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6월 1일 오후 8시 전주월드컵경기장에서 열린 대한민국과 보스니아 헤르체고비나의 친선경기. 이재성(맨 왼쪽)이 동점골을 터뜨린 뒤 동료들과 기쁨을 나누고 있다.

지난 6월 1일 오후 8시 전주월드컵경기장에서 열린 대한민국과 보스니아 헤르체고비나의 친선경기. 이재성(맨 왼쪽)이 동점골을 터뜨린 뒤 동료들과 기쁨을 나누고 있다. ⓒ 이근승


소위 말하는 엘리트 코스를 밟아온 선수는 아니었다. 울산에 있는 학성고등학교 재학 시절 득점왕(2010 대교 눈높이 고등리그 왕중왕전)을 차지한 적은 있지만, U-17, U-20 대표팀과 인연은 없었다. 명문대인 고려대학교 입학 후 U-22 대표팀 유니폼을 입었지만, 눈에 띄는 선수는 분명 아니었다.

악바리다. 세상이 '안 된다'고 규정 지어 놓은 것을 매번 뛰어넘었다. 지난 2014년, 이재성은 '신인들의 무덤'이라 불리는 K리그1(당시 클래식) 최고의 팀 전북 현대 입단을 결정했다. 2013시즌 대학 리그 31경기 14골을 기록한 재능 있는 선수였지만, 전북에서 주전 자리를 확보하기란 쉽지 않아 보였다.

당시 측면에는 한교원과 이승렬(은퇴), 김인성, 카이오 등이 버티고 있었고, 중원에는 김남일(은퇴)과 정혁, 최보경 등이 있었다. 그러나 이재성은 '불가능하다'는 예측을 뒤집었다. 시즌 전 전지훈련에서 박지성의 활동량과 이청용의 기술을 합쳐놓은 듯한 모습을 보이면서, 최강희 감독의 마음을 훔쳤다.

3골 2도움. 이재성은 이동국과 함께 전지훈련 연습 경기 최다득점자에 이름을 올리며 주전 자리를 꿰찼다. 리그와 AFC(아시아축구연맹) 챔피언스리그(ACL) 등 무대를 가리지 않고 맹활약을 이어가면서, 팀 공격의 중심으로 자리를 잡았다. 프로 데뷔 시즌, 리그 26경기 4골 3도움을 기록하며 우승에까지 앞장섰다.

2014 인천 아시안게임에선 군 면제 혜택도 받았다. 이재성은 김신욱, 박주호, 김진수 등과 함께 U-23 대표팀의 핵심적인 역할을 수행하며 28년 만의 금메달 획득에 앞장섰다. 결승전 포함 7경기에 나서 득점을 기록하진 못했지만, 빼어난 활동량으로 공수 양면에 큰 힘을 더했다. 특히 수비의 허를 찌르는 창의적인 패스와 번뜩이는 드리블은 대표팀의 가장 강력한 무기였다.

성장을 멈추지 않는 선수다. 프로 2년 차, 이재성은 전북의 중심이자 K리그 최고의 선수로 떠올랐다. 리그 34경기에 출전해 7골 5도움을 기록하며 다시 한 번 전북의 우승을 이끌었다. 당시 그는 2선 중앙과 측면뿐 아니라 수비형 미드필더로도 맹활약하며 다재다능한 모습까지 보여줬다.

국가대표팀 유니폼도 입었다. 지난 2015년 3월, 우즈베키스탄과 평가전에서 A매치 데뷔전을 치렀고, 이어진 뉴질랜드와 평가전에선 국가대표 데뷔골(결승골)도 터뜨렸다. 이재성은 유럽에서 활약하는 선수들에 뒤처지지 않는 활약을 이어갔고, 2018 러시아 월드컵 아시아지역 최종예선과 본선 무대까지 자리를 잃지 않았다.

프로 3년 차이던 2016시즌, 이재성은 전북의 두 번째 ACL 우승을 이끌었다. '슈퍼 크랙' 레오나르도와 로페즈, '대갈사비' 김신욱의 화력이 극대화될 수 있도록 공격을 지휘했고, 성실한 수비 가담으로 안정감까지 더했다. 특히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를 경험한 김보경과 구성한 중원은 K리그 역사상 최고로 손꼽힐 정도로 깊은 인상을 남겼다.

