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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일 오전 서울 서대문구 신촌세브란스병원 장례식장에 마련된 고 노회찬 정의당 원내대표의 빈소 입구에 추모의 글이 적힌 메모가 가득차 있다.
 26일 오전 서울 서대문구 신촌세브란스병원 장례식장에 마련된 고 노회찬 정의당 원내대표의 빈소 입구에 추모의 글이 적힌 메모가 가득차 있다.
ⓒ 이희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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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3일 갑작스럽게 세상을 떠난 노회찬 정의당 원내대표 추모 열기가 끝을 모르고 이어지고 있다. 빈소가 마련된 서울 서대문구 연세대세브란스병원에는 수만 명의 조문객들이 찾아와 그의 마지막 가는 길을 배웅했다.

전국 각지에 차려진 분향소에도 비보를 접한 수많은 시민들이 찾아와 고인을 추모하며 눈시울을 붉혔다. 미국 LA, 중국 베이징 등에 마련된 분향소에도 한인들의 추모 열기가 뜨겁다는 소식이다.

온라인 커뮤니티 게시판과 소셜미디어 등에서도 노 원내대표를 추모하는 글들이 가득 올라오고 있다. 시민들은 노 원내대표가 생전에 보여줬던 약자를 위한 헌신과 불의에 당당히 맞서는 용기, 진보적 가치 확산을 위해 노력해온 모습을 추억하며 고인을 기리고 있다.

원래 정의당장으로 치르기로 했던 장례 일정은 국회장으로 승격되더니 어느새 '시민장'이 돼버린 모양새다. 그가 떠난지 4일째, 아직도 현실을 믿지 못하는 사람들이 많다. 시민들은 촌철살인의 비유와 풍자로 큰 웃음을 줬던 그를 TV나 라디오에서 당장이라도 만날 수 있을 것 같다고 말한다.

이 추모 열기는 무엇을 말해주고 있는가. 한 사람이 걸어온 삶의 진가는 그가 세상을 떠날 때 비로소 드러나는 법이다. 노 원내대표의 삶은 어떻게 평가받을 수 있을까. 남녀노소, 진보·보수 가릴 것 없이 뜨겁게 일고 있는 추모의 물결 속에 어쩌면 그 답이 있을지도 모르겠다.

노 원내대표의 장지는 경기도 마석 모란공원으로 정해졌다. 전태일과 김근태 등 그와 같은 길을 걸었던 민주 열사들이 누워 있는 곳이다. 평생을 민주화 운동과 노동·진보 운동에 몸바쳐온 그는 이곳에서 동지들과 함께 영면에 들어간다. 부디 그곳에서는 외롭지 않기를, 무거웠던 짐 홀로 짊어지지 않기를 간절히 기원해 본다. 

그의 발자국이 향한 곳은

고 노회찬 정의당 원내대표. 사진은 지난 6월 7일 오전 국회 정론관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4월부터 석달간 '평화와 정의의 의원모임' 교섭단체 대표로 수령한 국회 특수활동비를 일괄 반납한다고 밝히고 있는 모습.
▲ 노회찬 "석달치 교섭단체 특수활동비 반납" 고 노회찬 정의당 원내대표. 사진은 지난 6월 7일 오전 국회 정론관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4월부터 석달간 '평화와 정의의 의원모임' 교섭단체 대표로 수령한 국회 특수활동비를 일괄 반납한다고 밝히고 있는 모습.
ⓒ 남소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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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 원내대표가 사회에 남긴 발자취는 결코 작지 않다. 국회의안정보시스템에 따르면, 노 원내대표는 7년의 의정활동 기간(17대 4년, 19대 9개월, 20대 26개월) 동안 모두 1029건의 법안을 발의했다. 이 가운데 대표발의한 법안은 127건이다. 경실련이 19대 국회의원 법안 발의 및 가결 내용을 분석한 결과, 의원 1인당 평균 법안 발의 수가 46.5건이었던 것을 감안하면 실로 높은 수치다.

단순히 법안 발의만 많았던 것은 아니다. 노 원내대표가 발의한 법안 중에는 사회·경제적으로 의미심장한 법안들이 상당하다. 남녀차별과 가부장적 사회 분위기를 조장하는 '호주제 폐지' 법안, 성소수자와 장애인 등 사회적 약자에 대한 차별 금지를 담은 '차별금지법', 서민들의 주거비 부담을 줄이기 위한 '조세특례제한법 개정안' 등이 그의 손을 거쳐 만들어졌다.

