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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수 매체의 소위 보수 논객들은 '문재인'이라는 단어만 나와도 악의적인 비방을 일삼기 일쑤였다. 그런데...
 보수 매체의 소위 보수 논객들은 '문재인'이라는 단어만 나와도 악의적인 비방을 일삼기 일쑤였다. 그런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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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편 출연 몇 년간 괴로운 상황이 참 많았다. '문재인' 때문이다. 보수 매체의 소위 보수 논객이나 정치인들은 문재인에 대해 일단 입을 열었다 하면 온통 악의적 비방과 험담, 조롱 투성이다. 그 수위가 어느 정도인지 옮기기조차 힘들다. 그런 대목이 대부분 편집돼서 그렇지 적나라하게 방송됐다면 아마 속 뒤집어지는 사람 많았을 거다.

그런 상황 속에서 취할 수 있는 대응은 필사적이고 날선 방어일 수밖에 없었다. 어떤 변호사는 녹화 중 나를 향해 '야, 너!'라고 삿대질하며 쌍욕에 가까운 고함을 질러댄다. 나 역시 혀를 질끈 깨물며 그에 못지않은 맞고함을 질러댄다. 조용조용하던 평소의 나는 사라져 버린다. 그 모든 싸움을 내가 먼저 거는 일은 드물다. 항상 저쪽이 도발하고 나는 독하게 더욱 독하게 방어해야 하는 일이 반복됐다.

나는 방어자였다. 정치인 문재인에 대한 방어적 지지가 스스로 자임한 역할이었다는 말이다. 사실은 김대중에서 문재인까지 민주당 지지자들의 신세가 다 그러했다. 그렇게 옥신각신 하며 세월은 흘러갔고 정치인 문재인이 마침내 대통령이 됐건만, 종편 현장에서 비방과 조롱의 상황은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하지만 세상은 변한다. 집권 1년 차에 6.13 지방선거가 치러졌고 우리가 다 아는 엄청난 결과가 나타났다. 그 파장은 놀라왔다. 저들은 현저히 기가 죽었고, 수구의 소리를 듣지 않고자 논조조차 바꾸는 기색이 역력했다. 경제문제를 들어 사이드펀치를 날리기는 하지만, 남북 평화국면 조성에 대한 범국민적 환호 앞에서 비방의 목소리는 낮아졌고 감히 대통령에 대한 조롱은 엄두를 내지 못하는 듯 보인다.

이제 숨 좀 돌리려나. 앞으로는 다른 입장을 놓고서도 조곤조곤 생산적 토의가 가능해지려나.

스스로 초래한 더 시끄러운 일

그런데 더 시끄러운 일을 나 스스로 초래하게 됐다. 저쪽, 수구보수와의 싸움이 아니라 민주당 지지층 일부와 일전을 벌이게 된 것이다. 최근 나는 총 다섯 군데의 팟캐스트에 출연해 폭포수처럼 말을 쏟아냈다.

첫째, 집권 민주당이 문호를 개방해 정계개편을 주도해야 한다는 주장. 노태우, 김영삼, 김종필의 3당 합당의 기억 때문이다. 서청원, 김무성으로 상징되는 김영삼 계열의 이른바 '민주인사'들도 결국에는 박정희 공화당, 전두환 민정당의 이념과 노선으로 수렴되더라는 체험 때문에 지금의 민주당이 설사 김성태, 하태경을 영입하더라도, 심지어 홍준표를 들여놓아도 결국은 김대중 노선으로 수렴될 것이라는 확신이 든다. 정치인은 지지자를 따라가는 거니까.

보수정치인들의 소신이라는 걸 나는 가소롭게 본다. 평화당 쪽의 이른바 반문정서 역시 선거공학의 산물일 뿐이다. 아무나 다 함께할 수야 없겠지만, 개혁동력을 위한 문호개방에 망설임이 없어야 한다. 아마 현실을 모르고 하는 말이라고 반박할 것이다. 현역 민주당 의원들이 수긍할지도 미지수다. 그렇지만 비슷한 성향의 사이좋은 의원들끼리 자족적으로 정치하는 '집권당의 웰빙화'와 정권발 개혁을 뒷받침할 의회권력의 세 부족을 나는 크게 우려한다.

팟캐스트에서 행한 두 번째 의견은 이재명을 고리로 한 민주당 지지그룹의 분열상에 대해서다. 정확하게는 분열이기보다 팟캐스트와 소셜미디어를 통한 특정인들의 이재명 집중공격을 의미한다.

