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명의 시민기자가 개의 기사를 작성하였습니다. 시민기자 전환하기
1974년부터다. 소비자는 물론 생산자조차 유기농이 무엇인지 몰랐을 시절 이호열(62) 아름드리영농조합 대표는 전국 최초로 유기농업을 시작했다. 이호열 대표는 지금까지 45년 넘게 유기농을 지속하며 농민과 소비자가 상생하는 농업, 협업과 협력으로 지속 가능한 농촌을 이끄는 일에 앞장서왔다.

이 대표는 1996년 한살림아산생산자연합회를 시작으로 350여 농민 회원 100%가 40억을 출자해 현재 12개 사업장에서 연 400억의 매출을 달성하는 '푸른들영농조합법인(이하 푸른들)'을 키워온 산 증인이다. 푸른들과 함께 30년간 아산에서 한살림 운동의 핵심 역할을 해 온 그다. 지역 생산, 소비자 조직화와 협력을 통해 지역과 자원 순환형 농업 시스템을 구축하고 지속 가능한 농촌공동체 실현에 앞장서 온 공로를 인정받아 2015년 제23회 대산농촌문화상을 수상했다. 전국생산자연합회장과 35만 명 소비자가 가입한 소비자생협 공동 대표를 지내기도 했다.

현재 이 대표는 전국한살림생산자연합회 고문으로 활동하며 아름드리영농조합 대표직을 수행하고 있다. 평생 지역농업을 고민하고 지속 가능한 농업을 실천하는 농부의 길을 걸어온 이호열 대표를 만났다.

 이호열 대표
 이호열 대표
ⓒ 노준희

관련사진보기


유기농업, 그 험난한 시작

아산시 음봉면 산정리 일대는 이순신 장군의 14대손 이호열 대표가 살아온 이씨 집성촌이다. 이순신 장군의 절개를 그대로 품으려 해서일까. 산정리 농민들은 관에서 주도하는 농업을 고집스럽게 거부했다. 전통방식으로 농사를 지으려 했다. 생산성을 향상하는 줄모 대신 막모를 심었고 통일벼 같은 신품종을 심지 않고 전통적인 벼를 계속 지었다. 면사무소 공무원이 못자리를 갈아엎어도 농민들은 심던 벼를 다시 심으며 전통 논을 고수했다.

이런 마을에서 살던 이호열 대표가 유기농을 시작한 건 어쩌면 당연한지 모르겠다. 하지만 관행농을 하더라도 생산성 향상이 우선 목표였던 과거 농촌 현실에서 유기농을 지속한다는 것은 보통의 인내심과 철학으로는 지속할 수 없는 소명과도 같은 일이었다.

"고교졸업 후 편찮으신 형님 대신 아버님 말씀을 따라 농사를 지어야 했어요. 어떤 농사를 지어야 할지 고민이 많았죠. 깊이 생각해보니 그게 유기농이더라고요. 농약의 폐해를 이미 알고 있었으므로 남에게 피해 안 가는 농사를 지어야겠다고 생각했어요."

이순신 후손들이 모여 사는 지역 특성도 반영된 듯하나 모태신앙이었던 이 대표는 자연의 섭리를 따르는 농법을 하고 싶었다. 1974년부터 유기재배 쌀농사를 시작했는데 처음엔 소출이 형편없었다. 당연하다고 생각했다. 배운다는 자세로 물러서지 않고 유기재배 쌀을 계속 생산했다. 초창기 음봉감리교회와 YMCA의 양곡사업으로 힘을 얻어 점차 규모가 커졌다. 1982년 산정리 마을 전체가 1000가마 규모의 유기재배 쌀을 출하하는 집단재배지역으로 성장했다. 청년 농민 40여 명이 생산에서 가공, 유통까지 책임지며 서울과 직거래를 열어 소비자 시장을 개척했다. 이익이 생기면 소를 사서 키웠다.

"직거래도 전국 최초이지 싶어요. 근데 망했어요. 유기농답게 좋은 값을 받았지만, 유기농이 여전히 생소한 때라 소비가 늘지 않았고 지금처럼 교통이 원활하지 않았거든요. 서울 전체를 돌다 보니 물류비용이 많이 들고 수금도 어려웠어요."