평생을 노동운동에 헌신해온 노 원내대표는 관련 법안 발의에도 남다른 노력을 기울였다. '노동 4법 개정안' '하도급거래 공정화에 관한 법률 개정안' '산업재해보상보험법 개정안'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 개정안' '근로기준법 개정안' '상가건물 임대차보호법' '산업안전보건법 개정안' 등 노동자·서민의 권익보호를 위한 다수의 법안을 발의했다.

권력기관을 견제·감시하거나 부정·부패를 척결하기 위한 노력도 빼놓을 수 없다. 비리 근절을 위한 '공익신고자 보호법', 공무수행 민간인의 부패 방지를 위한 '군에서의 형의 집행 및 군수용자의 처벌에 관한 법률 개정안', 공공기관 채용비리를 막기 위한 '부정청탁 및 금품 등 수수의 금지에 관한 법률 일부개정안', 국회 특수활동비 폐지를 위한 '국회법 개정안' 등의 법안도 발의했다.

돌이켜보면 노 원내대표의 의정활동은 노동자와 서민, 여성, 성소수자 등 사회·경제적 약자를 배려·보호하고, 재벌과 기득권, 국가권력의 부정과 비리, 횡포를 감시하는 데 쓰여졌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안타까운 비보를 접하고 빈소를 찾은 조문객들 중 유난히 여성, 장애인, 노인 등의 사회적 약자들이 많았다는 것은 노 원내대표의 지나온 발자취를 고스란히 드러내는 방증일 터다.

정의당의 발걸음에 함께하는 사람들

언론 보도에 따르면 정의당에 가입하는 사람들이 부쩍 증가하고 있다고 한다. 지켜주지 못한 미안함이, 함께하지 못했던 후회가 일종의 부채의식으로 나타나고 있는 것일 터다. 이찬진 포스티 대표는 26일 "정의당 홈페이지에 가서 온라인으로 당원 가입을 하려 한다. 그리고 제 인생에 처음으로 정당 당비를 내려고 한다. 그런다고 미안한 마음이 없어지지는 않겠지만 아무것도 하지 않을 수가 없다"라며 정의당에 가입하겠다고 공개 선언했다.

정태인 칼포라니사회경제연구소장도 26일 자신의 페이스북에 "더 이상 '지못미'를 반복할 수 없기 때문에, 남아있는 사람들을 지키기 위해 손 하나라도 내밀어야 하고, 전화 한 통이라도 걸어야 하기 때문에, 상심했을 때 위로의 말을 건네 줄 나이 든 사람도 있어야 하기 때문에" 정의당에 가입했다는 장문의 글을 남겼다. "모든 허물은 제 탓이니 저를 벌하여 주시고, 정의당은 계속 아껴주길 당부드린다"는 노 원내대표의 마지막 유언을 따르려는 사람들이 하나둘 늘어나고 있는 것이다.

이낙연 국무총리가 26일 오전 서울 서대문구 신촌세브란스병원 장례식장에 마련된 고 노회찬 정의당 원내대표의 빈소에서 조문을 하고 있다.
 이낙연 국무총리가 26일 오전 서울 서대문구 신촌세브란스병원 장례식장에 마련된 고 노회찬 정의당 원내대표의 빈소에서 조문을 하고 있다.
ⓒ 이희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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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희는 노 의원에게 빚을 졌습니다. 노 의원께서 꿈꾸신 정치를 못했습니다. 예의로 표현하신 배려에 응답하지 못했습니다. 익살로 감춰진 고독을 알아드리지 못했습니다. 안식하소서."

26일 빈소를 찾은 이낙연 국무총리가 방명록에 적은 글귀다. 그 말 그대로다. 우리는 노 원내대표에게 빚을 지고 있다. 언제나 가난하고 힘 없는 약자들의 편에 서 있던 그에게, 권력자의 억압과 가진 자의 횡포에 맞서 담대하게 싸웠던 그에게, 번뜩이는 유머와 재치, 위트와 해학으로 시민들을 한바탕 웃게 만들었던 그에게 어쩌면 우리 모두 빚을 지고 있는지도 모른다.

노 원내대표는 떠났지만 그가 살아 생전 꿈꿨던 것들은 여전히 미완으로 남아있다. 남아있는 자들의 어깨가 무거워진 것은 그런 이유일 터다. 반칙과 특권이 없는 사회, 정의롭고 공정한 세상을 만들어야 할 책임이 이 사회에 주어진 셈이다. 기억하고 또 기억했으면 한다. 그가 못다 이룬 꿈들을 만들어가기 위해, 주체할 수 없이 흐르는 뜨거운 눈물의 의미를 잊지 않기 위해, 그리고 그가 남기고 간 소중한 유산들을 지켜내기 위해.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기자의 블로그 '바람 부는 언덕에서 세상을 만나다'에도 실렸습니다.



태그:#노회찬 별세, #노회찬 어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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