논란 많은 이재명, 좋아할 수도 있고 싫어할 수도 있다. 그런데 문 대통령 열혈지지를 자처하는 일군의 사람들은 그 수준을 넘어선다. 선거승리를 이끈 민주당 지도부를 향해 비난을 남발하고, 범민주진영의 여러 논객들을 향해 거의 저주와 증오가 담긴 막말을 퍼붓는다. 이유는 '부도덕한' 이재명을 내치지 않는다는 것 때문이다. 싫어할 수도 반대할 수도 있지만 원한 서린 저주, 증오, 심지어 상대 당 남경필 후보 지지운동, 더 나아가 선거 후 당선인의 경기도지사직 사퇴까지 온힘을 다하겠다는 결의는 너무 지나치지 않은가?

그 소란 속에서 나는 다른 맥락을 읽었다. 긴 정황을 짧게 줄여서 말하자면 의도됐든 아니든 이 풍파가 내게는 문재인 대통령의 고립화로 이어질 것으로 보였다. 이재명은 단지 첫 번째 타깃일 뿐, 돌아가며 끝도 없는 내부총질이 이어질 것이 예견됐다. 확신할 수는 없으나 정치권 파이프를 통해 으스스한 음모론까지 전해들은 바 있다. 이 분란은 앞으로도 길고 괴롭게 전개될 것이다.

어쨌거나 그 바람에 나는 졸지에 팔자에 없는 이재명 지지자로 둔갑해 버렸다. 진영 논리적 옹호와 정치적 지지는 다른 것이라고 해명해도 소용없으니 이렇게까지만 말해야겠다. 미래 가치가 있는 민주당계 정치 리더라면 최소한 공정한 그라운드에 올려놓아야 한다고. 그를 둘러싼 스캔들이 사실 규명되기 전까지는 확증편향의 우를 범하지는 말자고.

지방권력의 대부분을 획득한 이 놀라운 결과물에도 불구하고 지금 민주진보 진영의 지지자들은 추미애 당대표는 물론 유시민, 김어준, 손석희까지 모두 몹쓸 사람으로 몰아붙이는 특정집단의 기관총 난사에 뒤숭숭하기만 하다. 축제 분위기는커녕 썰렁하고 어색한 냉기마저 감돈다.

'문재인 폄하'의 주인공이 되다

문재인 대통령이 27일 오전 청와대 춘추관 대브리핑실에서 전날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과 가진 제2차 남북정상회담 결과를 발표하고 있다.
▲ 문재인 대통령, 2차 남북정상회담 결과 발표 문재인 대통령이 27일 오전 청와대 춘추관 대브리핑실에서 전날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과 가진 제2차 남북정상회담 결과를 발표하고 있다.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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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또 하나의 사달이 예기치 않은 대목에서 벌어졌다. 이 쟁점의 마지막 출연이라고 마음먹고 나간 팟캐스트 방송 '새가 날아든다'에서 나는 '문재인 폄하 발언'의 주인공이 돼버렸다. 반문친이(친이재명) 커밍아웃을 했다는 둥, (일정 부분 사실이기도 한) 종편 앵벌이의 본색이 드러났다는 둥, 타임라인을 통해 일생 먹을 욕을 다 먹게 됐다. 그나마 내가 크게 유명인이 아니어서 타임라인 내에서의 소란이지 유시민 정도의 체급이었다면 한동안 전 언론이 시끄러워졌을 법한 강도였다. 이 글의 목적이 그 일에 대한 해명은 아니지만, 몇 가지 언급은 해야 할 것 같다. 문제된 발언은 대략 이렇다.

'문 대통령의 외교적 성과를 보면 천운을 타고난 사람 같다, 북한의 사정, 트럼프라는 뜻밖의 산타클로스의 출현 등등 성취의 50프로는 행운의 덕분인 것 같고 노무현 대통령의 불운을 두 배로 보상받는 것 같다.' 대통령의 역량과 업적을 행운으로 돌리는 내 발언에 사회자는 몹시 불편해 했다. 진짜 문제된 발언이 이어진다.

