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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일 오후 붉은 옷을 입은  1만5000 여성들이 서울 대학로 모여 '불법촬영, 편파수사' 규탄하는 2차 시위를 했다.
▲ 2차시위 9일 오후 붉은 옷을 입은 1만5000 여성들이 서울 대학로 모여 '불법촬영, 편파수사' 규탄하는 2차 시위를 했다.
ⓒ 안정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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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보강: 12일 오전 11시 20분]

3주 만에 다시 빨간 옷을 입은 여성들이 서울 대학로 혜화역 앞을 가득 메웠다. 지난달 19일 1만2천명이 모인 1차 시위에 이어 지난 9일 2차 시위에서는 3만명(주최 측 추산)의 여성들이 시위에 참여했다. 홍대 누드모델 불법촬영 사건과 관련해 경찰의 성차별 편파 수사를 규탄하기 위해 모인 이들이었다. 유례없는 여성들만의 대규모 시위였다.

두 차례 시위는 기존의 페미니즘이나 젠더 이슈에 관한 기존의 시위들과 비교했을 때 규모는 물론 시위 진행 과정이나 메시지부터 달랐다. 특정 단체가 아닌 '불편한 용기'라는 다음 카페를 통해서 자발적으로 시위가 진행됐고, '생물학적 여성'만 참여하게 했다. 인터넷에서 남성들의 행위를 비난할 때 쓰이는 '미러링 용어'가 거침없이 쓰이기도 했다.

이처럼 기존의 관습을 깨버린 '혜화역 시위'는 논란의 중심에 섰다. '생물학적 여성만 참여할 수 있다'는 단서 조항은 페미니스트 사이에서도 트랜스젠더 등 '성소수자 배제'가 아니냐는 지적이 나왔다. 남성을 공격하는 단어들이 피켓 등을 통해 노출되면서 '남혐 시위'라는 비난도 받고 있다.

두 차례 시위의 성공과 이어지는 논란들에 대해 직접 시위 현장에 나간 참가자들의 목소리를 들었다. 11일 '젠더사회문화연구소 이음' 소장 김수정씨, 작가 양민영씨, 이가현씨, 대학생 이수지씨, 취업준비생 강보경씨가 참가자로서 느꼈던 감정과 생각을 밝혔다. (※인터뷰 내용은 시위에 참여한 개인의 입장을 담은 것이며, 시위 운영진 측의 입장과 무관합니다.)

3만 명 모인 이유 "나도 피해자가 될 수 있어서"

6월 9일 오후 혜화역 집회에 참여한 사람들
 6월 9일 오후 혜화역 집회에 참여한 사람들
ⓒ 양민영씨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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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저 3만 명이라는 대규모 인원이 모인 데 대해 5명의 참가자들은 시위의 주제가 '불법촬영'이었기 때문이라는 데 의견을 함께 했다. 불법촬영은 대다수 여성들이 '나의 문제'로 여길 정도로 불특정 다수가 광범위하게 피해를 입을 수 있는 범죄다. 상대적으로 다른 여성 이슈보다 문제의식이나 공포감이 폭넓게 공유될 수밖에 없다.

이가현씨는 "몰카 범죄가 여성 대상으로 만연해 있었지만, 그것에 대해서 처벌이 이뤄지지 않았고 누적되어 오다가 홍대 불법촬영의 빠른 수사를 계기로 분노가 터진 것 같다"라고 밝혔다.

강보경씨 역시 "자신이 속한 사회에서 불이익을 볼 것을 감수하고도 나온 것은 '언제든지 나도 몰카의 피해자가 될 수 있다'라는 당사자성에 의한 분노가 큰 이유가 된 것 같다"라고 강조했다.

김수정씨는 "이를테면 '임금 차별' 같은 성차별은 차별을 느끼는 여성들의 범주가 있다면 몰카는 불특정 다수가 대상이 된다. 실제로 20대 여성들에게 이 사안은 엄청난 불안을 주는 사안이다"라고 지적했다.

