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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를에는 알프스 산 중에서 발원한 론(Rhône) 강이 유유히 흐르고 있었다. 나는 시간이 멈춘 듯한 작은 도시의 골목길을 따라 론 강을 찾아서 걸었다. 골목길에는 오랜 세월을 버틴 집들이 세월의 이끼를 잔뜩 품고 있었다. 고흐가 그렸던 밤의 론 강이 시야에 다가오고 있었다.

고흐는 당시 론 강을 그리면서 자신이 나름대로 재구성을 하여 론 강을 그렸다. 나는 그림과 다른, 실제 모습이 어떤지 궁금했다. 강변에는 어린 학생들 몇 명만 어울려 놀고 있을 뿐 분위기는 한적하기만 하다.

조용한 강변의 풍경이 포근하게 가슴 안으로 들어왔다. 고흐의 그림으로 본 게 있으니 괜히 론 강의 풍경에 심취해 본다. 고흐도 이 한적한 강가를 좋아하였을 것 같다. 론 강을 따라 걷는 것도 아를의 골목을 답사하는 것만큼이나 흥미롭다.

로마시대의 대형 목욕탕

콘스탄티누스 1세가 4세기에 건설한 로마의 유적이다.
▲ 콩스탕탱 목욕탕 유적. 콘스탄티누스 1세가 4세기에 건설한 로마의 유적이다.
ⓒ 노시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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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론 강 주변에서 가장 먼저 콩스탕탱 공중목욕탕(Thermes de Constantin)을 찾아갔다. 얼마나 역사가 오래된 건지 가늠조차 되지 않는 고대의 건축물이 강가에 서 있었다. 콩스탕탱 목욕탕은 론 강변 레아튀 미술관(Musée Réattu) 맞은 편에 위치한 로마시대의 대형 욕탕이다.

나의 아를 로마유적 답사에서 콩스탕탱 목욕탕은 원형경기장, 고대극장, 포럼 지하통로에 이어 이제 마지막에 만나는 로마유적이다. 마치 이탈리아의 로마를 여행하고 있는 것만 같은 생각이 드는 현장이다.

콩스탕탱(Constantin)이라는 이름이 붙은 것을 보면 로마 콘스탄티누스 1세(Constantinus I)가 재위할 당시(306년~337년)인 4세기에 지어진 듯하다. 콘스탄티누스 황제가 왕위에 오르던 당시에 로마제국은 외적의 침입과 제국 내의 내분으로 인해 아주 혼란한 상태였다. 당시 젊은 콘스탄티누스는 프랑크족을 상대로 한 전쟁에서 연이어 승리하면서 현 프랑스 땅인 갈리아의 로마 영토를 지켰다.

콘스탄티누스 황제 1세는 자신이 지켜낸 갈리아 땅, 즉 프랑스의 이곳 아를에 시민들을 위한 목욕탕을 새로 지었던 것이다. 콘스탄티누스 1세는 그만큼 자기 선전에 능한 인물이었다. 그는 기독교를 포용해 장차 로마 국교로 기독교를 받아들이는 계기를 열어준 역사적인 황제이기도 하다.

나는 아무도 없는 고대 로마의 극장 안으로 혼자 들어섰다. 고대의 모습에서 지붕 부분은 많이 허물어진 모습이지만 건물 외부만 보아도 고대의 분위기가 물씬 난다. 아직도 그 오랜 시간을 버티고 서 있다는 사실 자체가 놀랍기만 하다.

로마제국의 목욕탕은 잘 구획되고 상당히 화려한 모습이다.
▲ 콩스탕탱 목욕탕 복원도. 로마제국의 목욕탕은 잘 구획되고 상당히 화려한 모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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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천히 목욕탕 유적 내부를 둘러보았다. 훼손이 심한 듯 보이지만 그동안 지난 세월을 고려해보면 유적은 많은 구조물이 사라지지 않은 채 그 모습을 전해주고 있다. 목욕탕은 '터'만 남아있는 수준이 아니라, 당시의 여러 목욕시설들을 적나라하게 보여주고 있다.

