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0일 오후 세종문화회관 M씨어터에서 뮤지컬 <번지점프를 하다>의 프레스콜이 열렸다. 배우 이지민, 최우혁이 하이라이트 장면을 시연하고 있다.

지난 20일 오후 세종문화회관 M씨어터에서 뮤지컬 <번지점프를 하다>의 프레스콜이 열렸다. 배우 이지민, 최우혁이 하이라이트 장면을 시연하고 있다. ⓒ 서정준


정말 대단한 사랑이다. 하루 아침에 바뀌는 것이 사람 마음인데, 얼마나 사랑했으면 시공간을 초월함은 물론이요, 생(生)을 초월하면서까지 한 사람만을 사랑할까. 바로, 5년 만에 귀환한 뮤지컬 <번지점프를 하다>의 두 주인공 서인우, 인태희의 순애보적 이야기이다.

뮤지컬 <번지점프를 하다>는 동명의 영화를 소재로 한 '무비컬'이다. 필름을 무대로 옮겨오면서 등장인물과 배경에 약간의 차이를 뒀지만, 전체적인 흐름은 영화와 같다. 그래도 대강의 줄거리를 요약하자면 다음과 같다. 태희가 인우의 우산 속으로 뛰어든 어느 날, 두 사람은 운명적 사랑을 시작한다. 그것도 잠시, 불의의 사고로 태희는 죽게 되고 둘의 짧은 사랑은 마침표를 찍는 듯 했다.

17년 후 국어교사가 된 인우는 자신의 반 남학생 현빈에게서 태희의 모습을 본다. 이내 인우는 현빈이 태희의 환생임을 깨닫고, 현빈은 전생의 기억을 떠올리게 된다. 곧 학교에는 인우가 동성애자라는 소문이 돌아 그는 학교를 떠나게 되고, 두 사람은 현생에서 이룰 수 없는 사랑을 다음 생에 걸어보기 위해 어느 산자락 정상 끄트머리에서 동반 자살한다.

특히 <번지점프를 하다>는 뮤지컬로 각색되며 '윌휴 콤비'라 불리우는 박천휴, 윌 에런슨(Will Aronson)이 작사, 작곡을 맡아 동명의 영화를 소재로 했다는 점 만큼이나 그 음악도 유명세를 톡톡히 한다. 윌휴 콤비의 음악은 말해야 입만 아프다. 두 사람 음악은 사람을 더욱 감성적으로 만든다. 아름다운 선율, 서정적인 가사 위에 왈츠를 추는 저들을, 관객들은 낭만적인 사랑의 두 주역이라고 생각할 수밖에 없다.

하지만 찬찬히 플롯을 따르다 보면 두 사람 사랑은 어딘가 말이 되지 않는다. 영화가 개봉했을 당시에는 남자인 현빈에게 여자인 태희의 영혼을 투영하며 동성애를 거부감 없이 그렸다는 평을 받았다. 하지만 그로부터 17년이 흐른 지금, 사회 전반적으로 젠더의식이 성숙해졌다. 지금의 시선으로 본 뮤지컬 <번지점프를 하다>는 몹시 시대착오적 이야기로 보임은 물론이거니와 성소수자들을 향한 폭력적인 시선으로 보일 여지도 다분하다. 아름다운 사랑 이야기인 줄 알았으나, 실은 '넘버'가 다 했던 뮤지컬 <번지점프를 하다>의 이면을 들여다보자.

이번 시즌의 변화, 의미가 있었을까

 지난 20일 오후 세종문화회관 M씨어터에서 뮤지컬 <번지점프를 하다>의 프레스콜이 열렸다. 배우 최우혁, 이지훈이 하이라이트 장면을 시연하고 있다.

지난 20일 오후 세종문화회관 M씨어터에서 뮤지컬 <번지점프를 하다>의 프레스콜이 열렸다. 배우 최우혁, 이지훈이 하이라이트 장면을 시연하고 있다. ⓒ 서정준




개막을 앞두고 지난 5월 28일 서울 한남동 블루스퀘어에서 개최된 <번지점프를 하다> 미니 콘서트에서 김민정 연출은 "이번 시즌에서는 시대에 맞게 대사를 수정하겠다"고 포부를 밝혔다. 김 연출은 약속을 지켰다. 우선 극 중에서 성희롱으로 보일 수 있었던 현빈, 혜주의 듀엣곡 '그런가봐(Rep.)' 중 "혜주야, 한 번만 만져보자. 네 가슴"이라는 가사를 과감하게 삭제한 것이 눈에 띈다. 이는 최근 화두로 떠오른 여성 인권 문제를 의식한 변화로 볼 수 있겠다. 그렇다면 다른 장면들은 어떻게 변화했을까?

남학생의 성희롱 발언과 행동, 남성과 여성을 이분법적으로 나누는 점이 지적됐던 넘버 '그런가봐'는 당연히 변화해야 할 부분 중 하나였다. '그런가봐'는 현빈이 혜주에게 짖궂은 장난을 하며 시작되는 곡이다. 초연, 재연에서는 선물상자 속 내용물이 속옷이었던 것에 반해, 장난감 뱀으로 바뀐 것이 그 변화다. 성희롱 발언과 행동이 수정된 것은 칭찬할 일이다. 허나, 성별을 이분법적으로 나눈 가사를 다른 단어로 대체한 게 의미있는 변화였는지는 의문이다. 

