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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는 요즘 집 근처 복지관에서 청소를 하신다. 오전 7시에 출근해 낮 12시까지 청소를 하고 구내식당에서 밥을 먹고 집으로 온다. 평생을 주부로 남편과 자식을 위해 자신의 이름을 지우고 엄마와 아내로 살아오다 얼마 전 공공근로사업에 지원해 일을 하시게 됐다.

공공근로사업. 주로 어르신들이 하루 5시간 동네 공공기관에서 청소나 환경미화 등의 일을 하는 일자리 사업이다. 가끔 뉴스와 동네 주민센터에 내걸린 현수막에서 본 단어였는데, 내 어미가 그 일자리를 신청해 혜택을 받고 있으니 좋은 제도 같다는 빈궁한 생각이 든다. 80만원 정도 되는 월급이지만, 자식인 나는 그 돈을 매달 엄마에게 드릴 수 없으니 자식보다 더 나은 사업 같다.

방바닥 대신 복지관 바닥을 쓸고 닦게 된 엄마

청소라면 45년 경력자다. 이제 방바닥 대신 복지관 바닥을, 손걸레 대신 대걸레를 들고 집이 아닌 복지관을 쓸고 닦고 있다. 그렇게 엄마의 청소 경력은 45년 6개월이 되었다
 청소라면 45년 경력자다. 이제 방바닥 대신 복지관 바닥을, 손걸레 대신 대걸레를 들고 집이 아닌 복지관을 쓸고 닦고 있다. 그렇게 엄마의 청소 경력은 45년 6개월이 되었다
ⓒ pexel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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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2년생. 예순이 훌쩍 넘었고, 학벌은 낮고, 평생 주부로 일했지만 경력은 없고 그러니 엄마가 할 수 있는 일은 경력으로 쳐주지 않는 그 일을, 집 밖에서 해줄 수 있게 하는 자리뿐이다.

청소라면 45년 경력자다. 이제 방바닥 대신 복지관 바닥을, 손걸레 대신 대걸레를 들고 집이 아닌 복지관을 쓸고 닦고 있다. 그렇게 엄마의 청소 경력은 45년 6개월이 되었다.

나는 엄마에게 "용돈이라도 벌 수 있어 다행이야"라고 웃으며 얘기했지만, 마음은 참 서글펐다.

사실 엄마가 공공근로사업을 물어물어 신청한 것은 더 이상 일을 할 수 없는 아빠 때문이다. 정확히 말하면 더 이상 일거리를 주지 않는 아빠의 상황 때문이다.

48년생. 일흔이 넘었고, 학벌은 낮고, 평생 막노동을 했지만 쌓이지 않는 경력이었고, 그러니 아빠가 할 수 있는 일은 이제 없다. 그런 아빠를 대신해 엄마는 자기라도 뭐라도 해야겠다 생각했고, 그렇게 매일 아침 난생처음 복지관으로 출근을 하게 됐다.

나는 엄마에게 "이제 엄마가 아빠 먹여 살리겠네"라고 웃으며 얘기했지만, 가슴은 참 비통했다.

며칠 전 아빠는 나에게 오랜만에 전화를 걸어와 한탄하듯 말을 쏟아냈다.

"나도 일 좀 하게 해주소."

막일을 하는 힘겨움 보다 일을 안 하는 고통이 컸던 아빠는 동네 주민 센터에 찾아가 다짜고짜 저 말을 직원에게 내뱉었다. 그날 아빠는 생전 처음으로 이력서라는 것을 썼고, 공공근로사업 일자리를 신청했다. 신청자가 많고, 나이 때문에 65세 이상은 하루 3시간밖에 일할 수 없다는 말을 듣고 돌아왔다. 그리고 아빠의 휴대전화에는 문자 한 통이 왔다.

'구직신청이 접수되었습니다'

그마저도 접수가 된 것일 뿐, 일흔이 넘은 아빠는 일을 할 수 있을지 장담할 수 없다.

50년 가까이 일했지만 5개월도 채 맘 편히 쉬지 못한 아빠. 자기를 대신해 복지관에서 쓸고 닦고 할 아내에 대한 미안한 마음과, 이제 더 이상 쓸모없는 사람이 된 것 같은 마음이 아빠를 힘들게 했을 것이다.

효도는 내가 아닌 저 사업이 하고 있구나

나는 생각이 많아졌다. 아빠는 평생 바깥일을, 엄마는 평생 집안일을 했는데 이제 남은 인생은 무슨 일을 해야 할까? 아니 일을 하지 않으면 안 될까?
 나는 생각이 많아졌다. 아빠는 평생 바깥일을, 엄마는 평생 집안일을 했는데 이제 남은 인생은 무슨 일을 해야 할까? 아니 일을 하지 않으면 안 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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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생각이 많아졌다. 아빠는 평생 바깥일을, 엄마는 평생 집안일을 했는데 이제 남은 인생은 무슨 일을 해야 할까? 아니 일을 하지 않으면 안 될까? 평생 안과 밖을 살피며 온몸으로 일한 두 분께 나는 뭘 해드려야 할까?

'공공근로사업' 저 여섯 글자를 인터넷 창에 검색해 봤다.

목적 : '저소득 실직자에게 한시적인 일자리를 제공하여 생계보호 및 생활안정을 도모하기 위해' 참여자격 : '실직 또는 정기소득이 없는 자'

누가 봐도 우리 엄마와 아빠의 상황이었다. 두 줄 문장에 가슴이 먹먹해졌다.

엄마와 아빠는 평생을 그 누구보다 열심히 성실히 하루하루를 살아오셨는데, 이제 할 수 있는 건 공공근로사업의 한시적 일자리뿐이라니. 그리고 그 일자리마저 말릴 수 없는 못난 자식이라니. 효도는 내가 아닌 저 사업이 하고 있는 것 같아 애통했다.

문득 며칠 전, 우리 집 아파트 단지에서 잡초제거 일을 하고 계시는 어르신들이 생각났다. 처음 본 어르신의 얼굴에서 아빠의 얼굴이 보였다.


태그:#부모, #노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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