2017시즌, 이재성은 더 이상 이룰 것이 없는 선수가 됐다. 불의의 부상으로 인해 5월에서야 시즌을 시작했지만, 한 차원 높은 수준의 실력을 뽐내며 리그 28경기 8골 10도움을 기록했다. 김보경이 팀을 떠났지만, 이재성의 맹활약을 앞세운 전북은 리그 우승 트로피를 되찾아올 수 있었다.

이재성은 연말에 열린 K리그1 시상식에서 'MVP'까지 수상했다. 명실상부한 K리그1 최고의 선수로 인정받은 순간이었다.

    지난 3월 6일 전주월드컵경기장에서 열린 AFC 챔피언스리그 조별리그 전북 현대와 톈진 취안젠의 경기. 코너킥 상황에서 공격에 가담한 이재성의 뒷모습.

지난 3월 6일 전주월드컵경기장에서 열린 AFC 챔피언스리그 조별리그 전북 현대와 톈진 취안젠의 경기. 코너킥 상황에서 공격에 가담한 이재성의 뒷모습. ⓒ 이근승


'K리그의 별' 이재성, 유럽에서의 성공을 확신하는 이유

아시아에서만큼은 대적할 상대가 없다. 이재성은 2018시즌에도 거침없는 행보를 이어갔다. 리그 17경기에서 4골 3도움을 기록하며, 전북이 압도적인 선두를 내달리는 데 앞장섰다. '닥공'의 지휘자답게 ACL 8강 진출도 이끌었다. 그는 '한국판 바이에른 뮌헨'이라 불리는 전북의 핵심이 확실했다.

그러나 세상은 넓고 강자는 많다. 이재성은 기대를 모은 2018 러시아 월드컵 본선 무대에서 아쉬움을 삼켰다. 본선 조별리그 3경기에 선발로 나서서 최선을 다했지만, 세계 최정상급 선수들과의 기량 차를 확인했다. 아시아 무대에서 경험하지 못한 경기 속도에 당황한 기색이 역력했고, 우리가 기대한 날카로운 패스나 드리블은 자취를 감췄다.

부족함을 느낀 이재성은 다시 한 번 도전에 나선다. 전북은 25일 "이재성이 독일 분데스리가 2부 리그 소속 홀스타인 킬로 이적한다"고 발표했다. 올 시즌 트레블(리그+ACL+FA컵 우승)을 향해 나아가는 중이지만, 이재성 본인의 꿈과 의지를 꺾을 수 없었다. 이재성도 고심을 거듭한 끝에 '더 이상 유럽 진출이 늦어지면 안 된다'고 판단했다.

아쉬운 감이 없지는 않다. 이재성은 국내는 물론 아시아에서도 최고로 손꼽히는 선수다. 전북의 리그 우승을 세 차례나 이끌었고, ACL 우승 트로피도 들어 올렸다. 영 플레이어(2015시즌), K리그1 미드필더 부문 베스트 일레븐(2015~2017시즌), 리그 MVP(2017시즌) 등 받을 수 있는 상도 모조리 휩쓸었다.

그런 선수가 독일 분데스리가가 아닌 2부로 간다는 것이 조금은 아쉽다. 권창훈이 K리그1을 거쳐 프랑스에서 성공 신화를 써 내려가는 것을 보면, 이재성도 프랑스나 네덜란드 1부 리그를 선택했으면 어땠을까 아쉬움이 남는다. 독일 분데스리가 중하위권 팀이라면, 충분히 제 몫을 할 수 있지 않을까 싶기도 하다.

그러나 잘못된 판단은 아니다. 더 늦어지기 전에 유럽 도전에 나선 것은 올바른 선택이다. 2018 러시아 월드컵에서의 아쉬운 활약상이 더 좋은 구단으로 이적하는 것을 가로막았지만, 이재성은 묵묵히 땀 흘리며 정상의 자리에 올라선 경험이 있다. 유럽에서도 조금씩 올라서면 된다.

크게 주목받지 못한 선수였다. 국가대표 선수들이 즐비한 전북에서 주전으로 활약할 것은 물론, 아시아 최고의 선수가 될 것이라 예상한 이는 없었다. 국가대표팀 유니폼을 입고 월드컵 본선에 나설 것이라 예상한 이도 마찬가지다. 그는 불가능을 뛰어넘어온 인생을 살아왔다. 그런 이재성이기에 유럽에서의 성공을 기대할 수 있는 것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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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북 현대 이재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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