뮤지컬 <외솔> 공연 장면

뮤지컬 <외솔> 공연 장면 ⓒ DIMF


이렇게 우리가 글을 쓰고 읽고 서로의 이야기를 듣는데 가장 큰 도움을 준 건 누구일까. 스마트폰을 대중화시킨 스티브 잡스일까? 물론 많은 사람들의 노력과 열정이 지금의 세상을 만들었지만, 이렇게 넓고 다양한 세상에서 서로의 의사소통이 가능하게 한 '한글'을 만든 사람들에게 가장 먼저 공이 돌아가야 할 것이다. 그렇다면 어떻게 한글이 이렇게 우리에게 동일한 의미를 전하게 됐을까? 바로 표준어를 정의한 '사전'의 존재가 있기 때문이다.

제12회 대구국제뮤지컬페스티벌(Daegu International Musical Festival, DIMF) 특별공연작인 뮤지컬 <외솔>은 대부분의 사람에게 다소 생소할 수 있겠지만, 훈민정음을 만든 세종대왕이나 한글표기법 통일을 위해 노력한 언어학자 주시경이 아닌 그의 제자로 '우리말큰사전'을 편찬한 국어학자 외솔 최현배의 삶을 극화한 창작뮤지컬이다.

뮤지컬 <왕세자실종사건>을 비롯해 <청춘, 18대1> 등을 함께 만들며 왕성한 활동을 펼치는 서재형 연출, 한아름 작가, 황호준 작곡가가 작업한 <외솔>은 최현배 역에 박은석, 김두봉 역에 왕시명, 시바다 역에 정재화, 주시경 역에 김정권, 정태진 역에 이천영, 이윤재 역에 오찬우, 김윤경/이재명 역에 김재형, 어린 최현배 역에 권오현, 그외 김수미, 김지은, 김혜인, 박상이, 김성대, 김보현, 김호성, 이은수, 김민주, 서하윤, 조은진, 김민정, 이은석, 지석민, 김준섭, 박경현, 조소연, 양유빈, 신여진, 홍지연, 박경수, 이동규, 노주현, 안중현, 최영민, 안병우, 하수향, 송민환, 이건희, 이준영이 출연한다.

 뮤지컬 <외솔>이 공연되는 아양아트센터의 전경

뮤지컬 <외솔>이 공연되는 아양아트센터의 전경 ⓒ 서정준


어린 외솔은 풍운의 꿈을 안고 서울로 진학하게 되고 우연히 고향에서 인사를 나눴던 김두봉을 만난다. 김두봉은 글을 모르는 사람들 대신 편지를 읽고, 써주며 그들의 사랑과 간절함을 연결해주고 있었고, 외솔 역시 그에게 합류한다. 이어 당대의 국어학자 주시경과 만나 한글을 공부하고 계승해 일제의 핍박을 견디고 봄을 맞이하자는 약속을 나눈다.

하지만 그 길은 결코 쉽지 않았고 1942년 조선어학회 사건이 터지며 국어연구를 하던 이들이 일제의 탄압으로 체포된다. 외솔 역시 마찬가지로 함흥형무소에 갇혀 동료들이 고문 끝에 옥사하는 것을 지켜보게 된다. 불행 중 다행일까. 그 역시 삶의 끝을 향해가던 중 일제의 항복으로 광복이 이뤄지고 그는 스승의 유업인 우리말큰사전 편찬에 모든 걸 걸기로 한다.

 뮤지컬 <외솔>

뮤지컬 <외솔> ⓒ 서정준


그러나 일본이 사라진 후에도 사전 편찬은 쉽지 않았다. 한국전쟁이 벌어지게 되고 상해에서 국어 연구를 하던 김두봉과 운명적인 재회를 하게 된다. 김두봉은 한글을 지키려면, 나라를 지키기 위해선 힘이 필요하다며 북측에 합류한 상황. 외솔에게도 합류를 권유하지만 외솔은 사전 편찬을 위해 힘쓴 이들의 노고를 헛되이 할 수 없다며 남아 서로 갈라서게 된다.

이후 부산에서 사전을 계속 편찬한 외솔은 우리말큰사전을 만들게 되고 동료 정태진의 사고 등 악재를 겪으면서도 사전 편찬을 완료하게 된다. 그는 기자들의 질문에 '약속을 지켰을 뿐'이라 한다.

뮤지컬 <외솔>은 역사적 인물을 조명하면서도 교훈이나 계몽에 그치지 않고 극적 재미를 찾기 위해 대본에 공을 들였다. 앞서 이야기한 극의 내용을 시간 순대로 배치하지 않고 과거와 미래를 넘나들며 풀어놓았고 이를 자연스럽게 연출해 지루함을 덜어냈다. 물론 그럼에도 불구하고 근본적으로 역사적 사실을 배경으로 하는 작품인데다 외솔의 개인적인 행적이 많이 남지 않아서 캐릭터가 입체적으로 구축되기엔 어려움이 있어 이야기와 사건에서 오는 재미는 부족하다.

 아양아트센터 내에 설치된 뮤지컬 <외솔> 포토존.

아양아트센터 내에 설치된 뮤지컬 <외솔> 포토존. ⓒ 서정준


하지만 '봄이 오는 종로'에서 38명의 출연진이 총출동해 몸을 움직이며 만드는 이미지나 '그칠 길 없는 한 - 함흥형무소'에서 철창을 두고 대비되는 빛과 그림자 등 무대연출이 무척 매력적으로 표현돼 눈을 뗄 수 없게 만든다. 2막 3장 '놈들을 잡아'나 '어두운 손아귀'에서 보여주는 안무도 순간 넓은 무대 안에서 배우들의 몸에 시선을 집중시킨다. 여기에 특히 2막 7장 '말모이 운동'은 '한글'이라는 작품의 주제를 가장 매력적으로 드러내는 넘버로  사전이 편찬되는 과정을 직관적으로 보여주면서도 한글의 아름다운 운율로 재미와 의미를 모두 찾은 필수 관람 장면이다.

뮤지컬 <외솔>은 작품의 규모나 내용을 고려하면 사실 상업적으로 쉽게 만날 수 없는 작품이다. 또 아직은 다듬어야 할 부분이 분명히 있다. 현재로선 DIMF이기에 만날 수 있는 작품이라고 할 수 있지만 이번 공연에서 보여준 가능성을 고려하면 앞으로 성남의 <금강, 1894>나 대구의 <투란도트>와 마찬가지로 울산을 대표하는 문화컨텐츠로 성장할 수 있는 잠재력을 지녔다고 볼 수 있다. 뮤지컬 <외솔>은 30일 오후 7시 공연을 앞두고 있으며 오는 7월 6일과 7일 울산 공연을 올린다.


덧붙이는 글 기자의 브런치(https://www.brunch.co.kr/@twoasone)에 함께 실리는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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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연문화, 연극/뮤지컬 전문 기자. 취재/사진/영상 전 부문을 다룹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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