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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 남북정상회담이열린 27일 오전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판문점에서 만나 인사를 나누고 있다.
▲ 판문점 군사분계선에서 만난 남-북 정상 2018 남북정상회담이열린 27일 오전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판문점에서 만나 인사를 나누고 있다.
ⓒ 한국공동사진기자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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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4월 27일 문재인 대통령,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만났다. 그리고 70년 만에 북미 정상이 만났다. 올해 초만 해도 전쟁의 위기 속에서 전전긍긍하던 이 나라가 평화의 나라를 꿈꿀 수 있다는 것이 신기하기만 하다. '그날은 도둑처럼 온다'는 말이 실감난다.

나는 1960년대 초반, 분단 국가에서 태어나 반공교육을 받으며 자랐다. 초등학교 시절 6월이면 반공 포스터를 그리며, 증오에 찬 반공 웅변대회에 입선하려고 북한을 향한 온갖 혐오적인 단어들을 나열하며 북한에 대한 적개심을 키우며 자랐던 세대다.

국기하강식이면 부동자세로 서서 가슴에 손을 올리고 부동자세로 국기하강식에 임하지 않는 이들은 간첩이 아닌지 의심하던 세대였으며, 공산주의자들은 사람의 모습이 아니라 꼬리가 달린 빨간 짐승인 줄로만 알고 자랐다.

어느날, 뉴스를 통해서 그들도 우리와 다르지 않은 모습을 한 사람이었다는 것을 확인한 순간의 충격과 그것을 믿고 싶지 않았던 기억은 1960, 1970년대 반공 교육이 얼마나 왜곡된 것이었는지의 대한 단면일 뿐이다.

1980년대, 광주를 짓밟고 권력을 잡은 전두환과 군부독재의 권력에 맞서 싸우면서 나의 역사의식도 점점 자라났다. 우리 민족의 모든 불행의 기원은 분단이라는 생각에 평화통일운동에도 많은 관심을 뒀고, 그 시대 나는 문익환 목사라는 걸출한 인물을 통해서 평화통일의 꿈을 꾸기 시작했다.

그리고 마침내, 개성공단과 금강산 관광 시대가 열리면서 통일은 꿈이 아니라 현실이 될 수도 있을 것으로 생각했다. 조금 더디더라도 이렇게 우리 민족끼리 힘을 합하면 평화의 나라로 갈 수 있을 것이라는 꿈, 우리 아이들에게는 분단의 철조망이 사라진 나라를 물려주는 것이 우리 세대의 책임이라고 생각했다. 그렇게 금강산 길이 열려, 금강산도 다녀왔다. 개성공단은 물론이고, 인도적인 차원에서 식량원조를 할 때에는 개성에 있는 선죽교까지 다녀왔었다. 그때만 해도 평화통일은 그리 먼 것처럼 느껴지지 않았다.

이명박 때는 기대라도 했는데... 박근혜 때 무너진 꿈

그러나 이명박 정권 시절 금강산 관광객이 총격 때문에 사망하는 사건이 발생하고, 이 일로 남북한 관계는 얼어붙기 시작한다. 그리고 이어진 박근혜 정권에서는 더 꼬이고 꼬이면서 개성공단 철수까지 이어졌고, 급기야는 남북정상회담이 열리기 전까지는 한반도 전쟁위기설까지 횡행했다.

이명박 정권에서 금강산 여행이 전면 중단됐을 때에는 다시 열리리라는 희망을 품었지만, 박근혜 정권의 '통일대박론' 주장부터 '개성공단 철수'에 이르면서 나는 평화통일에 대한 꿈을 잃어버렸다. 그냥 이렇게 분단된 채로 살아갈 수밖에 없고, 전쟁이나 없으면 좋겠다는 체념에 '평화의 나라'는 요원하다고 여겼다. 당연히 젊은 시절부터 꿈꿔왔던 꿈들도 다 사라져 버렸다.

젊은 시절부터 꿔왔던 꿈, 그것은 분단의 철조망이 사라지면 남과 북의 철도가 연결되고 서울역에서 평양을 지나 시베리아 횡단 열차를 타고 유럽여행을 가는 꿈이었다. 시베리아 횡단 열차를 타고 역마다 내려 1박 혹은 2박을 하고 마침내 베를린에 입성하는 꿈, 그런 꿈들이 이명박과 박근혜 정권에서는 시나브로 사라졌던 것이다.

게다가 극우 보수적인 성향이 있는 언론사나 단체, 극우 인사들의 태도, 심지어는 '삐라'를 뿌려대는 몇몇 탈북단체들의 행동을 보면서 도저히 이 나라는 평화통일을 이룰 수 없을 것이라는 자괴감에 깊이 빠져들었다. '통일대박론'을 외치며 북한의 붕괴를 염원하는 저질스러운 정권을 창출하고 지탱하는 나라에서 나는 평화통일과 평화로운 나라에 대한 모든 꿈을 잃어버렸던 것이다.