온탕의 물을 가열하는 장치가 과학적으로 설계되어 있다.
▲ 목욕탕의 불을 피우는 곳. 온탕의 물을 가열하는 장치가 과학적으로 설계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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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욕탕의 규모도 현대 한국의 웬만한 찜질방이나 목욕탕보다 압도적으로 컸다. 고대에 만들어진 목욕탕이지만 급탕 시스템이 갖추어져 있고 한증막, 냉탕, 온탕도 구분되어 있다. 설명도를 보니 내가 서 있는 곳의 아래쪽 부분이 온탕의 불을 피우는 곳이었다.

그리고 이 거대한 목욕탕의 물은 당시 론 강에서 가져왔고, 이송된 물은 장작으로 끓여서 썼다고 한다. 목욕탕의 기본 구조가 현대의 우리나라 목욕탕 구조와 크게 다르지 않다는 사실이 놀랍기만 하다.

로마인들은 상당히 높은 벽돌 구조 위의 욕조 속에서 목욕을 즐겼다.
▲ 목욕탕 온탕. 로마인들은 상당히 높은 벽돌 구조 위의 욕조 속에서 목욕을 즐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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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침 이 로마 유적에 견학을 온 아를의 초등학생들이 선생님의 설명을 듣고 있었다. 선생님은 목욕탕의 욕조가 있던 곳을 보며 설명하고 있었다. 이곳은 단순히 몸을 씻는 곳이 아니라 아를 귀족들의 정치와 사교의 장으로 이용되었다는 내용일 것이다.

목욕탕 유적에서 나오려고 보니, 로마 당시에도 우뚝 서 있었을 거대한 아치 천장의 창문 3개 사이로 아를의 태양 빛이 들어오고 있었다. 실제 목욕탕으로 운영되던 모습이 상상되어 환상적인 느낌이 든다.

하지만 어떤 이들은 로마제국 말기에 이토록 사치스럽고 퇴폐적인 목욕문화 때문에 로마가 망했다고 말을 하기도 한다. 아를의 목욕탕 유적은 그래서 로마의 흥망성쇠를 모두 지켜보았을 것이다.

나는 로마의 목욕탕 유적을 나와 다시 론(Rhône) 강변을 따라 걸었다. 론 강변에 아를에서 빠트리면 안 되는 훌륭한 미술관이 있다고 들었기 때문이다. 나는 콩스탕탱 공중목욕탕의 길 건너 북쪽에 있는 레아튀 미술관으로 발길을 돌렸다. 론 강가를 바라보고 있는 아름다운 미술관이다. 역사 오랜 벽돌 건물이 멋스러운 이 미술관은 정기적으로 현대미술 전시회가 열릴 정도로 아를에서는 가장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는 미술관이기도 하다.

레아튀 미술관

작가나 화풍에 얽매이지 않고 자유롭게 전시되어 있다.
▲ 레아튀 미술관. 작가나 화풍에 얽매이지 않고 자유롭게 전시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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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술관의 입구는 마치 동굴입구처럼 작고 어둡다. 입장권은 예술적 감각이 가득 담겨서 예쁘게 돋보인다. 미술관 안으로 들어가서 가장 먼저 만난 것은 'ㅁ'자 모양의 공간이다. 이 가운데 마당에는 큰 나무 한 그루가 우뚝 서서 남프랑스의 따스한 햇빛을 혼자 받아들이고 있었다. 폐쇄적 구조로 보이던 미술관 안에 갑자기 넓은 공간이 나타나니 아주 포근한 느낌이 든다.

3층의 이 미술관 구조가 이렇게 은밀한 것은 미술관 건물이 중세시대에는 수도원으로 사용하던 건물이기 때문이다. 15세기~17세기에 몰타(Malta)의 기사들이 머물러 몰타 대수도원(Grand prieuré de Malte)으로 불리기도 하는 곳이다. 그래서 이 미술관 건물은 1958년에 건축물 자체가 역사문화재로 지정되기도 했다.