기존의 극에서 원래 "남자들은 이해 못하나 봐", "남자들은 원래 그래"였던 가사는 이번 시즌에서 '남자'라는 단어가 일괄 '너희'로 변경되었다. 하지만 단어 선택이 바뀌었을 뿐, '그런가봐'는 여전히 '남자들의 애정표현 방식은 원래 괴롭힘이며, 여자들은 좋으면서도 튕긴다'는 구식의 젠더 감수성을 벗어나지 못한 것으로 보인다. 이번 시즌에서도 남성은 이렇고 여성은 저렇다고 이분법적으로 나누는 문제는 그대로이기 때문. 과연 이것을 시대상에 알맞은 변화를 꾀했다고 볼 수 있을까.

소울메이트의 한계는 고작 성별이었다

서인우의 젠더에는 두 가지 의견이 존재한다. 첫째는 생물학적으로 '남성'인 현빈을 사랑하기에 그가 '동성애자'라는 입장이고, 둘째는 생물학적 성이 남성이건 여성이건 그가 '태희'를 사랑한다는 점에서 '범성애자(젠더적 이분법을 따르지 않고 성별에 관계 없이 '사람'을 사랑하는 성적 지향을 뜻한다)'라는 입장이다.

극 중에서 인우는 동성애의 누명을 쓰고 학교를 떠난다. 하지만 그는 "나는 단 한 사람만 사랑해, 태희"라고 말한다. 그는 현빈의 외형을 하고 있는 태희를 사랑한다. 여기에서 우리는 그가 성(sex)을 초월하여 '인태희'라는 사람을 사랑한다는 걸 알 수 있다. 즉, 인우는 '여자로서' 혹은 '남자로서' 태희를 사랑하는 것이 아니라, '그 사람이기 때문에' 태희를 사랑한다. 이는 범성애자가 상대방의 성적 정체성, 성적 지향 정체성, 생물학적 성별을 고려하지 않고 '사람 자체'를 사랑한다는 점과 일치 하는 듯 하다.

동성애든, 범성애든 간에 <번지점프를 하다>는 한 편의 러브 스토리를 통하여 소수자의 성을 이해하고자 시도한다. 그러나 엄밀히 말하자면 서인우의 젠더는 이성애자의 틀을 벗어나지 못한 것으로 보인다. 인우는 현빈의 외형을 한 태희를 사랑한다. 그리고 앞으로 그녀가 어떤 모습으로 존재하건 간에 또 다시 사랑할 거라 말한다. 그 사랑은 수십, 수백, 수천의 생(生)을 무한하게 뛰어넘고 영원할 것 같다.

그러나 시대도, 목숨도 뛰어넘은 이 낭만적 사랑의 종지부가 고작 성별 차를 극복하지 못했기 때문이라니. 이들이 지고지순한 이성애적 사랑을 나눴기 때문일까? 실망스러울 수밖에 없는 대목이다. 물론 이들이 몸을 내던진 행위는 사랑을 끝내고자 함이 아니라, 다음 생의 사랑을 기약하고자 함이다. 헌데, 다음 생에 남자일지 여자일지 모르겠지만 일단은 목숨을 담보로 도박을 해본다는 것은 우스울 수밖에 없는 발상이다. 다음 생에도 남-남 혹은 여-여로 태어나면 또 몸을 던질텐가?

인우와 현빈이 죽기 전, 둘은 대화를 나눈다. 현빈은 "다음 생에는 여자로 태어나야지"라고 말하고 인우는 "근데 나도 여자로 태어나면 어떻게 해?"라고 말한다. 그리고 그에 대한 답변으로 현빈은 "그럼 또 사랑해야지"라고 말하며 두 사람은 함께 웃는다. 말도 안 되는 소리다. 그렇다면 남-남으로서 사랑을 나누는 이들이 왜 죽음을 택하겠는가? 이는 결국, 인우와 태희는 남-여로 만나는 일치성을 거둘 때까지 목숨을 던져버리는 셈인데, 과연 이들이 다음 세상에서 또 다시 사랑할 수 있을지는 의문이다.

기존 극에서 소연(인우의 아내)은 동성애 혐오적 발언을 하는 인물이었으나, 이번 시즌의 변화로 해당 부분은 다른 대사로 대체되었다. 원래는 "당신, 동성애자였어? 더럽고 끔찍해"였던 것이 이번 시즌에서는 "당신이 지금 하는 걸 사랑이라고 하지마", "그럼 난 어떡해"로 바뀐 것이 그 내용이다.

그러나 주변 인물인 소연의 대사가 변화했다고 해서 이 작품이 '동성애 혐오'로 보일 수 있는 문제를 완전히 해소했는지는 의문이다. 이번 시즌에서도 인우는 여전히 남자를 사랑할 수 없어 자살을 택하는 인물이기 때문이다.

