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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산 신암리에서 나온 신석기 시대 '비너스'가 있다. 보통 이 비너스를 오스트리아 빌렌도르프 비너스와 견주어 설명하고, '풍요와 다산'의 상징으로 본다. 그런데 빌렌도르프 비너스를 '풍요와 다산'의 상징으로 보는 것은 처음부터 잘못된 가설일 수 있다. 그것은 풍요와 다산을 상징한다기보다는 '구석기인의 생명관'과 관련이 있을 가능성이 높다. 이것을 풀기 위해 빌렌도르프 비너스, 프랑스 로셀의 비너스, 러시아 코스텐키 비너스, 울산 신암리 여인상 해석을 3회에 걸쳐 싣는다. - [편집자 말]
목 아래와 왼쪽 가슴, 왼쪽 어깻죽지에 나 있는 구멍과 골은 원래 돌에 나 있었다. 이 비너스를 조각한 구석기인은 어깻죽지에 나 있는 골을 아주 절묘하게 썼다. 몸에 견주어 손과 팔을 작게 한 까닭은 돌 모양에 맞춰 하다 보니 그랬을 것이다.
▲ 빌렌도르프 비너스의 머리 목 아래와 왼쪽 가슴, 왼쪽 어깻죽지에 나 있는 구멍과 골은 원래 돌에 나 있었다. 이 비너스를 조각한 구석기인은 어깻죽지에 나 있는 골을 아주 절묘하게 썼다. 몸에 견주어 손과 팔을 작게 한 까닭은 돌 모양에 맞춰 하다 보니 그랬을 것이다.
ⓒ 오스트리아 빈 자연사박물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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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리에 숏비니를 쓴 빌렌도르프 비너스

미술학자들은 빌렌도르프 비너스를 말할 때 주로 가슴과 엉덩이를 중심으로 설명한다. 그런데 정작 중요한 부분은 머리다. 당시 구석기 조각가는 단단한 돌로 무른 석회암 돌을 문지르고 갈아 이 여인상을 조각했다. 특히 이 조각가는 머리 부분을 가장 마음 써서 조각했다. 보는 바와 같이 이곳은 문지르고 비벼서 하지 않았다. 일일이 쪼고 갈아 이런 모습을 만들었다. 대체 이것은 무엇을 뜻하는 것일까. 펌을 한 것일까. 아니면 뽀글이 숏비니를 눌러 쓴 것일까.


그런데 비니라면 이마까지만 쓰고 눈 코 입을 새겨야 하지 않을까. 지름이 2센티미터 남짓 되는 머리에 이토록 섬세하게 조각을 했다면 눈 코 입을 나타내는 것은 일도 아니었을 것이다. 그런데 이 구석기 조각가는 그러지 않았다.


아래 비너스는 1988년 러시아 돈 강 코스텐키(kostenki) 구석기 유적지에서 찾은 비너스 가운데 비니를 쓴 모습이 아주 뚜렷하게 보이는 것이다.


 
가장 왼쪽 위아래 사진은 비너스 머리다. 흔히 ‘골프공 비너스 머리’라고 한다. 모두 머리에 비니를 썼다.
▲ 러시아 코스텐키 비너스와 비니 가장 왼쪽 위아래 사진은 비너스 머리다. 흔히 ‘골프공 비너스 머리’라고 한다. 모두 머리에 비니를 썼다.
ⓒ 러시아 상트페테르부르크 에르미타주 미술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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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 비너스에서 가장 왼쪽 위아래 두 사진은 '골프공 비너스 머리'로 알려져 있다. 구석기 조각가는 실로 짠 비니를 골을 깊게 파 표현했다. 이 비너스 머리는 빌렌도르프 비너스가 머리에 쓴 것이 비니라는 것을 말해 주고 있다. 그런데 빌렌도르프 비너스도 그렇고, 위 사진에서 오른쪽으로 두 번째 비너스를 보면 비니를 거의 눈까지 눌러 썼다. 그리고 또 하나 공통점은 얼굴에 눈 코 입 귀를 새기지 않았다는 점이다. 대체 이들은 왜 눈 코 입 귀를 새기지 않은 것일까.

아기의 탄생과 구석기 여인의 욕망

아래 비너스는 프랑스 남서부 도르도뉴 베제르 골짜기 로셀 마을에서 나왔고, 기원전 25000년 전 구석기인이 새긴 것으로 밝혀졌다. 흔히 이 비너스가 나온 마을 이름을 따서 '로셀의 비너스'라고 한다. 이 비너스를 볼 때는 자리에서 일어나 똑같이 몸짓을 해 봐야 한다. 이렇게 해 보면 왼팔 길이가 짧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몸은 정면을 보고 있고, 고개를 오른쪽으로 틀어 들소 뿔잔에 든 물을 마시고 있다. 그래서 머리카락 모양이 왼쪽으로 내려와 있는 것이다.
 