메갈리아 출현, 강남역 여성살인사건 추모 등 페미니즘 흐름이 이어지던 중 드디어 '터질게 터졌다'는 분석도 있었다. 이수지씨는 "페미니즘 물결 속에서 여성들은 여성혐오에 대한 문제의식을 공유해왔고 페미니스트로 각성을 했든 안 했든 비슷한 불편함을 가지고 있었다"며 "하루 아침에 시위의 동력이 생긴 게 아니"라는 점을 강조했다.

양민영씨는 "강남역 여성살인 사건 이후 여성 대상 범죄가 보도되는데, 정부의 대응은 미온적이다. 미투부터 수많은 불법촬영 사건이 연이어 터져서 여성들의 분노가 끓고 있다. 시위는 더 커질 수 있다"고 주장했다.

특정 단체가 주관하지 않고 '자발적 참여'를 유도한 것에서 성공 이유를 찾기도 했다.

김수정씨는 "여성들은 여성학을 안 배워도 삶 자체에서 문제의식을 느낀다. '조직 운동'의 차원이 아니라 스스로 차별을 느끼고 '생존권을 건 절규'를 하기 위해서 이렇게 모일 수가 있다"고 전했다. 이가현씨도 "개인 자격으로만 참여해도 전혀 소외감이 들지 않는 집회였기 때문에 오히려 좀 더 많은 사람들이 나올 수 있었다"고 강조했다.

온라인 내 페미니즘의 확산... "여성들이 선택한 '시위'"

홍익대 누드 크로키 수업 몰카 사건 피해자가 남성이어서 경찰이 이례적으로 강경한 수사를 한다고 주장하는 이들이 지난달 19일 오후 서울 종로구 혜화역 2번 출구 인근에서 공정한 수사와 몰카 촬영과 유출, 유통에 대한 해결책 마련 등을 촉구하는 시위를 하고 있다.
▲ '홍대몰카 편파수사' 규탄 여성시위 홍익대 누드 크로키 수업 몰카 사건 피해자가 남성이어서 경찰이 이례적으로 강경한 수사를 한다고 주장하는 이들이 지난달 19일 오후 서울 종로구 혜화역 2번 출구 인근에서 공정한 수사와 몰카 촬영과 유출, 유통에 대한 해결책 마련 등을 촉구하는 시위를 하고 있다.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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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시위의 참여 집단이 어느 곳인지 특정하기는 어렵다. 5명의 참가자들도 각자 활동 영역이 다르다. 특히 김수정씨는 충북 청주의 '젠더사회문화연구소 이음'의 소장으로, 대학교에서 학생들에게 여성학을 강의하는 50대 여성이다. 김씨는 9명의 페미니스트 동료들과 한 달에 한 번 여는 세미나를 일부러 서울 대학로에서 하고 시위에 참석했다.

다른 이들처럼 마스크를 쓰거나 선글라스를 끼지 않은 40~60대 여성들이 나타나자, 시위 참가자들이 열렬히 환호를 해주는 것에 그는 "벅찬 감동을 느꼈다"고 말했다. 김씨는 "SNS가 발달해서 이런 시위가 열릴 수 있었다고 생각한다"고 밝혔다. 실제로 김씨는 페이스북을 통해서 이번 시위가 열린다는 것을 알게 됐다.

온라인 내 페미니즘의 확산은 시민단체나 노조의 '조직력'을 대체하고 있다. 강보경씨는 '트위터'의 확산력, 이가현씨는 '여초 카페'와 그 구성원들의 외부 전파를 이번 시위의 주요 동력으로 꼽았다. 이수지씨는 "'오픈 카톡방', '인스타그램' 등에서도 논의가 이뤄지고 있다. 페미니즘에 대해 논의하는 10, 20대 모두가 (동력을 만드는) 주요 세력이다"고 주장했다.

