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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다크투어는 지난 4월 (사)제주생태관광협회, 글로벌이너피스와 함께 '(주)평화여행자라'라는 여행사를 설립했습니다. (주)평화여행자는 첫 사업으로 지난 7월, '광주오월민주여성회'와 오키나와 평화기행을 다녀왔습니다. 광주오월민주여성회는 1980년 광주 5.18 민주화항쟁 당시 시민군으로 활동하시고 이후 구속 등 고초를 겪으셨던 유공자 분들과, 그 뜻에 함께하면서 여러 분야에서 활동하고 있는 후배 여성활동가 분들로 구성된 모임입니다. 광주오월민주여성회는 제주다크투어의 첫 참가자 분들이시기도 해서 더욱 뜻깊은 만남이었습니다. 7월 5일부터 8일까지 3박 4일동안 진행된 오키나와 평화 기행 이야기를 3회에 걸쳐 나눠 싣습니다. - 기자 말

찌는듯이 더운 7월, 평화여행자는 '광주오월민주여성회'와 함께 오키나와로 가는 비행기에 몸을 실었습니다. 지난해 11월, 광주의 저항정신을 제주 4.3과 나누고 광주와 제주가 서로 힘을 북돋워주는 시간을 갖고싶다며 제주를 찾아주셨던 '광주오월민주여성회' 회원분들께서 이번에는 오키나와와 연대하기 위해 평화기행을 신청하셨어요. 다시 만나뵈어서 반갑고도 설레는 마음을 안고 함께 오키나와로 출발했습니다.

 오키나와 공항에서 우리를 반갑게 맞아주신 한오키나와 민중연대의 오키모토 선생님
 오키나와 공항에서 우리를 반갑게 맞아주신 한오키나와 민중연대의 오키모토 선생님
ⓒ 제주다크투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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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날(7월 5일), 늦은 시각 도착해 오키나와 시민단체 분들과 교류하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전쟁과 기지에 반대하는 여성들의 모임 회원들, 오랜 시간 한국과 교류해 오신 한-오키나와 민중연대 선생님들, 헤노코 기지 앞에서 동아시아의 평화를 지키기 위해 온몸으로 저항하고 계신 평화활동가 분들이 한 자리에 모였습니다. 서로 언어는 달라도 평화와 인권을 지키기 위해 싸워온 그 경험을 가지고 끈끈한 연대를 이어갔습니다.

 일본 시민사회단체와의 교류회를 마치고
 일본 시민사회단체와의 교류회를 마치고
ⓒ 제주다크투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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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날 아침, 일찍 일어나 오키나와 역사를 볼 수 있는 오키나와 현립박물관으로 향합니다. 그런데 아뿔싸, 1년에 한 번 있는, 정기 청소 주간에 딱 걸렸습니다. 휴관일만 확인하고 정기 청소 주간을 미처 확인을 못했습니다.

그래도 멀리서나마 옥외 전시를 보고 설명을 들을 수 있었지요. 제주도와 오키나와는 참 비슷한 점이 많습니다. 오키나와에도 제주처럼 측간(화장실)에 돼지를 키웠는데 일본 본토 사람들이 오면서 '미개한' 문화라며 화장실에 돼지를 키우는 문화를 모두 말살시켜 버렸다고 합니다.

 오키나와 마을과 집의 수호신 역할을 하는 시샤(사자) 사진을 보여주며 설명해 주시는 오키모토 선생님
 오키나와 마을과 집의 수호신 역할을 하는 시샤(사자) 사진을 보여주며 설명해 주시는 오키모토 선생님
ⓒ 제주다크투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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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쉬운 발걸음을 돌려 가카즈고대로 향합니다. 가카즈고대는 오키나와에 있는 미 공군기지인 후텐마 기지를 한눈에 볼 수 있는 곳입니다. 가카즈고대에 도착하니 오랜 시간, 오키나와 주민들을 대표해 기지 소음 소송을 진행하고 계신 다카하시 선생님이 반갑게 맞아줍니다. 다카하시 선생님은 제주다크투어와도 예전부터 강정 대행진을 통해 여러차례 연락한 바 있는, 강정의 오랜 친구입니다.

 후텐마 기지가 내려다보이는 가카즈고대에서 설명을 이어가는 다카하시 선생님
 후텐마 기지가 내려다보이는 가카즈고대에서 설명을 이어가는 다카하시 선생님
ⓒ 제주다크투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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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카즈고대가 있던 곳은 오키나와 전쟁 당시 가장 격렬한 전투가 벌어진 곳이라고 합니다. 계단에도 당시 총알 자국이 남아있는 민가의 벽을 옮겨뒀습니다.

