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성당의 시대가 찾아왔어." 뮤지컬이 생소한 사람들도 한 번쯤은 들어봤을 법한 '대성당들의 시대'를 시작으로 15세기 프랑스 파리의 이야기가 펼쳐진다. 뮤지컬 <노트르담 드 파리>의 배경은 교회가 세상의 중심이던 시절이다. 당시는 성직자나 귀족들은 죄를 지어도 넘어갔지만 민중들은 마녀라는 누명을 쓴 채 처형당하는 불합리한 사회였다. 이런 시대적 상황 때문에 '사랑하는 방식'도 계층, 신분, 직업에 따라 달랐다. 작품은 한 여자를 향한 세 남자의 사랑을 주제로 당시 파리의 사회와 인간상을 보여준다.

서로 다른 세 남자가 사랑하는 법

 에스메랄다를 두고 콰지모도, 프롤로, 페뷔스 세 남자가 자신의 사랑 이야기를 한다.

에스메랄다를 두고 콰지모도, 프롤로, 페뷔스 세 남자가 자신의 사랑 이야기를 한다. ⓒ 마스트엔터테인먼트


대성당 노트르담 광장에는 집시 무리들이 살고 있었다. 자유로운 방랑의 삶을 사는 이들에게 춤과 노래는 일상이었다. 그중 단연 눈에 띄는 사람은 아름다운 여인 '에스메랄다'였다. 그녀의 매력은 작품 속 '보헤미안' 노래에서 모두 드러난다. 리듬을 타는 우아한 몸짓으로 등장 할 때면 모든 사람들의 시선을 빼앗는다. 관능적으로 보이지만 초롱초롱한 눈빛 속에는 순진하고 열정적인 모습도 있다.

그런 에스메랄다를 남몰래 사랑하는 남자들이 있었다. 성당의 종지기 '콰지모도'는 곱추에 에꾸눈, 절름발이였다. 놀림 받는 건 일상이었고 어린 시절에는 부모에게까지 버림받았다. 다행히 성당의 주교 '프롤로'에 의해 길러져 종치는 일을 하며 살았다. 외모는 무서울지 몰라도 마음만은 누구보다 착한 콰지모도는 에스메랄다에 대한 사랑조차 한없이 따뜻했다. 자신의 모든 걸 바칠 정도로 바보같이 사랑했다.

신부 '프롤로'는 성직자로서 오직 신만을 위해 사는 사람이었다. 그런데 에스메랄다를 본 뒤 새벽 기도가 끊겼고 욕망으로 가득 차버렸다. '가질 수 없다면 없애버린다'는 말이 딱 프롤로에게 어울리는 말이다. 그는 자신과 함께 할 수 없는 에스메랄다를 보고는 파멸의 길을 택한다. 프롤로의 서사는 강하고 극적으로 표현되는데 그중 최고의 장면은 '신부가 되어 한 여자를 사랑한다는 것'이다. 여자를 마음에 품게 된 자신을 원망하는 대목에서 관객을 설득시켜버리기에도 충분했다.

파리의 근위대장 '페뷔스'는 지금 시대로 치면 전형적인 나쁜 남자다. 이미 약혼자가 있는데도 에스메랄다를 유혹한다. 그녀의 사랑을 얻었지만 곤경에 처하자 바로 외면하고 약혼자에게 용서를 구한다. 극중 나오는 '괴로워'라는 노래는 두 여자 사이에서 고뇌하는 페뷔스의 모습이 나온다. 그의 노래와 댄서들의 무용이 합쳐져 명장면이 나왔다. 여러 명의 댄서들은 어두운 조명 속에서 페뷔스가 노래 할 때마다 몸부림친다. 한 소절에 한 명씩 나왔다가 절정에서는 모두가 춤을 추며 끝난다.

참 불공평한 세상이었다. 사랑한다는 이유로 누구는 마녀 사냥으로 처형되고 누구는 죄를 짓고도 의심조차 받지 않는다. 다양한 인물들의 성격과 환경에 따라 새로운 이야기들이 펼쳐지는 게 놀랍기도 하고 화가 나기도 한다. 뮤지컬<노트르담 드 파리>는 등장인물의 숫자도 많은데 각 인물마다 쌓아나가야 할 서사도 많기 때문에 모든 인물들의 균형이 잘 맞아야한다. 누가 하나 튀거나 뒤쳐진다면 파리의 사랑 이야기가 아니라 특정 인물의 사랑 이야기가 되기 때문이다.

왜 <노트르담 드 파리>가 유명한가

 뮤지컬 <노트르담 드 파리>의 한 장면. 종 위에서도 댄서들이 춤을 추고 있다.

뮤지컬 <노트르담 드 파리>의 한 장면. 종 위에서도 댄서들이 춤을 추고 있다. ⓒ 마스트엔터테인먼트


1998년 프랑스 초연 이후 지금까지 오랜 시간 사랑 받는 건 원작 '빅토르 위고'의 소설이 워낙 탄탄해서다. 그는 프랑스 대문호 낭만주의 대표자로 시대상을 작품에 잘 녹여내고 낭만적으로 쓰는데 탁월한 능력을 가졌다. 또한 뮤지컬로 탄생시킨 '뤽 플라몽동'은 '가장 프랑스적이면서도 전 세계적으로 공감을 불러일으킬 만한' 작품을 만드는 데 심혈을 기울였다. 세계적으로 사랑 받는 작품들의 공통점이 바로 이것이다. 가지고 있는 문화적 특색을 유지하되 공감대를 형성하는 것. 뮤지컬 <노트르담 드 파리>는 당시 파리의 상황, 누구나 공감할 짝사랑 이야기, 배신 이야기 등을 화려한 안무와 탄탄한 노래들로 탄생시키면서 성공할 수 있었다.

