 같아요. 가방 싸고 떠나려는 건 진심인데, 사실 내 마음에, 가슴 깊이 속 안에 있는 이 이야기를 안 하고 떠나면 나 너무 후회할 것 같은 거죠. 그래서 발길을 돌려서 그제야 솔직한 마음 꺼낸 거죠."


떠나려고 가방을 쌌던 니콜라이 달은 발길을 돌려 라흐마니노프에게 한참 자기 얘기를 한다. 이전까지는 라흐마니노프의 속마음만 꺼내 들을 수 있었다. 달은 질문하고, 라흐마니노프는 대답하고. 그런데 처음으로 라흐마니노프는 니콜라이 달의 가슴 속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그들은 서로가 다른 사람에게는 쉽게 할 수 없는 내밀한 이야기를 주고 받았다. 그렇게 서로가 공유하는 비밀과 상처가 커질수록, 서로는 유대하고 연대하며 끌어안게 된다.

"원래 사람이, 다른 사람에게 자기의 추한 모습을 잘 보여주고 싶어하지 않잖아요. 자기의 깊은 속마음이라든지, 자기가 잘 못하고 있는 거라든지, 부족한 거라든지…. 달은 자꾸 보게 돼요. 라흐마니노프가 작곡에 실패하는 것도 보고, 만신창이가 된 것도 보죠. 달은 그런 걸 보면서 '아, 왜 저렇게 추하지?'라고 생각하기 보다는 '나는 왜 저렇게 솔직하지 못하지?'하는 질문을 던질 거라고 생각해요. '나도 저렇게 자유롭고 싶다'는 마음이 있거든요.

되게 겉보기에 정돈된 사람들은 그런 모습을 최대한 안 보여주려고 노력하는 부분들이 있거든요. 자기 치부도 드러내는 사람을 보면, 오히려 조금 부러워하는 측면도 있을 수 있다고 생각해요. 그걸 보면서 마음을 여는 거죠. 사실은 '나, 당신 팬이었다'라고 이야기하고 싶지 않았을 텐데, 라흐마니노프의 어떤 인간적인 모습을 보면서 '내가 왜 이걸 감춰왔나'하며 그런 것들을 좀 배운 것 같아요. 나도 솔직하게 내 마음을 있는 그대로 전하고 싶다는 마음, 솔직함, 인간다움을 배운 게 아닐까요. 박사라는 타이틀을 버리고 인간 대 인간으로서의 모습으로 라흐마니노프를 마주하면서 깨닫게 된 것 같아요."


정동화의 꿈 “어디 가서 ‘어떤 배우가 되고 싶냐?’라는 질문 받을 때마다, ‘좋은 사람이 되고 싶다’라는 대답을 해요. 배우는 직업이잖아요. 직업 이전에 좋은 사람이 되고 싶다는 생각을 항상 해요. 좋은 배우가 되는 건 두 번째 문제이죠. 그리고 저는 제가 하는 일에 있어서는 이미 꿈을 이뤘어요. 오랫동안 이 일을 계속하는 게 또 다른 꿈이지만, 좋은 사람이 되는 게 제 꿈이에요. 그리고 또 다른 꿈은, 와이프의 꿈을 이뤄주는 것. 그게 제 꿈이에요.”

▲ 정동화의 꿈 “어디 가서 ‘어떤 배우가 되고 싶냐?’라는 질문 받을 때마다, ‘좋은 사람이 되고 싶다’라는 대답을 해요. 배우는 직업이잖아요. 직업 이전에 좋은 사람이 되고 싶다는 생각을 항상 해요. 좋은 배우가 되는 건 두 번째 문제이죠. 그리고 저는 제가 하는 일에 있어서는 이미 꿈을 이뤘어요. 오랫동안 이 일을 계속하는 게 또 다른 꿈이지만, 좋은 사람이 되는 게 제 꿈이에요. 그리고 또 다른 꿈은, 와이프의 꿈을 이뤄주는 것. 그게 제 꿈이에요.” ⓒ 곽우신


오케스트라에서 각 악기에게는 서로 다른 역할이 주어진다. 어떤 악기는 화려하게 전면에 나서며 곡을 표현하지만, 또 어떤 악기는 뒤에서 묵묵하게 다른 선율이 더 빛날 수 있도록 받쳐준다. 예컨대 비올라가 그렇다. 우리는 때로 간절하게 비올라 같은 사람을 필요로 하고, 또 어떨 때는 누군가를 비올라처럼 감싸 안아줄 수 있다. 니콜라이 달이 그 어설픈 솜씨로 비올라를 연주하는 건 우연이 아닐지 모른다.

