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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은 저마다의 렌즈를 갖고 세상을 새롭게 볼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한다. '사람 사는 게 다 그렇고 그렇지' 하면서도 살던 곳을 벗어나 멀리 벗어나기를 꿈꾸는 것은 여행이 주는 해방감이 있기 때문일 것이다. 무엇보다 여행은 비현실적일 정도로 아름다운 풍경을 볼 수도 있고, 새로운 문화와 사람을 만나는 즐거움이 있다.

똑같은 여행지를 돌아다녀도 감흥은 저마다 다르다. 사람은 저마다 세상을 보는 렌즈가 따로 있기 때문이다. 노동자는 노동자의 눈으로, 자본가는 자본가의 눈으로, 시인은 시인의 눈으로, 탐험가는 탐험가의 눈으로 세상을 보기 마련이다.

정착해서 사는 사람에게 유목민의 눈을 요구할 수 없고, 목초지를 따라 이동하는 유목민에게 농부의 눈으로 보라고 요구할 수 없다. 여행자에게도 저마다의 렌즈가 있다. 그간 살아온 삶을 기준으로 여행지를 바라보기 때문에 현실을 보는 방법도 다를 수밖에 없다.

문경수의 제주 과학 탐험 책표지 문경수 지음, 동아시아 출판
▲ 문경수의 제주 과학 탐험 책표지 문경수 지음, 동아시아 출판
ⓒ 동아시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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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경수의 제주 과학 탐험>은 그간 제주를 설명하던 여행 관련 책들과 결이 다르다. 저자는 탐험가의 눈으로 제주의 아름다운 모습을 현미경 들여 보듯이 살피고 있다. 탐험가란 위험을 무릅쓰고 잘 알려지지 않은 어떤 곳을 찾아가 살피고 조사하는 일을 전문으로 하는 사람이다. 탐험가가 제주를 탐험한다? 제주가 탐험이란 말을 써야 할 정도로 위험 지역이냐는 질문이 나올법하다. 아프리카도 아닌데 말이다.

2002년 생물권 보전지역으로 지정되고, 2007년 세계 자연유산 등재와 2010년 세계지질공원 인증으로 유네스코 3관왕에 오른 제주다. 그런 관광지가 위험하다면 전 세계 어느 관광지가 위험하지 않겠는가 하는 반문이 나올 수밖에 없다.

저자 문경수는 탐험에 대해 이렇게 말한다.

"탐험은 사람을 찾고 만나는 일의 연속이며 함께 자연의 문을 열고 들어갈 동행자를 찾는 과정인 것이다."


<문경수의 제주 과학 탐험>에서 저자는 탐험가의 눈으로 제주에서 자연을 살피고, 사람을 만나 사연을 듣고 기록했다. 저자는 위험에 초점을 맞추지 않았다. 제주의 알려지지 않은 모습, 좀 더 자세히 보아야 보이는 '발견'에 초점을 맞췄다.

그렇다고 그 발견을 무슨 '최초'니 '유일'이니 하는 단어를 붙여 가며 자랑하지도 않는다. 오히려 그런 발견을 통해 자연에 대한 경외감을 드러내고 인간도 자연의 일부임을 확인한다.

워낙 개체수가 적어 세계자연보전연맹 적색 목록 심각한 위기종, 환경부 멸종위기야생식물 2등급으로 지정되어 보호받고 있는 제주고사리삼을 발견했을 때 저자는 그 감동을 이렇게 밝혔다.

"사진을 찍고 싶었지만 쉽게 셔터를 누르지 못했다. 돌이켜 보면 이번 탐험을 통해 얻은 가장 큰 보물은 자연을 감상하는 방법인 듯하다. 제주에서만 사는 희귀종뿐만 아니라 모든 종에는 그들만의 역사가 있다. 감히 헤아릴 수 없는 시간과 지형의 변화, 그리고 공존과 경쟁을 통해 지금 이 자리에 존재를 드러내고 있는 것이다. 우리가 대수롭지 않게 꺾고 밟는 들풀도 하나의 종인 것이다." -p.160.


저자는 탐험 중에 많은 제주인들을 만났다. 그들은 동료가 되기도 했고, 인생의 스승이 되기도 했고 친구가 되어 인연을 맺었다. 그 중 제주의 자연을 사진으로 기록하는 김기삼 작가의 말에 그는 깊이 공감한다.