농산물값을 떼이기도 했다. 적자가 불어나는데 급기야 1984년 농촌을 뒤흔든 솟값 파동이 나면서 지역 청년들이 하나둘씩 떠나고 말았다. 지역농업은 무너지기 직전이었다.

"유기농을 너무 일찍 시작했나 봐요. (웃음) 그러다 1987년 한살림 운동에 뛰어들면서 생산에 전념할 수 있게 됐어요. 이때 한살림 안에서 '장일순 선생'을 만났는데 내게 많은 영향을 주셨어요. 어렵고 힘든 일이 있을 때마다 그분 말씀을 새기며 나를 다스려왔지요."

한살림과 인연, 아산지역농업을 획기적으로 바꾸는 계기가 되다

1996년 한살림이 지역순환농업정책을 발표했다. 덕분에 농산물 계획생산이 가능해졌다. 지역순환농업은 기술, 자원, 생활환경양식 등 지역 내 순환을 통해 생태계의 지속성과 농업생산성의 지속을 이루는 농업을 말한다. 순환에 대한 바른 이해와 상생의 의지가 없으면 실천하기 어려운 철학이다.

"지역순환농업은 생산 가공 유통 소비가 순환되는 구조이기 때문에 성공할 수 있었던 것 같아요. 당시 아산에는 한살림 조합원이 19명이었는데 아산생산자연합회를 조직해서 지역순환농업에 참가했죠. 장기적으로 지속가능한 농업이 내겐 화두였어요. 그래서 생산자연합회로 그치지 않고 푸른들영농조합을 만들었지요."

콩나물 두부 등을 생산 유통하는 푸른들은 생산과정에서 발생하는 부산물인 콩깍지 콩비지와 유기쌀을 생산하는 농가로부터 볏짚 쌀겨 등을 받아 유기 축산 사료로 제공했다. 지역 유기 축산농가는 이런 유기 부산물을 사료로 이용해 키운 유기 축산물을 한살림에 공급했다. 지역 내 순환농업의 한 부분을 실천한 것이다.

"푸른들은 친환경농산물 생산과 가공, 유통을 담당하고, 한살림천안아산소비자생협이 판매를 책임지는 지역순환 경제체제가 된 것이지요. 소비자들이 안심하고 농축산물을 구매할 수 있는 구조가 형성된 거예요. 개인의 힘보다는 조합원 전체가 지역농업을 이해하고 함께 오래오래 가려고 했기 때문에 이룬 성과라고 생각해요."

현재 푸른들은 푸른들축산(유기 사료) 한들식품(한우 가공유통) 면 단위 영농조합(제터먹이 송악골 어진고을 아름드리) 등 총 12개 사업장을 운영하고 있다.

"장일순 선생의 가르침이 지금의 나를 있게 해"

이호열 대표가 푸른들을 조직한 건 농업을 지속하는 농민들 삶의 복지를 설계하기 위해서였다. 하지만 사람과 조직을 의지대로 관리하기란 그리 녹록지 않았다.

"얕은수를 써서 제 이익만을 챙기는 농사꾼을 보면 얄미웠어요. 학생운동과 농민운동을 해봤던 터라 강경하다면 강경한 성격이었던 거지요. 뜻대로 안 되는 일 때문에 평정을 찾지 못할 때면 장일순 선생은 '니가 그 사람 속에 들어가 보았냐'며 상대방의 입장을 헤아리게끔 가르치셨죠. 평생 생명운동을 펼치신 선생은 남을 배려하는 행동을 실천한 분이어서 말씀 하나하나 가슴에 깊이 와닿았어요."

콩나물과 토종밀을 생산하는 제터먹이가 사회적협동조합으로 출발한 것도 이 대표의 제안 때문이다. 순익을 배당하지 않는 사회적협동조합에 대해 조합원들의 불만은 적지 않았다. 이들을 설득하고 동의를 구하기란 무척 어려운 일이었다. 결국, 조합원들은 이 대표의 설득에 제터먹이의 '사회적 의미'에 동참했다.