한편 양민영씨는 온라인 내 페미니스트들이 특정 단체가 주도하지 않은 시위에 모인 것에 주목했다. 그는 "온라인 내 페미니스트들이 '운동 단체'에 대해서 신뢰하지 못하는 상황에서, 어떤 단체에도 속하지 않은 사람들이 카페를 만들고 시위를 했고, 다수의 여성들은 이 시위를 '선택한 것'으로 보인다"고 밝혔다.

'생물학적 여성만 참여 가능' 논란, 참가자들의 생각은?

시위를 주최하는 <불편한 용기>가 만든 시위 포스터. 왼쪽 하단에 '본 시위는 생물학적 여성만 시위참여 가능합니다'라는 문구가 달려있다.
 시위를 주최하는 <불편한 용기>가 만든 시위 포스터. 왼쪽 하단에 '본 시위는 생물학적 여성만 시위참여 가능합니다'라는 문구가 달려있다.
ⓒ 불편한 용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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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시위는 생물학적 여성만 참여 가능합니다'라는 공지를 통해 시위 주최측이 남성의 참여를 막은 조치에 대해선 5명의 참가자들간의 생각이 조금씩 달랐다. 그러나 이것이 시위의 '안정성'을 담보하는 조치였다는 점에 대해서는 5명이 전부 동의했다. 시위에서 참가자를 가장해서 몰래 사진을 찍거나 위협하고 조롱하는 등의 행위를 방지할 수 있었다는 것이다. 더불어 양민영씨는 "이 점이 이번 시위의 성공요인 중 하나"라고 분석했다.

이가현씨는 "'남성의 몸'에 대한 여성들의 공포가 극에 달해있다. 어떤 젠더이냐에 상관 없이 남성의 몸을 갖고 태어난 사람들에 대한 공포가 심화됐다. 안전하기 위한 선택"이라고 주장했다.

이씨는 "그럼에도 (저 문구가) 젠더 퀴어에 대한 배제는 맞다. 그러나 다른 시위가 없는 상황에서 혜화역 시위에 조금 더 힘을 보태야 현실이 바뀔 수 있다는 생각으로 나아갔다"라며 "저는 개인적으로 젠더 구분이 아예 없어져야 한다고 생각하므로 모든 사람이 참여할 수 있는 시위도 만들어졌으면 좋겠다"고 밝혔다.

김수정씨는 "젊은 여성들이 이제까지의 역사를 살펴보니 (페미니즘 운동에) 이것저것 섞어서 가다 보니 오히려 여성들의 목소리가 묻힌다고 느끼게 된 것 같다. 그래서 모든 사회적 약자를 전부 끌어안을 수는 없다고 생각한 것 같다"고 지적했다.

이어 김씨는 "저는 사회적 약자를 위한 것이 '페미니즘'이다는 것에 동의한다. 하지만 젊은 여성들이 왜 그렇게 페미니즘 운동을 하는지 생각의 '기승전결'을 살펴보니 거부감 없이 그들의 생각도 받아들일 수 있었다"고 밝혔다.

그는 "아름답고 정의로운 말만으로는 20대들의 절망을 이해할 수가 없다. 제 또래 여성들도 젊은 여성들의 '맥락'을 살피고, 다른 시선으로 바라봐야 한다"고 강조했다.

양민영씨는 "화장실, 여자 탈의실, 샤워실 등에서 대부분 생물학적 여성이라는 이유만으로 불법촬영 범죄의 표적이 되고 있다. 불안에 떨어본 사람들이 모인 것이다"라며 "여기 시위에 모인 이들을 '혐오 세력'이고 다른 성들을 배제시켰다고 말하면 악의적인 것 아니겠냐"고 밝혔다.

이수지씨도 "생물학적 여성으로 참가 자격을 제한하는 데 동의한다. 화장실 몰카나 사이버성폭력의 피해자는 여성 신체를 가진 생물학적 여성이다. 남성 신체를 가진 자가 스스로를 여성이라고 정체화한다고 해도 피해자가 되는 것은 아니다. 어째서 이 조항이 성소수자 배제인가"라고 주장했다.

