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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리하기 진땀나는 계절이 오고 있다. 하루 두 끼 꼬박꼬박 집밥을 챙겨먹는 내게 요리는 대체로 지겹고 가끔 재밌는, 그저 그런 일과 중 하나다. 주방은 물과 불, 칼이 난무하는 공간. 잠시 긴장을 놓으면 칼에 손이 베이거나 끓는 물에 데기 십상이다.

특히 가만히 있어도 땀이 나는 여름에 음식 만드는 일은, 더군다나 불 앞에서 끓이고 볶고 데치고 튀기는 작업은 고역 중에 고역이다. 가스레인지의 불에서 뿜어져 나오는 열기와 냄비에서 끓는 육수가 주방의 온도와 습기를 한껏 올린다. 머리는 어질어질 땀은 삐질삐질. 이쯤 되면 꼬르륵 소리를 내는 배꼽은 상전이요, 음식을 해야 하는 몸은 종이 된다.

요리하기 힘들다고 굶어 죽을 순 없으니 여름철 내 밥상엔 주로 상추나 오이 같은 생채소가 올라온다. 물에 씻어 쌈장만 곁들이면 끝. 가스 불을 사용하지 않은 덕분에 몇 년 째 7, 8월 가스요금은 3000~4000원대를 유지하고 있다.

하지만 똑같은 걸 며칠 먹다보면 지루해진다. 설상가상으로 더위에 지쳐 입맛도 뚝 떨어질 지경이다. 게다가 나 혼자라면 지겨워도 배를 채우는 데 만족할 수 있지만 남편과 둘이 사는 우리 집에서 식사 담당은 내 몫이다. 남편이 주방에서 요리를 하는 날은 아주 드물다. 봄부터 담가놓은 온갖 종류의 장아찌, 날 김과 양념간장으로 몇 끼 버텨보지만 결국 가스레인지 앞에서 땀을 뻘뻘 흘리며 음식을 해야 한다.

참치마요덮밥
 참치마요덮밥
ⓒ 심혜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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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젠가 한 블로거가 소개한 이 음식은 그야말로 내겐 혁명이었다. 만드는 시간도 얼마 걸리지 않을 뿐더러 재료도 아주 간단하다. 바로 참치캔을 이용한 참치마요덮밥.

기름 뺀 참치에 다진 양파와 마요네즈, 설탕, 식초, 통깨를 넣어 섞고 소금과 후추로 간을 한다. 밥 위에 대충 뜯은 상추와 양념한 참치를 올리고 구운 김 가루를 뿌려 비벼먹으면 끝. 흔하고 평범한 재료일 뿐인데도 정말 희한할 정도로 맛있다. 그러고 보니 아주 중요한 재료 한 가지를 빼먹었다. 바로 와사비다.

참치를 양념할 때 와사비를 찻숟갈로 하나 정도 넣으면 맛이 깔끔하고 시원해진다. 넣었을 때와 안 넣었을 때 맛의 차이가 아주 크다. 그리고 김가루도 꼭 넣는 게 좋다. 짭짤한 감칠맛으로 숟가락을 멈출 수 없게 만든다.

한때 네이버에서 방문자수가 많은 블로거들에게 '파워블로거'라는 명칭을 부여한 적이 있다. 그들 중에서 상위권을 차지하는 이들은 대부분 요리정보를 공유하는 '주부 블로거'였다. 그들이 블로거에 올리는 음식들은 기존의 '요리전문가'들의 음식과 달랐다. 곧장 내 주방에서 그대로 재현해낼 수 있을 만큼 재료가 평범했고 무엇보다 조리과정이 단순했다.

남들 먹이기에만 좋은 요리가 아닌, 요리를 하는 사람의 입장을 헤아린 음식들이 특히 인기를 끌었다. 이 참치마요덮밥도 그냥 나온 음식이 아니다. 참치캔을 그리 좋아하지 않는 내가 이 덮밥을 맛있게 먹을 수 있었던 데에는 더운 날, 불 앞에서 요리하는 노고를 공감해 준 블로거의 마음도 크게 작용했다.

남편과 단 둘이 살고 있는 나도 이럴진대, 챙겨야 할 가족이 있는 집에서 끼니를 담당한 이들의 피로감은 오죽할까 싶다. 대부분 이 노동의 무게는 소득이 있든 없든, 대부분 나처럼 여성이 감당하고 있다.

'여성이라면 한평생을 자기 외 다른 사람의 세끼 식사와 반찬 걱정에 많은 시간을 할애할 뿐 아니라 강박에 시달릴 것이다. 인류의 반이 사람으로 태어나서 남의 밥걱정으로 인생의 많은 혹은 대부분의 시간을 보낸다? 이것이 문명사회인가?'

여성학자 정희진의 질문이다. 나 역시 동감한다. 아예 이런 상상도 해본다. 동네마다 누구든 밥을 먹을 수 있는, 모두를 위한 하나의 큰 부엌이 있는 상상. 집집마다 따로 밥을 차려 먹어야 하는 지금의 방식은 너무 많은 노동을 필요로 한다. 또 필요 이상의 (가스나 전기)에너지를 사용하게 만들어 자원을 낭비하고, 무엇보다 비효율적이다. 각자 끼니를 알아서 해결하는 지금의 방식이 얼핏 자유로워 보여도 이면에서 수많은 소외와 차별을 만들어 내는 걸 생각하면, 복지 차원에서도 동네부엌은 필요하다.

누구든 양질의 먹거리를 적당한 가격에 먹을 수 있는 공간이 있었으면 좋겠다. 당연하겠지만, 이 부엌에서 일하는 사람은 적당한 노동의 대가를 '반드시' 받아야 한다. 하지만 당장 현실은 깜깜. 참치마요덮밥을 몇 그릇 해먹어야 이 여름이 지나갈까. 본격적인 여름은 아직 시작도 하지 않았다.

덧붙이는 글 | 이 글은 <시사인천>에도 실렸습니다.



태그:#참치마요덮밥, #요리에세이, #그림에세이, #가사노동, #동네부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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