"비올라가 약간 본인 같아요, 니콜라이 달처럼. (웃음) 니콜라이 달은 되게 반듯해 보이지만, 사실 비올라 작동법을 잘 몰라요. (웃음) 서툰 거죠. 저는 니콜라이 달이 '서툴러도 괜찮다'고 하는 대사들이 마치 자기에게 하는 말 같아요. 화려하거나 기교가 풍성하진 않지만, 리드하기보다는 받쳐주는 비올라가 니콜라이 달 자체 같아요.

처음에 작품 만들 때, 연습 초반에는 바이올린으로 하려고 했어요. 실제로 달이 아마추어 비올리스트였다는 얘기를 듣고 비올라를 채택한 거거든요. 니콜라이 박사 자체가 본인과 닮은 악기를 선택한 것 같아요. 신기하죠. 우리는 사소한 걸 고를 때도, 하다못해 음료수를 마실 때도 자기랑 어울리는 걸 고르기 마련이잖아요. 그래서 더 좋아하고, 사랑하고, 육감적으로 끌리는 것처럼, 니콜라이 달도 자기와 닮은 비올라를 좋아한 게 아닐까요."


최근, 첼로를 좋아하던 한 정치인이 세상을 떠났다. 그는 언제나 재치와 비유로 특유의 입담을 과시하며 누군가에게는 위로와 힘이 됐던 사람이었다. 그런데 정작 그는 다른 사람으로부터 그런 위로와 힘을 충분히 받지 못한 것 같다. 그가 떠난 뒤 슬퍼하는 사람들은, 그에게 비올라가 되어주지 못한 데 대한 미안함이 아닐까.

어떤 배우의 '대표작'이라는 의미

<라흐마니노프>를 향한 애정 "할 때마다 기간이 그렇게 길지 않아서 그런 건지는 모르겠지만, 참여하는 배우를 포함해서 <라흐마니노프> 주변의 모든 사람이 이 작품을 많이 아끼고 사랑하는 것 같아요. 식상한 얘기인데, 사실 이번에 제안을 주셨을 때 생각의 여지도 없이 무조건 참여하고 싶었죠. 공연 작품이라는 게 매년마다 올라가는 게 아니잖아요. 이후에는 어떻게 될지 모르겠지만, 할 수 있는 데까지는 최선을 다해서 <라흐마니노프>를 하고 싶어요.”

▲ <라흐마니노프>를 향한 애정 "할 때마다 기간이 그렇게 길지 않아서 그런 건지는 모르겠지만, 참여하는 배우를 포함해서 <라흐마니노프> 주변의 모든 사람이 이 작품을 많이 아끼고 사랑하는 것 같아요. 식상한 얘기인데, 사실 이번에 제안을 주셨을 때 생각의 여지도 없이 무조건 참여하고 싶었죠. 공연 작품이라는 게 매년마다 올라가는 게 아니잖아요. 이후에는 어떻게 될지 모르겠지만, 할 수 있는 데까지는 최선을 다해서 <라흐마니노프>를 하고 싶어요.” ⓒ 곽우신


정동화는 <라흐마니노프>를 정말로 사랑하고 있었다. "할 수 있는 한 계속 하고 싶은 작품"이라며, <라흐마니노프>가 돌아올 때마다 자신의 자리가 있기를 바랐다. 이 배우에게는 그만큼 특별한 작품. 무엇이 <라흐마니노프>를 정동화에게 더욱 특별한 의미가 있는 작품으로 만들었을까? 작품 자체의 힘, 대사가 주는 메시지 그리고 정동화라는 배우에게 개인적으로 남겨진 의미까지 이유는 다양했다.