일본군이 당시 사용했던 토치카도 남아있지요. 주민 당사자로서 오랜기간 후텐마 기지와 싸워온 다카하시 선생님이 지도를 보며 설명을 이어갑니다. 2004년, 오키나와 국제대학에 떨어진 군 수송기, 최근에도 초등학교에 수송기 장비가 떨어지기도 했습니다. 그 주변에 사는 사람들은 매일 어떤 일이 일어날지 모른다는 공포에 떨고 있습니다. 하루에도 전투기 200~300대가 훈련을 계속합니다. 잠깐 있었는데도 전투기 몇 대가 지나가니 이내 귀가 멍멍해집니다.

 가카즈고대에서 바라본 후텐마기지. 멀리 오스프리도 보인다.
 가카즈고대에서 바라본 후텐마기지. 멀리 오스프리도 보인다.
ⓒ 제주다크투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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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카하시 선생님과 주민들 400여 명이 후텐마 기지를 대상으로 소음 소송을 진행해 2016년, 4억 엔 정도의 보상금을 받았다고 합니다. 그래도 훈련은 멈추지 않습니다. 약 3000명 정도가 모여 일본 정부와 미국 사령관을 대상으로 한 소송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다카하시 선생님은 남북 정상이 악수하는 사진이 실린 신문을 가지고 오셨습니다. 현재 후텐마 기지, 하네다 기지, 화이트비치에는 미국과 일본 깃발 뿐만 아니라 유엔 깃발도 있습니다.

한반도의 평화가 위협되면 바로 유엔군이 출격하기 위해서입니다. 한반도의 평화가 오면 오키나와에 기지가 있을 필요가 없다고 다카하시 선생님은 힘주어 말씀하십니다. 오키나와, 한반도 그리고 동북아의 평화가 모두 연결되어 있는 이유입니다.

 가카즈고대에 있는 한인 위령탑. 광주오월민주여성회가 가지고 간 작은 선물을 앞에 두었습니다.
 가카즈고대에 있는 한인 위령탑. 광주오월민주여성회가 가지고 간 작은 선물을 앞에 두었습니다.
ⓒ 제주다크투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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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카즈고대에는 또 하나의 특별한 장소가 있습니다. 바로 오키나와 전쟁 당시 죽은 한국 사람, 386명을 기억하는 위령비입니다.

여기에는 386위가 모셔져 있지만 오키나와 전쟁 전체 기간 동안에는 최대 1만 명 이상의 한국 사람들이 희생당했다고 전해집니다. 오키나와에는 총 3개의 한국인 위령비가 있는데 가카즈고대에 있는 이 위령비가 첫 번째로 세워진 위령비입니다.

특이한 것은 "청구지탑"이라고 씌여져 있는 글씨입니다. 푸른 언덕이라는 뜻인데 중국에서 한국을 바라보면 전체가 청구, 즉 푸른 언덕이라는 뜻입니다. 오키나와에 세워진 탑에 왜 중국에서 바라본 이름이 붙여졌는지 의아하지만 당시 돌아가신 한국 분들을 생각하며 잠시 묵념의 시간을 갖습니다. 묵념이 끝나고 씩씩하게 다같이 '임을 위한 행진곡'도 불러봅니다.

 위안소 터
 위안소 터
ⓒ 제주다크투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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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 알려져 있지는 않지만, 청구지탑에서 토치카를 지나 조금 걸어 내려오면 작은 공터가 보입니다. 증언에 따르면 이 곳이 위안소 터라고 합니다. 안타깝게도 지금은 흔적도, 옛 사진도 남아있지 않습니다. 우리가 더 많이 기억하고 잊지 말아야 하는 이유입니다.

 사키마 미술관 전경
 사키마 미술관 전경
ⓒ 제주다크투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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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어서 방문한 사키마 미술관은 후텐마 기지 바로 옆에 위치해 있습니다. 사키마 미술관 부지는 사키마 집안이 대대로 소유한 곳인데 태평양 전쟁 이후 미군이 점령해 후텐마 기지의 일부가 됐습니다.

오랜 투쟁 끝에 토지의 일부를 돌려받고 그 자리에 사키마 미술관을 세웠습니다. 사키마 미술관의 가장 중요한 작품은 단연 마루키 이리, 마루키 도시 부부의 <오키나와전도>(Battle of Okinawa)입니다. 감사하게도 사키마 미술관 관장님께서 직접 설명을 해주셨습니다.

 오키나와전도 앞에서 설명해 주시는 사키마 관장님과 통역을 맡아주신 오오무라 선생님
 오키나와전도 앞에서 설명해 주시는 사키마 관장님과 통역을 맡아주신 오오무라 선생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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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키나와전도 그림을 마주보고 있는 오키나와전 생존자들의 사진
 오키나와전도 그림을 마주보고 있는 오키나와전 생존자들의 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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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키나와전도>를 그린 마루키 선생님은 어린시절 히로시마에서 원폭을 경험합니다. 그 기억이 너무 끔찍하고 비참해 어느 때는 아예 잊고 싶었던 적도 있었다고 합니다. 그렇지만 다시는 전쟁을 일으키지 않기 위해 이러한 경험을 잊지 말고, 전쟁 때 많은 피해를 입은 입장에서 이를 표현해야 한다고 생각하셨습니다. 전쟁을 하려는 세력은 사실을 왜곡하고 전쟁을 미화하려고 하는데, 이를 없앨 수 있도록 진실을 바탕으로 작품을 만들어야 한다는 게 마루키 선생님의 철학이었습니다.

