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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9일 박종철 열사의 아버지인 박정기씨의 빈소.
 29일 박종철 열사의 아버지인 박정기씨의 빈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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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종철 열사의 아버지 박정기 선생의 빈소에 1987년 6월 항쟁을 지켜본 '그때 그 사람들'의 발걸음이 이어지고 있다. 검찰과 경찰의 수장도 잇따라 찾아 과거의 잘못을 다시 한 번 참회했다.

28일 새벽 향년 89세로 별세한 고인의 빈소에는 29일에도 조문객들의 발걸음이 꾸준히 이어졌다. 이들은 아들의 죽음 이후 민주화운동의 구심점이 된 전국민족민주유가족협의회(유가협)을 이끌었던 고인을 추모했다.

특히 지난 30여 년간 함께 거리에서 싸워온 유가협 회원들은 착잡한 표정을 감추지 못했다. 이한열 열사의 어머니 배은심씨는 "지난 3월 병원에서 종철이 아버지를 뵈었을 때 흐릿한 기억 속에서도 '한열이 엄마'라고 나를 알아봐서 반가웠는데 그게 마지막이었다"라며 안타까워했다.

배씨는 "금쪽같이 키운 자식이 더러운 놈들의 손에 죽임을 당했다는 것에 눈을 감고 가실 수 있을까 했는데 입관식 때 보니 눈은 감고 계시더라"고 말하며 눈시울을 붉혔다.

그러면서 배씨는 "민중들이 잘살 수 있는 세상이 민주화 운동을 외치다가 죽은 사람들이 바라던 세상이었다"라면서 "정치를 하는 사람들도 그런 쪽으로 활약을 해주었으면 좋겠다"는 바람을 전했다.

박종철 죽음 밝힌 검사, 빈소 찾아 "고문으로 목숨 잃는 일 다시 없게"
박종철 열사의 죽음을 은폐하려던 경찰에 맞서 고문 사실을 밝혀내는 데 기여했다는 평가를 받는 최환 당시 검사도 28일 박 열사의 아버지 박정기씨의 빈소를 찾아 조문한 뒤 방명록을 남겼다.
 박종철 열사의 죽음을 은폐하려던 경찰에 맞서 고문 사실을 밝혀내는 데 기여했다는 평가를 받는 최환 당시 검사도 28일 박 열사의 아버지 박정기씨의 빈소를 찾아 조문한 뒤 방명록을 남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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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 해직 기자로 박종철 고문치사 사건의 진실을 은폐하려는 움직임을 세상에 알리는 역할을 한 이부영 전 더불어민주당 상임고문도 빈소를 찾았다.

이 전 고문은 "민주화운동에서 큰 역할을 하시던 어르신들이 하나둘씩 세상을 떠나는 모습을 보니 마음이 아프다"라고 말했다. 이 전 고문은 한동안 빈소에 머물며 과거 민주화운동을 함께한 지인들과 시간을 보냈다.

박종철 열사의 이야기를 다뤘던 영화 <1987>의 제작진도 조화를 보내 고인을 넋을 기렸다. 영화에서 대공수사처장을 연기했던 배우 김윤석씨는 별도의 조화를 보냈다. 그는 박 열사의 부산 혜광고등학교 후배이기도 하다.

영화 <1987>에서 박종철 열사의 부검을 방해하는 경찰에 맞선 검사의 실제 인물인 최환 변호사는 지난 28일 조용히 빈소를 다녀갔다. 최 변호사는 방명록에 "이 땅의 우리 딸이 고문으로 목숨을 잃은 일이 다시는 없게 인권이 보장되고 정의가 살아있는 민주화운동을 위해 목숨을 바친 아드님 곁으로 가시어 영면하시옵소서"라고 적었다.