반면 강보경씨는 "성소수자 배제 문제는 피할 수 없다"고 지적했다. 강씨는 "'패싱 젠더'(겉보기 성별) 여성을 대상으로 한 불법촬영이 압도적으로 많았는데, 이들중에는 MTF(남성→ 여성 트랜스젠더)나 크로스드레서들도 포함됐다. 그렇기 때문에 무조건 생물학적 여성만 피해자라는 말에는 동의할 수 없다"고 밝혔다.

그러나 그는 "시위의 목적성까지 부정해선 안 된다. 시위를 참여하는 것 자체가 성소수자 배제에 일조한다는 일부 의견에도 동의하지 않는다. 촛불 시위에서의 '여성혐오'도 비판받았으나 시위의 목적까지 의심을 하지 않지 않았느냐"며 참가자 전체를 향한 비판은 지양해야 한다고 밝혔다.

강씨는 "그럼에도 개인 구호나 개인 피켓, 주최 측의 일부 단어 사용에 비판할 부분이 있다며, 앞으로는 '패싱 젠더 여성만 참가 가능' 정도로 문구를 수정해도 괜찮을 것 같다"고 주장했다.

과격하다고? "내용은 과격하지 않다"

9일 오후 서울 종로구 지하철 4호선 혜화역 인근에서 다음 카페 여성 단체 '불편한 용기' 주최로 열린 '불법촬영 편파 수사 2차 규탄 시위'에서 집회 참가자들이 '홍익대 누드모델 몰카(몰래카메라) 사건'에 대한 경찰의 성(性)차별 편파 수사를 비판하며 삭발식을 진행하고 있다. 2018.6.9 [연합뉴스TV 제공]
 9일 오후 서울 종로구 지하철 4호선 혜화역 인근에서 다음 카페 여성 단체 '불편한 용기' 주최로 열린 '불법촬영 편파 수사 2차 규탄 시위'에서 집회 참가자들이 '홍익대 누드모델 몰카(몰래카메라) 사건'에 대한 경찰의 성(性)차별 편파 수사를 비판하며 삭발식을 진행하고 있다. 2018.6.9 [연합뉴스TV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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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부 참가자들의 "xx해" (고 성재기씨의 죽음을 조롱하는 말) 등의 피켓이나, 남성을 공격하기 위해 은어처럼 쓰이는 '미러링 용어'들이 '과격하고' '성별 대결 구도를 부추긴다'는 지적도 있었다. 그러나 참가자들은 한목소리로 이런 지적을 반박했다.

이가현씨는 "운동을 하다 보면 과격한 부분이 있고, 과격한 부분이 있으나 온건한 부분이 설득력을 얻는 것"이라며, 개인 피켓 등에 대해서도 "개개인이 어떤 생각을 하는지 제재할 수 없고 제재하는 순간 시위의 화력은 약화될 것"이라고 밝혔다.

강보경씨는 1차 시위를 언급하며 "시위 현장을 지나치던 많은 남성들이 이곳을 지나다니며 인터넷 방송 라이브를 켜거나 카메라를 들이대서 시위가 '과열'된 상태였다. 분노한 여성들에게서 'xx해'라는 말이 나올 수밖에 없었다"며 "이런 단어에 '과하다'고 뒷짐지고 바라보는 사람들에게 아쉬움을 느낀다"고 밝혔다.

김수정씨는 "통쾌했다. 40, 50대들처럼 나이가 들면 적당히 가부장제와 타협도 하고, 자기 검열이 시작되는데, 20대들은 기득권이 없어서 미러링이라는 이름으로 가부장제에 맞서 싸울 수 있는 것 같다"고 말했다. 이어 김씨는 "모든 혁명은 '과격'에서 시작했다. '과격'한 것은 가진 자들에게만 과격한 것이 아닌가"라고 시위를 긍정했다.

양민영씨는 "'과격하다'고 말을 하는데, 기존의 노동자 시위 등을 참여했던 사람이 보면 반 정부적인 면도 덜하고 오히려 온건하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주장했다.


태그:#혜화역시위, #홍대불법촬영, #경찰 편파수사, #불법촬영, #혜화시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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