남자 대 남자로 사랑하느니 다시 태어나 사랑하겠다는 주장은 애초에 이들의 사랑이 이성애를 통해서만 가능하다는 전제를 내포하고 있다. 이것은 다시 말해, 성적 지향의 기본형을 이성애에 두었음을 의미한다. 따라서 이 극은 소수자 성을 이해하기 위한 초석이 되지도, 다음 단계를 위한 계단으로 생각되지도 않는다. 김민정 연출은 20일 서울 종로구 세종문화회관에서 진행된 <번지점프를 하다> 프레스콜에서 이 같은 지적에 대해 "동성애와 이성애는 사랑의 구분일 뿐이다"라고 해명했지만, 동성애자가 되느니 죽음을 택한다는 설정으로 인해, 언뜻 납득하기는 쉽지 않다.

전생의 기억이 모든 것을 해결하지는 않는다

 지난 20일 오후 세종문화회관 M씨어터에서 뮤지컬 <번지점프를 하다>의 프레스콜이 열렸다. 배우 김지현, 강필석이 하이라이트 장면을 시연하고 있다.

지난 20일 오후 세종문화회관 M씨어터에서 뮤지컬 <번지점프를 하다>의 프레스콜이 열렸다. 배우 김지현, 강필석이 하이라이트 장면을 시연하고 있다. ⓒ 서정준


전생의 기억을 되찾아 모든 갈등이 해결된다는 설정도 의아하게 느껴진다. 극중에서 현빈은 학교에 인우가 현빈을 짝사랑한다는 소문이 돌자 혼란에 시달린다. 아이들은 이를 놀림거리로 삼아 현빈에게 시비를 걸고 "네 애인한테 일러", "누가 여자고 누가 남자냐?"는 식의 인격 모독적인 발언을 한다. 이때 현빈이 겪는 혼란스러움의 극치는 솔로곡 '내 잘못이 아냐'로 분출된다.

그러나 현빈이 전생의 기억을 되찾자 그의 내적 갈등은 빠르게 종결된다. 10분 전까지만 해도 스승이 자신을 짝사랑한다는 이유로 억울함을 호소하던 그가 전생을 기억했다고 해서 모든 갈등이 해소된다니. 납득하기 어렵다. 더구나 현빈은 기억이 돌아오자 인우를 따라 동반자살하기로 결심한다. 아무리 대단한 사랑이라고 한들 어떻게 임현빈으로 살아온 17년의 인생을 단숨에 뚝딱 정리하고 몸을 내던질 수 있을까. 현빈의 선택을 관객들에게 설득하기 위해서는 최소한 전생과 현생을 두고 자신의 정체성에 대해 고민하는 흔적이라도 보였어야 하지 않았을까.

또 현빈의 죽음은 전혀 아름답지 않으며 아주 비극적이다. 현빈이 전생을 기억했다고 한들, 현빈과 태희 사이에는 분명히 간극이 존재하며 현빈은 태희가 될 수 없다. 그러나 마지막 신에서 현빈의 내레이션이 태희의 목소리로 연출되었다는 점을 미루어 보아 인우는 현빈을 태희로만 인지할 뿐이다. 자신 존재를 부정하는 사람과의 동반자살이 과연 낭만적일는지는 모르겠다.

 지난 20일 오후 세종문화회관 M씨어터에서 뮤지컬 <번지점프를 하다>의 프레스콜이 열렸다. 배우 임강희, 이지훈이 하이라이트 장면을 시연하고 있다.

지난 20일 오후 세종문화회관 M씨어터에서 뮤지컬 <번지점프를 하다>의 프레스콜이 열렸다. 배우 임강희, 이지훈이 하이라이트 장면을 시연하고 있다. ⓒ 서정준


'연극은 시대의 정신적 희망이다'라는 말이 있다. 뮤지컬도 다르지는 않다. 무대는 한 시대를 표방하고 비판하기도 하며 사회의 등불이 되어주어야 한다. 만약 <번지점프를 하다>가 2013년 재연에 그쳤더라면 <번지점프를 하다>는 누군가의 기억 속 노스탤지어로 남았을 수도 있다. 하지만 2018년 다시 돌아온 뮤지컬 <번지점프를 하다>는 시대상에 맞게끔 또 한 번의 각색 과정을 거쳤음에도 여전히 시대 착오적인 설정 때문에 오늘날 '올드한 극'이 되어버렸다.

"눈부신 계절을 지나, 춥고 긴 겨울의 끝. 그대는 여전히 나의 곁에 있을까요. 빛나던 꽃잎이 지고, 모든 게 흩어져도, 그대는 영원히 나의 곁에 있을까요. 날 사랑 해줄까요."

<번지점프를 하다>의 메인 테마곡 Prologue (Waltz)의 노랫말이다. 재연, 그로부터 5년. 다섯 번의 눈부신 계절이 지났다. <번지점프를 하다>가 우리 곁에 향기를 머금고 영원히 존재하기 위해선 가슴 속 한 켠 추억에 머무는 편이 낫지 않았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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