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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앞에 설래!> 저 : 나딘 브랭 코즈므 역 : 박정연 그림 : 올리비에 탈레크
 <내가 앞에 설래!> 저 : 나딘 브랭 코즈므 역 : 박정연 그림 : 올리비에 탈레크
ⓒ 아름다운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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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 친구가 있었어요. 가장 덩치가 큰 털북숭이 레오, 두 번째로 큰 나, 그리고 가장 작은 친구는 토끼 레미. 털북숭이 레옹은 늘 앞장서서 걸었고, 나와 토끼 레미는 서로 손을 잡고 털북숭이 레옹 뒤에서 걸었죠.

토끼 레미와 나는 털북숭이 레옹의 커다란 등에 가려서 아무 것도 보지 못 했어요. 그래도 괜찮았어요. 털북숭이 레옹이 무엇이 있는지 말해 주고 레옹 뒤에 있으면 안전했거든요. 나와 토끼 레미는 털북숭이 레옹의 말을 잘 따랐어요, 털북숭이 레옹은 뭐가 위험한 것인지 잘 알거든요.

어느 날, 레옹이 풍선이 바다로 날아가고 있다고 말했어요. 그러자 나는 처음으로 앞에 서서 풍선이 보고 싶어졌어요.

"풍선이 안 보여. 내가 앞에 설래!"

레옹은 머뭇거리다 뒤로 갔어요. 나는 앞장서서 가는 것이 좋았어요. 처음으로 자동차, 구름, 나무들 그리고 풍선을 맨 먼저 보았어요. 나는 어른이 된 것 같았어요. 털북숭이 레옹와 토끼 레미가 내 뒤를 따라 걸었어요. 어느 날 아침, 토끼 레미도 뒤에서 걷는 것이 지루해졌어요.

"내가 앞에 서도 돼?"

토끼 레미가 맨 앞에서 섰어요. 토끼 레미도 어른이 된 것 같았어요. 그런데 자동차 한 대가 지나가며 토끼 레미에게 물을 튀겼어요. 나는 토끼 레미 손을 꼭 잡아주고 근사한 이야기를 들려주었어요. 토끼 레미는 기분이 좋아져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어요. 이제 나와 토끼 레미는 둘이서 함께 손을 잡고 앞장서 걸었어요. 그런데 별안간 털북숭이 레옹이 외쳤어요.

"조심해! 트럭이야!"

레옹이 토끼 레미의 다른 손을 잡았어요. 이제 셋은 모두 함께 앞서 나란히 걸었어요. 레옹은 위험을 발견하거나 멈춰 설 때를 알려 주었고, 나는 재미있는 이야기를 지어내 들려주었고, 가운데에 선 토끼 레미는 노래를 불렀어요. 이렇게 친구들 손을 붙잡고 나란히 걷는 건 정말 좋았어요.

친구와의 우정보다 부모 자식관계에 대해 생각하다

<내가 앞에 설래!> 그림책은 앞뒤 일렬로 줄을 세우는 것보다 나란히 옆으로 함께 걷는 걸음이 주는 즐거움을 이야기하는 책이다. 서로 크기도 다르고 잘하는 일도 다른 세 친구가 앞뒤로 서서 한 줄로 걷다 나란히 걷게 되는 이야기가 초원, 숲속, 바다, 뉴욕, 영국 같은 다양한 공간을 배경으로 펼쳐진다. 독자는 세 친구와 같이 전 세계를 여행하다가 마지막 부분에서 앞뒤 우선순위 보다 내 옆에 친구 손을 잡고 걷는 게 중요하다는 걸 느끼게 된다.

올리비에 탈레크가 그리고 나틴 브랭 코즈므가 글을 쓴 이 책을 보면서 '부모와 자식' 관계가 떠올랐다. 덩치 큰 털북숭이 레옹은 부모, 두 번째로 큰 나와 토끼 레미는 자식이라고 생각하며 읽었다.

부모 뒤에서 안전함을 느끼며 걷던 아이들이 부모를 뒤로 하고 앞으로 나오고 싶어하는 때가 온다. 세상을 직접 부딪치며 겪어 보고 싶은 아이들에게 부모들은 자리를 내어주고 뒤로 물러난다.