'지지자들에게 돌 맞을 말이지만, 문통의 가족 같은 지인 말에 따르면 그 양반 꽁생원이래요, 꽁생원.'
'2012년 대선 때는 준비가 부족했고 박근혜 탄핵 국면에서는 우왕좌왕 하기도 했어요. 문재인 대통령을 보면 노태우가 떠올라요. 스타일이 닮았어요, 운운.'
사회자는 한숨을 쉬며 편집해야겠다고 했지만 나는 그러실 필요 없다고 말했다.

말하기도 구차하지만, 나는 일생 단 한 번도 정치적 견해와 신념을 변경한 적 없다. 한반도 평화구상과 대중경제론을 펼친 김대중은 존경하는 평생 스승이었고, 사방에서 모두가 등 돌릴 때조차 나는 노무현 최후의 지지자 1인을 자처하며 정치 칼럼을 썼다. 다들 문재인의 발견자로 김어준을 꼽지만 공개적으로 드러나지 않았을 뿐 사실은 내가 먼저라고 주장해 좌중의 웃음을 사기도 한다. 이런 일관성이 일생의 자부심인 사람들이 꽤 있는데 나도 그중의 하나다. 더욱이 지금은 문재인의 시대, 도대체 왜 그를 폄하하겠는가.

먼저 마음에 상처받은 분들, 특히 젊은 지지자들에게 사죄와 용서를 구한다. 사랑과 존경이 담긴 자랑스러운 영웅이자 아버지 같고 형님 같고 또는 친구 같은 대통령을 향해 꽁생원이라니! 그의 외교성과가 천운 때문이라니! 전두환의 친구 노태우와 비견하다니! 일정 정도 예상은 했지만 그 격분에 대해 사과를 해야 할 것 같다. 의도된 도발이었지만 지나쳤다는 점 역시 인정해야 할 것 같다.

언젠가 대통령의 지인에게서 꽁생원 표현을 들었을 때 우리는 서로 배를 잡고 웃었었다. 말해준 사람의 표정에는 친근한 애정이 듬뿍 담겨있었고, 공적 영역에서만 대통령을 접한 내게는 원리원칙주의자로서 사악한 세상에 맞서온 그의 순하고 선한 눈망울이 떠올랐다. 꽁생원 표현 속에 염결한 생을 살아온 인간 문재인의 사사로운 면모가 비유적으로 읽혀졌던 건데, 어찌 그 뉘앙스를 남들이 이해해주랴. 그래서 용서를 구한다는 말이다.

하지만 '노태우 스타일' 운운은 결이 다르다. 자, 말해 보자. 너무나 불경한 비유인가? 반문의 선언이고, 변절의 표시인가?

민주당이 한국의 다수파가 되기까지

우리는 어떤 대통령, 누구의 대통령을 원하는 걸까. 신념을 변치 않은 전통적 민주당 지지자들은 이 변화된 환경에서 어떤 마음가짐을 가져야 하는 걸까. 청산해야 할 적폐의 범위는 어디까지 설정해야 하는 걸까. 2016년 총선의 결과물, 2017년 대선 승리, 2018년 지방선거 압승에 이르는 동안 민주당으로 대변되는 세력의 위상변화는 한마디로 정리될 수 있다. 마이너리티(minority. 소수파)에서 머조리티(majority. 다수파)로, 바로 이것이다. 민주당적 가치와 세력이 한국의 다수파가 된 것이다. 그 의미를 종래의 민주당 지지자들은 어떻게 받아들이고 있을까.

예나 지금이나 유권자의 25퍼센트 내외로 추정되는 진성 민주당 지지세력은 태도를 변경한 적이 없다. 현재의 민주당은 보수와 중간지대 유권자 30퍼센트 가량이 새로 유입되어 압도적 다수파를 형성하게 된 것이다. 계층 요인이건 지역 요인이건 또는 세대 요인이건, 과거 민주당은 저항적 소수파였다. 다수파이자 사회주류인 보수 지배세력으로부터 당과 리더를 지키기 위해 항상 방어적 지지, 다시 말해 과잉옹호를 해야만 했다. 상대편을 향한 죽기살기식 투쟁이 불가피했었다.