"<라흐마니노프>는 저의 '대표작'입니다. 뭐라고 해야 할까…. 명예로운 훈장 같은 작품! 누가 와도 부끄럽지 않게 보여줄 수 있는 작품이거든요. 저 스스로 이 작품에 참여하는 것 자체가 훈장을 받은 것 같아요. 솔직히 말하면 '1번'이에요. 이게 제가 이 작품을 해서 이런 말씀 드리는 게 아니고…. (웃음) <라흐마니노프>가 제게는 1번이에요. 제가 몇 년 후, 작품을 계속하다가 또 다른 영광의 작품을 만날지 모르겠지만, 지금 시점에서 대답하자면 1번이에요. 사람들이 저를 기억할 때 '라흐마니노프의 정동화'라고 기억한다면, '아, 나 뮤지컬 잘했구나'라고 생각할 것 같아요.

누구에게 보여드려도 만족시켜드릴 수 있다는 제 개인적인 자부심도 있고, 더불어서 처음으로 시상식에서 제 이름으로 후보에 오른 작품이어서 더 감사하죠. 우리나라에 두 개밖에 없는 시상식에 두 번 다 라흐마니노프라는 이름으로 후보로 오른 게 너무 감사한 일이어서, 상을 못 탔지만 그것만으로도 너무 영광스럽고 감사하죠.

또 시간이 지나면서, 저도 나이를 한 살씩 먹어가면서 대사들이 갖고 있는 의미들이 바뀌어요. 생각지도 못했던 대사들이 훅훅 들어올 때가 있어요. '저는 뭘 해야 할까요?'라고 라흐마니노프가 물어보면 '거꾸로 물어볼게요. 당신은 뭘 하고 싶어요?'라고 제가 물어봐요. 정말로 평범한 말인데, 그때부터 라흐마니노프의 심경에 변화가 일어나거든요. 지금 얘기하면서도 계속 두근거려요. '나도 내가 정말 좋아하고 있는 게 맞나?' 싶어서요. '음악도 그렇게 시작했나요?'라고 달이 물어보는데, 이게 라흐마니노프를 울리게 하는 질문들이지만, 스스로에게 던지는 질문이기도 하거든요. 그 대사를 할 때 가끔 울어요. 거기가 슬픈 부분이 아닌데도, 그 말이 막 저를 때리면서 오는 거죠. 지금도 살짝 올라오는데…. 저에 대해서, 제 인생에 대해서 생각하게 하는 진짜 좋은 작품인 것 같아요."


뮤지컬 <라흐마니노프>가 또 언제 돌아올까. HJ컬쳐의 인기 있는 레퍼토리 공연으로 자리잡은만큼, 그 공백이 그렇게 길 것 같지는 않다. 그리고 그 자리에는 언제나 이 작품을 훈장으로 여기는 정동화 배우도 있을 것 같다. 우리 모두는 비올라 같은 누군가로부터 위로를 필요로 하고, 동시에 누군가에게 비올라처럼 위로를 줄 수 있는 존재이니까. 세상엔 더 많은 비올라가 필요하니까.

"니콜라이 달이 라흐마니노프에게 던지는 질문이 제게 많은 생각을 불러일으키는 것처럼, 관객들에게도 스스로 질문을 던질 수 있도록 하는 좋은 대사라고 생각해요. 개인의 즐거움이나 위로, 해소 등을 위해 공연을 보지만, 더 나아가 교훈까지 줄 수 있는 공연이 정말 좋은 것 같아요. 재미도 있으면서도 유익한, 지금 나에 대해서 고찰하고 성찰할 수 있는 질문을 던지는 작품이 <라흐마니노프>입니다. 그러니 <라흐마니노프>를 보신 관객들께서도 자기 자신의 삶을 돌아보고, 그 삶을 한번 추억할 수 있는 시간을 가졌으면 좋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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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5월 공채 7기로 입사하여 편집부(2014.8), 오마이스타(2015.10), 기동팀(2018.1)을 거쳐 정치부 국회팀(2018.7)에 왔습니다. 정치적으로 공연을 읽고, 문화적으로 사회를 보려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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