하지만, 현실에선 그림책처럼 뒤로 물러남이 자연스럽지 않고, 물러난 뒤 다시 자식 옆으로 다가와 나란히 손 잡는 일이 쉽지 않다. 언제까지나 자식이 부모 뒤에 있어야 한다고 생각하고 이미 앞서 있는 자식 등을 보면서도 내 뒤에 서라고 안간힘을 쓰는 어른이 더 많다. 특히, 아이들이 어릴수록 부모는 자신이 자식 앞에 서서 레옹처럼 행동하는 게 당연하다고 생각한다.

얼마 전 6살 아이와 차를 타고 이동하는데 뒤에 앉아 있던 아이가 네비게이션에서 나오는 이야기를 듣고 알아 들을 수 없는 말을 질문했다.

"엄마, 쏼랄라울랄라가 무슨 말이야?"

보통 아이가 잘못 듣고 하는 말들이 원래 말과 비슷한 음이면 어느 정도 유추가 가능하다. 예를 들어 '300미터 앞에서 좌회전입니다'라는 말을 아이가 '300미터 앞에서 자태전이 뭐야?'라고 했다면 유추해서 답을 해줄 수 있다. 그런데 이날 아이가 한 말은 도저히 알 수 없는 발음이었다.

"엄마가 운전하느라 못 들었어."
"네비게이션에서 쏼랄라울랄라 하고 했어."

운전하느라 못 들었다고 했지만 아이는 그 말에 대한 질문을 멈추지 않았다.

"동글아, 그런 말은 없어."
"나는 들었고, 엄마는 못 들었는데 없는 걸 어떻게 알아?"

아차 싶었다. 어른인 엄마가 생각하기에 네비게이션에서 나올 수 있는 말은 정해져 있으므로 그런 말은 없다고 단정 짓고 말한 건데 아이 생각은 달랐다. 자신보다 정보가 부족한 엄마가 '없다'고 말하는 과정을 이해할 수 없어 하는 아이에게 왜 그런 결론을 내렸는지 설명해줬다.

아이와 있을 때 내 앞에 있는 작은 존재가 하나의 완전한 인격체라고 생각하는 일은 육아에서 가장 중요한데 가장 어렵다. 작다는 이유만으로 미성숙하고 가르치고 이끌어야 할 존재로 보지 동등하게 보기 힘들다. 아이 입장에서 생각하지 못하고 '엄마가 없다고 하면 그렇게 생각하겠지'라고 쉽게 "그런 말은 없다"고 말한 것처럼 부모 말을 당연히 따라야 한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아이들은 당연하지 않다. 자신이 아는 범위 안에서 이해하려고 노력한다. 서로 경험한 범위가 다른 존재인 거지 우위가 있는 게 아니다. 만일 아이가 한 질문을 성인이 했다면 내 대답이 같았을까?

아이들을 있는 그대로 동등한 존재로 인정해주어야 한다. 있는 그대로 자기 자신을 인정받은 경험이 많아야 타인을 이해할 힘이 생긴다. 어리숙하고 실수도 많고 작지만 있는 그대로 인정받고 존중받는 경험을 한 아이들은 용감하게 앞으로 나아간다.

6살 아들과 관계가 <내가 앞에 설래> 그림책 결말과 같았으면 좋겠다. 아직은 어려서 엄마 뒤에서 안전함을 느낄지 모르겠지만 아이가 앞에 서겠다면 언제든 뒤로 물러나 주고, 아이가 어려울 때 옆에서 손잡아 주고 싶다. 그러기 위해서 '넌 아직 어려서 몰라'라고 단정짓지 말고, 아이를 있는 그대로 수용하고 동등한 인격으로 대우할 수 있도록 노력해야겠다.


내가 앞에 설래!

나딘 브랭 코즈므 글, 올리비에 탈레크 그림, 박정연 옮김, 아름다운사람들(2016)


태그:#내가앞에설래, #동등한인격, #부모와아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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