임종석·조국 청와대 인사 연달아 빈소 찾아

29일 오후 박종철 열사의 아버지 박정기씨의 빈소를 찾은 임종석 대통령 비서실장이 고인의 부인인 정차순씨의 손을 잡고 있다.
 29일 오후 박종철 열사의 아버지 박정기씨의 빈소를 찾은 임종석 대통령 비서실장이 고인의 부인인 정차순씨의 손을 잡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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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재인 대통령도 조화를 보내 고인의 명복을 빌었다. 청와대 인사들의 빈소 방문도 계속됐다. 대학생으로 6월항쟁을 보낸 임종석 청와대 비서실장은 일부 유족에게만 알린 뒤 29일 오후 빈소를 찾았다.

임 실장은 "아버님한테는 정말 가혹하고 부당하고 먼 길이었을 거라고 생각한다"라면서 "그 긴 시간을 한결같이 당신이 있어야 할 자리에 말뚝처럼 지켜낸 삶"이라고 고인을 추모했다. 임 실장은 "뭐라고 설명할 수 없는 경외감을 살면서 느낀다"라면서 "다른 거 없이 이제는 아드님 곁에서 편히 쉬셨으면 좋겠다"라고 덧붙였다.
조국 청와대 민정수석이 29일 오전 박종철 열사의 아버지인 박정기씨의 빈소를 찾아 조문했다.
 조국 청와대 민정수석이 29일 오전 박종철 열사의 아버지인 박정기씨의 빈소를 찾아 조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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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종철 열사의 고교·대학 선배인 조국 청와대 민정수석도 조문했다. 조 수석은 2시간 가까이 빈소에 머무르며 유족들을 위로했다. 조 수석은 "사적으로는 제 후배의 아버님이기도 하지만 제가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저를 격려해주시고, 많은 조언의 말씀을 해주셨기 때문에 문상을 왔다"라고 말했다.

이어 조 수석은 고인에 대해 "박종철 열사의 아버지로서뿐 아니라 우리 모두의 아버지였다"면서 "단순히 박종철 아버지란 거 외에 우리 사회 민주화운동을 위해서 헌신해온 분"이라고 덧붙였다.

남영동 대공분실 거쳐 아들 곁으로 가는 고인

29일 낮 박종철 열사의 아버지 박정기씨의 빈소를 방문한 박정기 법무부 장관이 이한열 열사의 어머니인 배은심씨와 인사를 나누고 있다.
 29일 낮 박종철 열사의 아버지 박정기씨의 빈소를 방문한 박정기 법무부 장관이 이한열 열사의 어머니인 배은심씨와 인사를 나누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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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경의 수장들은 부산에서 다시 한번 과거의 잘못을 반성하며 변화를 다짐했다. 28일 민갑룡 경찰청장은 "평생을 자식 잃은 한으로 살아오셨을 고인에 대해 속죄하는 마음으로, 고인이 평생 바라셨던 민주 인권, 민생 경찰로 거듭나겠습니다"라고 방명록에 남겼다.

문무일 검찰총장은 방명록에 "박정기 선생님께서 남겨주신 뜻, 박종철 열사가 꾸었던 민주주의의 꿈을 쫒아 바른 검찰로 거듭나 수평적 민주주의를 구체적으로 구현하는 데 이바지 하겠습니다"라고 썼다.

29일에는 낮에는 박상기 장관을 비롯한 법무부 관계자들이 빈소를 찾았다. 조문을 마친 박 장관은 "국가 폭력이 개인과 가정을 더 이상 고통스럽게 하는 일이 없었으면 하는 마음을 가지고 있다"라고 취재진에게 말했다.

고인의 발인은 31일이다. 부산 영락공원에서 화장한 뒤 서울로 가 박종철 열사가 고문을 받다가 사망한 남영동 대공분실을 돌아본다. 또 유가협 회원들이 서로를 의지했던 공간인 '한울삶'을 찾은 뒤 박종철 열사의 가묘가 있는 마석 모란공원에서 영면에 든다.

박종철 열사의 유해는 화장해 임진강에 뿌려졌지만, 2년 뒤 임진강에서 가져온 흙으로 박종철 열사의 가묘를 만들었다. 유족 측은 고인이 평소 아들의 곁에 잠들기를 원했다고 전했다.


태그:#박정기, #박종철, #198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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