"농업소득만으로 삶의 질을 높이긴 어려워요. 넉넉지 않아도 베풀고 나누는 일에 익숙해야 해요. 사회적협동조합이므로 이익을 지역에 봉사하고 인재를 키우는 일에 쓸 수 있는 거잖아요. 지역을 이끄는 건강한 조직이 많아지고 협업 협력이 잘되면 농촌이 지속 가능할 수 있을 거로 생각해요."

후계농 육성과 농촌 복지, 현재 농촌이 당면한 필수해결 문제

지속 가능한 농업을 위해 푸른들은 파격적인 준비를 해왔다. 조합원 자녀가 농업 관련 대학에 진학하면 4년 동안 전액 장학금을 주고 있다. 푸른들 직원들이 대학원을 진학할 때도 장학금을 지원한다. 이유는 후계농 육성을 위해서다. 이호열 대표는 지금 농촌의 가장 시급한 문제로 후계농 부족을 꼽는다.

"현재 농사짓는 사람들은 대부분 고령층이에요. 이분들이 돌아가시고 나면 농촌이 유지될 수 있을까요. 이건 심각한 문제예요. 농촌의 마을공동체가 남아 있게 하려면 후계농을 육성해야 해요. 농업을 지속해야 정책도 수립할 수 있고 농업에 종사하려는 사람이 있어야 농업을 계속할 수 있는 것 아닌가요. 하지만 농업관련학과에 진학하는 자녀들은 거의 없어요. 정말 안타까워요."

이호열 대표는 농부로서 현장에서 깨달은 경험들을 토대로 냉철한 분석을 내놓았다.

"사실 농업을 하겠다고 들어오는 청년들이 있어도 잘 버티지 못하는 경우가 많아요. 이론으로 배운 농업과 실제는 매우 다르기 때문이고 또 기존세대들은 청년들을 위해 양보하려는 마음가짐이 부족하더라고요."

이런 현실은 이 대표에게 많은 고민을 안겨주었다. 실상 농민들은 노후를 스스로 챙기지 않으면 보장받기 어려운 사회구조에 놓여 있었다. 이 대표는 평생 농사만 짓고 살며 딱 먹고 살 만큼만 버는 사람들이 자신 외의 사람들을 위해 양보하기란 쉽지 않았을 것으로 판단했다. 농민의 복지까지 책임지는 농업의 필요성이 매우 절실해졌다.

"농촌의 복지는 농민만의 문제가 아니에요. 특히 유기농업이 도태되면 도시민들도 안전한 먹거리를 취하기 어려워져요. 안전한 먹거리는커녕 식량 주권까지 잃게 될 수 있어요. 지속 가능한 농업은 농민과 소비자, 국가가 함께 책임져야 할 우선 과제라고요. 특히 국가는 목숨을 걸고 후계농 육성정책을 펼쳐야 해요. 그래야 농민과 농업이 살며 국민 전체가 살 수 있어요."

<장일순 선생은>
무위당 장일순 선생(1928~1994)은 생명사상을 가르친 교육자이며 실천 운동가이다. 무위당의 생명운동은 그가 남긴 '좁쌀 한 알에 우주가 있다'는 말로 압축된다. 산업 문명의 위기에 대한 극복 논리이며 그의 근본 화두는 생명이었다. 모든 생명은 서로 영향을 주고받는다는 것을 생명 운동의 근간으로 삼았다.

무위당의 교육활동 정치활동 협동조합 운동 등을 전개하면서 평생 무위를 실천하는 삶을 살아온 무위당의 사상과 활동은 전치 경제 사회 문화 등 각 분야에서 지속적인 영향을 미치고 있다.

덧붙이는 글 | 이호열 대표 인터뷰는 내용과 형식을 조금 다르게 작성해 천안아산신문에도 송고했습니다.



댓글
이 기사의 좋은기사 원고료 40,000 응원글보기
원고료주기

진실과 정의를 추구하는 오마이뉴스를 후원해주세요!

후원문의 : 010-3270-3828 / 02-733-5505 (내선 0)

오마이뉴스 후원하기

충남 주요소식과, 천안 아산을 중심으로 한 지역소식 교육 문화 생활 건강 등을 다루는 섹션 주간신문인 <천안아산신문>에서 일하는 노준희 기자입니다.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