다양한 조각 작품과 아를 출신 화가들의 작품이 전시되어 있다.
▲ 레아튀 미술관 전시실. 다양한 조각 작품과 아를 출신 화가들의 작품이 전시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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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가이자 미술품 수집가였던 자크 레아튀(Jacques Réattu)는 아를에서 수십년 동안 무려 4천 점이 넘는 미술품을 수집했다. 전시장 안에는 레아튀가 수집했던 작품을 중심으로 전시되어 있고, 레아튀를 비롯한 17세기~20세기 아를 출신 화가들의 그림도 많다. 이 외에도 르네상스 회화, 18세기 프랑스 혁명기의 회화, 19세기~20세기의 근현대 예술가들의 작품들이 전시되어 있다.

그런데 미술관을 직접 답사해보니 이 레아튀 미술관만큼 소장품의 폭이 넓은 미술관도 드물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레아튀 미술관은 아를 태생의 화가 자크 레아튀의 집안 벽화(housing painting) 뿐만 아니라 현존하는 패션 디자이너 장 폴 고티에(Jean Paul Gaultier)의 드레스 컬렉션, 그리고 다양한 현대적인 사진과 영상, 조각까지 모여있다.

독창적인 사진과 영상 작품은 레아튀 미술관의 자랑이다.
▲ 레아튀 미술관 전시실. 독창적인 사진과 영상 작품은 레아튀 미술관의 자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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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시관의 전시물들은 전시하는 주제, 전시하는 양식도 독특하다. 특정 작가나 유명한 화풍에 얽매이지 않은 자유로운 전시가 보는 사람에게 상쾌한 기분이 들게 한다. 개성적인 작품들이 많고 시대에 관계없이 주제와 관련된 작품들이 아주 자유롭게 전시되고 있다. 중세시대의 유화들이 나오다가 갑자기 현대적이고 도발적인 사진작품들이 전시되어 있어서 도무지 정신을 못 차리게 만든다.

고흐의 도시 아를답게 이 미술관 안에는 고흐가 동생에게 보낸 편지의 원본이 별도로 보관되어 있다. 고흐는 일생 동안 동생에게 크게 의지하였다는 사실은 널리 알려져 있는데 아를에서도 동생과 많은 편지를 주고 받았고 그 편지의 원본이 이 미술관에 남아있는 것이다.

현대적이고 도발적인 작품들은 보는 이들에게 정신을 차리지 못하게 한다.
▲ 레아튀 미술관. 현대적이고 도발적인 작품들은 보는 이들에게 정신을 차리지 못하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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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5년에 프랑스 최초의 사진 전시회를 개최한 미술관임을 알려주려는 듯한 전시실에는 사진과 영상들이 방 가득히 전시되어 있다. 루시아 클레그(Lucien Clergue), 세실 비튼(Cecil Beaton)과 같은 세계적인 사진작가의 사진들은 굉장히 평온하고 묘한 느낌을 자아내게 하고 어떤 사진은 괴기스럽다.

남성과 여성의 성기를 흑백처리해서 부각한 사진 작품들은 관람자들의 호기심을 강하게 잡아 당긴다. 무언가 신기한 감성이 관람자들의 이목을 잡아 끈다. 미술관이지만 따분하지 않고 둘러보는 재미가 있는 곳이다.

작은 시골의 미술관에 유독 피카소의 그림이 굉장히 많이 소장되어 있는 점은 예상치 못했던 행운, 즐거움이다. 투우 경기를 보러 아를을 자주 찾아왔던 피카소의 그림이 60여 점이나 남아 있다. 나는 유럽에 남은 또 다른 피카소의 방을 발견한 기분으로 전시실 안으로 들어섰다.

피카소, 왜 어머니만은 사실적으로 그렸을까?