석회암 높이 46센티미터. 프랑스 남서부 도르도뉴에서 나왔고, 기원전 25000년 전 구석기인이 새긴 것으로 밝혀졌다.
▲ 로셀의 비너스 석회암 높이 46센티미터. 프랑스 남서부 도르도뉴에서 나왔고, 기원전 25000년 전 구석기인이 새긴 것으로 밝혀졌다.
ⓒ 파리 인류박물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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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신한 여자인데, 왼손은 아랫배에 대고 있다. 왼손을 보면 처음에는 타원형으로 대충 새겼다가 나중에 손가락을 표현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 부조상 또한 볼록한 아랫부분(부조상의 아랫배)을 중심으로 새기기 시작했다. 이것은 위 사진에서 가장 오른쪽 사진을 보면 알 수 있다. 구석기인은 아래쪽이 볼록한 석회암 돌에 임신한 여자 몸을 새긴 것이다. 이렇게 돌 모양에 맞춰 새기다 보니 상체는 길고 하체는 짧게 되어 있다. 더구나 머리 위로는 남는 부분까지 있다.


구석기 조각가는 아기의 탄생이 들소 뿔잔에 든 물(또는 남자의 정액)에서 왔다는 것을 나타내고 있다. 그런데 뿔잔에 빗금이 열세 개 그어졌다. 원래 들소 뿔은 밋밋한데 일부러 빗금을 그은 것이다. 이것은 윤달이 있는 태음태양력을 표현했다고 볼 수 있고, 월경 주기하고도 관련이 있다. 그래서 '수(數)와 수학의 기원'을 여자의 월경 주기에서 찾는 것이다.


그리스로마 시대에 뿔은 풍요의 상징이었다. 마찬가지로 구석기 시대에도 들소 뿔은 풍요의 상징이다. 들소는 구석기인들이 잡기 힘든 짐승이고, 일단 잡으면 한 마을 사람들이 며칠 동안 고기를 먹을 수 있었다. 물론 들소 사냥은 남자들의 몫이었고, 그래서 들소는 남성을 상징한다. 로셀의 비너스가 든 뿔잔은 남성을 상징하고, 그 남성에 월경 주기를 그어 놓았다. 또 이 뿔잔에 든 물(정액)을 마시고 아이를 임신했다는 것을 말하고 있다. 구석기인들은 여자의 난자를 몰랐기 때문에 남자의 정액과 여자의 피가 만나 아이가 생긴다고 보았을 것이다.


또한 이것은 들소를 사냥할 수 있을 만큼 강한 남자의 씨가 자신의 뱃속에서 자란다는, 아니 그런 아이가 들어섰으면 하는 구석기 여인의 '욕망'을 표현한 것이기도 하다. 그런 의미에서 로셀의 비너스를 조각한 이는 여자 구석기인일 가능성이 높다. 사실 우리는 지금까지 구석기 비너스를 조각한 이를 단지 '구석기인'이라고만 했지, 그 구석기인이 남자일지 여자일지는 생각해 보지 않았다. 물론 이것은 구석기 비너스의 상징과 용도의 문제일 것이다. 

 
빗금을 정확히 13개를 그어 음력을 나타냈다. 왼손을 아랫배에 조심스럽게 대고 있다. 그런데 처음에는 대충 타원형으로 그렸다가 나중에 다시 손가락을 그렸다는 확인할 수 있다.
▲ 로셀의 비너스의 들소 뿔잔과 골반 빗금을 정확히 13개를 그어 음력을 나타냈다. 왼손을 아랫배에 조심스럽게 대고 있다. 그런데 처음에는 대충 타원형으로 그렸다가 나중에 다시 손가락을 그렸다는 확인할 수 있다.
ⓒ 파리 인류박물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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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상과 추상, 욕망까지도 새긴 구석기 조각가

로셀의 비너스를 보면 골반과 배꼽과 임신한 여자의 아랫배가 아주 사실적으로 표현되어 있다. 또 풍만하지 않은, 아래로 쳐진 가슴은 이 여인이 임신 초기라는 것을 말해 준다. 이러한 리얼리즘적인 '구상'과 더불어 남성을 상징하는 뿔잔('욕망')에 월경 주기를 새겨 넣어 '추상'까지도 그려낼 수 있는 구석기인들이었다. 그런데 그들은 왜 얼굴을 자세히 나타내지 않은 것일까. 더구나 로셀의 비너스 얼굴은 오른쪽으로 틀어 뿔잔을 보고 있다. 그렇다면 눈 코 입 귀를 정면 얼굴보다 더 쉽고 간단하게 새길 수 있다. 하지만 이 구석기 조각가는 그렇게 하지 않았다. 어쩌면 이는 당시 구석기인들의 생명관, 그에 따른 두려움과 관련이 있을 것이다.