그런데 그 세월이 너무 길었다. 마침내 실질적 다수파가 됐어도 관성적으로 저항적 방어적 태도를 변경하지 못하면 어떤 일이 벌어지는가. 열린우리당의 비극이 재연될 가능성이 높다. 당시 의회 다수를 점했던 집권 열린우리당 의원들은 진보성 경쟁과 선명성 과시에 바빴고, 전 국민을 끌어안아야 하고 미국의 눈치를 보아야 할 대통령의 처지를 아랑곳 하지 않았다. 그 바람에 중도층이나 보수로부터 유입된 신흥지지층이 결합될 틈새가 도저히 생겨나지 않았다. 그들은 저항하고 투쟁하고자 열린우리당을 찍었던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때의 집권당은 선명하고 강경한 소수파의 길을 스스로 찾아들어 갔다.

더불어민주당 추미애 대표와 홍영표 원내대표가 18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최고위원회의에 참석하고 있다.
 더불어민주당 추미애 대표와 홍영표 원내대표가 18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최고위원회의에 참석하고 있다.
ⓒ 남소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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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지방선거를 통한 보수정치세력의 몰락을 두고 홍준표나 그쪽 의원들의 행태에 과도한 의미부여를 한다. 과연 홍준표 막말이 보수몰락의 주요인이겠는가. 유권자들은 영리하고 현실적인 법이다. 보수 몰락은 보수 정치인들의 태도불량 때문이 아니라 그쪽 진영의 이념과 정강정책의 효용성이 소멸했기 때문이다. 더 이상 내 삶의 현실적 이익과 안전을 보수세력에게 의탁할 수 없다는 결론에 이르렀기 때문에 박근혜 이명박 또는 박정희에게서 정서적 일체감과 안정감을 느끼던 다수가 이탈해 문재인에게 기대고자 다가온 것이다.

어렵고 험한 시절을 민주당 기치 아래 버텨온 신념형의 지지자들은 이제 집중적 고민을 시작해야 한다. 새로운 손님, 아니 새로운 동료를 배려할 여유는 없겠는가. 그들은 오히려 수적으로 더 많을 가능성이 크다. 그들을 배려한다고, 다시 말해 보수로 분류됐던 정치사회적 자산을 수용한다고 남북간 화해, 보편복지의 확대, 재벌경제의 폐해 청산이 미뤄질 일은 없다.

작고한 김종필 빈소에 대통령이 문상 간다고, 훈장을 추서한다고 갈 길을 안 가는 것이 아니란 말이다. 존경하는 황교익 선생이 공개적으로 '지긋지긋 하다' 한 김종필의 굴절된 생애를 우리만 아는 것이 아니다. 새로운 지지자들도, 심지어 외골수 보수파조차 무엇이 문제였는지 알 것은 다 안다.

다만 차이가 있다면, 전통적 민주당 지지자들이 갖는 적대감과 달리 그들은 이승만, 박정희, 전두환, 노태우 등에게 양가감정을 갖고 있다는 사실이다. 독재도 했고 부패하기도 했지만, 내 삶에는 유익했다고 여기는. 설사 그것이 오도된 인식일지라도 그걸 바로 잡으려는 계몽주의가 더 필요할까, 아니면 모두를 진보국민과 보수국민으로 편 갈랐던 사악한 '두 국민 전략'을 극복하는 것이 더 긴요할까.

보수에 기댔던 사람들의 역사가 있다. 또한 3기에 걸친 민주정부의 역사가 진행 중이다. 그동안 두 개의 역사가 따로 놀았고 정권을 주고받았다. 계속 그 같은 주고받기를 원하는가. 종래의 보수를 박사모 태극기 부대 수준으로 소멸시켜 나갈 방법을 찾아야 한다. 실상 그들은 보수가 아닌 사회적 흉기와도 같은 극우였기 때문이다. 두 개의 역사가 결합된 포용적 인식체계, 다르게 표현해 오욕의 역사가 아니라 성공한 신생국가를 이루었다는 긍지로 재출발해야  한다. 그래야 비로소 지속성 있는 다수파의 위상을 정립하고 한반도 미래구상을 펼칠 수 있다고 믿는다.

그러면 당장 민주당이 자유한국당과 무엇이 다르냐고 비아냥거린다. 정말 같아진다고 믿는가. '우리 편' 문재인 대통령과 군사정권의 후예 노태우의 유사성 비교가 그렇게도 참을 수 없는 모욕으로만 여겨지는가. 저항하는 다수파, 그건 형용모순이다.

유권자들은 영리하고 현실적인 법

일부러 '문빠'라는 표현을 써본다. 문재인 대통령을 사랑하고 자랑스러워하고 마음의 우상으로 받아들이는 사람들이 문빠다. 문빠는 대통령을 어떻게 대해야 하는가.