서재에 김정은이 둘 씩이나... 시대가 바뀌었다

역사적 첫 북미정상회담이 열린 12일 오전 싱가포르 센토사 섬 카펠라호텔에서 김정은 국무위원장과 트럼프 대통령이 업무오찬을 마친 뒤 산책을 하고 있다.
▲ 통역없이 산책하는 북미정상 역사적 첫 북미정상회담이 열린 12일 오전 싱가포르 센토사 섬 카펠라호텔에서 김정은 국무위원장과 트럼프 대통령이 업무오찬을 마친 뒤 산책을 하고 있다.
ⓒ 케빈 림/스트레이츠 타임스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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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이렇게 잊혔던 꿈은 느닷없이 깨어나기 시작했다.

4월 27일에 있었던 남북정상회담에서 깨어난 꿈. 그 꿈은 6월 12일에 싱가포르에서 있었던 북미정상회담을 통해서 더는 꿈이 아니라 현실이 될 수 있을 것이라는 새로운 희망으로 변했다. 지난 4월 28일 <한겨레>는 1면 전체에 남북 두 정상의 사진을 실었다. 의미가 커 서재 벽면에 붙여뒀다. 그리고 북미정상회담 이후 6월 13일 <한겨레>는 북미 정상의 사진으로 1면을 꾸몄다. 이 역시도 역사적인 장면이라 스크랩해 남북정상회담 사진 옆에 붙여놨다.

이렇게 사진을 붙여놓고 보니 북한 지도자 김정은 위원장의 사진이 두 장이나 떡하니 서재 벽면에 붙어있다. 순간, "이게 실화냐?" 싶은 생각이 들었다. 1970, 1980년대 같았으면 바로 '국가보안법'에 저촉될 사안 아니겠나.

그러나 지금은 김정은 위원장 사진이 이렇게 서재에 붙어있다고 해서 국가보안법에 걸릴 일이 없다. 이렇게 변해가는 것이구나 실감하게 된다. 아직 우리가 넘어야 할 산은 높고 골을 깊다. 그러나 그 산이 아무리 높고 골이 깊어도 가야만 하는 길이기에 천천히 숨을 고르고 가는 것이다. 가다 보면 언젠가는 높은 산도 오르고 깊은 골도 지나게 되는 것이다. 그리고 그 순간은 이렇게 '느닷없이' 오는 것이다.

지금도 여전히 반공 안보 프레임으로 먹고살려는 분들이 있다. 그들은 머지않아 역사의 퇴물로 사라지게 될 것이다. 왜냐하면, 국민이 평화의 나라가 된다는 것이, 정전협정이 맺어지고 평화협정이 맺어지고, 남과 북이 서로 협력하는 것이 우리의 삶을 어떻게 바꿔놓을지를 곧 알게 될 것이므로.

그 일은 결코 쉬운 일은 아니지만, 가야만 할 길이고, 우리 민족이 살 길은 오직 그 길밖에는 없다는 것을 알게 될 것이므로 더는 분단은 이용해서 먹고살려는 이들의 낡은 선동에 흔들리지 않을 것이다.

제7회 전국동시지방선거 투표일인 13일 충북 증평군 증평읍 제9투표소에서 한 유권자가 투표용지를 투표함에 넣고 있다.
 제7회 전국동시지방선거 투표일인 13일 충북 증평군 증평읍 제9투표소에서 한 유권자가 투표용지를 투표함에 넣고 있다.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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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지방선거일이다. 여전히 안보장사를 해가며 표를 호소하는 이들이 있다는 건 한편으로 슬픈 일이다. 정책은 없고 서로를 향한 비방과 사생활 폭로 그리고 줄 서기로 권력을 탐하는 이들이 있다는 것도 슬프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이전보다 이런 이들이 현격하게 줄어들 것이며, 그렇게 점진적으로 가다 보면 더는 이런 정치인들이 설 자리가 없어질 것이다.

꿈인가 싶었다. 그러나 잠꼬대가 아닌 현실이었다. 그리하여 잠꼬대가 현실이 되는 꿈을 다시 꾼다.

서울역에서 베를린행 기차를 타는 꿈, 그날이 오면 나는 6개월 휴가를 내고 기차에 오를 것이다. 여행 경비도 모아야 하고, 건강도 챙겨야 한다. 오늘 아침 달리기는 그래서 의미 있다. 모든 일이 갑자기 즐거워졌다. 평화의 나라를 꿈꾸는 일을 통해서 일상이 달라지는 경험을 하게 된다. 국민 행복, 그것은 이런 꿈을 꾸게 하는 것임을 이 나라의 정치권력들이 헤아렸으면 좋겠다.


태그:#남북정상회담, #북미정상회담, #평화통일, #시베리아횡단열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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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을 소재로 사진담고 글쓰는 일을 좋아한다. 최근작 <들꽃, 나도 너처럼 피어나고 싶다>가 있으며, 사는 이야기에 관심이 많다.

오마이뉴스 기획편집부 기자입니다. 조용한 걸 좋아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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