뮤지컬에 할 수 있는 모든 걸 구현한 무대

광활한 무대 위, 독수리의 부리에 뱀의 꼬리를 가지고 있는 기괴스러운 반인반수 석상이 보인다. 울퉁불퉁한 높은 성벽에 어두침침한 조명까지 한 마디로 음산하다. 이곳은 뮤지컬 <노트르담 드 파리>의 무대인 파리 대성당 노트르담이다. 유명세와 무색할 만큼 무대는 참 간결하다. 그런데 공연이 시작되면 이런 생각은 금방 달아나버린다. 족히 100kg은 넘어 보이는 거대 종이 3개나 천장에서 내려오고 댄서들은 종 위에서 춤을 춘다. 춤도 모자라 종의 줄을 잡고 점프했다가 다시 착지한다.

공연이 끝난 뒤 여운이 참 오래갔다. 노래도 좋았고 이야기도 좋았지만 성당의 음산한 분위기와 댄서들의 춤이 자꾸만 떠오른다. 뮤지컬 <노트르담 드 파리>의 특징이 바로 '배우와 댄서의 경계가 확실한 것'이다. 극의 분위기를 댄서들과 무대 세트가 주도한다. 간결한 듯 무대를 비워두지만 필요할 때는 최소한의 장치로 최대의 효과를 내는 '한 방'을 꺼내든다. 현대무용, 아크로바틱, 브레이크 댄스가 동시에 나오는 뮤지컬이라니. 성벽을 기어오르는 클라이밍부터 고난도 비보잉 동작까지 감탄이 저절로 나온다. 그런데 작품은 이런 어마어마한 안무를 하면서도 관객들의 환호를 불러일으키는 게 아니라 극 속에 자연스럽게 녹아드는 데에 집중했다. 처음에는 신기해하며 보지만 나중에는 당연하다는 듯이 고난도 안무를 보고 있는 자신을 발견할 지도 모른다.

모든 걸 노랫말로 전하는 송스루 뮤지컬

브로드웨이 뮤지컬은 노래 도중에도 대사가 자주 나온다. 포인트로 중독성을 살리기 위해 그러기도 하고 매끄러운 설명을 위해서이기도 하다. 그런데 <노트르담 드 파리>는 거의 대사가 없을 정도로 51곡의 노래들이 연이어 나온다. 이처럼 노래로 엮인 뮤지컬을 '송스루(song-through) 뮤지컬'이라고 부른다. 때문에 송스루 뮤지컬이 성공하려면 노래가 탄탄해야만 한다. 좋은 멜로디는 물론이고 가사에 극 내용과 인물의 감정이 잘 드러나야 하는데 극을 본지 꽤 지난 지금까지 매일 좋아하는 노래를 바꿔가며 흥얼거리는 나를 보니 성공한 노래인 것 같다.

작품의 해설자이자 파리 거리의 음유시인 그랭구와르가 극의 시작을 알리는 노래 '대성당들의 시대'는 대성당 시대의 도래와 인간의 끝없는 욕망으로 인한 종말을 이야기한다. 이 노래가 흘러나오면 관객들의 집중력이 한 번에 올라간다. 그랭구와르의 손짓에 따라 움직이는 석상과 성벽들에 아름다운 목소리까지 얹어지니 그야말로 장관이다.

마지막 곡인 '춤을 취요 에스메랄다'는 죽은 에스메랄다를 껴안고 콰지모도가 부르는 노래다. 다시 한 번만 춤을 추라고 애원하다가 그녀를 소중히 안고 "내 품에서 잘자요"라고 말하는 콰지모도를 보고 있으면 나도 모르게 눈물이 난다. 극 내내 착해서 이용만 당하던 콰지모도를 보고 답답하다고 생각했었다. 그런데 끝까지 순수하게 에스메랄다를 사랑하는 모습을 보니 대체 그 사랑이 뭔지 궁금하기도 하고 덩달아 슬퍼졌다. 많은 인물들 중 콰지모도에게 극의 마지막을 맡긴 건 작품에서 순수한 사랑, 착한 사랑을 강조하고 싶었던 게 아닐까.

솔직한 노트르담 사람들

 사람들에 놀림받는 곱추 콰지모도가 짝사랑 상대 에스메랄다를 바라보고 있다.

사람들에 놀림받는 곱추 콰지모도가 짝사랑 상대 에스메랄다를 바라보고 있다. ⓒ 마스트엔터테인먼트


이 이야기는 욕망과 사랑에 솔직했던 사람들의 이야기다. 모든 인물들은 자기 사랑을 찾아 노력했다. 이점에서 아픈 사랑이기는 해도 한심해 보이지는 않는다. 사랑할 용기, 모든 걸 바칠 용기가 오히려 부러웠다. 사실 이렇게 유명한 대작에는 관객들의 기대치가 높다. 제대로 작품의 이야기를 알지 못한 채 공연장을 찾는 사람들도 많을 것이다. 그래서 막상 보면 사랑 타령이라고 시시해 할 수도 있다. 시대상을 반영했다지만 파리에 대한 엄청난 내용들이 나오지도 않는다. 하지만 뮤지컬 <노트르담 드 파리>처럼 완성도 높은 노래, 촘촘히 쌓아진 서사, 다양한 안무와 세트를 보여주는 작품은 아직 못 봤다. 진정한 사랑의 의미를 생각하게 되는 뮤지컬 <노트르담 드 파리>를 추천한다.

덧붙이는 글 서울 공연은 8월 5일까지 세종문화회관 대극장에서 하고, 지방 공연은 김해, 부산, 울산, 대전, 안동, 대구, 고양 등에서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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