귓구멍, 콧구멍, 입, 눈구멍을 막아라

뉴기니 부족 아라페쉬인은 사람 몸에서 '생명의 혼'이 빠져나가면 죽는 것으로 보았다. 그들 또한 남자의 정액이 생명의 씨앗이라는 것쯤은 알고 있었다. 그런데 아이는 자라면서 부모를 닮고, 부모 가운데 한 사람을 더 닮는다. 그들은 아기 씨가 남자의 정액일 것이라고는 알았지만 아이가 자랄수록 한쪽 부모를 더 닮는 것은 엄마 아빠 혼 가운데 어느 한쪽 혼이 아이에게 들어갔다고 보았다. 바로 이 혼이 몸 밖으로 나오면 죽는 것이다.


이 혼은 인간의 몸에 나 있는 구멍을 통해서 나온다. 귓구멍, 콧구멍, 입, 눈구멍이 혼이 밖으로 나올 수 있는 구멍이다. 이 구멍을 막아야 한다. 로셀의 비너스에서 눈 코 입 귀를 새기지 않은 것은 바로 이러한 두려움 때문이다. 마찬가지로 빌렌도르프 비너스와 러시아 코스텐키 비너스가 숏비니를 코까지 눌러 쓴 것은 이 구멍을 막고 있는 모습을 조각한 것이다. 아이가 들어섰다 하더라도 혼이 나가면 뱃속에서 죽기 때문에 그것을 막으려고 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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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빌렌도르프 비너스의 목과 다리 ·
ⓒ 오스트리아 빈 자연사박물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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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한 이는 밖에서 들어오는 혼을 막는 구실도 한다. 그것은 쌍둥이에 대한 두려움이었다. 동양이나 서양이나 쌍둥이는 불길한 징조였다. 쌍둥이는 빛과 어둠, 낮과 밤, 하늘과 땅, 차오르는 달과 이지러지는 달처럼 양면성을 상징한다. 그들은 쌍둥이가 동시에 생기는 것이 아니라 한 아이가 생긴 다음에 또 한 아이의 혼이 들어온 것으로 보았을 수도 있다. 유럽 구석기인들이 여자 얼굴에 대한 미(美) 관념이 없었기 때문에 비너스 상에 얼굴을 새기지 않은 것이 아니라 그들의 독특한 생명관에서 비롯한 것으로 볼 수 있다.



이렇게 봤을 때 빌렌도르프 비너스는 풍요와 다산을 상징하는 여인상이 아니라 구석기인들의 생명관 또는 그에 따른 두려움을 나타낸 것으로 볼 수 있다. 애가 들어섰을 때는 눈 코 입 귓구멍을 막아야 한다는 것을. 어쩌면 구석기 여자들은 애가 서면 숏비니를 짜 눌러썼을지도 모른다. (눈까지 내려 쓰더라도 아주 안 보이는 것은 아니다.) 낮에는 눈, 귀, 콧구멍이 안 보이게, 밤에는 입까지 눌러쓰고 잤을지 모를 일이다. 또 그들은 직접 이런 여인상을 조각하여 늘 지니고 다녔을 것이고, 밤에는 곁에 놓고 잠을 잤을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이것은 아이가 들어서면 구멍이 보여서는 안 된다는 '금기(taboo)'를 새긴 부적이라 할 수 있다. 이렇게 본다면 유럽과 남·서부 러시아에서 나오는 구석기 비너스는 여자 구석기인이 조각했을 가능성이 아주 높다.


(다음호에 이어서 씁니다) 

 

덧붙이는 글 | 이 글은 광주드림에도 보냅니다.


태그:#김찬곤, #빌렌도르프의 비너스, #로셀의 비너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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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세상 말에는 저마다 결이 있다. 그 결을 붙잡아 쓰려 한다. 이와 더불어 말의 계급성, 말과 기억, 기억과 반기억, 우리말과 서양말, 말(또는 글)과 세상, 한국미술사, 기원과 전도 같은 것도 다룰 생각이다. 호서대학교에서 글쓰기와 커뮤니케이션을 가르치고, 또 배우고 있다. https://www.facebook.com/childkl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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