그림을 잘 보면 병사들을 등장하지 않고 어린아이, 노인, 여성뿐입니다. 전쟁 때 가장 괴로운 체험을 한 사람의 입장에서 볼 때 진정한 전쟁의 모습이 보이기 때문입니다. 그림 오른쪽 아래 있는 해골은 난징 대학살 때 죽은 사람들을 상징합니다. 그 침략 전쟁의 결과가 오키나와 전쟁이고 히로시마 전투라고 선생님은 생각합니다.

그림에는 눈동자가 없는 사람들이 대부분이지만 가운데 세 명의 아이들에게는 눈동자가 그려져 있습니다. 왼쪽 아래에는 전쟁 당시 오키나와에 몰려온 미군 군함이 그려져 있습니다. 오키나와 전투 동안 미군들이 전체 20만 톤에 달하는 폭탄을 투하했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어느 누구 승리했다고 말할 수 없는 끔찍한 나날들입니다.

1945년 5월 말, 미군이 6만4000여 명의 일본군이 사망했다는 것을 확인했는데 이는 당시 일본군의 70%에 해당하는 많은 수였습니다. 상식적으로 30%의 병사가 사망하면 보통 패배를 선언하는데 일본은 끝까지 항복을 하지 않았습니다. 만약 일본이 일찍 항복했더라면 오키나와 전투 당시 죽은 사람들의 80%는 아마 살아있을 것이라고 합니다.

전쟁 동안 벌어진 끔찍한 일들에 대한 이야기들이 이어집니다. 남부 쪽에서 일본군이 주민의 식량을 빼앗고 학살하는 것을 봤다는 이야기, 수류탄을 동료 병사에게 던져 죽이고 그 식량을 훔쳤다는 이야기 등 굶어죽지 않기 위해 서로가 서로를 죽였습니다.

당시 병사로 참전했던 현 류큐대학 교수인 오오타 선생님은 이 전쟁을 경험하며 '사람이 사람을 죽여서 사는 게 의미가 있는가'라는 생각이 들자 더 이상 살고 싶은 생각이 들지 않았다고 합니다. 그러자 누군가가 앞으로 군대를 갖지 않겠다고 약속한, 일본의 평화 헌법 9조를 오오타 선생님에게 보여드렸습니다. 앞으로 전쟁을 하지 않겠다는 나라에서는 살 수 있겠다며 그 헌법에서 삶의 의미를 되찾으셨다는 이야기를 사키마 관장님이 전해주셨습니다.

사키마 미술관 관장님은 일전에 미술관을 찾은 한 학생이 "헌법 9조가 빈껍데기인데 어떻게 거기에서 살아가는 힘을 얻는가?"라는 질문을 했다고 합니다. 물론 헌법 9조를 개악하려는 현재의 일본은 그런 상태일지도 모르지만 결국 제대로 기억하고, 공부해 일본이라는 나라가 다시는 전쟁을 일으키지 않도록, 그런 사회를 만들도록 노력해야 한다고 답하셨다고 합니다. 다시는 4.3과 같은 비극적인 일이 일어나지 않는 사회를 만들겠다는 목적으로 만들어진 제주다크투어도 그 말을 마음에 새기고 돌아왔습니다.

전쟁은 절대 다시는 일어나서는 안된다. 그리고 이를 위해 우리가 그 기억을 놓지 않고 마음에 되새기며 평화를 위한 길을 걸어야 한다. 오키나와 전쟁을 경험한 모든 사람들이 평화기행 참가자들에게 당부했던 그 말들을 다시 한 번 새겨봅니다.

* 기억하고 싶은 길 - 제주다크투어
'제주다크투어'는 제주4·3 평화기행, 유적지 기록, 아시아 등 국가폭력 피해자들과의 국제연대 사업 등 제주 4·3 알리기에 주력하는 비영리 단체입니다.
[블로그 주소] 
blog.naver.com/jejudarktours

덧붙이는 글 | 이 글은 백가윤씨가 작성한 것으로, 백가윤씨는 제주다크투어의 공동대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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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하고 싶은 길 - 제주다크투어’는 제주에 위치한 비영리 단체입니다. 제주다크투어는 여행 속에서 제주 4.3을 알리고 기억을 공유합니다. 제주를 찾는 국내외 사람들과 함께 제주 곳곳의 4.3 유적지를 방문하고 기록하며 알려나가는 작업을 합니다. 국경을 넘어 아시아 과거사 피해자들과도 연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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