먼저 지나간 대통령들을 복기해보는 것이 순서다. 오랜 세월 내 마음 속 첫 번째 대통령은 망설임 없이 김대중이다. 다소 북한스럽지만 실존 인물에게 유일무이하게 '위대한'이라는 형용사를 붙이고 싶은 인물이 그다. 김대중, 그는 '위대한 설계자'였다. 그의 그랜드플랜에 따라 오늘의 한국이 길을 찾고 있다고 믿는다.

이어 노무현 대통령을 언급하려니 처음으로 행복한 기분이 든다. 더 이상 그에게 '비운' 따위의 형용을 붙이지 말라. 작고한 그가 가장 기뻐할 말을 유감없이 헌정하련다. 노무현, 그는 '새 시대의 첫차'였다. 그를 통해 현대 공화정의 시민주권이 만개할 토양이 열렸고 이제야 결실을 맺고 있는 셈이다.

지난해 5월 8일. 문재인 당시 민주당 대선후보가 부산 부산진구 서면에서 유세를 펼치고 있는 모습.
 지난해 5월 8일. 문재인 당시 민주당 대선후보가 부산 부산진구 서면에서 유세를 펼치고 있는 모습.
ⓒ 이희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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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이제 문재인 대통령의 시대다. 나는 문 대통령이 '공화정의 완성자'이기를 기대한다. 공화정은 주권자인 시민이 운영하는 체제다. 다시 말해 국정의 책임을 대통령에게 떠넘기는 것이 아니라 성공도 실패도 지지하는 시민이 떠안고자 하는 자세를 의미한다. 지난 1년간을 돌아보라. 무려 70퍼센트 내외의 열혈 지지가 뒷받침되지 않았다면 과연 현재와 같은 전향적 남북 관계 조성이 가능했겠는가. 문재인 정부의 성취는 청와대가 아닌 지지자들이 만든 것으로 자부해야 한다.

그런데 우려스러운 기운이 스멀스멀 새어나오는 중이다. 민주당 지지그룹 내에서 문재인을 무결점의 지도자로 여겨야 한다는 여론이 여기저기서 나오고 있다. 그들의 발언 속에서 문 대통령은 신통력의 소유자처럼 둔갑한다. 친구 같은 대통령은 불경으로 치부하고 어떤 비판도 문제제기도 허용되지 않는 분위기를 만들어간다. 이렇듯 국정의 모든 일이 능력자 대통령의 맨파워인 양 추켜세운다면, 충분히 예견되는 정책 실패들을 어떻게 감당한다는 말인가.

지선 압승과 보수 몰락 이후 문빠들이 할 일은 저항하고 적대시해야 했던 역사 유산을 앞장서서 내 것으로 껴안는 일이다. 이승만은 왕조시대, 박정희는 총통제, 전두환은 독재, 그후 보수 정권들에서는 부패 카르텔이 횡행한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이승만의 고집으로 한국은 서방권의 일원이 됐고, 박정희의 총동원 체제로 고도성장이 가능했고, 전두환의 저성장 드라이브로 경제기초가 튼튼해졌고, 노태우의 획기적 고임금 정책으로 중산층이 형성된 사실을 부정할 수는 없다.

이런 인식을 도저히 수용할 수 없는 강경파들, 거기에 사민주의적 이상을 품고 있는 진짜 좌파들은 상위계층도 껴안아야 하는 집권당의 불가피한 보수화를 공격할 것이 아니라 대열을 이탈해 정의당, 노동당의 형세를 키우는 것이 옳다.

보수화됐다고 하는 개인적 공격을 각오한다. 현재 국면에서 민주당 수준의 가치와 이상이 한국의 다수파, 주류, 지배집단이 된다면 어떤 딱지를 붙이든 상관치 않는다.

장차 문재인 대통령이 성공적으로 임기를 마친다면 보수와 진보라는 네이밍이 실상은 박정희 파, 김대중 파로 양분된 정치적 세력싸움에 불과한 허깨비 노름이었다는 것이 인식될 것이다. 혹시 젊은 문빠들은 알까. 국가사회주의자에 가까운 박정희가 실은 진보였고 김대중이 정통 보수라는 사실을.

명심하라, 문빠들이여. 우리는 다수파다.

덧붙이는 글 | 글쓴이는 시인이자 문화평론가인 김갑수씨입니다.



태그:#문재인, #문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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