고흐의 도시 아를에서 피카소 작품을 만나는 행운을 만났다.
▲ 피카소 조각작품. 고흐의 도시 아를에서 피카소 작품을 만나는 행운을 만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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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먼저 눈에 띄는 것은 피카소가 남긴 기하학적 문양의 조각품이다. 역시 입체파의 대표적인 화가답게 독특한 입체감이 압도적이다. 그 뒤편으로는 그가 핑크 빛 파스텔 색으로 그린 독창적인 그림들이 이목을 잡아 끈다. 색감이 예쁜 이 그림들은 워낙 독특해서 집안에 걸어두면 집안 분위기가 일거에 바뀔 정도로 독창적으로 보인다.

이어지는 전시실에도 피카소가 그린 인물화들이 가득 차 있다. 피카소가 자신의 모습을 그린 초상화, 자신의 부인을 그린 초상화들이 있다. '마리아 피카소', '로페스 초상' 등 이 값비싼 작품들은 모두 1971년에 기증 받은 그림들이다.

그림 제목을 자세히 보지 않았다면 나는 또 다른 피카소 그림을 눈 앞에서 놓칠 뻔 했다. 머리가 흰 한 여성의 그림은 어느 피카소의 작품과 달리 다른 화법, 즉 아주 사실적으로 그려져 있다. 나는 전시실의 관리인에게 물어보았다.

"정숙해 보이는 이 흰 머리의 여인은 누구인가요?"
"네, 피카소의 어머니입니다. 이 그림만은 피카소의 다른 그림들과 달리 아주 사실적으로 그려져 있습니다."

"여기의 모든 작품들이 입체적이고 추상적인데, 왜 유독 어머니만은 사실적으로 그렸을까요?"
"글쎄요. ……"

피카소는 왜 그랬을까? 그의 어머니만은 눈 앞의 모습을 변형해서 표현하기가 부담이 되었던 것일까? 왠지 어머니를 사랑했던 그의 모습이 느껴지는 것만 같다.

나는 이 수많은 작품들을 공부하며 모두 이해하려고 하기보다는 편한 마음으로 천천히 걸으며 마음으로 감상했다. 예상했던 것보다 훨씬 훌륭한 미술관이다. 피카소의 그림을 접하는 것만으로도 레아튀 미술관은 방문할 만한 곳이었다.

해가 지는 론 강의 강물이 크리스탈처럼 아름답게 빛나고 있다.
▲ 론 강. 해가 지는 론 강의 강물이 크리스탈처럼 아름답게 빛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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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술관 창 밖으로는 론 강의 푸른 물줄기가 빛나고 있었다. 나는 다시 론 강변으로 나왔다. 이곳에 달이 뜨고 강이 푸른 빛으로 빛나면 고흐의 '별이 빛나는 밤'이 될 것이다. 나는 다시 론 강에서 고흐의 작품들을 머리 속에 떠올려 보았다. 현실감이 느껴지지 않고 멀게만 느껴졌던 고흐의 작품들이 새롭게 다가왔다.

이제는 고흐의 작품과 작품 이름들이 잊히지 않을 것 같았다. 고흐가 작품을 남겼던 현장에 서서 보니 고흐, 한 사람의 인생이 바라보였다.

그리고 아를에서 예상치 않았던 피카소와의 만남.

고흐, 피카소, 레아튀. 매력적인 도시. 선물 받은 듯한 하루의 시간들. 시간이 부족했다. 나는 아무래도 공부를 제대로 다시 하고, 아를에 다시 올 것 같다.


태그:#프랑스, #프랑스여행, #아를, #콩스탕탱 목욕탕, #레아튀 미술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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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와 외국을 여행하면서 생기는 한 지역에 대한 궁금증을 해소하는 지식을 공유하고자 하며, 한 지역에 나타난 사회/문화 현상의 이면을 파헤쳐보고자 기자회원으로 가입합니다. 저는 세계 50개국의 문화유산을 답사하였고, '우리는 지금 베트남/캄보디아/라오스로 간다(민서출판사)'를 출간하였으며, 근무 중인 회사의 사보에 10년 동안 세계기행을 연재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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