"평생 제주를 렌즈에 담았지만, 아직도 부족하다는 것을 느끼죠. 제주는 '전시'가 필요한 게 아니라 '기록'이 필요한 땅입니다." -p. 168


전시가 아닌 기록이 필요한 제주는 탐험하듯 살펴야 하는 비현실적으로 아름다운 땅이다. 그러나 그 땅에 사는 이들조차 제주 자연유산을 과학적으로 살피고, 설명하려 들지 않는다는 지적은 유념할만하다. 일반 대중이 갖고 있는 편견이나 잘못 알고 있는 부분들을 과학적 설명을 곁들여 제대로 알기를 권하는 소리 또한 귀담아 들을 필요가 있다. 대표적인 예가 문화해설사들과 관광지 안내판에 주상절리를 용암이 물을 만나 식는 과정에서 수축되어 생겼다고 하는 설명을 바로잡는 부분이다.

"주상절리는 뜨거운 용암이 식으면서 부피가 줄어들고 수직으로 쪼개짐이 발생해 만들어진다. 여기서 용암이 식는 이유는 공기와 접촉하기 때문이다. 만약 용암이 물과 만났다면 엄청난 폭발을 일으키며 베개용암을 만들었을 것이다." -p.218.


책을 읽다 보면 저자가 탐험가라는 호기심 어린 눈으로만 보는 것이 아니라 환경 생태적인 눈으로 혹은 인문학적인 관점에서 제주의 미래를 고민할 정도로 제주에 푹 빠진 사람임을 알 수 있다. 제주 여러 지역에 흩어진 오름과 그 속에 숨겨진 아픈 역사들을 살피기도 하고, 무분별하게 개발이라는 이름으로 상처받는 숲을 보며 안타까워하기도 한다. 제주인들마저 대수롭지 않게 여기는 삼나무에 대한 고찰은 그의 관심의 깊이를 알 수 있다.

"탐방안내소에서 거문오름을 바라볼 때부터 삼나무가 눈에 거슬렸다. 부드러운 자태를 뽐내는 오름의 모습과 어딘지 모르게 어울리지 않았다. 삼나무는 제주 고유종이 아니다. 정부의 삼림녹화 정책에 의해 1970년대 심은 수목이다. 갈대로 덮여 있던 자리에 삼나무를 심었고 삼나무는 제주도 산림 생태계의 일부로 자리 잡았다." -p.257 


어려서부터 과수원에 방풍림으로 심은 삼나무를 일상으로 봐 왔던 제주인들 입장에서는 당혹스런 일일 수 있다. 제주 고유종이 아니라고 이제 와서 모조리 벌목할 수도 없는 실정이다. 다만, 생태계에 많은 변화를 몰고 왔던 산림녹화 정책을 다시 살펴볼 시기가 됐다는 점만은 분명히 해 둘 필요가 있겠다.

세계자연유산 등재 이전부터 제주는 전 세계인이 인정하는 아름다움을 갖고 있었다. 그 아름다움을 서양에 가장 먼저 알린 사람은 독일인 지그프리트 겐테다. 그는 1901년 서양인 최초로 한라산을 등정했고 한라산의 높이가 1905미터라고 서양에 알린 인물이다.

비록 현재 알려진 높이인 1945미터와 약간의 차이가 있긴 하지만, 20세기가 시작할 즈음에 이미 세계는 제주를 주목했었다. 앞으로도 제주는 세계인이 관심 갖는 땅으로 남을 것이다. 그 가치를 우리가 좀 더 알아야 함을 <문경수의 제주 과학 탐험>은 말하고 있다.

"제주의 과학자와 탐험가들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면 어떨까 싶다. 그들의 목소리를 내 가족에게, 친구에게 이야기해 주면 어떨까" -p.286 
탐험가로 제주를 살피고 기억이 흐릿해질 즈음에도 몸은 여행했던 그 날의 풍경을 말할 것이다. 제주의 바람, 돌, 사람까지.


문경수의 제주 과학 탐험 - 탐험가가 발견한 일곱 가지 제주의 모습

문경수 지음, 동아시아(2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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